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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일하기

추석 때 고향가는 길이 기쁜 사람이

얼마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며느리들은

그 길이 기쁠 리가 없습니다.

 

자기 고향도 아니고

자기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가 있는 내내 죽도록 일만 하는데

좋을 턱이 없습니다.

 

"추석을 맞아 벌써 마음은 고향에 가 있는 귀성객" 어쩌고 저쩌고는

사실 순전히 남자의 시선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의 고향에 내려간 주선생님이

별로 투덜거리지도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저는 미루를 봤지만

어른들이 많이 봐줘서 전혀 힘들지 않았고

고생은 순전히 주선생님이 했습니다.

 

"어머니 마무리는 제가 할테니까

집에 가셔서 좀 쉬세요"

 

이랬답니다.

 

주선생님은 혼자 남아서

전 부치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차롓상에 올라갈 생선을 구웠답니다.

 

"근데 있잖아. 어머니는 생선을 살짝만 익히시더라구..

나는 생선을 후라이팬에 올려놨다가 다른 일도 하면서~"

 

생선이 푹 익었답니다.

 

꼬리를 잡고 생선을 드는데

꼬리가 툭 떨어져나갔답니다. 

 

"그래서 소쿠리에 생선 올려놓고 꼬리를 살짝 붙여놓고 도망왔어...

근데 어머니는 아마 이쑤시개로라도 꼬리를 이어놓지 않을까? 히히"

 

우리는 생선꼬리 떨어진 게

안 걸리길 기도하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어머니는 꼬리 떨어진 생선을

기어코 발견하더니 이러셨습니다.

 

"현숙이 너 왜 이랬니?"

 

전혀 망설임 없는 지적에

주선생님 역시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몰라요. 이게 왜 이러지?"

 

비겁한 발뺌입니다.

 

"근데 어머니...이거 이쑤시개로 이을까요?"

 

어머니는 주선생님의 말을 듣고

"그냥 저 옆으로 치워놔"라고 하셨습니다.

 

주선생님과 어머니의 빛나는 노동으로

이번 추석은 마쳤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음식 장만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밥을 먹고

음식을 챙겨서 떠났습니다.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습니다.

무턱대고 부엌으로 뛰어드는 일은

예전에 실패했었습니다.

 

내년부터는 추석 대개혁을 위한

프로그램을 아예 문서로 써서

제안을 할까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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