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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관한 토론자료]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자료]
1. 곽노안, 강남훈 교수의 주장
기본소득의 정의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다양한 기본소득 주장
기본소득 운동 현황
두 교수의 기본소득 전략
2. 다른 논자들의 주장-르몽드 디플로마크에 기고된 최우성의 글에서 인용
3. 전 지구적 기본소득
4. 제갈현숙의 문제 제기의 요지
5. 쟁점의 정리와 입장-토론문 초안 by SS
5-1. 전지구적 기본소득
5-2. 일반적 기본소득에 대하여
5-3. 곽노안, 강남훈 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참고자료] 제갈현숙의 토론문 전문
[참고자료 목록]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자료]

기본소득이 무엇이고, 어떠한 내용인지에 대하여,
비슷한 내용의 글이 많으므로 곽노안 강남훈 두 교수가 공동집필하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모든국민에게 기본소득을’이란 글과, 강남훈이 발표한 ‘한국에서 기본소득 제도의 경제적, 정치적, 이행적 가능성‘을 주로 인용하여, 두 교수의 주장을 우선 소개한 후 쟁점을 정리하기로 한다.

 

1. 곽노안, 강남훈 교수의 주장

기본소득의 정의
‘기본소득은 심사와 노동 요구 없이,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고, 기본소득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전체 사회 구성원에게 지급되며 아무 자격조건이나 의무사항이 없다.’고 정의하고 있다.

기존의 연금 및 실업급여?사회부조금?대학생 생활보조금?집세보조금?자녀양육보조금 등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제도를 대체하는 것으로, 심사절차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복지국가들에서 엄청나게 낭비되는 사회복지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이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의 지지자들은 의료보험, 무상교육, 장애인보조금, 환자요양보험 등은 최소한 유지하거나 확대할 것을 동시에 주장한다.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서유럽의 경우는 추가세수 없이 기존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만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해도, 모든 국민이 1인당 평균 매월 14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식 시장중심주의적 자본주의제도를 택하여 사회복지제도가 미비한 한국과 같은 나라들의 경우에는, 기존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비의 통폐합만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기본소득은 인간다운 생존이 아니라 기아를 면할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각종 연금을 포함하여 2007년 기준으로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예산은1인당 평균 매월 1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에서 인간다운 생존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이 추가적인 재원은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에 대한 세율을 인상하거나 세제를 신설하고 소득세율을 인상하여 조달할 수도 있다. 좀 더 급진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폐기하여 기존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 전체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 후자의 방안을 택할 경우, 한국에서는 2007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매월 5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이 가능하다.

 

다양한 기본소득 주장
그런데 지구적 차원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기존 사회복지제도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크게 보아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주창되는 흐름과 급진적인 정치세력들에 의해 주창되는 흐름의 2가지 상반된 모델이 있다.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의 모델은 최저임금제 폐지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유연화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독일의 거대 자본가 베르너의 모델 등), 급진주의자들의 모델은 최저임금제 강화와 비정규직 축소 내지 폐지 및 지구적 기본소득으로의 확대 등을 포함하고 탈자본주의적 대안경제체로의 이행전략의 성격을 갖고 있다(독일 녹색당 내 개혁파 및 독일 좌파당 내 ‘연방노동공동체 기본소득’ 그룹과 ATTAC 독일지부의 모델 등).

그러나 미국식 시장중심주의의 자본주의제도를 택하고 있는 한국 등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이 기본소득을 주창할 여지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본가계급의 불로소득 내지 투기소득에 대한 중과세 및 소득세의 누진적 인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진보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고, 진보적인 세력에 의해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운동 현황
그리고 최근 미국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세계공황을 야기하면서 위기에 직면하자, 대안경제체제로의 이행전략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면서 급진적인 기본소득모델이 대안지구화운동의 한 축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기본소득 담론이 가장 대중화된 나라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 나라들이라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기본소득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는 ATTAC 독일지부 및 좌파당 내 ‘연방노동공동체 기본소득’ 그룹 등 진보적인 운동단체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기본소득 담론은 서유럽에서 출발하여 현재는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일본 등 전 대륙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2008년 일본, 멕시코 등 4개국에서 기본소득 운동단체들이 BIEN에 가입하면서 BIEN 지부가 있는 나라들은 16개국으로 늘어났다.

