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1. 내 흡연의 역사

(1) 초딩

기억할 수 있는 내 최초의 흡연경험은, 초등학생 때였다. 언니랑 같이 호기심으로 아빠의 꽁초에 불을 붙여 한모금 정도 흡입해보았을 것이다. 분명 겉담배였겠지?

 

그리고 그 이후 간간이 할아버지가 피우시는 담배를 몰래 꺼내 화장실에서 한대씩 피웠었다. 이 때도 겉담배였다. 가끔 속담배를 시도해보았으나 아마 다 실패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담배는 가늘고 긴 에쎄였다.

 

(2) 중딩

나의 10대. 나는 나와 약속하기 를 즐겨했었다. 나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당연히 지키는, 지키는 것이 그닥 어렵지 않을만큼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종종 연습하곤 했던 것이다. 스스로 시험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중학교 3년간은 절대 담배를 피우지 말자 였다. 그리고 정말 어렵지 않게 잘 지켰다. 그다지 흡연에 대한 욕구는 애초에 강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나와의 약속을 하나 더 만들고 지켜보고 싶었을 뿐. 호기심과 욕구가 전혀 없었다는 건 아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친구와 졸업선물로 서로 원하는 것 교환하기 를 했는데 이것으로 담배 3갑을 얻었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첫담배를 피웠을 것이다.

 

(3) 고딩

고딩 때는 담배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초딩 때는 아빠 심부름으로도 담배를 사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미성년자가 담배를 사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나는 그 계기가 이경규가 진행하던 양심 어쩌고 프로 였다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그 프로를 매우 증오했었다. 담배를 사기 위해 한 동네를 다 돈 적도 있다. 심지어 훔치기까지 했는데 가짜였다. 정말 부끄러웠다. 조상이 주신 특전으로 2박 3일인가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일본에는 담배자판기가 존재했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예전엔 담배자판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말끔히 사라졌던 것 같았다. 그렇게 찾고 찾았던 담배자판기가 일본에는 널려 있었다. 그래서 종종 일행의 눈을 피해 가능한 많이 담배를 사모았다. 아마 고등학교 시절에 피운 담배의 대부분을 이 때 샀을 것이다. 고딩 때는 그다지 많이 피우지 않았으니까. 이 때까지도 주로 겉담배를 피웠고 게으름 때문에 그다지 집안눈치를 살피지 않고 대충 방안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피웠다. 그리고 매일 피우진 않았고 가끔, 지금 피워야겠다고 느껴질 때, 친구들과 통화할 때, 여기서 한번 꼭 피워보고 싶다 이런 경우에 흡연을 했다.

 

(4) 대딩

드디어 미성년자에서 벗어났다. 당당히  담배를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 기뻐했다. 언제부터 속담배를 폈는진 모르겠다. 고딩 때 겉담배를 줄창 피우면서 자연스럽게 단계를 넘어갔던 것도 같고. 일부러 시도했던 건 아니었는지 기억에 없다. 1학년 1학기 초까지만 해도 여전히 담배를 일상적으로 피우는 흡연가는 아니었다. 주로 술마실 때만 담배를 피웠는데 엄청난 줄담배쟁이, 꼴초라고 선배들에게 늘 놀림을 받았다. 내가 담배를 그렇게 쉼없이 피우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난 스무살 초에 그 이전 10년가량 원했던 것을 가장 많이 실천했었다. 간단히 말해 내가 원했던 것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였고, 대학 신입생 초기에 늘상 있는 술자리에 언제나 참석하고 또 끝까지 남아있는 것이 내가 실천이라 부르는 노력 중에 하나였다. 사람들과 어울리기의 1단계 같은 거였다. 일단 아무리 불편하고 지루하고 괴롭고 자학적이 되더라도 피하지 말고 버텨보자는 것. 술자리 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임?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언제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담배는 나의 방패랄까 무기랄까 동반자랄까 위로랄까 격려랄까 그런 것이 되었다. 사회부적응자여서 이렇게 뻘쭘하게 있는 게 아니라 난 담배 피우느라 그런 거다 는 식으로... 초딩 때 난 원래 책읽는 게 좋아서 친구들이랑 안 노는 거야 라는 식으로 늘 책 펴들고 있었던 거랑 비슷한 건가... 뭐 실제로 책을 조금은 좋아하기도 했고,, 담배역시 실제로 좋아하기도 했고...

