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2001, 민음사, 정영목 옮김

 

41p. 현대적으로 기계화된 부대는 어느 날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지 않는다. 인민전선 정부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훈련된 부대를 양성할 때까지 기다렸다면, 아예 프랑코에 대한 저항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훈련과 무기부족으로 인한 결함이 마치 평등주의적 체계의 결과인 것처럼 호도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군대에서 규율은 자발적인 것이다.

 

66p. 그런데도 왜 의용군에 입대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싸우느냐고 묻는다면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67p. 나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한다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왜 다들 이런 말도 안되는 정치적인 짓거리를 그만두고 전쟁이나 잘하지 못하는 거야?’ 물론 이것은 올바른 “반파시스트”적 태도였다. 또한 영국 신문들이 주도면밀하게 퍼뜨리는 태도이기도 했다. 그런 태도를 퍼뜨리는 주된 목적은 사람들이 이 투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68p. 7월 18일에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유럽의 모든 반파시스트들은 희망의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마침내 이곳 스페인에서 민주주의가 파시즘에 대항하여 일어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각 단계마다 파시즘에 굴복해 왔다. (일본-만주, 히틀러, 무솔리니..)

따라서(봉건제 복귀하려 하여) 프랑코는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도 적으로두게 되었다. 이 부르주아지는 파시즘이 좀더 현대적인 형태로 나타날 때 그 지지자로 변하는 사람들이다.

 

77p. 군사적 재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용군을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두면서 좀더 능률적으로 재조직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용군 해체의 주목적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의용군의 민주적 분위기 때문에 혁명적 사상들이 양성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통일노동자당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시행하고 있는 모든 계급간의 평등 보수 원칙을 쉴새없이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 결과 전체적인 <부르주아화>, 즉 혁명 초기 몇달 간 이루어졌던 평등 정신의 고의적 파괴가 이루어졌다.

 

79p. 사실 스페인에서 혁명을 막은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나중에 우익 세력이 상황을 완전히 장악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지도자들을 추적하는일에 있어 자유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지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83p. … 통일노동자당의 <노선>은 대략 이러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며, 그 점은 파시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파시즘과 싸운다는 것은 한 가지 형태의 자본주의를 위하여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싸우자는 것인데, 첫번째 형태의 자본주의는 언제라도 두번째 형태의 자본주의로 변할 수 있다. 파시즘의 유일하고 현실적인 대안은 노동자들의 통제 뿐이다.

… 한편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쟁취한 모든 것을 굳게 지켜야 한다. 반 부르주아 정부에게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결국 기만당할 수밖에 없다.  … 그들은 <부르주아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군대를 통제하지 못하면, 군대가 노동자들을 통제할 것이다. 전쟁과 혁명은 분리할 수 없다.”

 

… 어쨌든 <무정부주의자>라는 느슨한 용어는 아주 다양한 견해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84~5p. 무정부주의자들은 원칙이 다소 모호하기는 했지만 특권과 불의에 대한 증오는 정말로 순수했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이른바 혁명가들과 대립되었다. …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는 스페인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91p. 나는 평등의 공기를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기가 스페인 전역에 퍼져 있다고 상상할 정도로 순진했다. … 그래서 동지들이 나에게 순수하게 군사적인 태도로만 전쟁을 바라볼 수 없다거나, 선택은 혁명과 파시즘 사이에 놓여 있을 뿐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냥 웃어 넘기곤 했다.

 

93p. 모든 혁명적 경향을 억제하고 전쟁을 가능한 한 평범한 전쟁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존재하던 전략적 기회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 무기들은 고의로 보급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 민주 국가의 노동계급이 진정으로 스페인 동지들을 돕는 길은 산업적 행동을 통해서였다. 즉 파업과 보이콧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96p.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모병 포스터를 자주 생각했다. 그 포스터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질책하듯이 묻고 있었다.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139p. 노동자 의용군들은 노동조합에 근거를 두고 있었으며 각각의 의용군은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가장 혁명적인 정서를 한 곳으로 모으는 효과를 가져왔다. 나는 우연히 정치적 의식과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정상으로 취급되는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제법 규모를 갖춘 것으로서는 서유럽에서 유일했다.