현재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나라로서는 브라질, 나미비아 등이 있고, 리비아에서도 올해부터 실시하려고 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룰라가 2003년1기 집권과 함께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빈곤층 생계수당지급 프로그램) 정책을 실시하였다. 각 가정에 매달 평균 85레알(약 5만원)을 지급하는데, 이 금액은 가구 수입의 40%에 해당된다고 한다. 현재 국민 1억9천만 명 가운데 약 4분의 1이 혜택을 받고 있고, 올해 200만 가구에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다. 룰라 정부는 2010년부터 전체 국민과 5년 이상 거주 외국인에기 기본소득을 지급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강남훈, 곽노완. 2009) 미국의 알래스카 주는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알래스카 영구 기금(Alaska Permanent Fund)을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배당(dividend)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나미비아의 오미타라 지역은 2006년 1월부터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였다. 이 지역의 60세 미만 거주자들은 2008년부터 모두가 매달 100나미비아달러(원화로 약 19,100원)를 ‘기본소득’으로 받고 있다. 현재 오미타라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는 과거에 만연했던 식량구걸행위를 완전히 소멸시켰으며, 이 지역민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크게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오미타라 지역으로 국한되어 있는 나미비아의 기본소득제도는 조만간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또한 리비아의 가다피 정부도 2009년초부터 ‘석유 화폐몫(share of oil money)’의 형태로 전체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브라질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재원확보가 어려워, 이미 실현되었거나 향후 도입예정인 ‘기본소득’이 기아를 면할 수준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에 반해 서유럽의 경우, 이미 확보되어 있는 현금지급형 사회복지기금을 향후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하면 세수를 늘리지 않고도 ‘기본소득’의 재원이 확보된다. 나아가 ‘기본소득’의 규모도 매달 1인당 140만원 수준을 상회하여 명실상부 기본 의식주뿐만 아니라 문화·교육·취미생활 등을 향유할 경제적 여건을 보장할 수 있다.

 

두 교수의 기본소득 전략

기존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비만으로 충당된 ‘기본소득’은, 한국과 같이 미국식 시장주의 경제모델을 갖춘 나라들이나 후진국에서는 재원이 적어 미미한 효과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과 같이 미국식 시장중심주의 경제모델을 갖춘 나라들에서는 이자, 지대, 배당 등 자본소득 및 주식양도차익 등 투기소득에 대한 진보적 과세를 통해 재원을 늘려야만 서유럽 수준은 아니더라도 인간다운 생존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도를 갖출 수 있다. 그리고 적립된 연기금 및 은행을 통해 주식회사를 전사회적 소유로 전환하여 자본주의적인 모든 불로소득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전환함으로써 서유럽의 기본소득 논의를 넘어서서 대안경제체제로의 이행전략으로 ‘기본소득’을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이는 한국과 같이 미국식 시장주의 경제모델을 따르는 국가에서는 기본소득 논의가 진보운동에서만 가능함을 뜻한다.

이 글에서 제시한 기본소득은 이러한 것들과 달리 이행기로서 연대사회의 구성요소의 하나이다. 연대사회란 연대사회적인 강령을 제시하고 헌법 개정 등을 통하여 그것을 변혁적으로 구현하겠다고 공약을 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함으로써 시작되는 사회를 말한다. 연대사회에서는 노동자 계급이 정치권력을 잡고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사회이고 사회주의적 요소는 막 도입된 상태이다. 따라서 연대사회는 목표대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도 있지만 목표와 달리 자본주의로 퇴행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연대사회는 경제부문에서는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틀 안에 속하는 강령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지만, 자본주의로부터의 탈피와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 글에서의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도입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한국에서 기본소득의 재정적, 경제적, 정치적, 이행적 가능성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재정적 가능성은 경제적 가능성의 한 부분으로 기본소득 지출에 필요한 만큼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경제적 가능성은 재정적 가능성보다 넓은 영역의 문제로서, 기본소득제도를 채택한 경제가 유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정치적 가능성이란 기본소득에 대하여 대다수 국민이 동의를 하고,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집권을 계획하는 정치 세력이 존재할 가능성을 말한다. 이행적 가능성이란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기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기본소득 지급액은 오로지 연령에 의해서만 차이가 나며, 어렸을 때에는 연간 400만원을 받다가 55세 이상이 되면 연간 600만원을 받는다. 기본소득 도입과 더불어 비정규직을 제한하고 최저임금제도를 개선한다. 그리고 매년 명목GDP 증가율만큼 최저임금과 기본소득을 인상한다.
기본소득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전제로 한다. 여기서 무상교육?무상의료 필요예산 25조원은 기존 교육비 예산 및 국민건강보험에 추가되는 부분이다.
기존 연금제도 가입자에게는 기본소득과 기존 연금제도 중 선택권을 부여하되,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가입자들이 기본소득을 선택할 경우 연금 금액과 기본소득 금액의 차이만큼을 적립된 연기금에서 추가적으로 지불한다. 19세 미만의 인구에 대한 기본소득금액은 부모에게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본소득 재원은 <표 2>와 같이 일부는 기존의 각종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 일부, 공공부조 일부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조세를 통해서 조달하는 것으로 한다. 기본소득 재원에는 무상의료?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원이 포함된다.
기본소득 필요예산은 약 240조원인데,
근로소득 및 종합소득에 대하여 기본소득세를 부과한다 상속증여세, 환경세 도입 및 세수확대, 증권양도소득세(증권, 파생상품 포함) 도입, 이자소득세, 배당소득세 인상, 토지세 도입, 고소득 자영업자 종합소득세원 포착, 국방비 절감등을 통하여 조달할 수 있다.

