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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여성 싱어송라이터 전성시대, '시와'를 주목한다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도시 속 작은 씨, '시와'와 나눈 수다

기사입력 2010-04-23 오후 1: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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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여지없이 '올봄엔 어떤 패션이 유행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소비자가 아니라 업계에 의해 해마다 바뀌는 유행은 소비를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쓰지도 않을 기능을 장착한 '과기능' 휴대전화기의 등장은 주기적으로 이전 모델을 구식으로 만들어놓는다. 심지어 '불황기에는 무엇이 뜬다'는 분석으로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시장의 작동방식이 극단적으로 구현되는 지점이 트렌드이다. 그런데 최신 트렌드 추종과 수집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촌스럽고 진부해지는 방법이기도 한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 과함을 덜어내고 급류에서 비껴서 있기에 매력적인 음악이 있다.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뜬금없이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시와'가 된 이가 있다. 대학 시절 노래패에서 활동했고 만화 <짱구는 못 말려>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지만, 조금 늦은 걸음이었다. 하지만 이내 느린 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생겨났다. 2007년, 당시 리뷰를 쓰며 몇 년 후에 익숙해질 이름이 많으리라 장담했던 [빵 컴필레이션 3]와 미니앨범 [시와,]가 나오자 적잖은 관심과 호평이 일찌감치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 때 발표한 <화양연화>와 <길상사에서>가 주목할 만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확인도장을 찍어주었다. 이제 시와의 이름이 없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명단은 미완성이 될지 모른다.

어느 음반매장에선 6주째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정규앨범 [소요 逍遙](2010)는 작은 것에 대한 애정에서 피어난 노래로 채워졌고, 파편을 모아 그릇을 만들 듯 절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과 형식이 조화롭다. 색이 겹치는 곡들이 다르게 편곡되어 다채로우면서 일관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문장들을 요약하면, [소요]는 근사하다. 소소함을 채취하여 울림을 이루고, 어떤 이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약점을 찾아내겠다고 귀를 쫑긋거리지만 않으면 감상에 방해받을 일이 없다는 말로는 이 노래들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만났다.

※ 인터뷰는 4월 6일, 서울 동교동에 있는 작은 음악 바(bar) '봉봉라운지'에서 이루어졌다.

▲ ⓒ최운

그 자리와 그 때와 그 충동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2000년대에 대거 등장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은 기존의 밴드기획사에서와 달리 '도구가 아닌 주인공'이 되었다. 내부적으로 남성 중심 문화와 기교를 중시하는 풍조에 변화가 있었고, 외부적으로 섬세한 감성과 취향이 음악의 한 축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이 이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오소영과 한희정, 그리고 오지은, 뎁, 소히, 흐른, 임주연이 이목을 끌었으며, 남다른 색채의 휘루와 루네, 개성 강한 밴드에서 절대적 지분을 가진 채영(카프카)과 요나(네스티요나)는 음악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이 행렬에서 시와가 차별된 모델을 제시한다는 견해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가치 있는 싱어송라이터임에는 이견이 없다.

도원 : <잘 가, 봄>이라고 노래했지만 이제야 봄이 온다. 시와의 봄은 어떤가?

시와 : 그동안의 봄에는 꽃과 새싹을 보며 '쟤들은 저렇게 예쁜데 난 무얼 하나' 싶었다면, 올봄엔 나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려 해선지 좋다. 뭔가를 바란다기보다 열심히 한다는 자체로 새로 피는 꽃과 돋는 여린 잎한테 부끄럽지 않아서 여느 봄과 달리 좋다.

도원 :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비난받거나 최악으로 꼽힐 자격도 얻게 되었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비난인데 말이다.

시와 : 그것도 자격이구나! (웃음) 부끄럽다.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지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일본영화 <하치 이야기>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 하치처럼 전생에 좋을 일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이다. 아무 것도 아니고 일시적일 수도 있는데, 예약판매에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이나 '향뮤직'(신촌에 있는 음반판매사. 시와의 음반은 향뮤직 차트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편집자)에서 볼 수 있는 일들처럼 그동안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나한테 이런 일이?' 그런 기분이다. 혼자 홍보하고 애쓰고 있는 것이 불러일으켰는지 모르겠지만, 꼭 호평이 아니더라도 리뷰를 빨리 써준다든지 하는 것처럼 무언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감사한 마음이다.

