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칼럼

실비오 게젤이 주장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이루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익에 호소하여야 한다. 이기주의를 사회운동의 동력으로 삼는 것. 이런 형태의 운동은 이미 기존 경제질서에서도 볼 수 있다. 대기업의 불법적인 경제행위에 소비자들이 대규모로 집단고소나 불매운동을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자발적인 운동이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도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동대가 전체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려면, 지대와 이자로 평균적인 중산층 노동자가 얼마나 털리고 있는지 계산해서 보여주면 된다. 그들은 예금과 부동산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지불하는 지대와 이자는 그것을 충분히 뛰어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움직일 동기를 가질 수 있다. 거둬들이는 지대·이자가 빼앗기는 지대·이자보다 많은 사람은 극소수의 자본가와 대지주 뿐이다. 이 운동은 충분히 국제적인 스케일로 키울 수 있다. 게다가 더이상 자원봉사자들과 방관자들 사이에 틈을 벌리지 않는다.

맑스주의는 이와 매우 대조적인 형태의 사회운동이고, 한마디로 말해 사기다. 노동자들한테 노동대가 전체에 대한 권리도 보장해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노예로 전락시켰다. 구소련의 운동이 국가자본주의의 형태로 귀결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러 명의 자본가 대신 하나의 정부가 백성을 착취한 것이다.

사람들이 왜 이런 사기에 걸려들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파시즘으로 내모는 심리적인 동기는 기존 경제질서에 의해 주조된다. 사람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한다면, 그것은 기존 경제질서에서 소위 "자유"가 고립이나 분리, 소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자유"를 반기겠나? 그런 불쾌감이 어떤 원인으로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그런 텅빈 자유보다는 노예가 되더라도 전체와 연결되기를 희망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역사가 보여준 교훈이다. 이런 경향은 정치에서만 관찰되는 게 아니라 종교집단에서도 관찰된다. 광신자들은 좌절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고립되었고 전체와 분리되어 소외감을 느낀다. 거기서 도피하려고 종교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 종교가 이성적인 사람이 볼 때 말도 안되는 교리를 읊어대도 그건 그 사람들한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그 종교에 기대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소속감, 더 이상 자기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전체와의 합일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안도감을 준다. 따라서 그 연결을 끊으려는 시도에 대해서 극도로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연결이 끊어진다면 그 사람은 다시 외로워진다. 혼자 남겨진다.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 분리에 대하여 발작을 일으킨다. 대중이 맑스주의의 기만에 낚였던 까닭도 이와 같다. 그들은 좌절하였기에, 이미 망가진 인생이기에 거짓말에도 낚일 수 있었다. 그들이 느끼는 비참한 외로움과 고립감이 썩어빠진 동아줄도 기꺼이 잡도록 만드는 것이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땅과 돈으로 모두가 경제적으로 강력하게 연결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이다. 대중들이 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만 다른 삿된 연결에 기대지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만족하므로 다른 네트워크에 기대어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릴 까닭이 없다. 또, 공짜땅과 공짜돈이라는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자유"가 비로소 빛을 발한다. 자유가 더이상 고립·분리·소외가 아니라 연결·합일·연대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 경제질서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백성이 스스로를 노예로 팔아버리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수단이 아니라 결과이며, 오로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안에서만 구현될 수 있는 상태다. 만일 민주주의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민주주의를 빚어내는 조건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기존 경제질서를 고집한다면 개인의 자유는 "중우정치"를 낳을 뿐이다. 왜 아니겠는가? 모두가 단기적 이윤을 쫓도록 유도된다. 그 결과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끊임없이 부딪힌다. 그러므로 기존 경제질서에서 민주주의(요식행위로서의 민주주의조차)는 주기적으로 경멸당하게 될 운명이니, 보라. 백성들이 스스로를 노예로 팔아먹고 자기 권리를 독재자에게 기꺼이 양도하리라. 그들이 기만당하는 것은 그들의 죄요, 그들의 눈이 진리에 어두운 탓이라. 스스로 팔아먹은 자유를 되찾으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하니, 그들은 어느날 문득 왜 그런 삽질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리라. 그 때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대로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개혁하고, 비로소 진짜 민주주의가 시작될 것이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개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개인을 모두와 연결할 수 있다. 따라서 파시즘의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고 강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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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2 14:39 2015/11/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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