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물

칼럼

얼마 전 실비오 게젤의 개혁을 실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네트워커networker 한 분을 찾았습니다. 이 분의 질문은 게젤 이론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가질만한 보편적인 의문으로 생각되어 집중적으로 다뤄보려고 합니다.



질문: 게젤의 핵심 주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폐 가치가 하락하도록 만들자는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지만 게젤이 제시한 대로 화폐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면, 사람들이 화폐보다는 다른 교환매개물이나 가치저장수단으로 대체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부터도 화폐 대신 실물을 보유하고 (또는 다른 대용화폐를 사용하고) 화폐 단위로 저축하기보다는 경제 성장과 함께 가치가 상승하는 주식을 보유할 것 같거든요.


위 질문을 두 가지로 분리해서 답하겠습니다

1. 게젤의 핵심 주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폐 가치가 하락하도록 만들자는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지만...

답: 게젤은 스탬프머니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자화폐의 형태로도 만들 수 있지요. 카드로 구매하고 카드와 연동된 계좌 금액 액면가는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도록 세팅하는 것이지요.



2. 게젤이 제시한 대로 화폐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면, 사람들이 화폐보다는 다른 교환매개물이나 가치저장수단으로 대체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부터도 화폐 대신 실물을 보유하고 (또는 다른 대용화폐를 사용하고) 화폐 단위로 저축하기보다는 경제 성장과 함께 가치가 상승하는 주식을 보유할 것 같거든요.

답: 일단 실비오 게젤은 가치이론을 부정합니다. 게젤에 따르면 경제학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가격이며, 가격은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됩니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Ⅲ. 돈은 어떠한가 3. "가치"라는 것) 그래서 이처럼 가치이론을 부정하고 위의 질문을 다시 다듬어보면, "공짜돈개혁을 한 다음 다른 교환매개물이나 저축매개물이 나올 가능성은 없는가?"가 됩니다.

그런데 게젤은 교환매개물과 저축매개물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가지 기능을 한 가지 도구에 집어넣으면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돈은 확실히 교환매개물인 동시에 저축매개물이 될 수는 없어. 그건 박차를 가하면서 제동을 거는 꼴이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Ⅲ. 돈은 어떠한가 13. 지폐발행 개혁
it is clear that money cannot be simultaneously the medium of exchange and the medium of saving - simultaneously spur and brake. -Silvio Gesell: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3: Money as it is 13. REFORM OF THE NOTE-ISSUE


그래서 교환매개물과 저축매개물을 나누게 됩니다. 공짜돈 개혁을 하면 그렇게 되지요. 돈을 쌓아둘 수 없기 때문에 돈이 교환매개물 역할만 하게 되고 저축매개물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다른 교환매개물이 나올 수 있는가? 없습니다. 기존의 다른 교환매개물들은 지금 쓰는 돈이 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케인즈도 <일반이론>에서 대체물이 나올 가능성을 언급했죠. 유동성 프리미엄은 딱히 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재화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유동성 프리미엄을 잃어버리면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 타자가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지요. 이 주제에 대하여 쓴 글을 링크로 달아두겠습니다. http://blog.jinbo.net/silviogesell/10
간단히 요약하면, 케인즈가 말한 유동성 프리미엄은 돈의 액면가가 불변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면 사라지는 것이며, 케인즈가 언급한 대체물들은 돈이 교환매개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존 경제질서의 결함을 보상하기 위해 나오는 것일 뿐 그것들 자체가 그런 상황과 독립적으로 대체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저축매개물은 나올 수 있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이 쌀로 저축을 하든, 주식으로 저축을 하든, 외화로 저축을 하든, 그것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교환매개물의 순환만 지키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 없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하죠. "난 내 돈 액면가가 깎여나가는 게 싫어. 난 공짜돈 원화가 아니라 액면가가 불변하는 달러로 저축할 거야." 그는 공짜돈 원화를 달러로 바꿉니다. 무슨 문제가 생길까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 때 그 원화를 받은 상대방은 그 원화를 쌓아둘 수 없습니다. 쌓아두면 정기적으로 감가상각의 손실을 입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 사람은 그 원화를 주고 한국의 재화나 서비스를 사게 됩니다. 즉, 여기에서도 돈순환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따라서 경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따라서 적어도 수출될 수 있는 돈으로 자기 나라 돈을 공급할 필요는 없어. 정말이지 자기 나라 돈이 빠져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건 그 나라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어. 통화가 수출될 수 있으면 발행은행은 돈공급의 독점권을 잃고 국내시장이 외국에 컨트롤당할 수 있어. 그 외국은 흔히 적대적인 세력이지. 예를 들어 프랑스의 돈은 독일은행에 투자되었다가 모로코위기 때 독일에 해를 줄 목적으로 빠져나갔어. 그 목적은 달성했지. Ⅳ. 공짜돈 (돈은 어
떠해야 하는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5. 공짜돈은 어떻게 판단될까 C.수출업자
It is therefore, to say the least, unnecessary to provide a national currency that can be exported. Indeed the export and import of the national currency can become a grave danger to a country. If the currency can be exported, the Bank of Issue loses the monopoly of the money supply and the home market becomes exposed to the control of foreign, often hostile, influences. French money invested in German banks was, for example, withdrawn during the Moroccan crisis with the purpose of injuring Germany, a purpose which was attained. -Silvio Gesell: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4: Free-Money or Money as it Should Be