도원 : 개인적으로 '여성' 싱어송라이터란 용어를 신중하게 써야한다고 보는 편인데, 시와에게는 적격이다. 많은 여성 음악인들이 나왔고, 최근에 [For...]를 낸 '투명'도 괜찮았다. 이 속에서 자신의 자리는 어디쯤인지 생각해보았는가?

시와 :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난 알 수 없고, 듣는 분들이 생각하실 수 있는 부분이다. 앨범을 만들며 편곡하던 무렵에 많이 고민했다. 근래에 나온 여성 뮤지션들의 리뷰에서 '기존의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와 다른 시도를 했고 다른 매력을 가졌다'와 같은 평들을 보면서 전형적인 싱어송라이터보다는 다른 것에 가치를 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목소리 하나, 기타 하나, 내면을 살펴보는 가사, 읊조리는 노래를 가졌을 뿐이다. 가치가 덜 하다고 여겨지는 전형적인 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오지은과 함께 3호선 타고 8호선으로 갈아타고 하면서 건반을 연주해준 박소정 씨가 있는 산성역 근처까지 다녀오는 두 시간 반의 여정이 있었다. 지은이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겐 그들만의 장점과 미덕이 있고 언니도 그것을 가지고 있을 테니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여기에서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고 용기를 줬다. 나도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와의 1집 [소요]. ⓒ시와
도원
: 그런데 사실 한국에서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티어의 모델이 누구인가, 했을 때 딱히 떠오르는 대상이 없다. 그러니까 전형성에 대한 폄하라기보다는 수사가 아닐까. 그 관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시와는 비슷한 세대의 음악인들보다는 장필순에서 오소영을 거쳐 이어지는 나뭇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와 : 목표를 정하지 않고 내 안에서 나오는 음악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봐주면 감사하다. 시간이 지난 다음, 걸어왔던 길을 돌아봤을 때 그 길에 내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거라서 어디까지나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는 것 같다.

도원 : 오지은 씨가 프로듀서를 맡아선지 유사성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으나 목소리라든지 정서는 오소영에 더 가깝다고 본다. 어떤 틀이 아니라 음악인과 음악인 사이에서 보려 한다.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자체가 사실 존재하지 않으니까.

시와 :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어때서?'라는 보도자료 문구는 지은의 머리에서 나왔다. 전형성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라고 인식하는 나도원 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 과연 전형성이 존재하긴 하느냐고 분석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역으로 먼저 말해버림으로써 그 분들의 수사를 이용한 것일 수도 있다.

도원 :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공이었다. 보통 음악인은 특수하고자 하는 욕망과 보편적이고자 하는 욕구를 함께 가지고 있다. 시와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텐데, 자신의 음악이 서있는 자리가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시와 : 아마 전형적인 싱어송라이터란 것은 일차적이 아니라 이차적인 생각 같다. 다들 있지도 않은 허구의 상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때 우리는 아예 틈새를 노린 것이다. 차라리 그 자리에 들어가 앉자고. 다행히 그 상상 속의 자리에 내가 잘 맞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차적인 생각이고 일차적으로 어디가 내 자리로 좋을까 하는 생각은, 없다. 그러니까 '빵'에서 오디션을 볼 때에도 공연을 시작해서 어디까지 가야겠다고 계획하고 작정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가다보니 이 자리에 이르렀다. 그 자리와 그 때와 그 충동에 충실했을 뿐이다. 어떤 목표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도원 :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두수 씨가 최규성 씨와의 인터뷰에서 '음악의 그릇은 서양악기지만 그릇 안에 담긴 건 한국의 정서'라는 말을 했다. 시와도 자기만의 그릇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와 : 그릇에 담겨 있는 사람은 그릇 밖으로 나가보기 전에는 모른다. 나는 그릇 안의 내용물이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 더 잘 알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담겨 있는 그릇을 잘 모르겠다.

도원 : 2006년 2월에 음악활동을 시작했으니 좀 늦은 나이였다. 두려움은 없었나?

