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지언에게 보내는 편지

칼럼

* 안녕하세요. 저는 $low라고 합니다. 병든 세상을 치유하려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으로서, 실비오 게젤이라는 경제학자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라는 책을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정부개입으로 그것을 보완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자본주의에 결함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개입보다 나은 해법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떠오른 화두 “경제민주화”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공염불에 불과하며,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조화를 이루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낳는 돈이 주인이므로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민주주의에 걸맞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찾아야겠죠. 우리가 자본주의를 대체할만한 경제질서를 찾아낼 수 있을까? 경제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면서 그 결과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더해주면, 돈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밑에서 봉사하면 그 경제질서는 자본주의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케인스는 그 역할을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도 될 것입니다. 이 편지는 그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내려놓고 읽어주십시오.

 

* 뉴스를 보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악순환이 거듭될까? 왜 전쟁, 범죄, 경제위기, 빈곤, 불평등, 부정부패, 환경파괴는 계속될까? 저 나름대로 답을 찾아본 결과 지금의 화폐제도와 토지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의 경제행위가 이루어지는 기본바탕을 잘못 설계하였다는 것이죠. 모든 경제행위가 "땅" 위에서 "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으니 모든 사회악이 생겨납니다.
 

이런 결론을 얻은 결정적인 계기는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입니다. 게젤에 따르면, 올바른 분배는 노동자들이 자기들이 일한 대가 전체를 얻을 수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불로소득을 폐지해야 합니다. 불로소득은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대가를 빼앗은 것이니까요. 게젤은 불로소득의 원천인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개혁하자고 합니다. 게젤은 자기가 제안한 토지개혁을 공짜땅(Free-Land), 화폐개혁을 공짜돈(Free-Money)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땅과 돈을 사용하는데 지불하는 요금인 지대와 이자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그 요금을 땅주인과 돈주인이 나눠 갖죠. 모두의 경제활동에 사용되어야 할 공공재를 개인 소유로 인정하여 경제시스템에서 도둑질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공짜땅"은 땅(천연자원 포함)을 국유화하고, 공매로 사람들에게 임대하며,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를 복지에 사용합니다. 그리고 지대가 오를 때마다 임대료를 올려서 지대를 사유화할 수 있는 빈틈을 없앱니다.
 

"공짜돈"은 돈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여 돈이 규칙적으로 돌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탬프머니'라는 방법으로 실현하는데, 정해진 기한이 지나서 가진 돈을 쓰려고 하면 스탬프(우표)를 사서 돈에 붙여야 하는 것이죠. 돈 쌓아두는 것에 비용을 물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돈을 쌓아두지 않고 써버리고, 그것은 돈이 도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이 돌면 경제도 돌아가는 것이죠.
 

이 놀라운 생각은 실비오 게젤에 의하여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에 적용될 뻔 하였다가 맑스주의자들의 반발로 실패하고, 이후 오스트리아 뵈르글의 시장 운터굿겐베르거가 시도하여 대공황으로 쇠락한 지역경제를 살려냈습니다. 그 드라마틱한 효과는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 교수의 귀로 들어가 미국에서도 스탬프머니를 시도하고 10억달러의 스탬프머니를 발행하자는 법안까지 내놓게 되었습니다만, 권력분산을 두려워한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였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지금까지 경제문제에 관하여 대증요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대증요법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하이에크로 대표되는 방임주의, 케인스로 대표되는 정부개입.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는 경제담론의 큰 축이 케인스와 하이에크를 왔다 갔다 할 뿐이란 것이죠. 다시 말해 '큰 정부로 할까, 작은 정부로 할까? 내버려둘까, 개입할까?' 이 얘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죠.

 

방임주의의 문제점은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방임주의는 분명히 해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서는 케인스주의의 문제점만 방임주의자들과 다른 관점에서 파고들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왜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가 더 나은 대안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케인스의 대표적인 이론은 유효수요이론입니다. 케인스는 부족한 수요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수요가 부족해서 실업이 생기기 때문이죠. 수요가 부족해지는 것은 사람들이 번 만큼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 돈을 쌓아두기 때문이죠. 이런 “돈의 정체상태”를 돌파하기 위해서 케인스와 게젤은 다르게 접근합니다.

 

케인스는 돈이 돌지 않으니 정부가 빚을 내서 돈을 뿌리자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돈을 쓰기 시작하고 경제가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죠. 이 요법은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스테로이드입니다. 약발이 다하면 상태가 더 악화되죠. 새로 찍어낸 돈도 결국 쌓이고, 정부의 부채는 늘어납니다. 케인스요법으로 자본주의의 결함을 보상하는 비용은 공짜가 아니며 미래세대의 부를 담보로 잡히게 됩니다.

 

실비오 게젤은 사람들이 왜 돈을 쌓아두는지 파고듭니다. 재화는 모두 썩고, 녹슬고, 소멸합니다. 하지만 돈의 액면가는 고정불변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저축매개물로 돈을 재화보다 선호하고, 그래서 돈은 저축매개물로서 재화보다 유리한 점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받아낼 수 있는 조건에서만 재화와 교환됩니다. 이 반대급부를 기본이자(basic interest)라고 하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자율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핵심입니다. 말하자면 돈이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들어가는 걸 막고 요금 내는 사람만 들여보내주는 톨게이트'가 되어 버린 것이죠. 사람들이 재화를 교환하는 것에 '기본이자'라는 조건이 붙게 된 것입니다. 상품과 생산수단은 모두 돈을 매개로 생산하기 때문에 상품과 생산수단의 생산은 이 기본이자를 벌충할 정도의 이익을 얻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수요는 숨어버리고 실업과 경제위기가 옵니다. 따라서 게젤은 스탬프머니로 돈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여 기본이자를 제거합니다. 재화가 종속된 소멸성을 돈에도 붙여 돈이 머뭇거리지 않고 재화와 교환되고 그 결과 실업과 경제위기는 예방되죠.

 

케인스도 돈이 낳는 기본이자가 상품과 생산수단의 생산을 제한한다고 인식하였습니다. 하지만 게젤은 기본이자가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없앨 수 있는지 파고드는 반면, 케인스는 기본이자를 '유동성프리미엄'이라는 개념으로 합리화한 다음 '기본이자를 없앨 수는 없으며 단지 이자를 최소한으로 낮추어서 재화와 생산수단의 생산에 대한 방해를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돈이 순환하지 않고 쌓여갈 때는 정부가 돈을 풀어서 해결하자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태어난 것이 유효수요이론입니다.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막대한 정부 부채입니다. 또 이런 방식은 유동성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죠. 이자를 아무리 내려도 돈이 돌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자를 마이너스로 내려도 돌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돈의 액면가가 불변하면 돈의 순환은 언제라도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케인스의 방식에서 돈이 순환하려면 물가가 계속 올라서 돈을 재화나 실물자본과 바꾸는 것이 이익으로 전망되어야 하고, 따라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의 남발로 이어집니다. 이와 같은 케인스의 요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해결을 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미봉책으로 문제는 더 커지고 복잡해집니다.

