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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기저귀 갈기

외출할 때 가방 속에는

기저귀가 하나 가득입니다.

 

미루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우리한테 구원을 요청할 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처음 3달 정도는

외출할 일이 많지도 않았지만

외출하더라도 미루는

기저귀에다 오줌을 싼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4달째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오줌뿐만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한 것도

마음 푹 놓고 쌉니다.

 

덕분에 저랑 주선생님은

시시때때로 비상이 걸립니다.

 

병원이나 마트, 백화점 같은 곳 중에

기저귀 교환대가 잘 갖춰진 곳은

마음 편하게 기저귀를 갈면 됩니다.

 

그런데 교환대가 없는 그런 곳에서는

그냥 화장실 세면대 앞쪽 같은 곳에서

매우 어정쩡한 자세로 기저귀를 갑니다.

 

어느 식당에 갔을 때는

탁자 위에 눕혀 놓고 기저귀를 갈아서

그 식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뻔 하기도 했지만

워낙 어수선해서 그냥 잘 넘어간 적도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교환대 없이 갈 때는

주로 그냥 유모차 안에

미루를 눕힌 상태에서 기저귀를 가는데

이게 참 힘듭니다.

 

그래도 외출이라고

밖에 나갈 때는 항상 바지를 입혀 가기 때문에

 

일단 바지를 벗깁니다.

 

그리고 나서

물티슈를 꺼내서 한 손에 들고,

새 기저귀도 채우기 직전의 상태로 펴서 손 잘 닿는 곳에 놓습니다.

 

다리를 들어서 차고 있던 기저귀를 반 접어 엉덩이 밑에 깐 다음

물티슈로 닦아줍니다.

귀찮으면 기저귀 반 접는 과정은 생략하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에 기저귀를 빼내고

새 기저귀를 채우고 나서

다시 바지를 입힙니다.

 

이 순서는 미루가 오줌을 싸서

별로 닦아줄 것이 많지 않을 때 입니다.

 

많은 걸 닦아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기저귀를 반 접어서 엉덩이 밑에 깔기 전에

왼손으로 미루 다리를 잡고 번쩍 들어올립니다.

 

그 상태에서 기저귀를 반드시 반으로 접는데

안 그러면 닦아주다가, 기저귀에 고여 있는 물질에

손을 담그는 수가 있습니다.

 

여전히 왼손은 미루 다리를 번쩍 들어올린 상태입니다.

닦기 시작합니다.

 

닦아야 할 게 많을수록

손은 부들부들 떨립니다.

 

그 사이 다리가 많이 무거워졌습니다.

 

애 다리가 무거워봐야 얼마나 무거울까 싶지만

정말 식은땀이 흐릅니다.

 

게다가 이런 일련의 행동을

남자들 왔다갔다 하는 화장실에서

유모차에 고개 쳐박고 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관심을 가져줍니다.

 

저는 얼굴이 벌개집니다.

 

그런데 오늘

주선생님은 저보다

더 강렬한 일을 당했습니다.

 

며칠 좀 자는 듯 하더니

또 다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울고 있는 미루를 재우기 위해서

 

주선생님이 유모차에 미루를 싣고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한참 유모차를 끄는 데도

미루는 안 자고 버티더니

결국 똥을 쌌습니다.

 

이럴때 쓰는 도량형의 최고 단위는

'바가지'입니다.

 

미루는 똥을 바가지로 싸놨습니다.

엄청 많이 쌌다는 얘기입니다.

 

순간, 판단력을 잃은 주선생님은

공원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미루 기저귀를 갈아줬답니다.

 

공원의 공기는 유난히 맑았고

이 때문에 냄새는 유난히 선명했을 겁니다.

 

한참 부들부들 떨면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을 때쯤

 

느닷없이 남자들이

주선생님의 왼쪽과 오른쪽을

줄 지어서 지나가더랍니다.

 

2명이나 3명이 아니고

나중에 공원에 모여 있는 걸 세어봤더니

무려 50명쯤 되는 젊은 남자들이었습니다.

 

"어..애네...", "애기다..", "애기 봐..."

 

아무도 거기 있는 게 애라는 사실 이외에

다른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없더랍니다.

다들 속으로만 한 마디씩 했을 겁니다.

 

주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속으로 하는 얘기가

다 들렸던 모양입니다.

 

좀 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주선생님은

단순히 사람들이 자기 옆을 주욱 지나간 것 뿐인데

창피함으로 호흡곤란을 겪었습니다.

 

저는 설거지 하다가

재빨리 공원으로 내려가서

만신창이가 된 주선생님을 위로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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