시와 : 전혀 없었다. 노래 자체가 목적이고 기분 좋은 흥분이었다. 가수를 해서 뭔가를 이루려 했다면 나이가 부담되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하고 싶었나보다. 서울과 인천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포항으로 이사했다. 지역방송국 라디오에서 하는 어린이노래자랑에 자주 갔는데, 항상 본선에는 올랐지만 상은 못 탔다. (웃으며) 집에 기념품 필통만 쌓여 있고. 그러니까 노래를 못 하진 않는데 상 줄만큼은 아닌 정도였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최초로 노래를 부른 건 그 때였다. 그 다음에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노래시키자고 하면 안 빼고 불렀다. 그래서, 이런 말은 처음 쓰는데, 데뷔가 김민우의 <사랑일 뿐이야>를 부르던 중학교 1학년 때가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한 적이 있다. 노래로 칭찬받는 게 좋았다. 칭찬받음으로써 존재를 확인한다고 할까.

도원 : 이화여대 노래패 '한소리' 활동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가?

시와 : 3분의 1?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공연 내용을 고민해서 대본 쓰고 연출하고 연습하고 걸개 걸고 무대 세워서 공연을 올리고 뒤풀이까지 모든 과정을 우리 스스로 해냈다. 다른 학교라면 남자한테 미룰 일을 여대라서 우리가 다했다. 그런 경험이 뿌듯했다. 선배가 기타를 화성학에 기반 해서 가르쳐줬다.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오래가는 배움이 된다. 그 때 동아리방에서 어설프게 기타를 치면 '넌 노래만 하고 기타는 치지 마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웃음) 앞으로 계속 노래해도 괜찮겠다고 격려해준 노래패 언니들도 있었다. '제가 뭘요'하고 넘어갔지만 깊은 곳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도원 : 노래패에 대한 질문에는 방금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과 함께 다른 이유도 있다. 요즘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개 안으로 삭이는 식으로 노래한다면 시와는 말을 건네는 식이고 발음도 또박또박한 편이라는 특색이 있다. 묘하게 이런 것들이 노래운동을 경험한 음악인들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혹시 연관이 있나 싶었다. 노래가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시와 : 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게 노래패를 하게 한 성향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방에서 혼자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는 거라면 대화와 마찬가지로 상대가 잘 들을 수 있게 해야 좋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 좋다.

도원 : 다른 싱어송라이터들의 경우엔 조명이 그들에게 집중되는 그림이라면 시와는 관객에게 조명을 비추는 느낌이다.

시와 : 어쩌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있나보다. 실제로 관객의 얼굴이 잘 보이는 공연이 좋고 편하다. 얼마 전에 공연을 하는데 조명을 내게 비춰주니 관객들의 얼굴과 표정이 안 보였고, 마음이 불안해지더라.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

▲ ⓒ프로필 사진(주성용)

목소리가 돋보이는 앨범을 만들려 했거든요

[소요]는 시와가 스스로 만든 앨범이다. 중간에 제작비 문제가 생기자 팬들에게 사전예약을 받았고, 발매되자 가까운 곳은 직접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음반을 건네기까지 했다. 이러한 수고와 짐을 덜어주려는 사려 깊은 팬들 덕에 매장 진열대에 놓인 음반들이 계속 주인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도 손수 포장한 음반을 들고 우체국에 다녀오기로 했다면 아마 일거리가 떨어지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도원 : 이번 음반을 스스로 만들었다. 오지은 씨의 전례와 비슷하게 막바지엔 팬들과 함께 제작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힘든 점은 없었는가?

시와 : 신기하게도 지금까진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런 개념이 아예 없었나보나. 얼마 전에 단독공연을 했던 카페 '벨로주' 아저씨가 '시와 씨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파이팅!' 이런 얘길 해주었을 때 알았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뮤지션이 훨씬 좋은 거구나, 나도 그런 꿈을 가져봐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그 때 처음 들었다. 힘들다거나 그런 게 없었다. 음반작업을 시작할 때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다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때엔 훨씬 소심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적극적인 면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도원 : 오지은 씨와 작업하면서 더 주목받는 계기가 된 면도 있고, 동시에 결과물에 대해 오해받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프로듀서로서 오지은의 존재감은 어느 정도였는가? 존재감 측정법은 없었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시와 :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까지 맡고, 감독은 지은이 맡은 것이다. 내가 아닌 프로듀서와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편곡 등에서 스스로 이끌어갈 자신이 없기도 했고,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해서였다. 혼자선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고, 함께 다른 것을 해볼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지은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곡은 같아도 편곡적인 면에서 달라졌을 테고, 완전히 다른 앨범이 나왔을 것이다.