 

케인스는 <일반이론>에서 스탬프머니로 돈의 유동성프리미엄을 빼앗아도 다른 대체물이 나올 것이라고 했죠. 하지만 이런 비판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중요한 대목이므로 먼저 케인스의 주장을 살펴보고, 실비오 게젤의 관점에서 그 주장을 비판해보겠습니다. (케인스의 주장을 명료하게 표현하려고 중요한 부분은 밑줄을 그었습니다)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23장 중상주의·고리대금방지법·스탬프머니·과소소비설에 대한 단상

[...]

VI

이쯤에서 낯설고 또 지나치게 무시되고 있는 예언자 실비오 게젤(1862-1930)에 대해 말해두는 게 좋겠어. 실비오 게젤의 작품은 깊은 통찰력의 빛줄기를 담고 있지만 게젤은 문제의 본질에 이르지 못했어. 전후 수년 동안 게젤의 제자들이 게젤의 작품을 가지고 내게 맹공을 퍼부었지. 하지만 그 주장에 어떤 분명한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주장의 장점을 발견할 수 없었어. 불완전하게 분석된 직관을 가진 케이스가 흔히 그렇듯이, 게젤의 주장이 가진 중요함은 내가 내 방법으로 나 자신의 결론에 이른 다음에야 명백해졌어. 그동안 학계의 다른 경제학자들처럼 난 게젤의 심오하고 독창적인 노력을 괴짜의 작품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것처럼 다루었어. 그 책을 읽은 사람 가운데 거의 아무도 게젤의 중요함을 잘 알지 못해. 그래서 난 그 사람들과 달리 게젤한테 불균형적인 지면을 할애할거야. 게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공한 독일인 장사꾼이었어. 게젤은 지난 80년대 경제위기를 보고 돈문제를 연구하게 됐지. 그 경제위기는 아르헨티나에서 특히 심각했어. 게젤의 첫번째 작품 Die Reformation im Münzwesen als Brücke zum socialen Staat는 189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판됐어. 돈에 관한 게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같은 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Nervus rerum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됐어. 그리고 많은 책들과 팜플릿이 뒤따랐지. 그리고 나서 게젤은 1906년 은퇴해서 스위스로 돌아왔어. 게젤은 그 때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생계를 꾸려갈 필요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작업 두 가지, 즉 저작활동과 실험농법에 여생을 바칠 수 있었지.

 

게젤의 잘 알려진 작품의 첫번째 부분은 1906년 스위스 Les Hauts Geneveys에서 출판됐어. Die Verwirklichung des Rechtes auf den vollen Arbeitsertrag라는 제목을 달았어. 두번째 부분은 1911년 베를린에서 Die neue Lehre vom Zins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어. 그 작품 둘은 합쳐져서 베를린 스위스에서 전쟁 중 출판됐어. 그리고 6번째 판이 게젤의 생애 중에 Die natürliche Wirtschaftsordnung durch Freiland und Freigeld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지. 이것의 영문판이 (필립파이가 번역한) The Natural Economic Order야. 1919년 4월, 게젤은 단명했던 바에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 재무부장관으로 합류했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됐어. 그리고 여생을 베를린과 스위스에서 보내면서 자기 이론을 널리 알리는 것에 힘썼지. 게젤은 자신을 조금 종교적인 열정으로 끌고 가면서 전세계에 제자 수천명을 둔 예언자로 추앙받게 됐어. 첫 번째 국제회의를 스위스·독일의 공짜땅 공짜돈 연맹이 열었고 여러 나라에 있는 그와 비슷한 조직들이 바젤에서 1923년 국제회의를 열었어. 1930년 게젤이 죽은 다음 게젤의 가르침과 같은 것들이 흥분시킬 수 있었던 독특한 타입의 열정들은 대부분 (내 의견으로는 게젤보다 못한) 다른 예언자들한테 방향을 틀었어. 부치 박사는 영국에서 그 운동의 리더야. 하지만 그 운동의 저작물은 텍사스 샌 안토니오에서 나왔고 그 책의 주된 영향력은 오늘날 미국까지 퍼졌어. 미국 학계에서 어빙 피셔 교수만 그 저작물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봤어. 게젤의 제자들이 미화했던 그 예언적인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게젤의 주된 책은 차분하고 과학적인 언어로 씌여졌어. 그 책이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과학자로서 적당하지 않은, 사회정의에 대한 감정적인 헌신으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말이야. 헨리조지한테 끌어낸 부분은 그 운동이 가진 힘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중요한 원천이라고 해도 전적으로 두번째 관심사야. 그 책의 목적은 전체적으로는 반맑스주의를 세우는 거라고 그려낼 수 있어. 즉 맑스와는 전혀 다른 기초 위에서 자유방임에 맞서는 작용을 만들어가는 거지. 고전적인 가설을 받아들이는 대신 거부하고 경쟁을 폐지하는 대신 경쟁의 족쇄를 풀어버리는 거야. 미래세대는 맑스보다 게젤의 정신에서 많이 배울 거라고 난 믿어. The Natural Economic Order 서문은 독자들한테 게젤이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려줄거야. 독자들이 그런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말이야. 내 생각이지만 맑스주의에 대한 해답은 이 서문과 같은 선상에서 발견될거야.

 

돈과 이자에 관한 이론에 게젤이 특별히 기여한 부분은 다음과 같아. 우선 게젤은 이자율과 자본의 한계효율을 뚜렷하게 구별했어. 그리고 실물자본 성장률 한계를 정하는 건 이자율이라고 했지. 그 다음으로, 이자율은 순수하게 돈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했어. 그리고 '돈이자율이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돈의 특별한 점은, 부를 저장하는 도구로 돈을 소유하는 것이 그 소지자한테 무시할만한 제비용을 초래하는데 상품재고 같은 부의 형태는 제비용을 초래하며 사실 돈에 의해 정해진 기준 때문에 수익을 산출한다는 사실에 있어. 수세기 동안 이자율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는 것은 이자율이 순수하게 물질적인 속성에 의존하는 건 아니라는 증거라고 게젤은 말해. 물질적인 속성의 변동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가면서 이자율에서 관찰되는 변화보다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게 틀림없으니까. 즉 (내 용어로는) 이자율은 변함없는 심리적 속성에 의존하여 안정적으로 남았어. 반면에 폭넓게 변동하는 속성은 주로 자본의 한계효율의 스케줄을 결정하며, 이자율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많든지 적든지간에) 주어진 이자율이 실물자본 양이 성장하도록 허락하는 비율을 결정해. 하지만 게젤의 이론에는 큰 결함이 있어. 게젤은 상품을 건네주고 산출물을 얻게 하는 돈이자율의 존재가 어떠한 것인지 보여줘. 로빈슨크루소와 낯선 이의 대화는 이 요점을 드러내는 가장 뛰어난 경제적 비유야. 지금까지 씌여진 그런 종류의 어떤 비유와도 맞먹을 만큼 훌륭하지. 하지만 게젤은 돈이자율이 다른 상품의 이자율과 달리 마이너스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주면서 돈이자율이 왜 플러스인지 설명할 필요를 완전히 간과했어. 그리고 돈이자율이 왜 (고전학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생산자본의 산출물이 정하는 기준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지 설명하지 못했어. 이것은 유동성선호라는 개념이 게젤을 비껴갔기 때문이야. 게젤은 이자율 이론의 절반만 세웠어.