술자리에서만 피우던 담배는 점점 일상의 다른 부분으로도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의 초기미션이 거의 달성되고 폐기되면서 담배를 피우는 패턴 자체가 변화했다고 본다면 된다. 아마 점점 흡연량 자체는 줄었을 것이다. 초기엔 술자리에서 미친듯이 2~3갑을 피웠지만 그런 자리가 점점 없어지며 일상적으로 하루에 1갑 정도, 그리고 더욱더 시간이 흘러가며 반갑 정도로 줄어들었다. 물론 중간중간 여러가지 변화는 있었을 테다.

한동안은 목이 많이 아플 때 몸이 많이 안 좋다고 판단될 때 종종 금연을 했었다. 금연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었다. 우선 평생 절대로 금연하겠다 는 목표가 아니고 당장 내 몸이 아파서 어차피 피우는 게 그다지 좋지도 않고 잠깐 휴식하자 는 의미가 컸고, 또 아마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다지 담배에 중독되지 않았었나 보다. 몸이 아플 땐 늘 자주 어렵지 않게 금연을 했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은 한번, 아예 평생 금연을 하기로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그 계기는 분명히 기억나지 않으나 아마 평소처럼 좀 목이 아프거나 몸이 안 좋거나 해서 금연하자 했다가 아픈 게 걱정돼서 어차피 죽기 전엔 끊지 않겠는가 하면서 이참에 끊자 이랬을 거다.  가장 큰 유혹이 되었던 날을 기억한다. 레이니썬의 정동극장 밤공연날이었다. 야밤에 레이니썬을 보고 들으면서 겨우 유혹을 물리쳤었다. 그런데 다음날 하루종일 비가 쏟아져내렸고 난 하루종일 방에 쳐박혀 레포트를 썼어야 했는데 결국 그날 오후가 다 가기 전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점점 목이 아파도 몸이 안 좋아도 여전히 담배를 피웠다. 슬슬 잠깐씩 금연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워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5) 졸업후

졸업 직전 한동안, 좀 많이 아팠었나 보다. 목이 너무 아파서 담배를 점점 1미리에 가까운 것으로 줄여가며 흡연량도 많이 줄였었다. 그런데 졸업시즌과 맞물려 그 즈음 나는 퍽 힘들었다. 그리고 졸업 후에 다닌 일자리에서 같은 팀 전원이 흡연자인 경축할 상황을 만났다. 대학교 1학년 때 딱 한번 친구와 갔던 한 모임에서 말고는 처음이었다. 내 주변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흡연자였던 것이다. 그 때만큼 기뻤던 적도 없다. 쉬는시간, 밥먹는 시간, 출근,퇴근 시간 등등 함께 옹기종기 모여 흡연을 즐겼다.

그리고 그 당시 담배는 나의 스트레스량 측정기구 이기도 했다. 한동안 목이 아파서 늘 1미리만 피우던 내가 어느날은 갑자기 말보로레드 줄담배도 성이 안 찬다. 그럼 아, 내가 지금 스트레스가 좀 있나보군 하고 생각한다.

 

