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출: 80년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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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를 맞아서 책을 하나 소개한다. 한국에서 노동사는 독특한 영역이다. 기존의 공식적인 역사서술에서 친-노동이든 반/탈-노동이든 간에 말해지지 않고 쓰여지지 않는 역사가 너무도 많다. 정통 맑스주의적 역사서술이나 아래로부터의 역사서술은 계급환원론, 혹은 민중환원론과 진화론적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탈역사적인 해체적/포스트 역사서술은 단일한 정체성과 서사를 비판했지만 계급에서 벗어나기,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모순의 인정 내지 은폐라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마도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민중사, 특히 노동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모색과 갱신을 시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맑스주의 및 탈근대 도식론과 거리를 두면서 계급과 민중 -- 더 정확히는 '대중'의 형상 -- 문제를 계속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흐름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결과는 김원("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 이매진, 2005 등)과 유경순("아름다운 연대", 메이데이, 2007과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메이데이, 2007 등)일 것이다.(더욱 많은 연구자와 글이 있으나 용서를 바란다. 또한 노동자문화 접근의 기여를 생략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과 같은 흐름은 노동운동의 공식적인 역사 이면에 놓여 있던, 다양한 '주변적' 주체들이 운동의 '주인공'이었음을 밝혀 내고, 이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 투명하다는 뜻이 아니라 다양한 (자기-)재현이라는 측면에서 --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은 노동자 역사 안에 있던 현실적이고 잠재적인 모순(곧 적대)을 드러내고, 적대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 삶과 운동의 다양한 지점에서 '모순적' 한계, 역사적 지평을 밝혀내어 낡은 도식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형태의 실천이 가능하도록 노력한다. 특히나 이들은 운동 내 '엘리트'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노동자 자신이 자기 역사를 쓰고 말하면서,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소격' 효과는 독특한 기여라 하겠다.(한 가지 덧붙이면, 노동자 역사쓰기 작업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간단히 한가지만 언급하면 이랜드 투쟁을 다룬, 권성현 외,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후마니타스, 2008 등도 이런 흐름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또 이들을 다른 다큐 <외박>이나, 작년 쌍용차 파업을 다룬 다큐 <당신가 나의 전쟁>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러한 글과 영상이 자기 '소격' 효과를 가져왔는지는 검토되어야 한다.)


여는 말이 길었지만, 여기 이런 역사서술 흐름에 놓여 있는 책이 출판되어 소개할까 한다. 오하나,<학출: 80년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 이매진, 2010(이하 <학출>)이다. 이 책은 저자의 2006년 석사논문을 손보고, 노동운동 전현직 활동가들과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참여한 대담을 덧붙인 글이다. 주로 구술 인터뷰를 중심으로 분석되었고, 책의 1부는 학출(학생출신 노동자)들이 1980년대 공장으로 존재를 이전했던 역사와 배경을 추적한다. 2부에서는 이 과정에서 학출의 정체성 변화, 요약하면 혁명적 '지식인'에서 '진정한' 노동자 다운 '노동자'가 되는 과정, 그리고 자신의 '지식인임'을 부정함으로써 구성되는 불가능한 '노동자되기'를 다룬다. 미리 언급하자면, 이 책은 '찬란한' 과거를 회상하는 후일담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불편한 글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누구나 한 마디씩 할 수 있는'류의 글이다. 왜냐하면 학출들은 여전히 -- 생물학적이고 사회정치적으로 -- '살아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학출 노동자'가 수없이 많았고, 현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또한 대략 1992년 민중당 선거 이후, 노동현장을 떠나거나 시민사회운동으로 전환했다. 노동현장에 남은 학출들은 민주노총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큰 기여를 했다. 물론 이렇게 단순화 할 수 없을 정도로 입장들이 다양하다. 단언컨대 좌파에서 우파까지 학출을 제외하고 한국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출에 대한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보고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기존에 단편적으로 정리한 작업들이 있었으나, 정형적인 수기를 제외하면 활동가 자신의 역사를 말하고 쓰는 작업이 드물었다. 역사서술은 현재 시점과 입장에서 과거를 회상할 수 밖에 없다면, 이런 측면에서 <학출>은 안정된 이야기를 꾸밀 수 없다. 그러므로 <학출>은 태생상 논란과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감히' 이런 주제를 다룬 용기는 평가할 만 하다. 그것도 처음으로 말이다. 논란은 새로움을 가져 온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학출>은 노동운동 활동가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면에서 노동사와 노동자 문화 연구의 맥락에서 중요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지식인'과 노동자 문제가 '활동가'와 노동자 관계로 전환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이는 노동운동 내부 정체성 균열의 한 단면을 밝히려고 한다. 이것이 <학출>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는 과거 계급과 민족, 혹은 민주 대 반민주, 노동중심성 대 사회개혁, 남성중심성 등의 프레임과 다른 식으로 노동 문제를 재정의하는 문제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새로운 '재현 실천'이다.