 

게젤 이론의 불완전함은 게젤의 작품이 학계에서 왜 무시받았는지 의심할 여지없는 설명을 줘. 그런데도 게젤은 자기 이론을 실제 경제에 적용하라고 권하기까지 했어. 그 이론은 그 안에 필요한 것의 핵심을 담고 있을지도 몰라. 게젤이 제안한 형태 그대로 실현할 수는 없다고 해도 말이야. 게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어. 실물자본의 성장은 돈이자율에 의해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 장애물을 제거하면 실물자본은 현대의 세계에서 아주 빠르게 성장하여 돈이자율은 당장은 아니겠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0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가장 필요한 건 돈이자율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게젤은 이렇게 되려면 돈이 다른 상품들처럼 제비용을 유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해. 이것이 게젤을 그 유명한 '스탬프'머니라는 처방으로 이끌지. 게젤의 이름은 주로 스탬프머니와 연관되어 오르내리고 어빙 피셔 교수한테 인정받은 것도 스탬프머니 때문이야.

 

이 제안에 따르면 (적어도 은행화폐의 어떤 형태에도 역시 적용할 필요가 있겠지만) 통화권이 그 가치를 유지하려면 매달 스탬프를 붙여야 해. 보험증서처럼 말이야. 스탬프는 우체국에서 구입하게 돼. 스탬프 비용은 물론 적당한 금액으로 고정할 수 있을 거야. 내 이론에 따르면, 스탬프 비용은 (스탬프 비용을 제외한) 돈의 이자율이, 완전고용을 이룰만한 신규 투자에 상응하는 자본의 한계효율을 넘는 만큼과 거의 같아져야 해. 게젤이 제안한 실제 비용은 1주에 1000분의 1, 1년에 5.2%와 같아. 이건 기존 조건에서 너무 높겠지만 정확한 숫자야. 그 숫자는 이따금 바꿔야 할 거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말이야.

 

스탬프머니 뒤에 있는 생각은 건전해. 정말이지 그걸 적당한 규모로 실현하는 수단들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게젤이 못 본 많은 어려움이 있어. 특히 게젤은, 유동성프리미엄이 붙는 건 돈의 특별함이 아니라 다른 물건들과 어느 정도 다를 뿐이고 돈이 다른 어떤 물건보다 유동성프리미엄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중요하다는 걸 몰랐어. 그래서 스탬프머니 시스템으로 통화권에서 유동성프리미엄을 제거하면 긴 대체물의 행렬이 나타날 거야. 은행화폐, 즉시채무, 외화, 보석과 귀금속 등과 같은 것 말이야. 내가 위에서 말해두었듯이 땅산출물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땅소유권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지. 그 열망은 이자율을 유지하는데 봉사했어. 게젤 시스템에서는 땅국유화로 이런 가능성이 제거되겠지만 말이야.

 

첫째, “유동성 프리미엄”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케인스는 게젤한테 유동성 선호의 개념이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케인스가 사용한 유동성(liquidity)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유동성이 무엇인가? ‘얼마나 쉽게 돈으로 갈아탈 수 있는가’입니다. 왜 돈으로 갈아타려고 하는데? 자신이 쌓아둔 부를 손실없이 유지하려고. 모든 재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가상각되지만 돈의 액면가는 고정불변하니까. 유동성이라는 말 자체는 '액체처럼 흘러간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케인스의 용어법에서 이 말은 '돈이 쌓여있을 수 있는 상태'를 전제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만 ‘유동성’이지 그 본질은 ‘고정성(solidity)’입니다. '유동성'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을 미혹케 합니다. 언제든지 돈으로 갈아탈 수 있는 성질을 사람들은 좋은 것으로 보고 있죠. 시장 상황이 안 좋을 때 돈으로 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왜 시장 상황은 안 좋아질 수 있는가? 왜 경기는 주기적으로 침체하는가? 재화는 낡고 닳고 썩고 보관료 보험료가 드는 등 시간을 끌 수록 비용이 늘어나지만 돈은 그 액면가가 고정불변하여 그런 비용에서 자유로우니까. 저축매개물로서 더 유리하니까. 그래서 돈이 낳는 이자 이상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순간 돈으로 튀는 거죠. 사람들은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 "유동성을 더 공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을 뿌려달라는 얘기죠. 하지만 돈을 쌓아둘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은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돈으로 아무것도 사지 않고 쌓아둘 때(즉 돈이 교환을 매개하지 않고 쌓여있기만 할 때) 정부는 빚을 내서라도 교환을 매개할 새로운 돈을 투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 그러면 경제가 무너질 테니까요. 즉 케인스의 언어로 하면 '유효수요'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죠. 그러므로 소위 '유동성(사실은 고정성)'이라는 상태는 합리화될 수 없죠. 이 '유동성'이라는 단어의 가면을 벗기면 거기서 우리는 '액면가가 고정불변하여 쌓여있을 수 있는 돈’, 즉 고정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동성이 부족하니 유동성을 더 공급해야 한다"는 말의 속뜻은 "돈이 돌지 않으니 더 많은 돈을 풀어야 한다"는 얘기일 뿐이고, 만일 게젤이 제안한 대로 돈의 액면가를 규칙적으로 감가상각한다면 돈이 규칙적으로 돌 것이고, 그러면 더 많은 돈을 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조건에서는 돈을 쌓아두면 손실을 입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재화와 교환할 것이고 경제는 정말 물 흐르듯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케인즈의 유동성 프리미엄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돈을 잘못 설계한 결과입니다.

 

둘째, “대체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케인스는 돈에서 유동성프리미엄을 없애면 돈의 대체물이 나타날 거라고 했지만, 그 대체물은 지금의 돈이 교환매개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게젤의 다음 언급에 주목해야 합니다.

