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low입니다.
저는 얼마전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실비오 게젤과 헨리 조지의 사상이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은 모두 '지대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이론과 해법은 다르지요. 실비오 게젤을 알아야 ‘지대 공유’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이 편지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헨리 조지는 땅사유권을 남겨둔 채 땅의 임대료를 세금으로 몰수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실비오 게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땅사유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금으로 임대료를 몰수해도 땅주인이 다시 그 세금을 임대료에 집어넣어서 세입자한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류)경제학의 통설은 '토지의 공급탄력성이 0이므로 완전경쟁시장에서 지대세는 전가 등 경제 왜곡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쓰면,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새로운 땅이 생길 일은 없을 테니, 땅주인한테 세금을 물리더라도 그 땅주인이 새로운 땅으로 갈아탈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토지 임대료에 부과하는 세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얘기 같습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지대세를 내는 것은 땅주인입니다. 하지만 그 땅주인은 그 세금을 임대료에 집어넣어서 세입자한테 떠넘길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시다시피, 땅은 감가상각이 안되지요. 반면에 노동자들이 생산한 재화와 노동자들의 노동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가상각됩니다. 재화는 점점 낡고, 썩고, 닳고, 보관료나 보험료가 듭니다. 노동력을 유지하려면 먹고 자는 등 비용이 들어갑니다. 노동자는 땅주인의 땅을 빌리지 않으면 점점 손실이 커지는 반면 땅주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둘의 거래관계에서 땅주인은 우위를 차지합니다. 바로 여기서 지대를 거둘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 힘은, 세금으로 지대를 몰수할 때 그 세금을 임대료에 집어넣어 세입자한테 떠넘길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조세라는 수단으로 임대료를 몰수하여도, 땅은 감가상각되지 않음으로 땅이 재화와 노동에 대하여 갖는 우위는 변하지 않습니다. 땅주인은 거래를 안하면 그 뿐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는 손실을 입겠지요. 그래서 땅주인이 지대세를 임대료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지요.
* 어느 분은 "땅주인이 지대세를 임대료에 집어넣으면 세입자가 다른 땅으로 갈아탈 수 있으니까 떠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갈아타는 땅도 임대료를 내야 하는 땅 아닙니까? 그러면 그 땅의 주인도 지대세를 임대료에 집어넣을 것 아닙니까? "세입자가 다른 땅으로 갈아탈 수 있으니까 땅주인은 지대세를 임대료에 집어넣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다른 땅이 공짜땅이어야 합니다.
분명히, 공짜땅이 있다면 땅주인의 땅에 의존하는 정도가 제한될 것입니다. 게젤에 따르면 공짜땅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지구상의 어디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진짜 공짜땅
2. 명목상의 비용을 내고 쓸 수 있는 땅, 즉 거의 공짜땅
3. 땅을 집약적으로 활용하여 얻는 '공짜땅이 생기는 것'과 같은 효과
공짜땅 때문에 땅주인은 임대료를 어느 한도 이상 올리지 못합니다. 더 올리면 노동자들은 위의 공짜땅으로 도피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땅주인의 땅은 공짜땅과 경쟁합니다. 어떤 조지스트들은 땅주인의 땅들끼리 경쟁해서 임대료가 떨어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런 경쟁에서 모든 땅의 임대료를 합한 총임대료는 변하지 않습니다. 총임대료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경쟁은 오직 땅주인의 땅이 공짜땅과 경쟁할 때 뿐입니다. 땅의 임대료를 세금으로 몰수해서 위의 세 가지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한다면, 그 세금은 노동자들한테 떠넘겨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가 지금 빌려 쓰는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보다 커져서 노동자들이 공짜땅으로 도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땅주인과 노동자의 몫 사이에 동적 평형이 이루어집니다.
* 어느 분은 '땅주인이 시장에서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데 어떻게 무조건 지대세가 세입자들에게 전가된다고 하느냐? 만일 그렇다면 지금도 더 올릴 수 있을 것 아니냐?'고 합니다. 하지만 실비오 게젤은 지대세가 무조건 전가된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지대세로 얻은 돈을, 노동자가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지대세 부담이 세입자한테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지대세로 얻은 돈을, 노동자가 주인이 있는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한 만큼 지대세 부담은 세입자한테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즉 조건부로 전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대세가 전가되지 않는 조건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정부가 지대세 걷은 돈으로,
1. 첫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 경우: 한국의 노동자가 땅주인이 없는 해외 오지에서 일해서 얻은 생산물을 한국에서 수입할 때 지대세로 걷은 돈을 수입업자한테 보태준다면 그 때 지대세는 세입자한테 전가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공짜땅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
2. 두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 경우: 두 번째 부류의 공짜땅은 넓은 의미로는 '무역으로 수입을 확대하는 조치'를 포함합니다. 수입을 확대하면 외국땅을 수입한 효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외국산 제품을 수입할 때 지대세 걷은 돈을 수입업자한테 보태주면 그 때 지대세는 세입자에게 전가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외국 산업에 대하여 자국 산업을 역차별하는 것이므로 자국 산업을 말려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보호관세와 정반대의 효과) 당연히 내국인들이 반대하겠죠.