도원 : 음반을 들어보면 목소리뿐만 아니라 연주도 조곤조곤하다. 물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처럼 사이즈가 큰 곡도 있지만 대체로 비워내고 있다. 이유가 있는가?

시와 : 목소리가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웃음) 남들이 채우니까 나는 비우자는 건 아니었다. 지은이가 목소리가 잘 살고 돋보이는 앨범을 만들어보자고 했고, 동의했다. 꼭 악기의 비중이 작아야 목소리가 돋보이는 건 아니니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그 중 한 가지를 택한 것이다. 내 목소리는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노래를 계속 하라고 말해주던 선배언니가 어디서 오디션 한다고 알려줘서 갔는데, 심사평이 처음 들을 때엔 매력이 있지만 계속 집중해서 듣기엔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내 목소리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발견하지 못한 장점을 지은이 발견해서 부각시켜주려 했다.

도원 : 블루315(Blue315, 류호성)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알다시피 인디레이블 '12몽키스'를 운영했고, 이장혁의 1집도 제작했으며, 본인도 음악인이다. 그와의 작업은 어땠는가?

시와 : 제3의 프로듀서랄까. 조언을 많이 해줬고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써주며 도와줬다. 심지어 내가 집중할 수 있도록 스탠드 하나 켜주고 노래하게 만들어주기도 했고, 기타 연주가 힘들다니까 기타리스트 출신답게 손가락 스트레칭을 먼저 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또 드럼과 박자 맞추기가 힘들다고 하니 하이햇심벌 소리를 주의해서 들으면 쉽다고 알려주었다. 선배로서 후배를 바라보는 마음, 고생하니까 도와주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 녹음실 찾아갔을 때는 돈 들여서 여기에서 녹음하지 말고 좋은 장비를 소개해줄 테니 집에서 작업해오면 후반작업만 잘 해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도원 : 라디오 출연해서 라이브로 노래하는 걸 들었다. 그 목소리가 더 풍성하게 들렸을 정도로 음반에 실린 보컬은 생목소리에 가깝다. 배경은 컬러인데 주인공은 흑백인 영화 같다.

시와 : 우리의 의도였다. 무엇을 거치지 않은 생목소리를 원했다. 오늘 단골카페에서 스피커로 음악을 쭉 듣는데 다른 트랙들과 달리 따로 작업한 보너스트랙의 느낌이 너무 촉촉하더라. 다른 곡들은 약간 건조하달까 싶은 느낌인데…. 우린 실제 소리에 가깝게 가고자 했다.

도원 : 혹시 홈레코딩 작업으로 익숙해진 소리를 사실적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시와 : 미니앨범 [시와,]와 이번 앨범의 보너스트랙이 홈레코딩으로 만들어졌는데 소리가 촉촉하지 않은가. 내 편견이거나 오해일 수 있는데, 홈레코딩으로 개인작업실에서 하는 녹음이 오히려 이펙팅(장비와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가공하는 과정-필자주)으로 소리를 더 괜찮게 들리도록 만든다. 우린 녹음실이란 공간에서 녹음된 그대로를 들려주려 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평면적으로 들린다거나 밋밋하게 들린다는 사람들에겐 역효과가 난 것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내 노래가 미숙해서일 수도 있다. 그렇게 갈 거면 -100에서 +100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의도가 잘 드러날 텐데, 나는 -1과 +1 근처를 오갔을지도 모르니까.

▲ ⓒ최운
노래의 의미가 확장되고 있어요

도원 : [소요]의 특징들 중 하나는 피아노의 부각이다. <잘 가, 봄>에선 피아노가 분위기를 이끌어갈 정도로 역할이 크다. 아울러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만 피아노 버전과 기타 버전을 함께 실은 이유가 있는가?