 

“돈은 확실히 교환매개물인 동시에 저축매개물이 될 수는 없어. 그건 박차를 가하면서 제동을 거는 꼴이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Ⅲ. 돈은 어떠한가 13. 지폐발행 개혁

 

“it is clear that money cannot be simultaneously the medium of exchange and the medium of saving - simultaneously spur and brake.” -Silvio Gesell: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3: Money as it is 13. REFORM OF THE NOTE-ISSUE

 

게젤은 교환매개물과 저축매개물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기능을 한 가지 도구에 집어넣으면 안된다는 것이죠. 엑셀레이터를 밟으면서 브레이크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은 교환매개물 역할만 해야 합니다. 공짜돈 개혁을 하면 돈을 쌓아둘 수 없기 때문에 돈이 교환매개물 역할만 하고 저축매개물 역할은 못합니다. 따라서 교환매개물과 저축매개물이 분리됩니다.

 

그러면 대체물이 나올 거라는 케인스의 주장을 더 명료하게 만들어봅시다. 케인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의미로 분석되어야 합니다.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대로 돈을 개혁할 때

1. 다른 교환매개물이 나올 수 있는가?

2. 다른 저축매개물이 나올 수 있는가?

 

게젤의 방법으로 교환매개물과 저축매개물은 분리됩니다. 따라서 케인스가 말한 대체물도 교환매개물의 대체물인지 저축매개물의 대체물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답에 따라서 게젤에 대한 케인스의 비판이 타당한지 타당하지 않은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먼저, '다른 교환매개물이 나올 수 있는가?' 없습니다. 이것은 그레셤의 법칙이 증명합니다. 그 법칙에 따르면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내죠. 하지만 여기서 나쁜 돈은 좋은 교환매개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돈을 쌓아두지 않고 써버릴 테니까요. 그것은 돈이 돌아서 교환을 매개한다는 것이죠. 케인스가 말한 다른 대체물들은 지금 쓰는 돈이 돈 노릇을 제대로 못해서 그 부족함을 보상하려고 나온 것입니다. 케인스가 열거한 예를 살펴봅시다.

 

첫째, 은행화폐는 교환매개물로서 공짜돈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수표니 어음이니 신용으로 발행되는 은행화폐들은 돈이 필요할 때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구하기 어렵지만 필요하니까 신용으로 발행하죠. 그것들은 불규칙한 돈순환을 보상하기 위해 만든 장치이며 공짜돈이 나오면 그것들은 할 일이 없어집니다. 따라서 저절로 사라집니다.

 

둘째, 즉시채무도 교환매개물로서 공짜돈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공짜돈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므로 사람들은 남는 돈을 다른 사람한테 기꺼이 빌려줍니다. 자기가 쌓아두면 감가상각으로 손실을 입고, 빌려주면 이자는 못 받지만 원금을 보호하니까. 즉 빌려주면 감가상각 손실을 돈을 빌린 사람한테 떠넘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빌린 사람도 그 돈을 바로 써버리니까 감가상각 손실을 입지 않죠. 따라서 모든 곳에서 돈의 순환은 유지됩니다. 이 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대출기간을 가능한 길게 잡으려고 합니다. 더 오래 감가상각의 손실을 입지 않고 원금을 보호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즉시채무도 사라집니다.

 

셋째, 외화도 교환매개물로서 공짜돈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공짜돈은 어쩔 수 없이 순환되어야 하지만 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짜돈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쌓아둘 것도 아니고 남과 교환하기 위한 매개물일 뿐인데 굳이 구하기 더 어려운 수단을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요?

 

넷째, 보석·귀금속도 교환매개물로서 공짜돈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역시 위와 마찬가지의 이유 때문입니다. 게다가 보석·귀금속을 교환매개물로 사용한다면 사고 팔 때마다 그 사람은 무게·순도를 재야 하고 누가 자기한테 그 귀금속을 살지 찾아내야 합니다. 정부는 돈을 개혁한 다음에 금화의 무게·순도를 보증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그 사람은 그것이 말썽 많고 번거로운 수단이라고 느끼고 결국 정부가 만들어낸 공짜돈으로 갈아탈 겁니다.

 

그러면 다른 저축매개물은 나올 수 있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액면가가 불변하는 외화로 저축을 하든, 귀금속으로 저축을 하든 그것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교환매개물의 순환만 지키면 문제가 없습니다.

 

어느 한국사람이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깎여나가는 공짜돈 원화가 싫다고 액면가가 고정불변하는 달러로 저축하여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 원화를 건네받은 미국사람은 그 돈을 쌓아둘 수 없으니까. 쌓아두면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어 손실을 입으니까. 그 미국사람은 애초에 한국의 재화나 서비스를 살 용도로만 달러를 원화와 바꿀 것입니다. 즉 여기에서도 돈순환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따라서 경제는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

 

즉 원화를 들고 있다가 한국경제를 대상으로 투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경제를 대상으로 투기를 하려면 원화를 매개로 해야 합니다. 원화로 갈아타서 '쌓아두었다가' 적당한 시점에 팔아야 하죠. 하지만 공짜돈 개혁을 하면 원화를 쌓아둘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국제투기꾼들이 한국경제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나라경제가 완벽한 돈순환으로 강력하게 보호되므로 투기의 공격 타겟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한국이 지금 실제 무역에도 쓰지 않을 막대한 달러를 보유해야 하는 까닭은, 환투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입니다. 원화에 대한 환투기가 불가능해지면 지금처럼 달러를 많이 쥐고 있을 필요도 없죠. 그래서 국제무역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는 대신 그 달러로 더 많은 외국의 재화를 구매할 수 있으니 이익이죠.

 

국제무역구조를 개혁하기도 전에 국내통화를 개혁하는 것만으로도 환투기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해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순 교수는 얼마전 강의에서 한국 경제위기의 본질을 수입 대불황과 국산 소불황으로 나누고, 이 가운데 수입 대불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했죠. 맞습니다. 기존 경제질서 안에서는 수입 대불황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 문제는 경제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해결됩니다. 게젤이 내놓은 개혁의 순서는 공짜땅-공짜돈이고, 공짜돈은 다시 국내통화 개혁과 국제통화 개혁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국내통화 개혁까지만 밀고 나가도 수입 대불황을 원천적으로 봉쇄합니다. 해외 경제가 어찌 돌아가든 국내 경기(국내 돈순환)는 독립적으로 보호되고 동시에 국제무역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투기꾼들은 더이상 장난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돈을 쌓아둘 수 없다는 것은 경제에서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공짜돈을 대체할 수 있는 교환매개물은 나올 수 없으며 저축매개물은 나오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케인스는 돈과 그 대체물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을 끌어냈고, 그 잘못된 전제 위에서 자기의 경제학을 세웠습니다. 그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고, 그 결과 병든 경제질서는 더욱 굳어졌습니다. 케인스의 생각을 받아들이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입니다. 돈이자를 최대한 낮추거나 돈을 더 찍어내거나. 이것이 근본대책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 세상을 보면 너무도 분명합니다.