 

2. 다른 논자들의 주장-르몽드 디플로마크에 기고된 최우성의 글에서 인용

프랑스의 ‘생존소득진흥협회’(AIRE)를 이끌고 있는 욜랑 브레송 대표는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생산을 늘리는 데만 경쟁을 벌였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해진, 전혀 다른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며, "기본소득이야말로 생산·소비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해법"이라고 말했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더 넓은 사회계층과의 연대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 좌파당의 정책보좌관인 로날드 불라시케는 "기본소득은 ‘노동중심주의’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기존 노동운동을 여성운동·문화운동·실업자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 영역과 맺어주는 연결 고리 노릇을 한다"며, "경제위기 속에 진행되는 각국의 일자리 나누기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노동력의 부분적인 탈상품화의 길을 열어주는 기본소득이라는 안전판에 대한 고민이 절실할 때"라고 강조했다. ‘코뮤니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 현대판 기본소득 모델의 핵심 이론가로 꼽히는 파레이스 교수는 일찍이 기본소득을 일러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한 적이 있다. 여기에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로 단칼에 정의되던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정작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사회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본격적으로 끌어낸 당사자들은 되레 ‘보수·우파’ 진영이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부터 몰아친 보수주의의 광풍을 타고, 이들은 기본소득을 구체적인 ‘사회개혁 프로젝트’로 현실화하려는 행보를 재촉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제도 유지 비용을 줄여 복지국가를 ‘대수술’하는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80년대 이후 미국을 필두로 대부분의 서유럽 나라들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부쩍 활기를 띤 비밀도 여기에 있다. 모든 복지제도망을 해체해버리는 대신 그 재원을 전 국민에게 일정액씩 나눠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는 게 그들의 메시지였다. 이처럼 노동력의 상품화를 거부한다는 애초의 급진적·사회비판적 발상은, 이제 공평하게 일정액의 돈을 손에 쥐어주는 대신 모든 것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에 넘기자는 개인주의적·신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한때나마 방향을 잃기도 했다. 다시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기본소득 논의에 대해 각국의 좌파·진보 진영 일각에서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유다.

 

3. 전 지구적 기본소득
(이 절의 인용문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민노총)에서 인용한 것임.)

“위기가 다가오는 금융시장들을 위한 국제적 원조계획을 배경으로, 주최 측은 최소한 또한 높은 결의로, 굶주림과 빈곤에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재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금융시장들 그 자체를 위한 수 조(兆) 유로의 구제로 반박된다. 아프리카 전문가이자 ATTAC 연구그룹 “모두를 위해 충분한”(Genug f?r alle)의 구성원인 다그마 파터노가(Dagmar Paternoga)는 빈국들의 기아퇴치를 위한 기본소득을 위해 700억 유로의 금액으로도 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빈곤퇴치를 위한 EU차원의 기본소득의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EU-위원회에 위임하는 EU-의회의 결의에 고무되어, ATTAC 오스트리아 지부의 클라우스 잠보어(Klaus Sambor)는 EU가 유럽연합의 모든 구성국에게 전국적인 기본소득을 국가 경제력에 따라 지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본소득이 전유럽적 사회정책(Sozialpolitik)에 대한 접근을 나타낼 수 있고, 그 외에도 모든 나머지의 사회보장비(Sozialleistungen)는 각 국 스스로에 의해 유지되어야 하며, 경제력이 강한 국가들은 조정세(Ausgleichssteuer)를 통해 재정약국들의 기본소득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 더 벤과 빠레이스의 논문은 지구적 차원의 기본소득운동 네트워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학술지 BIS(Basic Income Studies) 창간호(2006)에 다시 실리면서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그들은 이후 2006년에 쓴 또 다른 논문 ?지구적 정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에서 이러한 반향에 답하고 있다. 특히, 부유한 나라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보다 세계적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수백만 명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도리스 슈뢰더(Doris Schroeder)의 논평에 답하고 있다. 판 더 벤과 빠레이스의 응답은, 선진국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후진국으로 산업과 서비스 활동이 이동하는 것에 대해 선진국 노동자들의 저항이 약해짐으로써 세계가 경제적으로 보다 평등하게 되는 것을 촉진하게 된다는 것이다(van der Veen & Parijs, ?지구적 정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 2006b: 12 및 곽노완, 2008a, 앞의 글 참조). 또한 세계가 경제적으로 보다 평등해지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민하려는 동기가 축소되어 국경을 개방하는 것이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판 더 벤과 파레이스는, 비록 도입단계에서는 특정한 연령에 제한되긴 하지만 지구적 차원의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한다. 전체적으로 판 더 벤과 빠레이스의 응답은, ‘기본소득’의 도입을 점차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함으로써 세계적으로 평등한 경제가 촉진된다는 주장이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민노총에서 인용)에서 보는 것처럼, 파레이스의 주장은 선진국에서 시작되는 기본소득 운동이 지구를 더 평등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임.

이외에 “네그리와 하트는 사회전체성원이 비물질노동을 통해 ‘코뮌재’인 인식재를 생산하며 이 인식재에 잉여가치가 집중되어 있으므로 사회전체성원이 잉여가치를 증대시킨다고 본다. 그런데 각자가 잉여가치의 증대에 기여한 비물질노동은 “측정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전체성원이 동등하게 “사회적 임금과 모두에게 보장된 수입”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하면서, 빈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제국에 맞짱 뜰(국민국가는 쇠퇴의 경향이 있고 국민국가와의 투쟁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음) 다중이 전지구적으로 기본소득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지구적 기본소득은 최빈국의 기아퇴치를 위한 선진국의 지원형태로, 각국의 경쟁력에 따라 기금을 재원을 조성하자는 내용과, 선진국에서부터 기본소득을 확대하자는 주장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전인류에게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자는 주장이 있다.