3.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 경우: 실제로 물리적인 공짜땅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공짜땅이 생긴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 것만으로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세 번째 공짜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들겠습니다. 얼마전 '점포쉐어링'이라는 사업이 등장했습니다. 한 점포를 서로 다른 사람이 시간별로 나눠쓰도록 돕는 것입니다. 낮에는 식당을 하다가 밤에는 술집으로 바뀌는 식이지요. 기존 임차인이 다른 사람과 점포를 나눠씀으로써 임대료 부담을 떨어뜨리고 자기들의 소득을 높이는 겁니다. 그 사람이 100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는데 자기가 사용 안하는 밤에 다른 사람한테 점포를 빌려주고 50만원을 받는다면 그의 노동대가는 늘어납니다. 물리적으로 공짜땅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기능적으로 ‘공짜땅이 생긴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오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늘어납니다. 따라서 이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를 결정합니다. 문제는 이것으로는 지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해결하려면 전 국토를 국유화하여 공유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 국토를 공짜땅으로 만드는 수 밖에 없습니다.(공짜땅 개혁)
이처럼 지대세 전가는 조건부이지만, 전가되지 않는 조건을 선택하는 것은 내국인들의 반발을 유도하여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렇게 해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하므로 우리는 지대세가 아니라 공짜땅 개혁을 해야 합니다. (20190607 추가)
즉, 한 나라의 땅을 모두 공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사용'임에 유의할 것) 공짜땅 개혁은 일종의 토지공공임대제입니다.(중국 본토의 것과는 다릅니다. 홍콩의 초기 모델과 비슷합니다. 20190721 추가) 땅사유권을 폐지하므로 모든 지대는 공공기금으로 흘러가고, 이 기금은 복지에 사용합니다. 냈던 임대료를 복지로 돌려받으므로 임대료를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기존 복지정책과 다릅니다. 기존 복지정책은 그 효과가 임대료 상승으로 상쇄되니까요.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는 복지정책은 땅사유권을 그대로 놔두고 지대세를 거두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하거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인데, 그 취지는 좋으나 다시 살펴보십시오. 그러한 방식은 위의 세 가지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려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노동자들한테 임대료의 형태로 떠넘겨진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 어느 분은 '지대세가 전가된다면 복지국가들의 땅값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런 경우 임대료 상승을 상쇄할만한 요인, 즉 무역에 의한 수입 확대(두 번째 부류의 공짜땅), 공유경제의 증가(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처럼 노동자들이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의 증가가 그동안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지정책은 지대를 끌어올렸을 것이며 다만 그동안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 확대로 인하여 그것이 체감되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그런 나라들도 공짜땅 효과가 약해지면 문제가 겉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통계자료를 볼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 자료 배후의 맥락을 정확하게 살피지 못하면 잘못된 결론으로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20190607 추가)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노동대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아야만 노동자들의 노동대가가 지대조세제와 공짜땅 개혁에서 각각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추론과정을 구성하는 기본개념인 '노동대가'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것은 이 거대한 담론의 기초가 됩니다.
실비오 게젤은 노동생산물·노동산출물·노동대가를 구별하였습니다. 쌀농사 짓는 농부를 예로 들면, 쌀은 노동생산물이고, 그 쌀을 팔아 번 돈(임금)은 노동산출물이며, 그 돈을 주고 산 물건은 노동대가입니다. 임금은 분명히 노동대가와 다른데, 돈을 많이 벌어도 물가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많이 살 수도 적게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산출물과 노동대가는 엄밀히 구별되어야 하는데, 헨리 조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헨리 조지의 법칙은 기초개념인 ‘노동대가’에서부터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하며, 그렇게 하면 실비오 게젤이 발견한 법칙과 같아지고, 그 법칙으로 미루어 판단한다면 게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실비오 게젤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땅주인의 땅을 빌려서 일할 때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는 '그가 공짜땅에서 일했다면 얻을 수 있었던 노동대가'로 결정됩니다. 그보다 많이 얻는다면 땅주인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내 땅을 빌렸기 때문에 생긴 거야. 따라서 그 초과분은 내가 임대료로 가져야겠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위의 세 번째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로 결정됩니다.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보다 낮아질 수는 있지만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보다 낮아질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물리적으로 공짜땅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기능적으로 ‘공짜땅이 생긴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오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늘어납니다. 따라서 이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를 결정합니다.
땅사유권을 폐지하지 않고 지대세를 거두어 인구수 n분의 1로 나누어 준다고 할 때 그것은 정말이지 문외한의 귀에는 솔깃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올려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런 방법으로는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를 늘리지 못합니다. 그 지대세는 임대료에 집어넣어져서 다시 노동자들이 부담하게 됩니다. 이것은 조삼모사朝三暮四입니다. 복지로 주었다가 임대료로 빼앗아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기뻐한다면 어리석은 원숭이 아닙니까?
땅주인과 농장노동자의 생산물 분배는 임의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모두 고유의 법칙에 따라 진행돼. 이 분배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더라도 틀림없이 이 법칙을 따라야 하고 거스르면 안돼. 안 그러면 그건 아무 효과가 없어.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1부 분배 12. 보호관세와 지대·임금
There is nothing arbitrary in the distribution of the product between landowner and farm worker; everything proceeds according to inherent laws. Any artificial interference with this distribution must be in accordance with these laws, not in opposition to them, otherwise it will come to nothing.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I. Chapter 12. Protective-Duties, Rent and Wages
실비오 게젤의 이론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저는 지난 주말 이코노미인사이트라는 잡지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에서 집세보조금 정책이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조금으로 400억 유로나 풀었는데 주택위기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주인들이 보조금을 감안해서 집세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보조금 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이제 프랑스 정부는 보조금을 줄이고 있습니다. 파리시는 집세 규제로 보조금 정책의 실패를 보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세입자들이 집세 신고를 잘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집주인이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은 '지대세나 복지정책의 효과가 상쇄되기 전까지는 효과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그 분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전통시장 지원금 정책의 효과는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완전히 상쇄되었습니까? 그것이 정말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복지정책의 효과는 상쇄됩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것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약을 여러 개 먹는 환자는 좋아져도 무엇 때문에 좋아졌는지 모르고 악화되어도 무엇 때문에 악화되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현재의 복지정책이 그렇죠. 여러 가지 정책이 뒤섞여 있습니다. 여기서 정치가들과 국민들은 그 모든 노력이 그럭저럭 효과가 있었을 거라고 어림짐작할 뿐입니다.