 

지금은 케인스 요법이 자유방임에 맞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는 것처럼 세간에 인식됩니다만, 만일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대로 화폐제도를 개혁하면 케인스 요법은 필요가 없어집니다. 근본요법을 쓰면 대증요법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대증요법의 부작용도 감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케인스 요법은 국가재정을 고갈시킵니다. 유효수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권력이 집중되고 부패, 비리, 물가불안, 환경파괴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돈순환장애를 인위적으로 보상하는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케인스나 하이에크와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며, 그것은 게젤이 제안한 대로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하이에크는 자본주의의 결함으로 나타난 증상을 방임하는 것이고, 케인스는 그에 대한 대증요법이라면, 실비오 게젤은 그 결함을 바로잡는 근본요법입니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복지로 인한 재정악화도 없습니다. 이 부분은 복지를 주장하는 분들이 방임주의자들한테 누차 공격당하는 부분입니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토지를 국유화하여 공공임대로 사용토록 하는데 그 임대료를 복지재정으로 삼게 되므로 복지를 하는데 추가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막힘없는 돈순환이 만들어내는 일자리와 사회적 효과는 그 자체로 엄청난 수준의 복지가 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느 재벌이 10조라는 돈을 쌓아두었는데 게젤의 공짜돈 개혁으로 돈의 액면가를 연 5% 감가상각한다고 합시다. 그 재벌이 계속 돈을 쌓아두면 연간 5000억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당연히 그 돈을 써버리겠죠. 그러면 그게 투자가 되고 일자리를 만듭니다. 아니면 그 재벌은 돈을 무이자로 대출해줄 겁니다. 쌓아두면 감가상각으로 손실을 입지만 빌려주면 그 손실을 입지 않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돈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돈의 불균형적인 분포가 저절로 완화되죠. 이거야말로 공정한 질서를 통한 자연스러운 분배가 아닐까요? 정부가 임의적인 기준을 세워서 그 기준에 따라 분배하면 그 기준의 정당성이 늘 의심받고, 정권이 교체되면 그 기준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 방법은 미봉책입니다. 게젤의 방식은 경제질서 자체가 분배로 유도합니다. 다른 개입이 필요없고 지속적으로 유지됩니다.


 

*기존 복지정책은 그 효과가 모두 땅의 임대료로 계산 반영되어 결국 상쇄됩니다. 즉 복지정책으로 더해지는 이점이 임대료에 반영되어 올라가죠. 게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처럼 독일이 제공하는 직업활동·지식활동·사회활동을 위한 모든 장점은 지대로 몰수돼. 지대는 시·과학·예술·종교가 자본화된 거야. 콜론성당, 에펠의 시냇가, 너도밤나무 사이 새들의 지저귐. 지대는 이 모든 걸 현금으로 바꿔. 지대는 토머스켐피스의 종소리, 케벨라 유물, 괴테와 실러, 공무원의 청렴함, 더 행복한 미래를 위한 꿈, 한마디로 모든 것에 요금을 매겨. 그 요금은 노동자가 스스로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지점까지 올라갈 거야. 여기 남아서 요금을 낼까, 아니면 이민을 가서 이걸 모두 포기할까?”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Ⅰ. 분배 5. 사회환경이 지대·임금에 미치는 영향

 

“Thus every advantage which Germany offers for professional, intellectual and social life is confiscated by rent on land. Rent is poetry, science, art  and  religion  capitalised . Rent converts everything into hard cash: Cologne Cathedral, the brooks of the Eiffel, the twitter of birds among the beech-leaves. Rent levies a toll on Thomas à Kempis, on the relics at Kevelaar, on Goethe and Schiller, on the incorruptibility of our officials, on our dreams for a happier future, in a word, on anything and everything; a toll which it forces up to the point at which the worker asks himself: Shall I remain and  pay - or  shall I emigrate and renounce it all ?”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1: Distribution 5. INFLUENCE OF SOCIAL CONDITIONS ON RENT AND WAGES

 