 

4. 제갈현숙의 문제 제기의 요지
(진보전략회의 5월 워크샾에서 발표된, 제갈현국의 경제위기 대응으로서 기본소득 전략-토론문에서 인용)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분배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나?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반자본주의적 제도의 형성과 강화를 위해서는 계급운동과 사회운동의 주체역량 강화가 핵심에 놓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본소득전략에서 고려하고 있는 운동주체는 누구인가? 또한 반노동의 전선이 어떻게 반자본의 전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모호하다.
실업이 이렇게 구조적이며 필연적이라는 측면에서 생산 영역과 노동시장에서 이탈된 사람들에 대한 ‘일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먹을 권리'는 1980년대 이후 유럽 좌파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그 이전까지 주류 경제학은 물론 맑스주의자들과 노동운동에서도 사람들이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을 오로지 생산영역으로만 국한시켜왔다. 이로 인해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이라는 명제는 이론적으로는 맑스주의 틀로부터의 이탈된다는 점에서 노동계급 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못해왔다.
실업이 이렇게 구조적이며 필연적이라는 측면에서 생산 영역과 노동시장에서 이탈된 사람들에 대한????일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먹을 권리'는 1980년대 이후 유럽 좌파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이에 더 이상 일자리에 대한 요구보다는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상당시간 반실업과 실업상황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한 생존권이 부각되었다.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은 개인의 물질적 조건을 생산 영역의 차원에서 아니라, 재생산의 영역에서 생산영역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게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총 사회의 부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과 소득을 분리”시키는 전략은 이와 같은 보수적인 사회복지 급여원칙을 파괴할 수 있는 전략적 노선으로 유의미하다.
사회복지제도는 출발부터 오늘날까지 노동유무와 노동시장과의 차별성을 둔 급여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급여발생을 위해 노동력의 유무와 노동력이 있을 경우 반드시 일을 해야만 하고, 이들에게 제공되는 급여는 열등처우의 원칙에 입각해 노동시장에서 제공되는 임금보다는 항상 낮게 책정되도록 했다. 오늘날 공공부조제도에서 조건부 수급권과 최저임금 이하의 최저생계비로 설정함으로써 구빈법의 핵심 원리가 유지되고 있다. “노동과 소득을 분리”시키는 전략은 이와 같은 보수적인 사회복지 급여원칙을 파괴할 수 있는 전략적 노선으로 유의미하다.
일의 유무, 일할 의사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일정한 사회적 부를 나눠 갖자는 주장은 실현가능성을 떠나, 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소득이라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대한 공격일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메시지는 모든 사회관계를 시장관계로 단일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기본소득(basic income)이 대안 전략으로 갖는 논리적 취약성은 매우 명확하다. 기본소득에 대한 좌파적 아이디어와 신자유주의자의 버전 사이의 실질적 차이는 다만 양적 차이만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회적 연대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정상적인 임노동관계에 놓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재원으로 이들에게 소득을 마련한다는 것을 말한다.
노동윤리감소, 피할 수 없는 복지수준감소, 복지국가 철폐에 따른 분배의 축소, 사회분리, 재정안정성, 실현가능성 등이 일반적인 비판요소로 제기되었다.
기본 소득의 재원은 사회보험료와 조세로 형성된다. 이전과 다른 것은 조세원칙의 변화인데 소득세, 법인세, 불로소득 등의 개혁을 통해 국가 일 년 예산과 맞먹는 240조를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계급갈등의 문제는 연대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복지국가에서 상시적인 이데올로기로 문제가 되었던 조세납부자와 수혜자 간의 갈등은 다른 형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제도운영을 위해 국가재정 확보는 우선적 과제가 되고, 결국 국가의 경제성장률에 의존적인 모형이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자본의 계속적인 재생산구조의 왜곡된 확장과 집적의 문제에 대해 전면적인 반대가 불가능한 딜레마를 가지게 된다. 또한 생태에 대한 관심이 사상과 입장을 초월해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성장론에 대한 기본적 철학이 파악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등이 먼저 달성된 후 기본소득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탈상품화된 형태의 교육, 의료, 주택의 확대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기본소득을 위한 선결과제로 제시한다는 것은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더더욱 의문스럽게 하는 절차이다.
현금으로 지급되는 사회적 임금이 가지는 가장 큰 맹점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결국 시장으로 순응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띤다.
소득보장을 위한 현금급여 형태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반할 수 있는 기재로까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득보장의 측면은 항상 생산관계와 공급측면의 반자본주의적 기재와 함께 고려되고 설계되어야 한다.

