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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

"미루 에미 이리 와 봐라"

 

추석때 큰 집에 내려갔는데

할아버지께서 주선생님을 부르십니다.

 

"너 베트남 갔을 때

상구 혼자 미루 봤냐?"

 

결국 이 말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순간 긴장감이 흐릅니다.

 

분명 할아버지는 어떻게 남편한테 애를 맡기고

어딜 갈 수 있느냐는 말씀을 하실 거고

 

주선생님은 억지로 참아가며

죄송하다고 말할 겁니다.

 

저는 옆에서 괜히 안절부절 못하면서

주선생님 눈치를 볼 겁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 혼자만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할아버지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시려는 거였습니다.

 

"너, 둘째는 언제 나을래?"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선생님

순발력 있는 대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치매기가 있으신

할머니가 덧붙이십니다.

 

"그려, 애는 셋은 있어야 혀. 셋"

둘이 셋이 됐습니다.

 

주선생님은 "네...헤헤" 하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날 할아버지는 주선생님을 한번 더 불러서

애 셋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셨고

 

주선생님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뜬금없이 "할아버님 건강하세요" 등의 대사를 날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럴 때 마다 "왜? 나 건강하면 애 셋 날려고?" 하시면서

끝까지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셨습니다.

 

"상구야...양구 방금 전에 애 낳았다."

 

어제 동생이 애를 낳았습니다.

동생이 낳은 게 아니라

동생과 같이 사는 박슬기씨가 애를 낳았습니다.

 

16시간을 진통을 하다가

제왕절개를 했답니다.

 

덩치도 좋고

이미지도 저랑은 완전 반대인데다

학교 다닐 때 운동선수였고

한번은 학교 근처 조폭들하고 '1:여러명'으로 붙어서

도합 전치 수십주를 선사했던 동생은

 

박슬기씨가 산소호흡기랑 그 밖의 이것저것을

몸에 달고 수술실에서 나오는 걸 보고

울어버렸답니다.

 

고생했을 박슬기씨에게

엄청난 격려와 위로를 보냅니다.

 

그 옆에서 같이 고생했을

동생에게도 같은 걸 보냅니다.

 

가까운데 사시는 바람에

병원에서 덤으로 고생하셨을

우리 어머니에게도 역시 같은 걸 보냅니다.

 

이제 우리 삼형제에게 애가 하나씩 생겼으니까

다 합하면 애 셋이 됐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애 셋을 바라셨는데

이제 된 걸로 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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