따라서 땅사유권을 남겨두면 기존 복지정책의 효과는 조만간 상쇄됩니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젤은 땅을 국유화하여 이런 가능성을 배제합니다. ('조지스트에게 보내는 편지'를 참조할 것)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도 대비됩니다. 피케티도 경제질서의 결함을 그대로 놔두고, 거기서 생기는 이자 불로소득을 조세제도로 몰수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도 문제의 근원을 놔두고 거기서 생기는 증상을 땜질하는 것입니다. 불로소득을 낳는 시스템을 놔둔 채 불로소득을 몰수하는 사회적 장치를 갖추는 것보다 불로소득이 처음부터 나오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나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피케티의 제안은 실현할 수 없고 실현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만일 A라는 나라의 조세제도는 이자 불로소득을 강하게 몰수하는데 B라는 나라는 그렇게 안하면 돈은 당연히 B로 흘러갈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A는 이자를 몰수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나라의 돈순환도 부족해질테니 대참사가 날 것입니다. 따라서 피케티의 방법은 전세계 조세제도를 전부 동시에 뜯어고쳐야 하는데 이것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하지만 실비오 게젤의 개혁은 한 나라의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만 먼저 개혁해도 그 나라가 직면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 도시에만 적용해도 그 도시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분에서 전체로' 개혁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이 손쉬운 것부터 작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피케티의 방법은 실현해도 효과가 없는데, 그 까닭은 '이자'의 핵심인 기본이자는 조세로 몰수될 수 없기 떄문입니다. 사람들은 분업이 필요하고 분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주인은 돈을 반드시 빌려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재화는 낡고 닳고 썩고 보관료나 보험료가 드는 등 계속 비용이 들고 노동 역시 유지되려면 비용이 들어가는데 돈은 그 액면가가 고정불변하여 보관하는데 아무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돈은 재화나 노동보다 저축매개물로서 선호되고 이 때문에 돈과 재화 또는 돈과 노동이 교환되려면 재화와 노동이 돈에 조공(기본이자)을 바쳐야 합니다. 돈이 재화나 노동에 대하여 갖는 우위는 정부가 돈주인으로부터 이자를 몰수하려고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기본이자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니까요. 원인은 '화폐 액면가가 고정불변하는 현재의 화폐제도'입니다. 원인을 바로 잡지 않으면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기존 경제질서에서 기본이자는 결코 몰수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시도하면 교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테니 경기침체가 올 겁니다.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남습니다. 그렇게 변형된 문제들에 대해 다시 대증요법을 가하면, 그에 상응하여 또 다른 문제가 새로운 가지를 칩니다. 이런 식으로 단순한 문제가 복잡하게 증식되어가므로 문제가 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을 고집하면 선의로 하는 행위도 악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점을 통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세력에 회의적이 되어갑니다. 지금 진보세력들은 근본처방을 사용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때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진보를 믿지 않습니다. 좋은 예가 '일베'입니다. 일베한테 '민주화'는 조롱의 대상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개선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파고들어 바로잡지는 않고, 민주주의가 그저 '구호'로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민주화? 그거 해서 뭐가 달라졌는데?"라고 말할 겁니다. 네, 분명히 철없는 소리죠. 자기들은 사회를 위해서 뭔가 해보지 않고 뭔가 해보려는 사람을 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지금 그 사람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무기력과 무관심, 비뚤어짐이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본처방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문제는 점점 여러 갈래로 증식되어 그 하나 하나에 사회의 힘이 점점 더 많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문제가 사람들을 압도하다 보니 사람들은 이제 그런 문제들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거나 비뚤어지는 것이죠. 그런 회의주의자들까지 모두 뛰쳐나와서 춤을 추게 하려면, 개혁에 동참하게 하려면 개혁방법이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실비오 게젤의 개혁은 사회문제 하나 하나를 간섭하여 수고롭게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요소를 전환하여 그것에서 파생된 모든 결과물을 자연스럽게 개혁합니다. 최소의 노력을 들여서 최대의 효과를 내죠.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개혁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되먹임과 그 되먹임의 결과에 대한 추가적인 되먹임의 연쇄에 의해서 사회개혁은 저절로 굴러갑니다. 이 개혁은 어떤 이데올로기와 도덕을 사람들한테 계속 주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 잔소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쫓는 마음이 그렇게 개혁의 방향으로 스스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끝없는 원천이 됩니다. 이것이 기존의 사회운동과 완전히 다른 점입니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우리가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사회운동이 됩니다. 각자가 제 이익을 쫓으면 그 움직임이 그대로 사회에 유익을 주도록 경제질서를 설계하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따로 사회운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부도, 봉사활동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의 평범한 일상이 사회를 치유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 게젤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Ⅳ. 공짜돈 (돈은 어떠해야 하는가) 5. 공짜돈은 어떻게 판단될까 에서 다양한 경제주체의 입장에서 공짜돈 개혁의 효과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게젤 자신이 실물경제의 다양한 입장에 서 보았던 경험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서술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챕터를 살펴보면 고리대금업자와 투기꾼 말고 이 새로운 경제질서에서 손해 볼 사람은 없습니다. 자영업자, 직장인, 제조자(기업인), 저축자, 협동조합원, 채권자, 채무자가 모두 공정한 질서 안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고 시스템은 훨씬 효율적이 되며 단순해집니다. 경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모두의 경제활동이 서로를 지탱하기 때문에, 사업에 실패한 낙오자들도 보호받고 재기할 수 있게 됩니다. 가장 뛰어난 경제주체가 지불하는 막대한 지대는 복지재정으로 들어가서 약한 경제주체들을 보호합니다. 가장 뛰어난 경제주체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자금은 모두 순환하여 약한 경제주체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냅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공조'로 바뀌는 것입니다.

 

* 게젤의 해법을 도입하면 저소득층의 삶도 비약적으로 개선됩니다. 저소득층의 고민은 결국 돈문제와 땅문제입니다. 돈이 없다, 돈을 구할 수 있는 일자리도 없다, 따라서 그 돈을 주고 얻어야 할 생계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힘들게 얻는 노동대가마저도 땅이 낳는 지대에 대부분 흡수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최저임금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돈이 없으니까 '인위적으로 임금 하한선을 설정해서라도 돈을 더 많이 얻으면 되겠거니'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고용자인 중산층과 피고용자인 서민층의 이해관계를 분열시키고, 이미 직장을 가진 노동자와 실업자의 이해관계를 분열시켜서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방법은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노동수요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지대와 이자를 완전히 제거하여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 전체를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게젤의 해법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죠. 게젤의 해법으로 노동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노동대가 전체를 얻게 됩니다. 저소득층은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억눌려 있던 자기 가능성을 모두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고 넉넉한 일자리와 높은 임금을 얻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공정한 질서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훨씬 명예로운 일이죠. 불공정한 질서 안에서 강자에게 굽신거리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사회개혁의 방향은 아닐 것입니다. 빈곤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경제질서를 방치한 채 이타심만 독려하는 것이 진정한 해법은 아닐 것입니다. 저소득층은 더이상 강자의 자비를 구걸하며 움추러들거나, 억눌린 분노를 범죄나 테러의 형태로 쏟아내거나, 괴로운 현실을 잊으려고 술·담배·매춘·도박·게임·약물·사이비종교 등으로 도피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요즘 유럽이 마이너스 금리를 실행하면서 실비오 게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공짜돈과 마이너스금리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유명 칼럼니스트와 일부 경제학자도 이를 혼동하니 주의가 요구됩니다.

 

공짜돈은 돈의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기 때문에,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을 쌓아둘 수 없고 정기적으로 소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이너스금리는 돈의 액면가가 여전히 고정불변하기 때문에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은 돈을 쌓아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유럽에서 시도하는 마이너스금리는 효과를 보장할 수 없고 결국 양적완화를 병행하게 된 것입니다.

 

게젤은 정확히 말해서 마이너스 금리(negative interest)를 부정합니다. 게젤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V. 공짜돈 이자이론 1. 로빈슨크루소 이야기에서 등장인물 "낯선 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죠.

 

"낯선 이: 자네 제안을 거절하겠네. 그건 이자니까. 물론 양의 이자는 아니지만 음의 이자네. 대출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대출을 받는 사람이 자본가가 되는 거지. 내 종교는 고리대금을 허락하지 않네. 음의 이자라도 금하고 있지.

 

S. I must decline your offer, for it would mean interest - not indeed positive, but negative interest. The receiver, not the giver of the loan, would be a capitalist, and my religion does not permit usury; even negative interest is forbidden.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V. THE FREE-MONEY THEORY OF INTEREST 1. A STORY OF ROBINSON CRUSOE"

 

제가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여 말씀드리는 것은, 게젤의 이론이 엉뚱한 개념으로 오해된 채 실천되어 제대로 효과를 얻지 못했을 때 그것에 대한 불신이 자라는 것을 미리 막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처음부터 게젤의 개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게젤의 공짜돈 개혁을 인플레이션과 혼동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현상은 다릅니다. 경제학을 의학에 비유하면, 이것은 생리physiology와 병리pathology를 혼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플레는 경제가 병든 상태이고, 공짜돈이 만들어내는 돈순환은 건강한 상태입니다. 기존 화폐는 돈순환이 돈을 쥔 사람의 임의에 달려 있으므로 경제를 이랬다 저랬다 불안정한 상태로 유도하죠. 돈이 돌 때는 경기가 풀리는 듯 하다가 돈이 멈춰버리면 경기도 얼어붙습니다. 인플레와 디플레가 불가피합니다. 또 인플레는 돈이 시장 전체를 골고루 도는 게 아니라 어떤 부문에만 몰릴 수 있습니다. 반면에 공짜돈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기 때문에 돈을 쌓아둘 수 없고 따라서 돈이 늘 시장전체를 골고루 순환합니다. 돈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지속적으로 흘러가죠. 여기에는 병든 경제상태가 만들어내는 기복이나 편차가 없습니다. 돈을 사회유기체의 몸을 흐르는 혈액이라고 한다면, 인플레는 염증으로 피가 몸 한 곳에 몰려 발적된 것이고 공짜돈 개혁은 피가 온몸을 원활하게 순환하여 건강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경제현상은 다르게 취급해야 합니다.