 

5. 쟁점의 정리와 입장-토론문 초안

 

5-1. 전지구적 기본소득
먼저 전지구적 기본소득이란 극빈국의 외채탕감을 위해 국제적인 자본이동에 대하여 과세하자는 토빈세처럼, 극빈국의 기아모면을 위해 선진국에서 매년 700억 유로의 재원을 만들자는 제안은, 초국적 자본에 대한 선진국의 시민운동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빈국의 기아퇴치를 위해 식량원조보다 기본소득으로 원조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은, 식량자급생산의 여건이 안되는 최빈국에게 화폐급여를 개인에게 지급할 경우, 값싼 수입농산물 시장으로 기능할 뿐 식량자급생산능력의 향상에 해가 될 것이다. 이점은 식량원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구조적인 외채탕감이 먼저인지, 기아퇴치가 먼저인지, 혹은 기아퇴치의 경우 현물로 할 것인지 현금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하는지?
기아선상에 있는 인류에게 원조나 부조가 있어야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빈국이 된 구조적인 원인이 아닌 기아나 외채라는 결과만을 완화시키는 원조방안이 구조적이고 원칙적인 해결방안이 안되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이러한 기본소득지원운동은 토빈세와 마찬가지로 최빈국에 대한 도덕적 원조를 위한 선진국의 시민운동의 차원이므로 천착하는 작업을 미루기로 한다.

마찬가지로 국민국가라는 매개없이 전세계의 다중이 제국에 대항해서 전지구적인 기본소득을 요구하자는 네그리 등의 주장은, 사회보장의 시행주체가 국민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허무맹랑하지만 어쨌든 결국에는 여러 국가의 기본소득운동으로 귀결되므로, 일국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기로 한다.

 

5-2. 일반적 기본소득에 대하여
기본소득의 주장이란 노동과 연계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보장제도인 바, 자본주의하에서의 사회보장이란, 자본의 노동에 대한 통제전략의 측면과 자본의 질서를 제약하는 노동의 성과의 측면을 갖고 있는 바, 일반적으로 소득재분배의 기능과 사회적 약자나 탈락자에 대한 배려의 측면을 갖고 있다.

기본소득이 기존의 형태와 다른 점은 노동과 연계되지 않은 무차별적인 급여이고, 그점에서 우파는 관리비용 절감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좌파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실업자나 고용불안층, 극빈층 등의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고,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배경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노동의 유연화와 도시빈민의 증가,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 등등으로, 자본에 포섭되지 못하거나 소득이 불안정한 계층에 대하여 노동과 연계되지 않은 생활보장적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운동은, 자본-임노동 관계에서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소득이 아니라 생존권의 요구로서 반자본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 점이 필요에 따른 분배 운운하며 이행전략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실업자나 고용불안층 극빈층 등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고,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노동 등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은 기본소득 주장의 장점이다.

기본소득운동에 대하여 현재 사회당과 자율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기본입장으로 삼고 있고, 캘리니코스도 주장하고 있으며, 많은 좌파적 지식인들이 동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판단을 위한 관점은, 과연 기본소득 요구운동이 운동의 성장에 기여하고, 반자본 혁명에 기여할 것인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5-3. 곽노안, 강남훈 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기본소득 요구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착취제도 등에 대하여 정면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신자유주의 하에서 주로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서 배제된 도시빈민의 생존권 요구라고 할 수 있는 바, 운동이 거세어질 경우 궁극적으로는 사회통합을 위한 자본의 배려로 왜곡될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점에서 서유럽처럼 기왕의 사회복지제도의 효율성을 위해 도입되든지 혹은 브라질처럼 자본의 체제유지전략으로서 기아모면 수준의 복지제도로 도입되든 것 역시 그 자체로 전혀 반자본의 운동에 기여하고 있지 않는데도, 이러한 사례를 마치 기본소득 운동이 성공할 수 있고 유의미하다 사례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의식해서 곽노안 등은 필요재원의 대부분을 불로소득에 대한 공격으로 얻을 것이며,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정책이며, 진보세력 집권 후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의 시행 후 실시될 수 있는 정책이며, 210조원에 달하는 연기금으로 800조원의 상장주식 중 중요부분을 매입하여(결국 주식사회주의를 염두에 둔 국유화나 사회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함) 경영성과를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필요에 따른 분배를 추구하는 코뮌주의를 위한 이행전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화폐로 지급되는 급여는 자본이 강요하는 상품화와 시장화에 기여할 수밖에 없는데도, 이 점을 소득재분배를 통한 내수중심의 성장에 기여한다고 하고 있는 바, 이것은 결코 반자본의 논리가 될 수 없고, 시장에 대한 종속을 강화시키는 소부르조아적 주장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기본소득이 과연 사회주의 세력이 집권했을 때 무상의료나 무상교육처럼 시행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그 기준은 탈 시장화 탈 상품화를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정책과 합치하는지의 여부이다. 이점에서 현금급여가 탈 시장화와 탈 상품화에 반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성장제일주의와 대량소비, 생태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가치추구에 해롭다고 말할 수 있다.