 

140~1p.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즉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등 사상에 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란 계급 없는 사회일 뿐이다. … 그들(스페인사람들)은 타고난 품위와 변함없는 무정부주의적 기질 때문에, 기회만 얻는다면 사회주의의 초기 단계조차도 견딜만하게 만들어줄 사람들이다.

 

148p. 전쟁 초기 몇주 동안 노동조합원들이 의용군을 형성하여 파시스트들을 사라고사로 쫓아버렸던 것은 그들이 노동계급의 지배를 위하여 싸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50p. 의용군이 서류상으로는 인민군 소속이 되었다는 사실은 언론 선전에서 교묘하게 이용되었다. 모든 공적은 당연히 인민군에게 돌아갔고, 모든 비난은 의용군에게 돌아갔다. 동일한 부대가 인민군으로서 칭찬을 받고 의용군으로서 비난을 받는 일도 가끔 생겼다.

 

176p. 그가 바르셀로나의 포장용 돌에 숫자를 적어놓아야 한다고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게 하면 바리케이드를 쌓거나 허무는 데 드는 수고를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181p. 이런 사건에 참여하게 되면 미약하나마 스스로 역사를 만드는 셈이 되니 의당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186~7p. ...전선에 배치할 의도가 전혀 없는 치안대나 단총부대는 우리보다 무장상태도 훌륭했고 옷도 좋았다.

 

188p. 나의 공산주의자 친구가 다시 나에게 오더니 국제군으로 옮기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약간 놀랐다. “자네 신문에서는 내가 파시스트라고 하던데” 내가 말했다. “나는 통일노동자당 출신이니 정치적으로 의심을 받을 게 틀림없네”

“아, 그건 상관없어. 결국 자네는 그저 명령에 따라 행동한 것 뿐이니까”

나는 그런 일을 겪은 이후로는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어떤 부대에도 가담할 수 없다고 말해야 했다. 거기 가담했다가는 얼마 안가 스페인 노동자 계급을 진압하는 데 내가 이용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189p. 전투가 끝난 뒤 무정부주의자들은 당연히 포로를 석방했다. 그러나 치안대는 포로를 석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포로는 재판도 없이 감옥에 갇혔다. 많은 경우 몇달씩 계속 갇혀 있었다.

 

197p. 노동계급은 전체 운동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그 자리를 중앙 집권적 통제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것은 국가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199p. 그러나 프랑코로부터 스페인 정부를 구하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영국 정부이지만, 스페인 정부를 스페인의 노동 계급으로부터 구하는 데에는 신속하게 개입할 가능성이 있었다.

 

220p.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처음부터 이런 비난의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권위적인 목소리로 주장만 하고 있을 뿐이다.

 

235p. 2백건의 <구체적인 자백>이 있었다면, 누구라도 유죄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누군가의 상상력이 2백번 작용한 결과에 불과하다.

 

227p. 그러나 네그린을 비롯한 각료들은 이성을 잃지 않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대량 학살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에게 가한 압력을 고려할 때, 그들이 이제까지 처형을 거부해 온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228p. 공산주의 계열의 매체는 닌이 한때 트로츠키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용해 통일노동자당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논리라면 영국 공산당이야말로 파시스트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존 스트래치는 한때 오스왈드 모슬리 경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232p. “다른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은 사기요”

 

254p. 영국에서는 아직 정치적 불관용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 자신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숙청>하거나 <제거>한다는 생각은 아직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270p.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범죄자 검거가 아니다. 단지 공포 정치일 뿐이다.

 

285p. 사실 그들(스페인사람들)은 20세기에 속하지 않는 고귀한 종족이다. 이 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견딜만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 현대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지독스러운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295p. 일본의 지진? 중국의 기근? 멕시코의 혁명? 걱정 말라. 내일 아침이면 현관에 우유가 놓여있을 것이고, 금요일에는 <뉴 스테이츠먼>이 나올 것이다.

 

296p. 나는 때때로 우리가 폭탄의 굉음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 전에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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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 10:31 2013/12/1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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