둘째, 개미가 코끼리 등 위에 있으면 그것이 코끼리인지 모릅니다. 한 눈에 안 들어오니까요. 예를 들어,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한 나라에서 지대가 상승하더라도 그것은 쉽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둘 사이에 그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택 보조금이나 전통시장 지원금은 다르죠. 주택 보조금을 줄 때 집세가 올라간다든지 전통시장 지원금을 줄 때 시장점포세가 올라간다면 누구나 그것들이 관계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정책의 효과와 비교적 구별이 쉽고, 보조금을 주는 대상과 그것의 영향을 받는 대상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그 연관성이 한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시야가 좁기 때문에 관찰범위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고, 우리가 그 경제현상의 배후에 있는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생각을 예리하게 가다듬고 확장하여 더 거대한 현상들의 본질을 한 눈에 포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좀 더 단순한 예에서 궁극의 원리를 끌어내야죠. 그리고 그 원리를 다른 현상에 적용하여 정책이나 제도의 결과를 추론해야 합니다. 1887년 아서코넌 도일은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셜록홈즈의 입을 빌려서 이렇게 말합니다.
"논리적인 사람은 바다를 보거나 폭포소리를 듣지 않아도 물 한방울에서 대서양이나 나이아가라폭포의 가능성을 추리해낼 수 있다. 그래서 인생 전체는 거대한 하나의 사슬이 되고 우리는 그 사슬 일부를 보고 전체를 알 수 있다."
*어느 분은 “지대조세제를 하되, 임대료가 오르면 다시 세금으로 거둬들이면 될 것 아니냐?”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옛날 옛적 걸리버라는 선원이 있었다. 그가 탄 배는 영국을 출발하여 인도로 향했는데, 아프리카 희망봉 근처에서 거센 파도에 휩쓸려 난파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이름도 알 수 없는 섬에 떠밀려와 있었고,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사람들이 자기 몸을 밧줄로 묶고 있었다. 그 곳은 소인국이었던 것이다.
난장이들은 걸리버를 수레에 싣고 왕궁으로 옮겼다. 소인국의 왕은 배고픈 걸리버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 물었다.
왕: 자네는 정말 많이 먹는군. 자네를 하루 먹이려면 우리나라 GDP의 1%가 들어갈 것 같네. 어디서 왔는가?
걸리버: 영국에서 왔습니다.
왕: 영국?? 처음 들어보는군. 그래, 그 나라는 살기 좋은가? 우리나라는 지금 심각한 경제난과 빈부격차로 백성들의 고초가 말이 아니라네. 하지만 다행히도 해법을 알게 됐지. 얼마전 자네처럼 누가 우리 나라로 떠밀려온 적이 있네. '헨리 조지'라고 경제학을 연구한다더군. 그 사람이 말하길, 세금으로 토지임대료를 몰수해서 백성들의 복지에 쓰면 된다고 했네. 그럴듯하지 않나?
걸리버: (닭고기를 입에 넣으며) 지대조세제군요. 그건 효과가 없습니다.
왕: 효과가 없다니. 왜 그런가?
걸리버: 헨리 조지는 좋은 사람이지만, 지대조세제는 효과가 없습니다. 토지임대료를 세금으로 몰수해서 복지에 쓰면, 그것은 '주인이 있는 땅'의 이점을 늘려준 것이므로 임대료가 상승합니다. 그래서 복지를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가 늘어난 것을 상쇄하지요. 그래서 효과가 없습니다.
왕: 이해가 안되는군. 임대료가 오르면 다시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면 될 것 아닌가?
걸리버: (스푼을 내려놓으며) 폐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이 나라 전체의 토지임대료가 얼마입니까?
왕: 100원이네.
걸리버: 세금으로 그 임대료 100원을 몰수해서 백성들의 무상교육비로 씁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노동대가는 100원이 늘어난 것과 같죠. 하지만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그 땅에 더해져서 임대료는 100원이 올라서 총 200원이 됩니다. 땅주인은 임차인에게 "200원을 안 내려면 다른 곳(공짜땅)으로 가"라고 하죠. 하지만 임차인은 갈 수 있는 다른 곳(공짜땅)이 없죠. 그래서 임대료 200원을 지불합니다. 그러면 노동자의 이익은 얼마가 늘었죠?
왕: 늘어난 노동대가 100원이 늘어난 임대료 100원으로 상쇄되었으니 0원이네.
걸리버: 땅주인한테 얼마가 남죠?
왕: 세금으로 100원을 몰수당했지만 임대료는 200원이 되었으니 100원이 남는군. 땅주인이 100원의 이익을 보네.
걸리버: 그러면 다시 세금으로 임대료 200원을 몰수해서 백성들의 무상의료비로 씁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노동대가는 200원이 늘어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무상의료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그 땅에 더해져서 임대료는 200원이 더 올라서 총 400원이 됩니다. 그러면 노동자의 이익은 얼마가 늘었죠?