(6) 나와 담배

정신적으로는 너무나 사랑하고, 신체적으로는 화해하기 어려운 관계다. 담배 한모금만 흡입해도 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땡기고 어쩔 땐 온몸이 다 아파서 끙끙대는 정도다. 난 담배가 있는 풍경을 동경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영화 로미오와 쥴리엣에서 폐허같은 해변가 건물에 걸터앉아 담배연기를 내뿜는 배우가 너무 멋져보였고, 무대 위에서 붉은 조명과 함께 담배연기를 내뿜는 정차식의 모습은 내 평생 본 가장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알콜이나 카페인이 있는 곳에 니코틴을 첨가해주는 광경이 무언가를 완성시켜주는 것 같아 만족스럽고, 죽이는 자연경치 혹은 죽이는 인공구조물을 배경으로 담배 한대 피우는 것은 그 죽이는 광경에 대한 나의 감상을 완성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나의 담배에 관한 로망이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가장 큰 이유이다. 친구들과 밤새 수다떠는 광경에도 꼭 담배가 있으면 좋겠다. 자기 전 담배 한대가 있어야 하루가 멋지게 느껴질 것 같다. 산에 올라가서 좋은 경치를 감상할 때 담배 한대 피우고 있는 게 훨씬 인상깊은 감상이 될 것 같다. 이 순간 이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내가 이 순간과 이 공간을 느끼는 완전한 방법이며 그러한 특정 순간과 공간이 있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왜 하필 담배냐? 라고 묻는다면 그 이미지가 멋져보여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멋져보이는 흡연에 관한 이미지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누군가의 조장이기도 하다. 조장에 현혹된 바보 어느 정도와 그냥 나 어느 정도가 합쳐져 대략 10년간의 흡연생활이 이어져 왔다. '생각해 온 것'  이라고 난 과거형으로 말한다. 몸에 맞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나는 담배 피워봤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정차식처럼 멋지지도 않으면서 담배를 쭉 피워온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단지 저런 로망을 실현하는 것 외에도 흡연은 일상 속에 물들어 점점 담배 그 자체와 친해져온 것이다. 편의상 중독이라고 하면 된다. 이젠 담배에 중독되어서 멀리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에 이르렀다.

 

2. 금연을 공언하다

(1) 금연의 이유

나는 현재 아이를 가질 소망을 갖고 있다. 또 가능한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다. 그런데 흡연을 계속 하면서 아이를 가지려 하는 것은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 전부터, 정말 결혼하기도 싫고 아이를 가지기도 싫다고 생각했던 아주 예전부터 그랬다.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라고 생각했다. 금연과 임신에 관련해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런 거다. 어차피 어떻게 될지는 내가 조절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의학적 근거든 과학적 근거든 통계치든 난 별로 믿지도 않고 신경도 안 쓴다. 다만 정말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도 담배를 피우면 몸이 아프다. 분명 안 좋은 걸 태아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아마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포함해서 난 아이에게 안 좋은 걸 물려주고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그럼 적어도 내가 의식하는 부분은 최대한 아이를 위해 배려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분명한 한가지가 담배인 것이다.

 

(2) 공언의 이유

그래서 난 금연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말로 난 금연하기가 싫다. 하지만 난 아이를 갖기 위해 금연 정도는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금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너무 자신이 없고 하기가 싫어서 나는 한동안 마음속으로만 다짐했다. 이번 한갑까지만 피우고 이제 금연하자 라는 결심을 몇달동안 내 마음 속에서만 했다. 공언하는 것은 아직 너무 두렵기 때문에. 금연의지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런데 이제 정말 더 늦추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빨리 아이를 가지고 싶은 바램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 전 처음으로 금연을 공언했다. 공언은 주변의 압박과 나의 책임감 혹은 체면을 핑계로 금연의지 자체를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다.

 

3. 금연 보고

3일째고 잘 안되고 있다. 첫째날은 몇대 피웠고 둘째날은 한대 피웠고 오늘은 아직 한대도 안 피웠다. 그냥 이렇게 계속 생각하고 있다. 이따가 한대 피우자 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속이면서 미루는 척 하는 거다. 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따가 피우면... 아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그냥 한대 피우자 그냥 한번 더 미루는 척 하자. 젠장.. 일단 지금은 집안에 담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안 피우고 있다. 젠장. 정말 금연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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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20:42 2010/02/2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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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신 2010/02/28 09:37 URL EDIT REPLY
ㅎㅎㅎ 저두 아이를 임신한 딱 10개월 동안만 금연했었네요. 임신 사실을 알고난 이후부터 출산 후 하루 이틀 후 부터는 아니었으니까 10개월은 안 되었겠지요. 그래두 그 금연기간이 있어서 지금 두 아이에 대해 마음이 떳떳하답니다. 쪼금 아프거나 아토피끼가 있을 때마다 내가 흡연자여서 그런가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와져요. 지금은 농약묻은 식료품들을 먹고 자라서라고 핑계대고 있지요. ... 꼭 금연하삼...임신 기간만 !
몽환 | 2010/03/07 17:54 URL EDIT
^^ 아.. 정말 금연은... 어렵네요 ㅠㅠ ㅎㅎ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