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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의 할머니

미루의 할머니는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미루 할머니가

제 아버지일리는 없으니까

하나마나한 소리입니다.

 

미루 할머니가

미루를 무지하게 이뻐하십니다.

 

지난 번에 한번 오셨을 때도

7kg에 육박하는 미루를

번쩍번쩍 안고 다니시더니

몸살로 드러누우셨다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근데 이번에도

미루를 열심히 안아주십니다.

미루는 그새 8kg이 됐습니다.

 

"이리와 보세요..미루 옹알이 하는 거 보여드릴께요.."

 

저는 불현듯 아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부쩍 시끄러운 옹알이의 현장으로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미루야~옹알이 해보자~따라해~

'옹'~~~

'알'~~~

'이'~~~"

 

한마디도 따라하지 않고

미루는 소리만 계속 지릅니다.

 

"에이..미루야 다시 해보자, 옹~알~이~"

 

초등학교 학예회에서도

채택되지 않을 만한 개그를 하자

어머니도 어이가 없어 하십니다.

 

미루는 "끼야~" "꺅~~" "호오~호오~" 등등

한글로 옮길 수 없는 각종의 옹알이를 선보입니다.

어머니 기분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는

기분전환이 좀 필요합니다.

 

제 할머니

그러니까 제 아버지의 어머니께서

지금 치매가 심각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최근에 무릎 수술을 하시고

집에만 계십니다.

 

어머니는 매일 두 분의 집으로 가셔서

저녁을 해드리고, 빨래감을 잔뜩 짊어지고 오십니다.

 

벌써 일년이 넘었습니다.

 

60이 다 되셨는데

아직도 시집살이 중이십니다.

 

주선생님이 일찌기 말씀하시길

가부장제 안에서 가장 하층민은 며느리라고 하셨는데

우리 어머니가 지금 그런 처지십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수 많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결국은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희생하시는 방법이

선정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어머니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물론 그 힘든 일을

다 참아 내시지만

 

이런 걸 가지고 "그런 효부가 없다"는 식으로 칭찬하는 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식 8남매 중 아무도

두 분을 돌보지 않습니다.

 

정부나 사회는 언제나 그렇듯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큰 며느리인 저희 어머니한테 떨어집니다.

'효도'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입니다.

그것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폭력입니다.

 

"밥을 해드릴거면 아버지도 가셔서 함께 하시지요"

 

만약 제가 이런 얘길 했다면

"역시 넌 너무 이상적이야~"란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올 겨울에 며칠 놀러 갔다 올려고 생각 중이야...

그래야 나도 이번 겨울 버티지..."

 

어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미루가 좀 크면 같이 놀러가야겠다는 생각이

평소에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제 맘 속에서 생겼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상황이시니

미루의 역할은 매우 지대합니다.

 

"미루야~이 녀석..할머니 가시는 데 잠만 자네.."

 

부모님이 가실 시간이 됐는데

마침 잘 시간이라서 유모차에서

곯아떨어진 미루가 좀 서운하셨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미루 발을 잡고 흔들고

손을 꽉 쥐었다 놨다 하시더니

급기야는 뺨을 톡톡 칩니다.

 

그래도 미루는 잡니다.

 

"에이..그냥 가야겠다. 추석 때 보자~~"

 

인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차 시동을 거셨습니다.

근데 미루가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어머니는 반가워라 하시면서

차에서 내려서

한껏 미루한테 인사를 하시고

다시 차에 타십니다.

 

내려가시는 데 미루가 잠시라도 잠이 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가시고

미루는 한 시간 내내

열과 성을 다해서 울어제꼈습니다.

 

곤하게 자다가 깬게 너무 억울했나 봅니다.

 

달래느라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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