시와 : 오지은 1집을 듣고 박소정 씨의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게 되었다.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지은도 '언니랑 (박)소정 언니가 잘 맞을 것 같아'라고 얘기해서 셋이 만나면서 시작했다. 왜 류승현과 작업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은 거라면, 내가 오지은이란 프로듀서를 만났기 때문이고, 오지은이 그리는 시와 1집의 그림 안에 기타보다 피아노가 훨씬 잘 어울린다는 계산과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는 (류)승현이가 '누나, 그 노래 기타 정말 좋은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웃음)

도원 : 공연을 봐왔던 사람들은 그동안 함께 한 류승현(Rainbow99라는 예명의 기타리스트로 '어른아이'에서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준 바 있고, '올드피쉬', '하이미스터 메모리' 등 많은 뮤지션들과 작업했다.-필자주)의 기타 역할이 줄어들어 섭섭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시도는 긍정적으로 본다. 그런데 공연포맷과 앨범포맷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시와 : 모든 일에 장단이 있지만,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보고 싶다. 앨범으로 얻은 감동을 공연에서 그대로 느끼길 원했던 분은 아쉬울 수 있지만, 달라진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한 곡의 여러 버전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입장에선 그렇다. 사실 지금 공연을 음반과 많이 다르게 하진 않는다. 승현이와 밴드랑 함께 하면서 시간이 될 땐 건반 세션 '덧'이 같이 하고 있다.

도원 : 기타가 감싸준다면 피아노는 때려주는 느낌이다. 시와의 공연과 노래는 포근한 포크 스타일이었다. 그래선지 [소요]는 고독의 이미지가 좀 강해졌고, 전부터 좋아했던 사람들이 조금 낯설어 하는 건 아닐까 싶다. 두 버전으로 실린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의 다른 느낌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시와 : 아…, 그렇네.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작용한 것 같다. 기타와 피아노 특성의 반영 때문일 수도 있겠고, 믹스할 때의 느낌 때문일 수도 있겠고. 음, 그럴 수 있겠다.

도원 : 오프닝 트랙인 <작은 씨>가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굿나잇>의 노랫말에서도 그렇듯이 작은 것에 대한 애정과 성찰이 느껴진다.

시와 : 몰랐다. 정말 몰랐다. 의도와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그런 것에 눈길이 가는 사람이다. 거대하고 긴 시각과 멀리 보고 파악하는 능력 대신 작은 것들이 더 눈에 띄고. <작은 씨>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표현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도원 : <작은씨>와 <랄랄라>, <하늘공원>으로 이어지는 그림이 있고,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와 <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공유하는 분위기가 있다. 공교롭게도 제목이 짧은 곡들은 포크송 분위기, 긴 곡들은 팝에 가깝다.

시와 : 새로운 발견이다. 이런 게 재미있다. 음악을 들어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가 보지 못한 부분들이 나온다. 그렇게 노래의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도원 : 원래 만든 이의 감성에 듣는 이의 감상이 더해져 음악이 완성된다. 그것이 음악의 과정 아닌가.

시와 : 그래서 좋다. 요즘 리뷰를 읽으면서 그런 것을 느낀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 노래가 너 자체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다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 그러니까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원 : <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아>와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는 뛰어난 팝송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절제했다지만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와 <굿나잇>에선 감정을 분출한다.

시와 : 맞다. <굿 나잇>이 특히 그렇다. 모든 곡들이 다 그랬지만, 그 중에서도 <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아>는 진짜 잘하고 싶었고,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가 제일 나중에 만든 곡이다.

도원 : 도 인상적이다. (이 곡은 영화 <아메리칸 앨리>의 삽입곡이다.)

시와 : 최초로 다른 사람의 의도에 맞춘 음악이라 의미가 있다. 흔히 '동두천'이라고 부르던 곳을 '아메리칸 앨리'라고 한다. 미군(American)이 드나드는 골목(Alley)이란 뜻일 거다. 예전엔 우리나라 여성분들이 일하셨지만 요즘엔 필리핀, 러시아 등지에서 오신 분들이 일하고 있다. <아메리칸 앨리>의 김동령 감독이 위기개입활동을 하는 여성단체에서 일했다. 자원활동을 하러 들어갔다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영화는 '아메리칸 앨리'에서 일하는 네 여성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여성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에 공감하고 음악을 만들기로 했다. 감독은 러시아와 필리핀에서 와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공간이 얼마나 낯설겠는가, 그렇게 낯선 곳에 떨어졌는데도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그들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말했다. 사실 가사는 김동령씨와 같이 쓴 것이고 음반의 재판에는 그렇게 넣을 것이다.