왕: 늘어난 노동대가가 임대료 상승으로 상쇄되었으니 0원이네.
걸리버: 그러면 땅주인은 얼마가 남죠?
왕: 세금으로 처음에 100원 그리고 나중에 200원, 총 300원을 몰수당했지만 임대료는 400원이 되었으니 100원이 남는군. 땅주인이 여전히 100원의 이익을 보네.
걸리버: 이와 같이 노동자는 100원을 땅주인한테 임대료로 빼앗기는 겁니다. 세금으로 지대를 몰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주인이 있는 땅의 이점을 늘린다면 그것은 임대료를 상승시키므로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늘어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는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로 결정됩니다. 임대료를 내야 하는 땅의 이점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임대료에 반영되어 재분배 효과는 무력화되는 겁니다.
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걸리버: 땅을 국유화하고, 국민들이 공매로 땅을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거기서 얻은 임대료는 복지에 쓰십시오. 그리고 지대가 오를 때마다 임대료도 그만큼 올리세요.
왕: 지대조세제와 같지 않나?
걸리버: (고개를 가로저으며) 땅을 국유화하고 공매로 임차인을 구합니다. 그 임차인한테 받은 총 임대료가 100원이라고 합시다. 그 100원을 모두 복지에 씁니다. 그러면 노동자는 노동대가가 얼마나 늘어난 셈이죠?
왕: 정부가 복지에 쓴 100원만큼 늘어났네. 그 땅에서 사는 이점도 100원만큼 늘어났으니 지대도 100원 올라가고...
걸리버: 지대가 올라간 만큼 임대료를 올리면 임대료는 200원. 그리고 그 임대료는 정부에 귀속되고 정부는 그 200원 전부를 다시 복지에 사용하면...
왕: 노동자는 노동대가 200원 증가. 다시 지대 200원 상승.
걸리버: 지대 올라간 만큼 임대료 올려서 임대료 400원. 그 임대료는 정부에 귀속되고 정부는 그 400원 전부를 다시 복지에 사용하면...
왕: 이제 알겠네. 개인이 지대의 상승에서 이익을 뽑아먹을 수 있는 틈이 제거됐군.
걸리버: 이제 식사를 계속 해도 될까요?
왕: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더 주문하게.
그 사람은 정말이지 농장임대료를 지불해야 해.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그 지대를 돌려주고 있어. 그 지대는 땅의 생산물이 아니라 사회의 생산물이야. (사회society 란 말은 돌려받는 걸 뜻해.) 그리고 사람은 땅에 대해 청구할 게 있지. 사람에 대해서는 청구할 게 없어. 따라서 그 사람이 자기 농산물의 가격으로 사회에서 모은 지대를 농장임대료로 사회에 돌려주면, 그 사람은 그냥 경리나 세금징수인처럼 움직이는 거야. 자기 땅에 대한 권리는 그대로 남아. 사회는 그 사람한테 농산물값으로 그 사람이 일한 것보다 더 많이 지불하고, 그 사람은 그걸 다시 사회에 되돌려줄 뿐이야. 하지만 그 농부는 그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 사람도 농장임대료로 자기 몫을 받아. 그래서 실제로는 지대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셈이야. 그 사람은 단지 자기가 모은 지대를 돌려줄 뿐이야. 자기 계좌가 사회에서 더 정확히 처리될 수 있게 말이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2부 5장 땅국유화를 위한 변론
He must, indeed, pay a farm-rent, but in so doing he is merely giving back the rent of the land which is not the product of the soil, but of society (the word means what is given back). And man has a claim on the earth, but not on men. If, therefore, he restores to society, as rent for his farm, the rent that he collects from society in the prices of his farm products, he simply acts as an accountant or tax gatherer; his right to the soil remains intact. He gives back to society what it has paid him in advance in the price of the products of the soil, over and above his labour. But since the farmer himself is a member of society, he, also, receives his share of the farm rent. So in reality he pays no rent at all; he merely hands over the rent collected by him, in order that his account with society may be settled more accurately.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II. Chapter 5. The Case for Nationalisation of the Land
이처럼 실비오 게젤의 공짜땅 개혁에서는 생산자가 자기가 제공하는 재화의 가격을 정할 때 임대료를 거기에 끼워넣지만, 그 임대료는 생산자의 몫으로 남지 않고 정부로 들어가고, 정부는 그걸로 복지를 합니다. 이 때 그 생산자는 지대를 효율적으로 모으는 것을 돕는 심부름꾼처럼 일하게 될 뿐 그 지대를 자기 호주머니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땅사유제에서 땅주인이 세입자한테 임대료 인상을 통하여 지대세를 떠넘기는 것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재화의 가격을 통하여 임대료를 떠넘기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지대를 사유할 수 있는 빈틈이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분은 “토지공공임대제도 땅사용권이 소유권화되지 않냐?”고 염려합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일어난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국 도시의 땅은 국가 소유이고 개인이나 기업이 사용하려면 사용권을 얻어야 합니다. 사용권은 크게 획발(劃拔)과 출양(出讓)으로 나뉩니다. 획발이란 국가에서 정부기관·공공시설·공공단체에 사용권을 공짜로 준 것을 말하며, 사용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정부에서 필요할 때 임의로 회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개인이나 기업이 건축부지·공장부지로 땅을 사용하고자 할 때 쓰는 방법이 출양입니다. 출양은 시, 현급의 토지관리부서와 어느 땅을 일정기간 일정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계약을 하고 사용권을 사는 방식입니다. 출양 계약할 때 땅을 사용하는 기간을 결정하는데, 사용목적에 따라 최대사용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거주용는 최대 70년, 상업․관광․오락용은 최대 40년, 공장부지는 보통 50년이 보장됩니다. 이렇게 취득한 토지사용권을 담보로 하여 대출을 받을 수도 있으며 제3자에게 사용권을 양도하거나 임대해 줄 수도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획발 사용권은 처분권이 없는 순수한 의미의 사용권’이고, 출양 사용권은 ‘처분권이 있는 변형된 의미의 사용권’입니다. 출양 사용권은 허가 받은 기간 동안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을 뿐 아니라, 증여·임대·저당권설정·교환 등 모든 법적인 권리가 보장되므로 이름만 사용권일 뿐 한국의 소유권과 다름없습니다.
