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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깊이조차 짐작할 수 없는....

[사설] 삼성반도체 백혈병, 정밀 역학조사 나서라
 
 
 
한겨레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박지연씨가 그제 23살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떴다. 반도체 노동자 지원모임인 ‘반올림’이 확인한 20여명의 환자들 가운데 9번째 사망자다. 나머지 환자들도 힘겹게 병과 싸우고 있기에, 같은 비극이 잇따를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정부는 계속 사태를 외면하고 있다. 업무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객관적인 조사 요구조차 거부하고 있다. 종업원, 나아가 국민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것인지 착잡하다.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반도체 노동자들과 백혈병의 관련성은 부인하기 힘들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삼성전자 등 반도체 3사의 공장 6곳을 조사해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을 확인했다. 삼성전자 소속 공장에선 ‘포토 레지스터’라는 반도체 공정용 물질 6건을 조사했는데 전체에서 벤젠이 나왔다고 한다. 벤젠은 호흡기는 물론이고 피부로도 흡수되는 심각한 발암물질이므로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환자의 상황만 따져봐도 일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기 힘들다. 숨진 박씨는 고3 때인 2004년 12월 삼성에 들어가 납 용액과 화학약품을 다루다가 2년 반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 전에 숨진 황유미씨 등도 젊은 나이에 갑자기 백혈병에 걸렸다. 건강한 20대 초반 여성 노동자들이 잇따라 백혈병에 걸린 것만으로도 예외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삼성 기흥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수와 그 가운데 백혈병 사망자 수를 비교해보면, 한국 평균 백혈병 사망률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반도체공장에 존재하는 뭔가 심각한 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라면 당장 정밀 역학조사를 벌여야 한다. 산재 판정을 맡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이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이니, 믿을 수 있는 외부 기관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삼성도 그동안 유독 화학물질이 얼마나 어떻게 쓰였는지 공개하고 성실하게 조사에 응해야 한다. 기업 비밀을 내세워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건 온당한 자세가 아니다. 이와 별개로 지금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삼성처럼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기업이라면, 업무 연관성을 따질 것 없이 무서운 병을 얻은 직원을 소홀히 할 순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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