도원 : 이상은이 생각날 정도인 는 결이 달라서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시와 : 뿌듯한 곡이다. 내가 솔로로 메인멜로디만 부르던 사람이라 화음을 넣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화음 이후에 나오는 부분은, '바로 목소리가 사라지면 어색할 것 같으니 뭔가 더 할 게 없을까'라고 지은이 말했을 때 류호성 님이 '잘 하면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도입부 같은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충분히 다다르진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본 것 같아 뿌듯하다.

좋은 출발이었으면 합니다

시와의 홈페이지(http://www.withsiwa.com)의 '시와 1집 일기'에서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노트를 펼쳐놓고 무엇이 필요한지 적어보기부터 음반을 담을 봉투를 준비해놓기와 혹평에 대처하는 자세까지 배울 수 있다. 인디제작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야 하고, 약속된 시간에 맞춰 음반이 나오는지 마음조려야 하며,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반응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단, 읽는 것만으로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길이 보장되진 않는다. 물론 기타줄을 갈아 끼우는 법도 스스로 배워야 한다.

도원 : 음반제작기를 쓰고 있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인가?

시와 : 처음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내가 작업하고 있다고 티내고 싶었다. 녹음실과 집만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남들과 만나고 소통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내 안에 쌓이게 된 외로움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보려는 마음이 일기로 나타났다. 그렇게 티를 내서 사람들에게 반응을 얻으며 외롭지 않다고 느끼고 싶었다. 사소한 것들까지 다 기록하고 있었는데, 지은이 일기를 재밌게 보고 있다며 '언니 일기가 음반을 만들려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라고 얘기해주었다.

내 일기가 그런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진 않지만 내가 애써 돌아갔던, 그러니까 '삽질'했던 경험담을 공유함으로써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조금 쓰고 있다. 음반 만들고 나서 심의를 넣으려 하는데 검색이나 방송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심의정보를 알기 힘들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문의했다가 엉뚱한 데로 연결되어 돌고 돈 적도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정보를 혼자 가지고 있기보다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것만 쓰려다가 다른 것도 같이 올리면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심의 부분까지 가려면 멀어서 마음이 급하다. 공명심인가? 왜 그럴까? (웃음)

▲ ⓒ프로필 사진(주성용)
도원
: 골목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한 사진이 있는데, 시와의 음악과 묘하게 통한다. 도시 속의 자연이랄까.

시와 : 내 삶이 그렇다. 무리하게 연관짓는지 모르겠지만, 양편에 발을 걸치고 사는 사람 같다. 일단 성향이 그렇다. 고등학교 때 사물놀이 공연을 보고 경도되어 대학 가면 꼭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풍물패, 탈패를 가보니 바로 언니가 손 잡아끌고 집회가자고 하는데 못 가겠더라.

노래패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 대하여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도 하지만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보다는 노래로 표현하려는 성향이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사는 것이 그렇다. 서울 안에 살면서도 한강과 나무와 숲을 좋아한다. 시골이 아니라 서울에 살면서 이 안에서 만끽할 수 있는 자연을 찾는다. 또, 특수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노래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직업을 버리고 노래만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이 세상이 양분되어 흑백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너무 멀리 갔나? (웃음) 이런 것들이 내 안에 함께 있다.

도원 : 그럼에도 '용산'이라든가, 여러 의미 있는 곳에서 자주 노래하고 있다.