두 교수의 주장대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이 보장된 상태에서 가령 3인가족(성인2명+미성년자 1명)의 경우 월 140만원, 4인가족(미성년자 2명)의 경우 월 180만원의 현금이 지급된다면, 사실상 추가적 소득없이 근검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고, 이것은 결국 노동의 이탈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근로의욕을 북돋우고 GDP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두 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 간의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곽노안 등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현물급여를 시행한 토대 위에 현금급여를 시행한다고 하면서 무상주택은 언급하지 않고 있지 않은데, 이것은 주택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은 주거비이고 그 다음에 교육비인 바, 주택의 문제를 시장원리에 맡긴 채 현금급여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마디로 좌파가 정권을 잡아야만 그리고 정권을 잡고 나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의 현물급여를 존중하면서 불로소득에 대한 공격으로 재원을 마련한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전제조건인 좌파의 집권과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어떤 방법으로 이룰 것인지 그 주체와 주된 슬로건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유의미한 기본소득이란 목표보다 전제조건이 달성하기가 훨씬 어려운 과제라면 이러한 목표를 당면 슬로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사회처럼 기왕의 복지제도가 불안정하고 체제에서 소외된 실업자나 빈곤층에게 기본소득의 요구는 생존권 나아가 반자본적 불만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국민총생산이 1,000조원이고 국가 1년 예산이 240조인데, 평균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또 다른 280조원이 필요한 바, 그 실현방도가 주로 투기와 불로소득에 강제과세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면, 이는 결코 지배계급이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요구임이 명백하고, 설령 분배의 형태에만 집착하는 이 운동이 성장하여 지배계급이 어쩔 수 없이 이 요구를 수용하든지 혹은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아 강요하든지 간에,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격렬하여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불로소득은 근절의 대상이지 온존시키면서 중과세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좌파의 집권시 중과세이든 전액 환수이든지 간에 불로소득(에 대한 총 투자액)은 급감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총생산의 30%나 되는 280조원이라는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분배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과연 그 재원을 현금급여로 분배하는 것이 국가가 다른 용도의 지출 즉 공적인 입장에서 재투자나 주택 등의 사회보장을 위해 지출하는 것보다 합리적인 적인 것인지에 대하여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무주택자 1,000만 가구에게 국가가 무상으로 주택을 공급한다면 가구당 5,000만원(현재 수도권만 아파트 값이 비싸고 지방은 3,000만원대임)으로 환산해도 총 예산은 500조원인데 이는 기본소득이 추산한 1년 예산의 2배도 안되는 돈이다. 이 경우 무상주택운동이 기본소득운동보다 열등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회주의 사회의 총생산에서 재생산 유보분을 제외한 부분이 급여와 기본소득 등으로 지급되는 개인소비 몫과 공적인 관점에서 사회적인 투자와 사회보장 등의 분배 몫으로 나뉘어진다면, 총생산의 30%를 차지하는 기본소득은 국가의 공공적 투자와 분배를 현저히 제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본소득 논자들은 사회보장의 형태에만 집착하면서 그 가능성과 유의미성을 설득하기 위하여, 연봉 1억원 이하 즉 사회성원 대다수에게 소득이 늘어나는 방안이며, 소비를 진작시켜 내수중심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대다수의 대중과 자본을 설득하고, 주로 불로소득을 공격하므로 진보세력의 집권 후에야 시행이 가능하고 따라서 이행전략이 될 수 있다면서 좌파에게까지 호소하고 있는데, 과연 지구상의 어떠한 운동과 주장이 대다수의 국민과 자본과 진보세력 혹은 좌파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까?

기본소득의 요구를 당당하게 반자본의 요구로 내걸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포함한 절대다수에게 득이 되는 정책이라고 설득하면서 대중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은, 자본과의 타협적 공생일 수밖에 없는 사민주의적 정책보다도 못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공감할만한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내건 민노당의 지지도가 10%도 안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생경한 기본소득의 주장에 대하여 동조할 세력은 그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예상되고, 결국 지식인들이 주로 관심을 보이겠지만, 구체적인 확신을 줄 수 없는 막연한 소득분배 정책을 무슨 이행기 전략 운운하면서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요구를 제기하여 자본에게 타격을 주는 운동으로 성장하기도 어렵고, 설령 성장하더라도 자본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자본이 수용하더라도 왜곡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의 주장은 반자본의 전선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좌파는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적 원칙과 합치하지 않는다면 실업자 등 도시빈민과 사회적 부불노동인 가사노동에 대한 대안은 찾을 필요가 있고, 당면의 현실에서 빈곤층을 포함한 대중을 결집시킬 담론과 요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경제위기 대응으로서 기본소득 전략-토론문
(이글은 진보전략회의 5월 워크샾에서 발표된 글인데, 원문 전체를 인용함)
제갈현숙(사회학, 사회정책)

 

1. 문제제기

□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분배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나?
□ 자본주의에서 사회복지는 양면적인 성격을 띤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사회질서를 유지하지위한 자본의 지배 및 통제전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피지배계급의 혁명적 투쟁으로 달성된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반대하는 전략이다. 후자의 성격이 강할수록 탈상품화 지수가 높게 나타나고 후자의 강화는 권력자원을 기반으로 형성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반자본주의적 제도의 형성과 강화를 위해서는 계급운동과 사회운동의 주체역량 강화가 핵심에 놓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본소득전략에서 고려하고 있는 운동주체는 누구인가? 또한 반노동의 전선이 어떻게 반자본의 전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모호하다.