 

달러로 저축한 사람이 그 달러로 다시 원화를 사들이려고 할 때 과연 자기가 줬던 원화만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어디에서도 그런 보장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가치가 저장되는 게 아니라 가격이 있을 뿐이며 가격은 수요 공급으로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즉 달러를 들고 있다가 한국경제를 대상으로 투기를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지요. 한국경제를 대상으로 투기를 하려면 원화로 갈아타야죠. 하지만 원화는 순환해야 하는 강제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투기꾼들이 한국경제를 공격할 수 없게 됩니다. 나라경제가 완전한 돈순환에 의해서, 그리고 그 돈순환이 매개하는 노동분화에 의해서 강력하게 지지되는데 어떻게 공격하겠습니까? 투기를 하려면 돈을 쌓아두었다가 적당한 시점에 팔아야 합니다. 공짜돈 개혁으로 원화는 쌓아둘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투기는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공짜돈 원화는 외국자본의 공격의 타겟이 될 수 없습니다. 원화는 한국경제를 매개하는 교환매개물이고, 그건 공짜돈 개혁으로 완전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 자본가도 원화를, 한국경제를 공격할 수 없게 됩니다. 한국경제는 강력한 교환매개물로 철옹성을 쌓게 됩니다.

한국이 지금 실제 무역에도 쓰지 않을 막대한 달러를 보유해야 하는 까닭은, 환투기 공격에 대한 방어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원화에 대한 환투기가 불가능해지면 지금처럼 달러를 많이 쥐고 있을 필요가 없지요.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합니다. 실비오 게젤이 제시하는 개혁의 순서가 공짜땅-공짜돈-국제통화협회인데 이 순서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공짜돈 개혁까지 했을 때 환투기공격으로 국내경제가 타격을 입어서 물가가 불안정해진다면 국제통화협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국제통화협회를 하기 전에, 즉 국제무역구조를 개혁하기 전에 그저 국내통화를 개혁하는 것만으로도 환투기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한국 케인즈학파의 거두 조순 교수님의 강의에서는 한국경제위기의 본질을 두 가지로 나누었지요. 수입 대불황과 국산 소불황. 이 가운데 수입 대불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조순 교수님은 말씀하셨지요.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4266046g 맞습니다. 기존 경제질서, 기존의 토지제도와 화폐제도 안에서는 수입 대불황에 대하여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경제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해결되는 것이지요. 게젤이 주장한 개혁은 국내 화폐개혁(공짜돈 개혁)까지만 밀고 나가도 수입 대불황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습니다. 해외 경제가 어찌 돌아가든 국내 경기(국내 돈순환)는 독립적으로 보호되는 것이지요. 케인즈 경제학에 갇혀있으면 이 문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국제무역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단단한 국내경제를 바탕으로 더 많은 것들을 생산하고 그것들을 외국의 재화와 교환하여 더 많은 것들을 얻겠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투기꾼들이 더이상 장난을 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쌓아둘 수 없다는 것은 경제에서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한국경제가 이렇게 단단해지면 다른 이웃나라들도 슬슬 실비오 게젤의 개혁에 관심을 갖게 될 겁니다. "비결이 뭐야? 우리도 가르쳐줘."

그렇게 외국정부도 공짜땅-공짜돈 개혁을 하게 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젤이 제시한 개혁의 세 번째 단계인 국제통화협회를 도입하는 거죠. 즉 공짜땅-공짜돈 개혁을 한 나라들끼리 국제통화 이바IVA로 국제무역을 하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게젤 라인Gesell's line"이라고 부릅니다. 실비오 게젤의 개혁이 세계로 전파된 다음에 구글어스에서 실비오 게젤의 개혁을 단행하고 국제통화 이바로 무역을 하는 나라들을 선으로 연결해보십시오. 네트워크, 이것이 바로 "게젤 라인"입니다. 이 네트워크가 촘촘해질수록 세계평화는 가까워질 겁니다.

그러면 전세계 경제가 안정된 기반 위에서 질적 성장을 하게 되고 공정무역을 하게 됩니다. 선전구호나 감상주의로 그치는 평화가 아니라 "진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것은 "진짜 평화"의 바탕인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세움으로써 가능해집니다. 국제전이나 내전은 모두 사라지고, 따라서 세 살짜리 아이가 난민이 되어 어느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될 일도 없겠지요.

이것이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입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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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6 23:11 2015/09/0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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