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오늘 동네 문화원에서 하는 첫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왔다.

아침 9시부터 10시. 월요일과 수요일. 3달에 6만원이다.

3달에 6만원하면 호 정말 싸다 하는 생각이 들지만 뭐 일주일에 두번 수업이니까

그렇게 많이 싼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뭐 계산까지 해보고 싶지는 않다 ㅡㅡ;

무엇보다도 당장 헬스를 끊는다면 한달에 6~8만원은 할 테고, 매일매일 갈 자신이 없으니까.

 

운동은 예전부터 되게 좋아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많이 하진 못했다.

 

어렸을 땐 운동신경이 좋다는 얘기도 곧잘 들었다.

초딩 때.

대체로 뭘 해도 운동신경 좀 있네 하는 식이었는데.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였고 진심으로 믿었으며 운동도 좋았고 재밌었다.

그러나 문제는 진짜 운동신경이 있나 없나 하는 것과는 다른 곳에 있다.

 

자신감결여 내성적인 성격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소심함 뛰어나게 잘하지 못함을 매우 못함의 동의어로 인식하고 매우 못함의  동의어는 또한 매우 부끄러움으로 인식하는 문제아.

 

내성적인 면이 가장 심각하게 치달은(내성적인 성격을 대인기피와 사회부적응으로 직결시켜버린) 시절. 곧 나의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난 운동과 매우 멀어져갔다. 운동은 얼어죽을, 사람들 앞에서 걸어다니는 것조차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던 내가 어떻게 사람들이 뻔히 보이는 앞에서 붙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공을 잡으려 뛰고 달리고 할 수 있었겠는가? 걸어다니는 것 뿐만 아니라 난 나의 작은 미동조차도 눈에 띌까 두려워 앞자리에 앉을 땐 정말 집중력 좋다 는 얘기를 듣곤 했다. 수업시간 내내 한순간도 움직이지 못했으니까.

 

마음은 뛰고 달리고 싶었던 순간들이 새털처럼 많았다. 소리를 지르고 운동장에 뒹굴고 싶은 공상 속에서 현실의 나는 비참할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운동을 싫어해 나는 운동신경이 원래 없어 나는 가만히 있는 게 좋아 난 원래 느려 이렇게 발전시켜나갔다.

 

늘 안타까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성적인 성격을 어떤 방법으로든 극복하여 다시 사람들 앞에서 달릴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 날이 오면 역시 난 운동신경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이 줄줄 흘러갔고 이전만큼은 아니게 내성적인 청소년으로 커나갔다. 가끔씩 달리고 뛰고 공을 칠 수 있게 되었다. 줄도 넘고  뜀틀도 하고. 무엇보다 억지로 시키니까. 그러면서 깨달았다. 어렸을 때 운동신경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으나 어쩌면 정말 없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혹은 있었는데 원체 안하고 살다보니 없어졌을 수도 있겠구나. 서서히 깨달아갔다. 타고났는지 안 났는지야 어차피 알 수 없는 문제지만 확실한 건, 어떤 것이건간에 계속 안 하면 영영 못한다는 걸.

 

또,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아 내가 예전부터 윗몸일으키기는 못했었구나, 철봉에 매달려 버티기는 원래부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했구나, 예전부터 유연성은 금방 사라졌었구나, 줄넘기 정말 못한다, 등등. 그러면서 확실히, 내게 운동에 어떤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겠구나. 라는 걸 알았다.

 

참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 스물 한두살 때까지는 가끔 너무나 좌절스럽도록 분명하게, 그리고 지금까지도 애써 부인하려 하지만 분명 밑바닥 어딘가에 나는 비범인 이라고 믿고 산다.

그래서 늘 엇 내가 범인이었군 하고 깨달을 때마다 괜한 비참함에 몸서리치는 것이다. 운동에 대해서는 비참까지는 아니었고 조금 실망했었다. 다만 내성적인 것 때문에 못할 뿐이지 분명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못해서.

 

아무래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살다보니 좋아하는 운동도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운동 잘한다 소리 듣던 어린시절 때에도 사람들과 하는 것보다는 혼자 하는 운동을 더 좋아했으리라. 다만 그 존재를 몰라서 못해봤을 뿐이지. 그러고보니 혼자 기계체조 흉내내는 것 따위를 좋아했으니까 뭐.

 

난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좋아한다.

 

걷는 건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좋아했다. 빨리 걷건 천천히 걷건 전주에 사는 동안은  왠만하면 걸어다녔다. 차타는 걸 싫어해서이기도 하겠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정말 싫었다. 창피해서 내가 내릴 곳에서 벨을 누르지 못하고 사람이 많아서 내가 내릴 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버스가 꽉 차서 잡을 곳이 없으면 식은땀 주룩주룩 흘려가며 긴장하고 비틀거리는 것 지독하게 싫고 택시를 탄다치면 아저씨한테 어디요 라고 말하는 게 너무나 부끄럽고 돈을 건네주는 것도 잔돈을 받는 것도 너무나 당황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피하고자 걷는 걸 더 좋아하게 된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난 걷는 건 정말로 좋아한다.