2. 담론의 배경과 장점

□ 배경
- 2차 대전 이후 포디즘적 생산관계의 해체이후 실업은 자본주의의 핵심 사회문제로 자리하게 되었다. 더욱이 탈산업화시대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노동사회의 위기를 더욱 가시화시켜왔다. 우리가 직면한 대량실업은 더 이상 일시적인 현상이거나 예외적인 현상이기보다는 자본주의 자체의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문제이자 결과가 되었다. 실업이 이렇게 구조적이며 필연적이라는 측면에서 생산 영역과 노동시장에서 이탈된 사람들에 대한????일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먹을 권리'는 1980년대 이후 유럽 좌파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 그 이전까지 주류 경제학은 물론 맑스주의자들과 노동운동에서도 사람들이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을 오로지 생산영역으로만 국한시켜왔다. 이로 인해????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이라는 명제는 이론적으로는 맑스주의 틀로부터의 이탈된다는 점에서 노동계급 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못해왔다.
- 노동권, 즉 일할 권리, 일자리 지키기,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방식이 처음에는 노동계급의 요구로 시작되어 점차 자본과 국가의 요구로 확산되어 왔다. 자본주의 정당들은 고용과 경제 성장을 상품으로 선거시기마다 판매했으며,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에 적합하도록 법과 사회질서를 변화시켜왔다. 그 결과 노동은 매우 유연해 졌고, 보편주의에 입각했던 소득보장제도는 선별적인 노동연계복지로 전환되었으며 노동과 자본의 권력은 심각한 불균형 상황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로 전파된 이후 거의 모든 부분이 자본의 요구대로 관철되어 진행되어 왔다.
-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제위기마다 일자리는 감소했고 그만큼 불안정한 노동층은 두터워졌다. 산업구조조정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신자유주의 전략은 필요노동시간의 절대적 감소를 달성했다. 이에 더 이상 일자리에 대한 요구보다는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상당시간 반실업과 실업상황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한 생존권이 부각되었다.
- 종합적으로 완전고용의 불가능성, 수준 낮은 공공부조와 실업급여의 한계, 강제노동과 자격조건 및 급여심사(means test)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제시되었다.

□담론의 장점
-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은 개인의 물질적 조건을 생산 영역의 차원에서 아니라, 재생산의 영역에서 생산영역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게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총 사회의 부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복지 기원을 영국의 구빈법(poor law, 1601)에서 찾는다. 사회복지제도는 출발부터 오늘날까지 노동유무와 노동시장과의 차별성을 둔 급여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급여발생을 위해 노동력의 유무와 노동력이 있을 경우 반드시 일을 해야만 하고, 이들에게 제공되는 급여는 열등처우의 원칙에 입각해 노동시장에서 제공되는 임금보다는 항상 낮게 책정되도록 했다. 오늘날 공공부조제도에서 조건부 수급권과 최저임금 이하의 최저생계비로 설정함으로써 구빈법의 핵심 원리가 유지되고 있다. “노동과 소득을 분리”시키는 전략은 이와 같은 보수적인 사회복지 급여원칙을 파괴할 수 있는 전략적 노선으로 유의미하다.

3. 기본소득전략 운동의 궤적

-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아우토노미아 운동이 노동에서 분리된 소득을 주장했고, 1980년대 독일에서 전개되었던 이른바 Jobber운동에서도 이와 같은 시도가 이어졌다. Jobber란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두 개 이상의 임시직 사업장에 동시에 고용된 사람들을 뜻하고, 이들에게 자본주의적 임노동관계에 내포된 구조적 강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1980년 대중반 이후 자본의 적극적????유연화'공세가 시작되면서 이에 대응하는 전략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실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했던 "모든 이들에게 1500마르크씩을!"이라 구호에서 노동권에서 생존권으로 운동의 전략이 전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일의 유무, 일할 의사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일정한 사회적 부를 나눠 갖자는 주장은 실현가능성을 떠나, 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소득이라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대한 공격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처럼 노동과 소득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자유주의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복지국가에서 나타나는 비효율, 재정적자, 관료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회보장제도를 완전히 철폐(독일의 경우 백여 가지 이상)하고, 대신 일정한 소득 한계를 정해 그 이하의 소득자들에게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M. Friedman, Negative income system)하는 방식이다. 이들 자유주의자들의 메시지는 모든 사회관계를 시장관계로 단일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기본소득(basic income)이 대안 전략으로 갖는 논리적 취약성은 매우 명확하다. 기본소득에 대한 좌파적 아이디어와 신자유주의자의 버전 사이의 실질적 차이는 다만 양적 차이만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Ernst Rohhoff, 1999)
- 사회적 연대 방식도 사회관계의 시장관계로의 단일화라는 점에서 역시 취약하다. 사회적 연대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정상적인 임노동관계에 놓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재원으로 이들에게 소득을 마련한다는 것을 말한다. 국가로부터 소득을 지원받게 되는 사람들은 생산관계로부터는 배제되었으나 시장관계 내로 단일화될 수 있는 수단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국가의 관료주의적 개입 없이 스스로 어떤 조건에서도 노동할 준비를 갖출 수 있다.
- 90년대 이후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이라는 명제는 실업에 대응하기 위한 좌파운동의 새로운 화두였다. 문제는 소득을 노동으로 환원시키는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동시에 이런 흐름들이 모든 사회관계를 시장관계로 다시 환원시켜 버리려는 자유주의적 대세에 맞설 수 있는 전략에 달려 있다.

