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맑스주의를 하지 않아도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노동자들이 노동대가 전체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맑스주의가 틀린 이유는,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를 빼앗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항생제로 염증을 억제하려하다가 건강한 세포의 활력마저 빼앗는 것과 같다. 그건 마치 물을 깨끗이 한답시고 소독약을 치다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서 둥둥 뜨는 것과 같다. 그건 마치 아이가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두손 두발을 모두 묶어버려서 장애자를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를 바로잡으려고 하기에 틀린 접근방법이다.
맑스는 원인을 모른다. 맑스가 원인을 모른다 함은, 맑스가 자본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뜻이다. 맑스는 자본을 물질적 재화라고 보았다. 따라서 생산수단 국유화를 그의 요법으로 삼은 것은 너무도 자명한 결과였다.
하지만 자본은 물질적 재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조건에서 나온다. 그 시장의 조건은 생산수단의 공급이 수요보다 늘 부족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생산수단은 자본이 되어 이자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조건은 돈이 낳는 기본이자에서 비롯하며, 그 기본이자는 돈과 재화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교환관계에서 비롯한다. 재화는 썩고 녹슬고 소멸하지만 돈은 그 액면가가 불변하여 이 둘의 교환이 불평등하다는 것. 따라서 돈이 기본이자라는 조공을 재화로부터 뽑을 수 있어야만 둘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너무나 명료한 해답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돈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여 재화가 겪는 소멸성을 돈에 부여할 것.
이것이 게젤의 우아한 해법이다.
이 해법을 통하여 돈이자는 사라지고, 돈을 매개로 만드는 모든 생산수단도 이자를 낳지 않는다. 불로소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땅 역시 국유화하고 지대를 공공이 회수하여 복지에 사용함으로써 토지불로소득도 사라진다)
맑스가 소모적이고 러프한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는 목표를, 게젤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이룬다.
맑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어떤 반론도 제기할 수 없다.
그들은 요즘 기업유보금을 몰수하자며 달려들지만, 그 전에 기업유보금이 왜 생겼는지, 왜 돈이 순환하지 않고 쌓여있을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차분하게 묻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들이 찾는 답은 게젤이 쥐고 있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거지와 도둑과 노예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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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님의 [맑스는 자본을 모른다] 에 관련된 글. 시노페의 디오게네스가 없었더라면 유럽의 과학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아마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짐승”(플라톤, 정치가/폴리티코스, 266e)이 난무했을 것이다. 디오게네스가 털을 다 뽑은 닭 한마리를 갔다 놓고 “ecce homo!”했을 때 플라톤의 낯은 뜨거웠을 거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거다. 디오게네스의 해학으로 유럽의 사유는 다행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