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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브레이브 스토리

아래 포스터에 겁먹은 표정의 소년이 와타루 미타니, "브레이브 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다. (네권짜리 원작소설도 있고 열몇권짜리 만화책도 있는 데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어 있다.) 몇몇 극장에서 상영중.

RPG게임의 전개방식을 차용하기도 한 이 작품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지난번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볼 때처럼, 내가 여전히 하나의 소녀이거나 소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 되기는 아직 좀 먼 것일까. 하지만 늦게 어른이 되어가서 좋은 점도 있다. 여전히 영화를 보고, 울기도 하면서 좀 더 클 수 있다. 그리고 좀 다른 측면에서는 작품 속의 상징들을 더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랄까.



"용기는 빵점, 체력은 평균"
포스터에 나온 이 구절은 와타루에게 환계(幻界)의 도사가 한 말이다. 굳이 이런 말이 아니라도, 보는 내내, 와타루, 넌 참 나와 비슷하구나, 생각한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서 이혼하고 어머니는 아파서 쓰러진 와타루는, 성공하면 자신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여행-모험을 환계(환상계, 따라서 상상계)로 떠난다. 실패하면 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 모험이다. 와타루의 소원은 가족의 복원.

이건, 부모가 이혼한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이혼한 어른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한 것같다. 그 결정적인 모험이 하나의 여행이고, 그 장소가 상상계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위험이 있는 장소다. 사실 내가 작년에 헤어지고 떠난 여행의 장소는, (물리적으로는 유럽대륙이었지만) 바로 그 상상계였던 셈이다. (제대로 돌아왔는지는 솔직히 말해서, 전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제는 실재계로 "어떻게 돌아와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하게됐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여행을 떠난 와타루가 만난 것은 어떤 것들일까? 구체적인 형상을 띠고 인격을 갖춘 온갖 상징들이다. 먼저 여행을 떠난 친구 미츠루는 외롭지만 내면이 강하다. 중간중간, 그리고 마지막 장면들에서 작가는, 무엇이 강한 것인지를 다시 묻는다.

원하는 대로 운명을 바꾸어 준다는, 운명의 여신을 만나기 위한 마지막 시험에서, 와타루와 미츠루는 또 다른 자신을 만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부정적인 면, 아니 그 보다 슬퍼하는 자신을 만나고 싸운다.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와타루가 그 자신을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보듬어 안아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과 싸우고, 결국 그 가슴에 칼을 꽂는 미츠루와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 작년, 가장 힘들었던 어떤 시점에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던 것이다. "내가 나를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야", 라고.



그것이 자신과 싸우는 "또다른 자신을 살해하는", 그래서 결국  "자신"을 살해하는 미츠루와 다르다. 그러나 나는 또 한편으론 그 동안 내 마음을 얼마나 살해하려고 했는지 생각한다.(그래서 나는 혹은 우리 모두는 와타루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느 정도는 미츠루이기도 한 것이다.) 백무산 시인은 <인간의 시간>에 실린 시, "마음을 살해하다"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러면 죄악이란 무엇이겠느냐
눈에 보이는 것들 살아있는 것들
다 쏴죽이고서
그 시체들이나 잔뜩 쌓아두고 있는
마음이여
너를 살해한다

백무산 시인에겐 죄송하지만, 나를 살해하는 대신, 품어주고 싶다고, 위로해주고 싶다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나서 만난 운명의 여신에게, 와타루가 말한 소원은 애초에 생각했던 그것이 아니었다. (나도 작년에 얼마나 그 운명의 여신 Fortuna에 몰두했었는지, 심지어 유럽 여행지에 유명한 박물관에서 마다 그리스 조각상에서 Fortuna를 일부러 찾았던 것이다.) 그 대신, 억지로 바꾸려고 했던 운명 때문에 다른 이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끝내달라고 이야기한다.(환상계의 친구들을 위한 소원이다) 운명(의 여신)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던 거다. 자신의 운명에 스스로 대면하는 것. 바로 나의 운명에.

그래서, 용기는 빵점인 소년 와타루의 이야기에 제목이 브레이브 스토리 Brave Story가 된 사정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용기란, 무서운 괴물, 적들을 대면하는 것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을 대면할 수 있는 것, 품어줄 수 있는 것, 자신의 운명에 스스로--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것, 그리고 타자를 만나고 고통을 공감할 줄 아닌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운명에 마주했을 때, 비로소 와타루는 환계(상상계)를 구하고, 그곳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원했던 것, (정상)가족의 복원이 아니라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

(상상계에서 오히려 실재계에서 보다 더 진실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역설이란! 주체들은 사실 실재계보다는 상상계 속에 있기 때문일까?, 또는 진정한 용기는 상상계를 추악한 마물들로부터 구하는 그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자신의) 상상계를 구하는 와타루의 행위는 자신을 보둠어주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난삽하게 이야기하다보니, 오히려 맥빠지고 밋밋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애니에는 이런 얘기들은 안 나오니 안심들 하시길, 쓰고 나서 보니, 이 글은 애니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증류시키면 이렇게 김빠진 술처럼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랄까. 생생하게 살아있는 와타루의 모험을 함께 하다보면, 내가 굳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생각하게 될 내용이다.