4. 반자본 운동으로서의 기본소득 전략의 한계와 쟁점

□일반적 비판: 노동윤리감소, 피할 수 없는 복지수준감소, 복지국가 철폐에 따른 분배의 축소, 사회분리, 재정안정성, 실현가능성 등이 일반적인 비판요소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실현가능성과 기존 제도와의 비교 관점에서 쟁점을 찾기보다는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한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 연대사회를 위한 국가재정투쟁인가?
-기본 소득의 재원은 사회보험료와 조세로 형성된다. 이전과 다른 것은 조세원칙의 변화인데 소득세, 법인세, 불로소득 등의 개혁을 통해 국가 일 년 예산과 맞먹는 240조를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즉 국가재정 수입구조의 혁신적 전환과 지출구조의 개혁을 통해 기본소득이 제도화된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재정의 이와 같은 변화는 선거를 통해서는 불가능하고 결국 정치투쟁의 장에서 권력의 이전으로 가능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을 바꾸기 위한 이행전술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데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
-또한 국가재정을 통한 재분배모델은 연대공동체(Solidargemeinschaft) 사회를 지향하면서 국민들은 연대제공자(Solidarit?tgeber)와 연대수혜자(Solidarit?tnehmer)로 구분된다. 즉 사회총생산을 재분배하는 데 있어 계급갈등의 문제는 연대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복지국가에서 상시적인 이데올로기로 문제가 되었던 조세납부자와 수혜자 간의 갈등은 다른 형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사회의 총생산을 재분배하는 방법에 있어 직접적으로 자본이 취한 잉여가치분을 피지배계급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 소득세 중심의 형태는 고용되어 노동하는 사람들과 고용되지 못한 사람들 간의 분화를 촉발할 수 있다.
-안정적인 제도운영을 위해 국가재정 확보는 우선적 과제가 되고, 결국 국가의 경제성장률에 의존적인 모형이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자본의 계속적인 재생산구조의 왜곡된 확장과 집적의 문제에 대해 전면적인 반대가 불가능한 딜레마를 가지게 된다. 또한 생태에 대한 관심이 사상과 입장을 초월해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성장론에 대한 기본적 철학이 파악되지 않는다.

□ 기본소득 급여형태와 시장으로의 순응
-현금급여의 원칙과 욕구(need)가 더 많이 발생되는 사람에게 현금급여뿐만 아니라 현물급여도 유지된다는 원칙이다. 이를 위해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등이 먼저 달성된 후 기본소득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탈상품화된 형태의 교육, 의료, 주택의 확대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기본소득을 위한 선결과제로 제시한다는 것은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더더욱 의문스럽게 하는 절차이다. 각각의 과제가 자본의 이해와 매우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더욱이 교육의 경우, 한국사회의 총체적 문제가 모두 집결되어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 과제들이 이행을 위한 선결과제라고 한다면 이에 따르는 구체적 전략역시도 제시되어야 기본소득의 실현성에 힘이 실릴 수 있다.
-현금으로 지급되는 사회적 임금이 가지는 가장 큰 맹점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결국 시장으로 순응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띤다. 즉 재화의 생산구조와 서비스의 공급구조는 여전히 시장 메커니즘이 유지된 채 노동자와 시민에게 소득만을 보충할 경우, 포디즘 시기 소비자로 활약했던 노동자들의 소비자로서의 지위가 확대될 것이다. 현재도 사회서비스 이용자들에게 현금급여의 한 형태인 서비스이용권(바우처)이 제공되고 있다. 이전에 비해 서비스 적용률은 확대되었고 급여의 수준도 상대적으로 발전했으나 공급구조의 시장 메커니즘으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즉 소득보장을 위한 현금급여 형태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반할 수 있는 기재로까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득보장의 측면은 항상 생산관계와 공급측면의 반자본주의적 기재와 함께 고려되고 설계되어야 한다.     

※ 그러므로 기본소득 전략이 대안담론으로 더욱 내실을 갖기 위해서는 생산영역과 재분배 영역의 분리보다는 통합적 전략에서 반자본 운동으로써의 전망과 탈시장적 요소의 강화, 그리고 주체형성에 대한 전술이 더욱 요청된다.

 

[참고자료 목록]
모든국민에게기본소득을-민노총
issue-최우성
B3소득-이행전략으로서의한계와가능성-곽노안
준비모임강령특위_강령토론4_21c사회주의와노동_20090514곽노안
소득과_사회연대소득의_경제철학(수정-곽노안
경제위기_어떻게_대응할_것인가-강남훈, 제갈현숙
기본소득의재정적경제적정치적가능성(강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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