"사용권이 소유권화된다"는 것은, 땅소유권으로 지대를 사유화하여 이익을 취하듯이 사용권을 매매할 때 지대를 사유화할 수 있는 빈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땅을 오랫동안 빌려줄 때 분업의 고도화에 의하여 지대가 상승할 수 있는데, 그것에 비하여 임대료는 고정된 상태라면 당연히 사용권을 팔 때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출양 사용권으로 수십년을 보장받으면 그 동안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개발되어 지대가 폭등할 수 있는데 만일 임차료가 고정되어 있다면 팔 때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원인은 화폐제도에 있습니다. 기존 화폐는 액면가가 불변하여 돈소유자가 임의로 돈을 쌓아둘 수 있는데, 이것 역시 땅사용권 투기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줍니다. 투기라는 것은 돈을 쌓아두었다가 돈과 재화의 교환시점을 돈소유자가 임의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화폐 액면가가 불변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실비오 게젤의 공짜땅 공짜돈 개혁은 이 두 가지 원인을 모두 바로잡습니다. 첫째, 정부가 지대 변동에 따라 임대료를 변경할 권리를 가집니다. 즉 지대가 오르면 임대료를 올립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시세차익을 노리고 매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탬프머니와 같은 방법으로 화폐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도록 만들기 때문에 돈을 쌓아둘 수 없고, 따라서 투기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땅 뿐 아니라 다른 재화에 대한 투기도 모두 불가능합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땅이 낳는 지대는 조세로 몰수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돈이 낳는 이자(기본이자)도 조세로 몰수될 수 없습니다. 돈의 액면가도 땅과 마찬가지로 감가상각이 안되므로 재화나 노동력에 대하여 우위를 점유합니다. 여러분은 1000원짜리 지폐와 1000원짜리 빵 가운데 무엇으로 저축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지폐일 것입니다. 빵은 썩겠지만 돈의 액면가는 썩지 않으니까요. 돈이 재화나 노동과 교환되려면, 재화나 노동이 돈에게 그 돈이 가진 유리함에 상응한 조공을 바쳐야 하는데, 그 조공을 실비오 게젤은 '기본이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기본이자를 세금으로 몰수해도, 돈이 재화나 노동에 대하여 갖는 우위에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기본이자는 결과일 뿐, 그 원인은 화폐 액면가의 불변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바로잡지 않는 한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분업에 의지하므로 분업을 매개하는 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면에 돈소유자는 화폐의 액면가가 불변하므로 돈을 반드시 재화나 노동과 교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기본이자를 세금으로 몰수하려고 하면, 즉 교환에 세금을 더 물린다면 시장은 침체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돈 말고 교환을 매개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노동자들이 돈에 더 적게 의존할 것입니다. 기존 경제질서에서 그런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물물교환
2. 환어음
3. 지역화폐(감가화폐만 해당됨)
이 세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에, 돈은 그 기본이자를 무한정 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위의 세 가지 수단으로 대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방법이 있어도 기본이자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기본이자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국가화폐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스탬프머니'라고 합니다.(아래 그림 참조) 이것은 정해진 기한이 지나서 돈을 사용하려면 돈에 우표를 붙이게 하는 것입니다. 우표를 사는데 들어가는 비용만큼 돈의 액면가는 감가상각되는 셈이고, 돈을 쌓아두는 사람은 손해를 봅니다. 돈을 쌓아두는 것에 대하여 비용을 물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가진 사람들은 우표를 붙여야 하는 시간이 오기 전에 돈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것은 '돈이 돈다'는 것이고, 돈이 돌면 경제도 돌아가는 것이지요. 이 방법은 실제로 강력한 효과가 있음이 이미 대공황 시절에 증명되었고, 지금도 킴가우어같은 지역화폐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지역화폐뿐 아니라 국가 화폐에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세로 지대와 이자를 몰수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사민주의자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세라는 허약한 수단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조세라는 틀 밖으로 나와야만 비로소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대와 이자가 사유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공짜땅 공짜돈 개혁을 해야 합니다. 토지제도와 화폐제도 그 자체를 개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비오 게젤이 100년 전에 주장한 것이고, 이것이 근본요법입니다. 이것을 안하고 조세만 만지작거리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개혁의 순서는 [공짜땅-공짜돈]입니다. 공짜돈은 다시 국내통화개혁과 국제통화개혁으로 나뉘고, 국내통화를 국제통화보다 먼저 개혁합니다.