* 주제곡도 좋다.
動かせる足があるなら 向かいたい場所があるなら
움직일 수 있는 다리가 있다면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この足で歩いてゆこう
이 다리로 걸어 가자





決意の朝に
(결심의 아침에)

Artist : Aqua Timez

作詩:太志 作曲:太志

どうせならもう ヘタクソな夢を描いていこうよ
기왕이면 서투른 꿈을 꾸면서 가자
どうせならもう ヘタクソで明るく愉快な愛のある夢を
기왕이면 서투르고 밝고 즐거운 사랑이 있는 꿈을
「気取んなくていい かっこつけない方がおまえらしいよ」
「신경 안써도 돼. 폼 안잡는 쪽이 너 다워서 좋아」

一生懸命になればなる程 空回りしてしまう僕らの旅路は
열심히 하면 할 수록 헛도는 우리들의 여행은
小学生の 手と足が一緒に出ちゃう行進みたい
초등학생 때 손과 발이 동시에 나가는 행진 같아
それもまたいいんじゃない? 生きてゆくことなんてさ
그것도 좋지 않아? 살아 간다는 건
きっと 人に笑われるくらいがちょうどいいんだよ
분명,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당할 정도가 딱 좋아

心の奥の奥 閉じ込めてた本当の僕
마음의 안의 나. 가둬 두었던 진짜 나
生身の36度5分 飾らずにいざwe don't stop
몸의 36도 5부. 허세 부리지 말고 we don't stop
けどまだ強がってるんだよ まだバリアを張ってるんだよ
하지만 또 강한 척 하고 있어. 또 방어막을 치고 있어
痛みと戦ってるんだよ
아픔과 싸우고 있어

辛い時 辛いと言えたらいいのになぁ
괴로울 때 괴롭다고 말하면 될 텐데 말야
僕達は強がって笑う弱虫だ
우리들은 강한 척하며 웃는 겁쟁이야
淋しいのに平気な振りをしているのは
외로운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은
崩れ落ちてしまいそうな自分を守るためなのさ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야

僕だけじゃないはずさ 行き場のないこの気持ちを
나 뿐만이 아닐거야. 갈 곳이 없는 이 기분을
居場所のないこの孤独を
있을 곳이 없는 이 고독을
抱えているのは…
안고 있는 것은…

他人の痛みには無関心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무관심
そのくせ自分の事となると不安になって
그런 주제에 자신의 일이 되면 불안해 하고
人間を嫌って 不幸なのは自分だけって思ったり
인간을 싫어해. 불행한 것은 자신뿐이라 생각해
与えられない事をただ嘆いて 三歳児のようにわめいて
가지지 못한 것을 단지 한탄하면서 3살짜리처럼 우는
愛という名のおやつを座って待ってる僕は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자를 앉아서 기다리는 나는
アスファルトの照り返しにも負けずに
아스팔트의 열에도 지지 않고
自分の足で歩いてく人達を見て思った
자신의 다리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깨달았어
動かせる足があるなら 向かいたい場所があるなら
움직일 수 있는 다리가 있다면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この足で歩いてゆこう
이 다리로 걸어 가자

もう二度とほんとの笑顔を取り戻すこと
이제 두번 다시는 진정한 웃는 얼굴을 되찾을 수는
できないかもしれないと思う夜もあったけど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밤도 있었지만

大切な人達の温かさに支えられ
소중한 사람들의 따뜻함에 도움 받아
もう一度信じてみようかなと思いました
다시 한번 믿어 볼까 하고 생각 했어
                     
辛い時 辛いと言えたらいいのになぁ
괴로울 때 괴롭다고 말하면 될 텐데 말야
僕達は強がって笑う弱虫だ
우리들은 강한 척하며 웃는 겁쟁이야
淋しいのに平気な振りをしているのは
외로운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은
崩れ落ちてしまいそうな自分を守るためだけど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지만

過ちも傷跡も 途方に暮れ べそかいた日も
잘못도 상처도 어찌할 바 모르고 울상 짓고 있던 날도
僕が僕として生きてきた証にして
내가 나로서 살아간 증거로서
どうせなら これからはいっそ誰よりも
기왕이면 이제부터 아예 누구보다도
思い切りヘタクソな夢を描いてゆこう
마음껏 서투른 꿈을 꾸며 가자
言い訳を片付けて 堂々と胸を張り
변명을 정리해버리고 당당히 가슴을 펴고
自分という人間を 歌い続けよう
자신이라는 인간을 계속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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