 

또, 게젤의 시스템에서 저축이 불가능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게젤 이론을 깊이 연구해보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죠. 공짜돈은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므로 쌓아둘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잉여금은 대출을 하거나 투자를 하게 됩니다. 대출을 하면 감가상각으로 입는 손실을 돈을 빌리는 사람한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에 원금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투자 역시 '감가상각이 되는 부분'을 배당으로 받으므로 원금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이자를 배당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즉, 남에게 대출해주는 것으로 저축이 가능해지죠. 다시 말해 저축의 형태가 바뀌는 것일 뿐 저축은 가능하며, 지금까지 보통사람들의 저축을 방해했던 지대와 이자라는 요소가 사라지기 때문에 더 많은 저축을 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저축이 돈순환을 억제합니다. 하지만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저축을 하더라도 돈순환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돈은 은행에 쌓여있지 않고 시장에서 빠르게 순환하게 됩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저축이라는 행위가 사회가 생산하는 부를 줄이지 않고 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문제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사회가 생산하는 부가 줄어든다

2. 줄어든 부가 불공정하게 분배된다

 

1은 돈이 순환하지 못하여 나오는 결과이며, 2는 돈이 낳는 이자와 땅이 낳는 지대에 의하여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를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개혁의 순서는 [공짜땅-공짜돈]입니다. 공짜돈은 다시 국내통화개혁과 국제통화개혁으로 나뉘고, 국내통화를 국제통화보다 먼저 개혁합니다.

 

공짜땅 개혁을 공짜돈 개혁보다 먼저 해야 하는 까닭은, 화폐제도 먼저 개혁하고 토지제도를 나중에 손보면 더 많은 개혁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공짜땅 개혁을 하지 않고 공짜돈 개혁을 먼저 하면 부의 전체 크기가 늘어나긴 하지만 노동자들의 노동대가와 임대료의 비율은 그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즉 노동자들의 몫도 늘어나지만 땅주인들의 몫도 늘어납니다. 그 때 뒤늦게 공짜땅 개혁을 하려면 정부가 땅주인들한테 보상할 전체 액수가 크게 늘어납니다. 따라서 개혁의 1단계는 공짜땅 개혁입니다. 그리고 공짜돈 개혁에서 국내통화를 국제통화보다 먼저 개혁해야 하는 까닭은, 환율안정은 각국 물가안정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각국 물가가 안정되고 그 물가를 표시하는 통화들끼리 만나야 환율이 안정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개혁의 순서는 공짜땅-공짜돈(국내통화개혁-국제통화개혁)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공짜땅 개혁]

정부는 땅국유화 증권을 발행하여 땅주인들한테 땅을 사들입니다. 신용으로 사는 것이죠. 그럼 그 증권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겠죠. 이자를 갚는 건 쉽습니다. 그 땅을 국유화할 때 땅주인들한테 건네는 땅값은, 그 땅이 낳는 임대료를 자본화해서 정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정부가 그 땅을 빌려주어 받은 임대료를 땅주인들한테 그대로 건네면 그것이 이자를 갚는 것이죠. 여기에서는 소유권만 땅주인에서 정부로 바뀐 셈이죠. 그러면 원금은 어떻게 갚느냐? 공짜돈 개혁을 해서 갚습니다.

 

[공짜돈 개혁]

1.국내통화; 국내화폐를 스탬프머니로 개혁합니다. 따라서 기본이자는 사라집니다. 기본이자는 그동안 상품 및 생산수단의 생산을 억제하였는데, 기본이자가 사라졌으므로 그 생산이 무제한으로 늘어납니다. 생산수단의 공급이 늘어남에 따라 그것이 낳는 시장이자율은 점점 0으로 수렴합니다.

 

게젤은 '땅국유화 증권은 그 평가平價를 유지할 정도의 이자만 낳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 증권이 고정이자를 낳으면, 시장이자율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이 그 증권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그 증권이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죠. 이런 사태를 예방하려면 땅국유화 증권 이자를 미리 시장이자율에 연동시켜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장이자율이 0으로 수렴하면서 땅국유화 증권의 이자도 0으로 수렴합니다. 반면, 그 증권을 주고 사들인 땅은 여전히 임대료를 낳으므로 차액이 발생합니다. 바로 그 차액으로 원금을 갚는 것입니다. 다 갚은 다음에는 그 임대료를 복지에 사용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돈이 낳는 기본이자가 사라진다고 바로 자본이자와 대출이자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 전까지 사용했던 돈의 영향력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그 전까지 사용한 돈은 액면가가 고정불변하여 기본이자를 낳았고, 기본이자는 실물자본의 증가를 억제했습니다. 실물자본이 기본이자 이상을 낳지 못하면 그 실물자본을 더이상 생산하지 못하게 되죠. 그보다 더 생산하면 그것이 낳는 이자가 떨어지고 그래서 그 실물자본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돈을 빌리는데 갖다바쳐야 하는 이자보다 더 떨어지면 이익이 남지 않으니 더 생산할 까닭이 없지요. 따라서 실불자본의 공급은 수요보다 부족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실물자본은 여전히 이자를 낳습니다. 누가 실물자본을 빌리려면 이자를 내야 합니다. 실물자본이 이자를 낳으면 그 실물자본과 교환될 수 있는 돈 역시 이자를 낳게 되지요. (그러한 조건에서만 돈이 실물자본과 교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단계에서는 아직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자는 앞서 설명드린 '기본이자'가 아니라, 아직 실물자본의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하여 생기는 자본이자가 돈에 옮겨붙은 것입니다. 나중에 실물자본의 공급이 늘어서 수요와 일치하게 되면 실물자본의 이자는 마침내 사라집니다. 이 때 실물자본은 이자를 낳을 수 없으므로 더이상 자본으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때 비로소 돈을 빌릴 때 지불해야 하는 이자도 사라집니다.