공짜땅 개혁을 공짜돈 개혁보다 먼저 해야 합니다. 공짜돈 개혁을 먼저 하면 공짜돈이 분업을 촉진하여 땅값이 오릅니다. 그러면 그렇게 값이 오른 땅을 국유화하려면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공짜돈 개혁에서 국내통화를 국제통화보다 먼저 개혁해야 하는 까닭은, 환율안정은 각국 물가안정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각국 물가가 안정되고 그 물가를 표시하는 통화들끼리 만나야 환율이 안정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개혁의 순서는 공짜땅-공짜돈(국내통화개혁-국제통화개혁)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공짜땅 개혁]
정부는 땅국유화증권을 발행하여 땅주인들한테 땅을 사들입니다. 신용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럼 그 증권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겠지요. 이자를 갚는 건 쉽습니다. 그 땅을 국유화할 때 땅주인들한테 건네는 땅값은, 그 땅이 낳는 지대를 자본화해서 정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정부가 그 땅을 빌려주어 받은 임대료를 땅주인들한테 건네면 그것이 이자를 갚는 것이지요. 여기에서는 소유권만 땅주인에서 정부로 바뀐 셈이지요. 그러면 원금은 어떻게 갚느냐? 공짜돈 개혁을 해서 갚습니다.
[공짜돈 개혁]
1.국내화폐개혁; 국내화폐를 스탬프머니로 개혁합니다. 따라서 돈은 더이상 기본이자를 낳지 못하고 시장이자율은 점점 0으로 수렴됩니다.
게젤은 땅국유화증권이 그 평가平價를 유지할 정도의 이자만 낳아야 한다고 합니다. 만일 그 증권이 고정이자를 낳으면, 시장이자율은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이 그 증권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그 증권이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태를 예방하려고 땅국유화증권 이자를 미리 시장이자율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도록 해 둡니다.
시장이자율이 0으로 수렴되면서 땅국유화증권의 이자도 0으로 수렴됩니다. 반면, 그 증권을 주고 사들인 땅은 여전히 지대를 낳으므로 차액이 발생합니다. 바로 그 차액으로 원금을 갚습니다. 다 갚은 다음에는 지대를 복지에 사용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돈이 낳는 기본이자가 사라진다고 바로 자본이자와 대출이자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 전까지 사용했던 돈의 영향력이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그 전까지 사용한 돈은 액면가가 고정불변하여 기본이자를 낳았고, 기본이자는 생산수단의 생산을 억제했습니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공급은 수요보다 부족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생산수단은 여전히 이자를 낳습니다. 생산수단이 이자를 낳으면 그 생산수단과 교환되는 돈 역시 이자를 낳게 되지요. (그러한 조건에서만 돈이 생산수단과 교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단계에서는 아직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자는 돈 액면가가 불변하여 돈이 교환에서 재화보다 우월한 포지션을 차지하여 얻었던 '기본이자'가 아니라, 아직 생산수단의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하여 생기는 이자가 돈에 옮겨붙은 것입니다. '기본이자'라는 장애물이 사라졌으므로 결국 생산수단의 공급이 꾸준히 늘어서 수요와 일치하게 되면 생산수단의 이자는 마침내 사라집니다. 이 때 생산수단은 이자를 낳을 수 없으므로 더이상 자본으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때 비로소 돈을 빌릴 때 지불해야 하는 이자도 사라집니다.
한 가지 더. 돈은 전세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국내의 이자가 완전히 사라지려면 다른 나라들의 이자도 사라져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 돈이 낳는 이자가 남아있다면 국내의 돈이 낳는 이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 돈이 낳는 이자가 더 많다면 우리 나라 돈은 다른 나라 돈으로 교환되어 다른 나라로 투자될 겁니다. 그렇게 하여 국내 이자와 다른 나라들의 이자는 일종의 동적평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진행될 겁니다. 우리 나라가 공짜돈 개혁을 하면 다른 나라의 이자도 점점 하락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 나라 돈순환이 규칙적이 되어 경기가 안정된 것'을 보고 다른 나라도 공짜돈 개혁을 도입한다면 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두 개 이상의 나라가 공짜돈 개혁을 도입하였을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2.국제통화개혁; 국내화폐를 위와 같이 개혁한 나라들끼리 국제통화로 무역을 합니다. 이 국제통화를 이바(IVA: Inernational Valuta Association)라고 부릅니다. 이바는 환율을 안정시키는데, 그 원리는 단순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수출이 늘면 이바가 그 나라로 들어오죠. 그러면 그 만큼 자국통화를 늘립니다. 그러면 물가가 오르죠. 물가가 올랐으니 이번에는 수입이 촉진되고 그러면 이바는 다시 빠져나갑니다. 이바가 빠져나가면 그만큼 자국통화를 줄입니다. 그러면 물가가 원래대로 회복되죠. 이런 식으로 들어온 만큼 나가고 나간 만큼 들어와서 환율이 저절로 안정되는 것입니다. 마치 파이프로 연결된 시스템에서 일시적으로 한쪽 수위가 높아질 때 저절로 같은 수위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바로 연결한 나라에서 물가는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아래 그림 참조)
이 방법은 케인지언에게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케인스가 2차세계대전 후 브레튼우즈에서 제안한 ICU(international clearing union)가 바로 게젤의 IVA를 모방 또는 표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IVA와 ICU는 다릅니다.
게젤의 IVA는 국내에 들어온 국제통화만큼 국내통화를 자동으로 늘립니다. 그러면 물가가 올라서 수입이 촉진되고 국제통화가 들어온 만큼 다시 빠져나가게 되지요. 반면, 케인스의 ICU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국내통화가 순환되어야 하는 강제에 종속되지 않으므로 국제통화가 들어올 때 자국통화를 그만큼 늘려도 물가가 올라갈 거라는 보장이 없지요. 따라서 중앙의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의 국제통화 잉여금이 어느 한도 이상을 넘어가면 ICU에서 그 잉여금이 청산될 때까지 맡아두는 것이지요.
