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0 18:14

[움틈] '또 하나의 일본'을 찾아서, 일본의 호헌·평화 운동

[움틈] '또 하나의 일본'을 찾아서, 일본의 호헌·평화 운동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동아시아평화공동체로 지난 11월 3일은 '일본국헌법공포일'이었다(비공식적으로는 메이지 '천황'의 생일이기도 하다). 이날 서울과 토쿄에서는 '평화헌법 개악에 반대하는 한일공동행동'이 개최되었다. 필자는 한국측 준비위원회의 대표로서 일본측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석했다. 한일공동행동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미디어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특히 200명 정도가 정원인 집회장소에 500명 정도가 참석했다. 예상을 넘는 참석자와 매스미디어들의 관심에 주최측은 한층 고무된 표정이었다. 작년 6월 '9조의 회' 출범 이후 전국 곳곳의 호헌집회에 수백명, 수천명이 모인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일본의 언론들은 호헌집회를 '왕따'시켜왔기 때문이다. 일본 호헌·평화운동의 르네상스(?) 탈냉전의 불확실한 안보환경, 부시정권의 출범, 9.11테러 등은 일본의 개헌세력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세계경영을 위해 일본과 군사적 부담을 나누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과 '(미국처럼)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하는 일본 보수우익의 열망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국제공헌'을 내세운 개헌세력의 공세는 호헌평화세력을 대변하던 사회당, 공산당의 몰락과 정치사회적 보수화를 기반으로 더욱더 노골화되었다. 노골적인 평화헌법의 개정 움직임은 일본의 호헌세력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국제공헌과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 등 세련된 논리를 제시하는 개헌세력들에 대해 호헌세력은 이렇다할 효과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활력소를 제공한 것이 지난해 6월 '9조의 회'의 출범이었다. '9조의 회'는, '호헌'이라는 식상한 화두보다는 평화헌법의 핵심인 헌법 9조(전쟁포기와 전력보유·교전권 금지)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흐름을 전면화했다. 발기인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9인이었다. 발기인에는 오에 겐자부로 외에도 토쿄대 명예교수인 오쿠히라 야스히로(헌법학자), 평론가인 카토 슈이치 등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저명인들이 참가했다. 또한 초당파적인 운동을 위해 중앙사무국을 사민당계, 공산당계, 무당파 등으로 조정해 배치한 것도 특징이다. 이는 일본 사회운동의 오랜 악습인 정파간 분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단이라고 볼 수 있다. '9조의 회' 출범 이후 '9조'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직간접적으로 '9조의 회'와 연계를 갖는, 때로는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3000여개에 이르게 되었다. '9조의 회'는 수백명에 이르는 강사단을 구성해 전국적인 강연요청 등에 응하는 방식의 운동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헌법관련 집회, 강연회, 학습회 등이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올해 7월30일 '9조의 회' 9인의 발기인이 참가한 강연회에는 9천5백여명이 운집했다. 전통적인 호헌운동의 흐름(특히 정당과 노조 등과 연계된)과 연결된 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사민당(구 사회당)계의 단체인 '헌법 행각(行脚)의 회'는 '9조의 회'와 같은 시기에 결성되었으며 활동방식도 마찬가지로 전국 강연 순회가 중심이다. 헌법 행각의 회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도이다카코 전 사민당 당수, 토쿄대의 강상중 교수, 재일교포 인권운동가인 신숙옥 씨 등이 참가하고 있다. 한편 '헌법회의'는 1965년 공산당과 연계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인데, 2000년 중참 양원에 헌법조사회가 설치되고 자민당, 민주당 등의 개헌안이 속속 드러나는 것을 계기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 내에는 수많은 호헌단체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반핵·평화·인권운동 단체들과 그 외의 시민단체들까지 호헌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본 호헌운동의 '르네상스'가 온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물론, 지난 9월 11일 집권자민당의 압승과 11월 자민당 개헌안의 발표 등은 개헌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민사회의 아래로부터 형성되고 있는 호헌여론, 9조 개정/폐지 반대 여론은 개헌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감케 한다. 평화헌법을 동아시아와 세계로 최근 일본의 호헌운동은 단순히 헌법 9조를 지키는 데에 머물지 않고 있다. 즉, 헌법 9조의 동아시아적 의미를 강조하고, 무엇보다도 전쟁포기와 전력보유 금지 조항을 세계적 차원에서 재해석하고 확산시키고자 하고 있다.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 이러한 적극적인 논리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3일 한일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작성·발표한 성명은 '일본의 평화헌법은 동아시아 민중들과의 약속'이며, 헌법 9조는 '한미일 동맹의 강화에 의해 초래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긴장을 극복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동아시아평화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지적함으로써 그러한 문제의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국제교류 시민단체인 피스보트(Peace Boat)는 '무력갈등예방을 위한 글로벌파트너쉽'(GPPAC) 국제네트워크를 활용해 헌법 9조의 정신과 내용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9조의 회'도 발기인 호소문에서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헌법개정을 저지하는 것은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분쟁의 예방과 해결'을 지향하는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강성대국'과 '자주국방'이 민족의 비전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평화헌법개정 반대운동과의 연대는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와 인권에 기반 한' 한반도와 동아시아공동체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성찰적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준규] 이준규 님은 평화네트워크(peacekorea.org) 정책실장입니다. 출처: 인권하루소식 05년 1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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