그렇지만 <학출>은 많은 한계를 가진 책이다. 우선 이 책은 1987년 이전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데다가, 그나마 당시 복잡한 정치지형을 따라잡고 못하고 있다. 또다른 한계로는 연구 대상자가 특정 집단과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나아가 이미 알려진 내용이 많은 부분을 노동자의 '경험' 구술에 의존하고 있으며, 노동운동사에서 주목받는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한계도 있다. 또한 구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너무 '매끈한' 이야기를 구성해서, 즉 학출 노동자의 존재 이전부터 정체성의 변화까지를 인과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연구 전략에서 배제되는 운동 내적 모순과 문제가 제법 있다. 노동운동 세력 간의 첨예했던 갈등은 차치하고라도, 저자가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1980년대 중후반 갑자기 등장한 '대중주의' 노선 -- NL과 PD를 포함해서 공히 등장한 민중중심성과 그 변형들, 이에 따르면 '대중은 진리다' -- 의 함의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단, 이 소개글은 학위논문에 기초를 뒀기 때문에 책에서는 보완되었을 수 있다). 이것을 학출 엘리트 중심에서 노출(노동자 출신) 활동가의 경험주의 문제로 운동 내 주도권이 뒤집힌 것으로 볼 것인가? 그리고 이에 기반한 운동 내 반지성주의의 확산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대중 정서에 영합한 특정 정파의 공세적 가공물인가? 아마도 저자가 제시하듯이, 운동의 한계이자 자본주의 하에서 주체화의 조건인 '지적 차이'가 나타난 한 형태라는 점에서, 저자의 생각은 임시적인 한 가지 가설이 될지도 모르겠다. -- 이와 관련해서, 저자가 가진 정체성 형성과 변화에 대한 관점이 모호한 반면에 경험연구에서 너무 추상적인 이론 수준으로 비약하는 점도 지적해두자. 덧붙여 구술사의 접근과 저자가 취하고 있는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입장이 어떻게 접합되는지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생판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활동가들의 경험보다는 -- 물론 이들의 '말'이 개인의 말은 아니다 -- , 노동자 경험을 형성했던 지반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활동가 문화와 노동자 문화 사이에 나타났던 커다란 괴리, 그리고 활동가 자신들의 하위문화 형성 과정을 밝혀내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노동자 정체성 형성이 (자기) 경험이나 정치 운동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80년대 초반부터 부상했던 소비자 주체(이 당시부터 내구재 소비가 증가하고 각종 과소비 문제가 부상한다. 80년대 후반에 가면 마이카 붐이 대표적이다) 형성, 혹은 80년대 초를 신자유주의적 삶의 한국형 판본이 등장한 시기 일 것이다. (약간 과장하자면 이런 측면에서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돌베게, 2009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물론 한국의 근화대 구성체와 끊임없는 교섭과정이 이루어졌지만, 신세대 문제, 소비주의, 실질적 포섭 등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지향성이 이 당시 형성된 것은 아닐까? <무릅과 무릅사이>와 <파업전야> 사이에 어디가 있을 그것을 그려내야 한다. 당시 이런 대중을 변혁의 주체, 즉 혁명계급로 설정하고 활동했던 활동가들과 노동자의 괴리는 당연히 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리고 활동가들 자신도 이러한 문화에서 얼마나 스스로 거리를 둘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점은 <부록 좌담>에서 불충분하나마, 글의 균형 측면에서 보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보완보다는 과제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것도 많은 과제...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학출>은 많은 질문을 제기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장점이 있는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 많은 한계가 보일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런 작업들이 시도되고 다양한 각도에서 증가해야 한다. 논란을 무릅써야 배움과 실천이 있지 않겠는가. 과거에서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해결책이 아니라 질문을 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5월에 의미있는 출판인데다 요즘 책치고 가격도 비싼 편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주제 넘지만, 저자에게 피드백을 준다면 향후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생각보다 연구자들은 게을러서 닥달을 해야 하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도서출판 이매진처럼 석박사 논문을 어려운 가운데도 이렇게 펴낸데 대해, 저자는 아니지만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는 '키보드 워리어'의 글이나 말랑한 인문학 서적보다는 좀 더 많은 '하드한' 연구들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상 한 밤에 잠을 설쳐, 기억에 의존해 막 쓴 소개글이다. 저자와 읽는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 終

 

== 레디앙 기사가 더 낫군요. 아마 출판사에서 소개한 글이겠죠. "그때 공장 간 학생들은 어디에 있을까?"(레디앙, 201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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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1 04:37 2010/05/01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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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전파도둑질과 키보드 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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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삼님의 [학출: 80년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 에 관련된 글. &quot;전파도독질&quot;과&quot; 키보드 워리어&quot;.... 잘 어울린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