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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일처제에대한 반론...

나는 일부일처제에 결코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선 사랑이란걸 어떻게 볼것인가가 문제인데

사랑은 영원불변의 지고지순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것은 성경책이나 미디어의 순정영화속의 테마일 뿐이라는거다.

사랑은 도덕적 당연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랑은 찰라적이기도하고

불완전하고 울퉁불퉁한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사랑은 한사람만을 위해 열려져 있지도 않다.

누를수록 억압할수록 터지게 마련인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제2의사랑,제3의사랑을 해방시키자는 이야기인가?

너무 위험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생각만이라도 좀 다르게 해봐야 하지 않을까한다.

 

두째,일부일처제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

줄기차게 자녀를 출생하고 양육해야하는 짐을 덜어보고자

고대적 여자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 말은 꽤 설득력이 있다.

고대 인간의 평균 수명이 40세 정도였다는것을 감안할때

한 여자가 평생동안 자녀를 열명정도 출생한다면

여자는  평생 아이만 낳고 기르다가 죽었을거니까!

게다가 다른 동물들과 비교했을때

한 인간의 양육 기간은 현저하게 길어

근 20년씩이나 되니 자녀의 양육이라는건  

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임에 틀림없다.)

 

혹자는 일부일처제는  권력,경제적,물리적 힘이 열등해서

여자를 차지하지 못하는 남성들을 위해,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라고도 한다.

머 그것또한 설득력이 있기도하다.

일부일처제야말로 가장 안전하고도 강력한

성적 구속력이니 말이다.

 

 

오늘 이웃을 따라 교회에 갔다.
"Lord,I trust myself unto thee
Lord,I give my true love unto thee
Lord,I give my whole thankness unto thee.."
장엄한 성가였다.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가 뭘까?
그건 아이가 엄마의 품을 찾듯
인간은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사랑에대한
근본적이고도 원시적인 갈망이 있는게 틀림이 없다.
감동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지옥간다."
라는 말을 힘주어 설교하신다.
띠옹~~~!
한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사랑은 절대적 믿음을 강요하는 폭력이란걸 입증하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사랑은
근본적이고 절대적이고 인자한 신뢰와 애정이기도한 동시에
지극히 구속적인 폭력일까?

 

도대체 사랑을 어떻게 규정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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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의 문제

개인의 행복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공부모임을 통해 느낀데로

주체적으로 사는거!

개인의 자립적 삶을통해 획득하는

자기 존엄성

개인적 <자치>...

 핵심이다.

 

근데 이상하다...

 

그 자치라는게

도시에서는

흔히 돈하고 연관이 되어 있다는거다.

갸우뚱...

 

더욱 이상하다.

그 자치라는게 가만보면

건강한 성인남녀에게만

국한된거 같다는 느낌이다.

 

늙고 병든 노인이나

어린 아이들이나

아니면 몸과 마음이 성치못한 병자이거나

아니면

그들을 부양해야하는 사람인 경우엔...

자치를 획득하기가

좀 어려워보인다.

그들에게는 흔히 '복지'라는 말을 쓰곤한다.

 

복지...

그러나 결코 자치는 아니다.

복지는 폭력이란 말도 있쟎은가?

복지란 그들에게

주어질수도있고

주어지지 않을수도 있다는거 아니가?

누군가(복지의 주체가) 나에게 그  복지의 혜택을 주겠다는것...

결국 난 그걸 기다리며 얻어먹는 객체?

결코 복지는 자치가 될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그들에게 자치는 불가능하단 말인가....

그들에게 개인이 자립적 삶을통해 획득하는

자기 존엄성의 획득은 어렵다는건가?

 

갸우뚱할수밖에... 

 

우리는 이 자치의 문제를

어떻게 풀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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