케인스의 ICU는 또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현대의 무역결제는 전자화폐의 형태로 실시간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게젤의 IVA를 도입하면 무역수지의 균형을 거의 실시간으로 자동조절할 수 있습니다. 국제통화 잉여금이 생기자마자 바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케인스의 ICU는 잉여금이 어느 한도 이상으로 올라가야 중앙에서 개입하므로 IVA보다 반응속도가 느립니다. 따라서 그만큼의 변동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변동이 국제무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예를 들어 내수가 아주 강한 나라 A와 내수가 아주 약한 나라 B가 무역을 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A가 B한테 수출을 많이 해서 국제통화 잉여금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ICU가 그걸 맡아두고 A가 B한테 뭔가를 수입해서 그 잉여금을 청산하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A는 내수가 강하기 때문에 무역을 안하고 버틸 수 있고, B는 내수가 약하기 때문에 무역을 안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따라서 B는 조만간 나라 경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B는 A한테 자기 나라 재화를 수입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어떤 프리미엄이나 조공을 제공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돈을 쌓아둘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국내경제 뿐 아니라 국제무역에서도 각 나라가 서로 공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태는 B가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통해서 이러한 결과를 상쇄하지 못한다는 전제 위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조건은 충분히 실제 무역에서 조성될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이런 시스템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B 말고 C D E 등 여러 참여자들이 있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내수가 강한 나라 A가 내수가 약한 나라 B를 공격해서 얻은 프리미엄 때문에 더 강해지고 그래서 B뿐 아니라 C D E한테도 더 강한 포지션을 굳혀갈 수 있습니다. ICU가 각국이 청산해야 할 잉여금의 한도를 낮추어 잡으면 이런 문제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겠지만 이것은 무역량이 크게 늘어난 지금 비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수가 약한 나라 B가 A뿐 아니라 C D E와 무역을 할 때도 적자가 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이런 여지는 결국 국제분쟁과 전쟁을 유도합니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그 자체로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가능성이 낮다고 얼버무리기 전에 이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실비오 게젤의 IVA를 국제무역구조로 채택해야 합니다.
케인스의 ICU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는 국내 돈순환을 안정시키지 않고 국제무역구조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하다보니 이런 약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게젤의 IVA는 자동조절시스템이고 환율이 안정되는 반면, 케인스의 ICU는 계속 인위적으로 개입해야 하고 환율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의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단계인 공짜땅 개혁만 해도 땅사유권을 폐지하자는 것이니까 땅주인들의 거센 반발을 받지 않을까요? 그럴 겁니다. 그 반발을 해소하지 못하면 이 개혁은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분열되는 것을 봅니다.
1명이 99명을 지배하는 방법은 99명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계급분열, 이것이 모든 진보를 막아냅니다. 계급을 크게 셋, 즉 자본가-중산층-서민층으로 나눠봅시다. (물론 더 세분화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셋으로 나누는 것은 그저 계급분열이 어떻게 진보를 방해하는지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더 세분화해도 메커니즘은 같습니다.) 이 구도에서 중산층은 자본가를 서민층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벽 역할을 합니다. 기존 경제질서에서 자본가와 서민층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초래되지만, 중산층이 서민층에 동조하지 않음으로써 자본가는 서민층의 요구를 묵살할 수 있습니다.
중산층이 서민층으로부터 자본가를 보호하게 되는 이유는 서민층의 사회운동이 중산층의 이익을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논쟁을 살펴봅시다. 알바를 쓰는 어느 편의점 점주는 최저임금을 올릴 때 자기 이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합니다. 그는 손익계산을 해보고 알바직원 수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알바들의 일자리를 줄이는 셈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강사법이 오히려 강사들을 대량해고하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분명히 바보일 겁니다. 어떤 법을 만들 때는 반드시 되먹임을 고려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 법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할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고려하지 않으면 그 법은 기대한 것과 정반대의 효과를 내고 국민들의 고통을 더 무겁게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급이 분열되어 보수질서가 유지됩니다. 따라서 중산층과 서민층의 이해관계를 분열시키는 정책은 효과가 없습니다. 개혁은 중산층과 서민층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야만 성공합니다. 중산층이 자본가를 보호하는 방어벽이 되어버리면 개혁은 어렵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중산층이 사회개혁의 주체가 되면 개혁은 아주 쉬워진다는 뜻입니다. 중산층이 움직이면 자본가들이 자본주의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중산층이 움직인다는 것은 개혁의 장애물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산층을 움직일까요?
맑스주의자들은 중산층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도하거나 테러나 선전으로 사회불안을 유도하여 중산층이 자기들에게 합류하기를 기대했습니다만 그런 철없는 행동은 오히려 중산층의 반발을 샀고 그들이 위험한 세력임을 각인시켰을 뿐입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빛입니다. 중산층에게 손해가 아니라 이익을 주어야 합니다. 실비오 게젤은 서민층 뿐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이익을 줍니다. 중산층이 자기들의 예금과 부동산으로 얻는 이자와 지대보다 자본가한테 빼앗기는 이자와 지대가 훨씬 많습니다. 중산층이 이걸 깨닫게 되면 변화를 원하게 될 겁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 이익을 쫓게 되어 있으니까요. 판단은 중산층이 알아서 할 겁니다. 움직일지 말지 중산층이 알아서 결정할 겁니다. 중산층을 설득할 필요가 없고 그냥 팩트만 제시하면 됩니다. 자본가들은 실비오 게젤의 개혁을 막으려고 중산층에게 여러 가지 달콤한 제안을 하게 될 겁니다. 경기부양책과 개발공약들이 난무할 것이고, 중산층은 다시 미혹될 겁니다. 하지만 중산층은 결국 깨닫게 될 겁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실비오 게젤의 제안이 더 이익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자본가들의 회유책이 아무리 근사하여도 지대를 공유하고 이자를 폐지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들이 회유책을 제안하는 것은 바로 그 지대와 이자를 지키기 위함인데 당연히 그렇겠지요.