시와 : (웃으며) 그것도 위험하지 않은 범위에서. 예전에 FTA와 평택미군기지이전 문제 때문에 촛불집회를 시작했을 때, '빵' 게시판에 거기에서 노래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럴 사람 없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내가 굳이 왜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상황과 문제에 공감하고 메시지를 지지하지만 내 노래가 어울리지 않아서 가진 못할 것 같다는 글을 썼다. 그러니까 '사이' 씨가 뜻만 있으면 가서 윷놀이나 재기차기를 해도 괜찮지 않냐고 했다. 그 말에 확 용기를 얻어 그 곳에 가서 <길상사에서>를 불렀다. 거기 오신 분들도 좋아하고 나쁘지 않더라. 어떻게 풀릴지 잘 몰랐지만, 덕분에 문화연대 분들도 알게 되고, '전쟁 없는 세상'이라든가 여성환경연대 등과도 관계가 지속되었으니 잘 결정했던 것 같다.

도원 : 이제 정규앨범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운동도 넘어지는 법부터 익히는 법인데,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거나 시도가 시도에 머물렀다거나 하는 부분은 없는가?

시와 : 가장 아쉬운 건 내 노래다. 절제도 많았지만, 절제보다 못 미친 것이 더 많았다. 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타입이란 걸 이번에 알았다. 많은 뮤지션들이 얘기하듯이 녹음실은 긴장을 유발하는 공간이다. 잘 이겨내는 사람이 만족스런 결과를 낸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괜찮은데?'라고 했지만 지은이 보기엔 아니었는지 '언니 긴장하고 있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하네' 그러더라. 머리는 괜찮다고 하지만 몸은 굳어서 어깨 떨면서 노래하고 있었고. 스스로 나를 파악하고, 잘 해야 한다는, 또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컨트롤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거의 녹음 후반에서야 제대로 풀려서 마지막에 녹음한 <잘 가, 봄>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마음에 든다. 그 때쯤 되니까,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셀프 프로듀싱을 할 수도 있게 된 것 같았다. 지금 이 정도했으니 다음엔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더 이상은 못 하겠다는 감도 왔다. 다 끝낸 다음에 작업한 보너스트랙은 긴장 풀고 편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노래가 잘 표현되었다. 올드피쉬(Old Fish)네서 녹음하면서 정말 마음이 차지하는 부분이 이렇게 크구나 싶었다.

도원 : 마무리다. 시와의 음악이 듣는 이들에게 무엇이 되길 바라나?

시와 : 바로 떠오르는 답은 편안한 노래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것 없다'이다. 어떻게든 들어주는 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맞다. 나는 노래를 형상 지을 수 없으며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범위가 더 넓어질 것이다.

도원 : 그러면 시와의 음악은 시와에게 무엇인가?

시와 : 표현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분은 사진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글 쓰는 분은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나는 노래로 나를 드러낸다. 다만 드러내는 내가 100퍼센트의 나 자신이라기보다는 내가 좀 더 나아지고 싶은 모습에 가깝다.

도원 : 올봄은 시와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 같은가?

시와 : 좋은 출발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끝인가? 짧지 않은가! (웃음)

그 땐 중요했지만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닌 것들이 있고, 또 그 반대인 것들이 있다. 시와의 노래에는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과 현재의 의미, 그리고 슬픔과 아픔과 다독임이 공존한다. 또한 속도와 성과에 집착하는 세상을 닮지 않았다. 예쁘장한 엽서사진이 아니라 도시 속의 자연과 같다. 아파트가 아니면 살기 불편해하는 사람이건,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이건, 월급날만 바라고 사는 풀죽은 사람이건, 1년을 꼬박 농사에 바치는 사람이건 이런 노래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도시에 사니 그 덕목에 충실해야 한다? 아니다. 도시는 이미 환경이 되었고,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여 있긴 해도 작은 골목들이 숨어 있다. 어쩌면 시와가 만날 최고의 팬은 별 생각 없이 이 골목(노래)을 지나던 사람들 중에 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시와의 기타가 말할 수 있다면 이랬을 것이다. "나를 업고 다니는 내 안마사의 노래를 듣고도 어떤 느낌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평생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봐, 여기야!"라고. 오래 노래하고픈 시와의 봄이 시작되었다.

※ 부지런히 활동 중인 시와는 4월 23일(금) 저녁 8시, 서울 동대입구 '웰콤씨어터'에서 단독공연을 갖는다. 그리고 5월 27일부터 7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엔 라이브 클럽 '쌤'에서 '밑줄 긋기, 옮겨 적기, 마음에 담아두기'란 이름으로 특별한 북 콘서트를 선보인다.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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