 

한 가지 더. 돈은 전세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국내의 이자가 완전히 사라지려면 다른 나라들의 이자도 사라져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 돈이 낳는 이자가 남아있다면 국내의 돈이 낳는 이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 돈이 낳는 이자가 더 많다면 우리 나라 돈은 다른 나라 돈으로 교환되어 다른 나라로 투자될 겁니다. 그렇게 하여 국내 이자와 다른 나라들의 이자는 일종의 동적평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나라가 공짜돈 개혁을 하면 다른 나라의 이자율도 점점 하락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 나라 돈순환이 규칙적이 되어 경기가 안정된 것'을 보고 다른 나라도 공짜돈 개혁을 도입한다면 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두 개 이상의 나라가 공짜돈 개혁을 도입하였을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2.국제통화; 국내화폐를 위와 같이 개혁한 나라들끼리 국제통화로 무역을 합니다. 이 국제통화를 이바(IVA: Inernational Valuta Association)라고 부릅니다. 이바는 환율을 안정시키는데, 그 원리는 단순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수출이 늘면 이바가 그 나라로 들어오죠. 그러면 그 만큼 자국통화를 늘립니다. 그러면 물가가 오르죠. 물가가 올랐으니 이번에는 수입이 촉진되고 그러면 이바는 다시 빠져나갑니다. 이바가 빠져나가면 그만큼 자국통화를 줄입니다. 그러면 물가가 원래대로 회복되죠. 이런 식으로 들어온 만큼 나가고 나간 만큼 들어와서 환율이 저절로 안정되는 것입니다. 마치 파이프로 연결된 시스템에서 일시적으로 한쪽 수위가 높아질 때 저절로 같은 수위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바로 연결한 나라에서 물가는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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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은 케인지언에게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케인스가 2차세계대전 후 브레튼우즈에서 제안한 ICU(international clearing union)가 바로 게젤의 IVA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IVA와 ICU는 다릅니다.

 

게젤의 IVA는 국내에 들어온 국제통화만큼 국내통화를 자동으로 늘립니다. 그러면 물가가 올라서 수입이 촉진되고 국제통화가 들어온 만큼 다시 빠져나가게 되지요. 반면, 케인스의 ICU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국내통화가 순환되어야 하는 강제에 종속되지 않으므로 국제통화가 들어올 때 자국통화를 그만큼 늘려도 물가가 올라갈 거라는 보장이 없지요. 따라서 중앙의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해집니다. 어느 나라의 국제통화 잉여금이 어느 한도 이상을 넘어가면 ICU에서 그 잉여금이 청산될 때까지 맡아두는 것이죠.

 

이러한 케인스의 ICU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현대의 무역결제는 전자화폐의 형태로 실시간 주고받습니다. 게젤의 IVA를 도입하면 무역수지의 균형을 거의 실시간으로 자동조절할 수 있습니다. 국제통화 잉여금이 생기자마자 바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케인스의 ICU는 잉여금이 어느 한도 이상으로 올라가야 중앙에서 개입하므로 IVA보다 반응속도가 느립니다. 따라서 그만큼의 변동이 여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변동이 국제무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예를 들어 '내수가 아주 강한 나라 A와 내수가 아주 약한 나라 B가 무역을 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A가 B한테 수출을 많이 해서 국제통화 잉여금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ICU가 그걸 맡아두고 A가 B한테 뭔가를 수입해서 그 잉여금을 청산하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A는 내수가 강하기 때문에 무역을 안하고 버틸 수 있고, B는 내수가 약하기 때문에 무역을 안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따라서 B는 조만간 나라 경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B는 A한테 자기 나라 재화를 수입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어떤 프리미엄이나 조공을 제공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돈을 쌓아둘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국내경제 뿐 아니라 국제무역에서도 각 나라가 서로 공격하고 공격당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B가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통해서 이러한 결과를 상쇄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하지만 그와 같은 논리라면 더 사태가 악화되는 것도 가능하겠죠? 왜? 내수가 강한 나라 A가 내수가 약한 나라 B를 공격해서 얻은 프리미엄 때문에 더 강해지고 그래서 B뿐 아니라 C D E한테도 더 강한 포지션을 굳혀갈 수 있으니까요. ICU가 각국이 청산해야 할 잉여금의 한도를 낮추어 잡으면 이런 문제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작아질 수 있겠지만 이것은 무역량이 크게 늘어난 지금 비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수가 약한 나라 B가 A뿐 아니라 C D E와 무역을 할 때도 적자가 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이런 여지는 결국 국제분쟁과 전쟁을 유도합니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그 자체로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가능성이 낮다고 얼버무리기 전에 이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실비오 게젤의 IVA를 국제무역구조로 채택해야 합니다.

 

케인스의 ICU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는 국내 돈순환을 안정시키지 않고 국제무역구조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하다보니 이런 약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게젤의 IVA는 자동조절시스템이고 환율이 안정되는 반면, 케인스의 ICU는 계속 인위적으로 개입해야 하고 환율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케인스가 말한 유동성 프리미엄은 돈의 액면가가 고정불변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스탬프머니로 그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면 사라집니다. 그리고 케인스가 언급한 대체물들은 '돈이 교환매개물 역할을 제대로 못하여 초래되는 불규칙한 돈순환'을 보상하려고 나온 것일 뿐 그런 상황과 독립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동성 프리미엄을 핑계삼아 기존 화폐의 결함에 눈감아버린다면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지대와 이자로 착취당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돈이 순환해서 모두에게 흘러가면, 지대가 공유되어 모두에게 흘러가면, 권력도 모두에게 분산됩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경제질서(economic order)를 개혁해야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경제민주화'입니다. 이것 말고 다른 경제민주화는 없습니다. 기존 경제질서의 결함을 방치한 채 그 위에서 뭔가 해보려는 건 결국 실패할 것이고, 사람들은 진보세력에 더 큰 실망감과 회의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다시 아주 긴 시간이 흘러야만 시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여러분은 실비오 게젤을 연구해야 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케인지언은 케인스 이론을 뛰어넘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순 교수님이 케인스 경제학을 이 땅에 소개한지 3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한국사회가 케인스를 뛰어넘어야 하는 시점이 아닐런지? 케인스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케인지언 스스로 그 도약을 이루어주시길 바랍니다.

 

만일 '유동성 프리미엄'과 '돈의 대체물'에 대해 저와 생각이 다르면 제 생각을 비판해주십시오. 아니면 실비오 게젤을 다른 분들과 함께 연구해주십시오. 이 두 가지 중 아무것도 안한다면 당신들은 게으르거나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읽고 어떻게 세상을 치유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실비오 게젤이 제시한 개혁방향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토대를 함께 만들고자 합니다. 진정으로 인본주의에 바탕을 두는 대동사회를 함께 열어가고자 합니다. 제 편지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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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4 21:57 2016/10/24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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