실비오 게젤의 개혁이 실행되면 자본가들이 쌓아둔 돈이 순환하면서 모든 계층이 골고루 큰 혜택을 입게 됩니다. 10조의 돈을 쌓아둔 재벌이 있다고 합시다. 공짜돈 개혁으로 연 감가상각률 5%만 적용되어도 연간 최소 5000억원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그 재벌은 따라서 그 돈을 써버리게 됩니다. 그 돈을 사업에 투자하게 되고, 그 투자로 일자리는 늘어납니다. 다시 말해, 그 돈은 중산층과 서민층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2014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가 현대차에 팔린 가격이 10조라는 걸 생각해보십시오. 그 막대한 지대를 중산층과 서민층이 공유한다면? 그 이익에 비하면 중산층이 지금 예금과 부동산으로 얻어내는 임대료와 이자는 과자 부스러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산층이 이 개혁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린다면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장 근처 아울렛에서 세일만 해도 사람들이 몰립니다. 오로지 이익만이 사람을 움직입니다. 오로지 이익만이 중산층을 움직입니다. 중산층이 움직여야 개혁이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광장에서 “이제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고 외치지만, 내일 시장에서 다시 분열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분열시키는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한, 사회문제에 대한 모든 시도는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치가를 몇 명 더 갈아치우든지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정치가들의 미소만 보지 마시고, 그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살펴보십시오. 만일 그 해법이 조세라는 수단에 갇혀있다면, 그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세라는 수단으로는 지대와 이자를 몰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니까 법인세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1boon.kakao.com/issue/corporationtax
새누리당은 법인세를 올려도 국민들한테 떠넘겨진다고 하고, 더민주당은 법인세를 내려도 기업들이 투자·고용을 늘리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둘 다 옳습니다. 이 두 의견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도 아닙니다.
법인세를 올려서 그 돈으로 복지를 한들 땅사유권이 남아있어서 그 효과가 무력화됩니다. 복지정책으로 땅에 붙는 이점만큼 임대료는 오를 것입니다. 즉 국민들한테 떠넘겨지는 것입니다.
법인세를 내려도 기업들이 남는 돈을 투자나 고용에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돈의 순환이 돈을 가진 사람의 임의에 달려있는 한 그럴 것입니다.
따라서 땅사유권은 폐지하고 땅을 공유해야 하며,
돈의 액면가는 스탬프머니처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은 불변하는 전제를 깔고 전개해나가야 하는데
그 전제란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기 이익을 먼저 쫓는다는 것입니다.
경제활동 대부분이 사람의 이기심을 기초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우선 쫓으므로
땅주인은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 이상을 노동자한테 남겨주지 않을 것이며
돈주인은 돈이 낳는 기본이자 이상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만 교환에 응할 것입니다.
따라서 땅사유권은 폐지하고 땅을 공유해야 하며,
돈의 액면가는 스탬프머니처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쓸데없고 소모적입니다.
난 이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혼란을 연장시키고, 더 위험하게 변형시킬 사람들입니다.
실비오 게젤의 해법 외에는 병든 사회를 치유할만한 어떠한 처방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밖의 어떤 방법도 여러분을 도울 수 없습니다.
위 뉴스는 마치 여야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프레임을 설정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진실에 이르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시청자들한테 객관식 문제를 던지고 1번과 2번 가운데 선택하라고 유도하고 있으나, 정답은 그 질문 밖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무려 100년 전에 나온 책입니다. 그 100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왜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 ‘보지 않으려 함’이 너무 지나쳐서 가끔은 정답을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경제학에 발을 담그지 않은 우리 보통사람들은, 지금까지 근본요법을 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였기에 이러한 경제학의 가리워진 진실에 무관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이십니까? 대증요법 때문에 전세계가 앓고 있는 병은 가지를 치면서 점점 더 복잡하게 증식하고 있습니다. 빈곤, 불평등, 실업, 차별, 부패, 범죄, 전쟁, 환경파괴, 중독적인 문화... 사람들의 물질적 정신적 고통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그 고통을 위로하는 산업만 우후죽순으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매춘, 마약, 도박, 사이비종교들... 눈을 감고 여러분이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추적해보십시오. 그곳에는 어김없이 잘못된 토지제도와 화폐제도가 있을 것입니다. 땅과 돈이 만들어내는 고통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강간을 당한 여자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고통을 떠올리는 것은 여러분을 너무도 비참하게 만들어서, 여러분이 사실은 그저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순간 선명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진실을 외면하고 그 고통의 원인으로 다른 우아한 핑계를 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외면하였던 그 진실은 이제 쓰나미가 되어 일상의 해변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잠든 여러분의 어깨를 흔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귀에 속삭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겪는 부조리는 모두 '토지사유권'과 '화폐 액면가의 불변함'에서 비롯한 악惡의 변주일 뿐이라고. 그러므로 바로 그것을 개혁해야만 그 모든 악을 멈출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