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의 테러로 세상이 어지럽다.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은 IS의 근거지라는 시리아를 공습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라고 본다.
사회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면 IS는 슈퍼박테리아와 같다. 화폐제도와 토지제도의 결함으로 사회유기체의 일부에 염증이 발생한다. '사회유기체의 미생물'인 사람들의 불만이 늘어나고 다툼이 늘어나며 사회적 긴장이 높아진다. 그러면 기존 정치체계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해법을 내놓는다. 경찰이나 군대를 동원해서 그 불만을 억누르는 것이다. 또는 그런 불만세력들을 외부에서 침입한 이질적인 존재로 단정짓고 그것들을 배제하려고 한다. 마치 우리 몸 안에서 문제를 일으킨 미생물들을 외부에서 침입한 것으로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항생제를 투여해서 그런 미생물의 활력을 감퇴시킨다. 하지만 미생물은 다시 더 강해져서 돌아온다. 내성이 생기고 그런 억제력을 견디고 더 많은 염증을 유발하면서......그 최종 결과는 슈퍼박테리아다.
IS는 슈퍼박테리아와 같다. IS의 근거지는 시리아가 아니라 무슬림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이며, 그런 민족간 인종간 증오의 뿌리는 결국 화폐제도와 토지제도의 결함이다. 넉넉한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경제위기로 자기들 삶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 그것이 다른 민족이나 이교도에 대한 적대감을 고양하고 있다. 프랑스의 한 풍자잡지에서 무슬림들을 노골적으로 비웃는 내용의 글이 실렸을 때 크게 한 번 터지겠구나 생각했다. 누구나 풍자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의 문제다. 하지만 차별과 멸시로 억눌린 감정들이 그런 비웃음을 견뎌내겠는가? 분노가 폭발하고 모든 것을 쓸어버리게 되지 않겠는가? 모든 것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을만한 용기가 있다면, 왜 사회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어가지 않는가? 왜 철없는 아이들처럼 조금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비웃는 것에서 멈추는가? 경제질서의 결함을 포착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파리 사람들, 구미 선진국들은 여론몰이를 통하여 IS를 왕따시켰다. IS를 고립시켜서 그들이 또 다른 인적 재정적 자원을 흡수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기존 경제시스템 아래에서 갈등과 분노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모두 IS같은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게 된다. IS는 고립되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훨씬 더 사회 속으로 깊이 파고들 것이다. 이것은 곧 사회유기체의 병이 깊어짐을 의미한다.
화폐제도와 토지제도라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올바르게 설정되지 않는 한, IS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계속 더 위험한 형태의 불만세력으로 진화하여 사회 전체를 위협할 것이다. IS의 확산은 FRB, ECB, 각국 경제정책이 실패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다.
IS는 생명체 특유의 분산화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파리에서 폭탄이 터진지 얼마 안되어 아프리카에서 터지고 그 다음에는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반면에 유럽과 미국의 대응은 기계적인 중앙집중형이다. 시리아 대규모 공습은 힘을 한 곳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불만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무슬림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 중 하나다. 그러니 어떻게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인체와 사회유기체의 문제에 대한 대응방법이 서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그 결과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기서 해법은 오로지 게젤의 안을 채택하는 것 뿐이다.
경제질서의 문제를 제대로 알아보려면 분석보다는 어떤 종류의 직관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목격하는 사회현상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공통적인 내러티브를 포착해내야 하는데, 이건 분석으로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우리가 접촉해야 하는 사람은 경제학을 하는 사람 뿐만이 아니라 의학, 심리학, 종교 쪽에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