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24 20:18

김국현의 낭만IT

멋집니다. 주민등록번호, 유비쿼터스 관리 사회로의 초대 "이 모든 일이 중복 가입을 막고, 실명제를 정착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어느 사이트를 가보아도 회원 등록에 자신의 바코드를 내보여야 하는 곳은 없다. 전세계에 유래가 없는 행태가 너무나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문화적 특성 운운하며 깨끗한 인터넷을 위해 1인 1ID에 입각한 실명제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하나의 믿음이 있다. 현실과 가상에 변치 않는 링크가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개인의 존재는 네트워크 상의 데이터에 완전히 쌍방향으로 링크되어 고착된다. 현실에서의 나의 삶, 나의 흔적은 네트워크에 그대로 복제되며, 인터넷 상에서 드러난 나의 취향, 나의 생각 들은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을 통제하는 이들의 마음이 편해진다. 가상 세계도 그렇게 지배하고 싶으니까. 그 매개체로 고유식별자인 주민등록번호처럼 손쉬운 것은 없다." "주민등록번호의 유용을 막아 줄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이 추진중인 것은 환영할만 하지만, 지난 5월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증 발급시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는 것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주민등록증 제도는 행정사무의 효율적 처리 외에 치안 유지, 국가 안보도 고려된 것으로 지문 수집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공익목적에 비해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주민등록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을 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일진데, 과거 재일동포의 지문날인과, 현재 미국 입국장의 지문 스캐닝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군사정권의 공안 논리에 의해 탄생된 일종의 바코드, 주민등록번호. 등록되지 않으면 불심한 사람으로 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지문 날인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는 아예 이에 길들여진 듯 우리 스스로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그 번호를 중심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익명의 따뜻함은 사라졌나「인터넷 실명제」 "문제는 실명제 찬반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 개인이 우리 스스로의 자유 의지나 재량이 아닌 사회나 시스템이 설정한 틀에 의해 길들여지는 편이 나음을 스스로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만약 실명제가 별 효과가 없다면 그 다음에는 어떠한 제도를 수용할 것인가? 악플을 달지 못하는 칩을 삽입할 때까지 제도는 발달을 거듭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삼순이'에 열광할 때, 일본에는 '전차남(電車男)'의 열풍이 불고 지나 갔다. 세계 최대의 익명 게시판이라는 2채널(2ch.net)을 거의 그대로 캡쳐한 이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까지 이어지며 그 열기는 그칠 줄 모르는데, 그 주제는 익명의 따뜻함이다." 신념을 잃은 시대, 기술자의 중립선언 "자바와 닷넷 기술자들의 자존심을 건 갑론을박을 볼 때, 애플 컨퍼런스에서 터져 나오는 우레와 같은 탄성과 박수소리를 들을 때, 구글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종하는 블로그 들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 확신이 스며 든다. 기술은 일종의 종교적 신념이라는 것. 어쩔 수 없는 일 일지 모른다. 기술자란 기술에 매료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매혹을 느끼지 않았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기술자일 테니, 기술자란 일종의 '택한 족속'이라 불러 마땅하다. 스스로도 그러한 족속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10년 전 처음 자바를 보았을 때, 더 없이 아름답게 보였던 그 언어 구조를 어찌 잊을까. 뭉게구름처럼 피어 나는 자바의 세력권에 맞서 멍군을 놓듯 대변신을 한 닷넷의 전략은 또 어찌 기발하던지. 포토샵을 가르쳐 준 매킨토시 쿼드라에게는 PC가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이 있었다. 모두들 "그런 거 웹에서는 안 돼"라며 자만할 동안 새로운 웹의 방향성을 보여 준 구글에서는 광채마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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