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주선생님 토라지다

"미루야, 엄마 봐봐~~"

 

미루의 왼쪽에는 주선생님이

오른쪽에는 제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주선생님이 미루한테 한참 동안

젖주고, 몇 번씩 기저귀 갈아 준 뒤의 일입니다.

 

미루는 주선생님쪽을 보더니

바로 고개를 획 돌려서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씩 웃자

미루도 씩 웃습니다.

 

"미루야, 엄마 봐~~"

 

주선생님은 있는 대로 입을 찢어서 웃습니다.

미루는 다시 고개를 휙 돌려버립니다.

 

여유만만 해진 저는 살짝 미소를 날렸습니다.

미루가 이번에는 활짝 웃습니다.

 

"미루야~~여기 엄마~~"

 

이번에는 아예 주선생님쪽을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고개가 돌아가다가 중간에 멈춥니다.

 

"미루야~~"

 

이번엔 제가 불렀습니다.

미루가 고개를 재빨리 돌려 저를 쳐다봅니다.

 

3:0이 됐습니다.

 

도저히 역전이 불가능해진 게임

주선생님은 울상이 됩니다.

 

그 이후로 서너번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내가 너 젖 주는 사람이고..오늘은 기저귀도 그렇게 많이 갈아줬는데..."

 

왠지 위로를 해줘야할 것 같아서 말했습니다.

"그러게, 오늘 따라 나를 유난히 쳐다보네.."

 

"아냐..미루는 아빠만 좋아해..."

"에이...아냐, 그럴리가..."

 

문득 머리속에서

미루가 혹시 저한테 분리불안을 느끼면 어떡하나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지나서

하루 종일 제 다리에 매달려 있을 미루를 생각하니

주선생님과 좀 더 친해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번만 더 불러봐..."

"싫어..안 해..."

"에이 한번만..."

"안해...궁시렁 궁시렁.."

 

평소 '25'인 주선생님의 목소리 볼륨이

'5'로 떨어졌습니다.

 

미루는 이제 제가 부르지도 않는데

손발을 움직이면서 "끼약~끼아악~"소리까지 지르고

저를 향해 웃습니다.

 

주선생님 잔뜩 삐쳤습니다.

 

"어제 인터넷으로 사과 시켰으니까...내일 오겠다.."

 

갑자기 딴 소리를 합니다.

"느닷없이 그 얘기를 왜 해~~"

 

"미루가 나 한테는 관심도 없고...사과 오면 사과나 먹으면서 살려고..."

볼륨 '3'입니다.

 

미루는 여전히 저를 쳐다 봅니다.

 

주선생님은 미루가 놀던 아기 체육관을 발로 건듭니다.

"이거나 가지고 놀아야 겠다.."

볼륨 '2'가 됐습니다.

 

이제 말 하는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얼굴은 불평불만이 가득차서 잔뜩 부풀어 올랐습니다.

 

"두유 먹을까?"

"두유를 먹든지 말든지..." 볼륨이 거의 꺼졌습니다.

 

 

미루는 젖 먹기 직전에만

자기를 좋아한다고

주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젖 짜줄테니까...앞으로 니가 대신 먹여.."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갑니다.

 

그래봐야 좁은 집안에서

어디 갈 데도 없습니다. 

 

"휴...나는 다큐멘터리나 만들어야겠다.."

 

독립다큐감독이신 주선생님은

미루가 자기를 안 봐주니까

일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그러고 나서

하루 종일 주선생님은

볼륨을 높일 생각을 안 했습니다.

 

장난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잘 웃지도 않는 걸 보니까

조금 심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승자는 패자의 마음을 모르는 법이라서

전 그냥 무덤덤 했는데

아무래도 잘 위로를 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미루가 원래 오른쪽을 잘 보잖아..

아까 너 앉아 있던 방향이 왼쪽이고 내가 오른쪽에 있어서

고개를 나 한테 잘 돌린 것 아닐까?"

 

미루의 평소 습성을 정확히 간파한

대단히 과학적인 위로의 말입니다.

 

"위로가 안 돼..."

 

실패입니다.

 

아무래도 내일쯤

미루가 한 번 웃어줘야 할 것 같은데

될 진 모르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