 

걸을 때는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대체로 늘 하는 공상을 더욱 격렬하게 하기도 하지만 나름 진지한 시기에는, 걸으면서 좋은 생각이 많이 난다. 고민이 해결되고 방법이 보이고 참신한 아이디어 따위가 나오는 느낌이 나고 우울하지 않는 힘이 생길 때가 있고 등등. 아마 내가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들 중에 그나마 제일 많이 그리고 꾸준히 한 것이 걷기 였을 것이다. 십대 때는 생활 속에서 늘 걷는 게 평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스물한살까지는 다이어트와 기분전환을 위해 하루 2,3시간씩 일부러 걷곤 했으니까.

 

근력운동이라.

십대 후반 중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살빼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 하지만 탄탄한 근육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난 스무살이 되면 서울에 살며 열심히 근력운동을 해서 근육을 만들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뭐, 대학가서 하려던 모든 걸 다 안 한것 중에는 이 근육만들기도 물론 포함돼버렸다.

 

두세번 정도 시도해봤는데 집에서 운동하기와 동네 헬스장 끊기

비교적 꾸준히 해서 좀 성공적이었던 건 집에서 두달 정도 꾸준히 복근운동을 해서 배에 한 줄을 그었던 경험이다.

무려 6년 전의 일.

 

그러고 나서는 없다. 풋

 

참, 검도를 빼먹었네.

어렸을 때부터 검도를 꼭 해보고 싶은, 검도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스무살 때 친구의 인도로 두달 다닌 적이 있다. 첫 한달은 대련 없이 혼자 동작연습하는 거였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다녔었다. 술먹고 새벽에 들어가도 3시간 자고 일어나 검도하러 가고 술먹다가도 시간되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검도하러 가고. 그러다가 대련을 시작하면서 그 뻘쭘함과 부끄러움을 감당 못하고 그만뒀었다. 아마 도장 다니고 나서 남은 건 팔벌려 높이뛰긴지 넓이뛰긴지 내가 피티체조라고 부르는 그걸 내 기본운동으로 삼게 됐다는 것(관장님 말씀에 달리기나 줄넘기로는 할 수 없는 팔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난 원래 달리기나 줄넘기를 잘 못하니까 참 맘에 들었다.). 아 검도다닐 때 체력좋다는 소리 많이 들었다. 내 의견은 체력은 안 좋은데 깡은 초반에 있는 편이었다.

 

뭐...

검도는 그런 나의 내성적인 면 탓으로 그만두고 더이상 시도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이제 미련은 없다. 요즘 하고 싶은 건 복싱인데 과연 이것도 그 성격 때문에 포기하게 되지는 않을지 도전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지 허허허

 

여하튼 늘 내가 강조하는 공부와 운동 중에 운동은 대체로 이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에 집중되는데 이것들도 지난 몇년 모든 것들에 눈감은 범위 내에 포함되어 시도도 노력도 안 한지 참 오래되었다.

 

그러다 결혼하고 한 달 후 집에서 받은 동네소식지로 알게 된 동네문화원의 발견, 그리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로 요가와 필라테스 강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강습료도 비싸다고 생각되지 않아 드디어 몇년만에 도전을 하였다.

 

오늘은 그 첫날이었다.

교실이 어딘지 잘 모르겠고 입을만한 츄리닝이 없어 허리 34 츄리닝바지에 투엑스라지는 될 트위티 맨투맨티를 챙겨놓고 지난밤부터 안절부절 두려운 마음으로 첫 발걸음을 디뎠다.

 

스무살 이후로는 이런 패턴이 있었다. 도전하는 초반에는 상당히 마음과 태도가 긍정적이다. 설레임과 자신감을 가지고 실수를 두려워않고 모든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상당히 빨리) 권태를 느끼고 초반에 극복했던 두려움이 되살아나 벌벌 떨게 되는 것.

 

몇년만에 하는 도전이라서 그런지 더 어렸을 때 처럼 처음부터 마음이 떨리고 두렵고 피하고 싶은 연약한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그래도 그 때와 모든 게 똑같진 않아서 감당못할 정도의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이게 얼마나 갈지 난 또 두렵다. 그리고 별 게 다 두렵다 하는 마음으로 날 극복하는 마음이 동시에 크다. 이 도전은 아마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문화원에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거의 모든 도전에서 이 점이 중요했지만 몇몇 도전들에서는 두려움과 민망함을 극복못해서 포기한 적도 있으니까. 이번은 그러지는 않을 듯. 그때보단 좀 커서? ㅋ

 

그리고 요즘 주변에서 헬스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니 나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쑥쑥 자라고 있다. 일단은 무리하게 욕심내지 말고 문화원수강으로 시작하자 고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점점 더 헬스에 대한 욕구가 커가는 중. 3달의 첫날 다녀왔을 뿐이다. 이 폴더에 글쓰기의 다짐보다는 잘 하길 바라며.

 

하루 다녀왔을 뿐이지만 근육들이 지금도 후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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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1 19:21 2010/02/0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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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2010/02/02 00:06 URL EDIT REPLY
잘 읽었습니다^^ 전 청소녀 시절에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달리기가 싫어지고 어깨도 구부정해졌고, 공부한다고 맨날 앉아만 있다보니 하체가 튼튼해져서 내 몸에 대한 혐오와 움츠러듬이 계속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워크샵에서 원시인처럼 소리지르고 미친듯이 날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내 몸이 너무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그 후로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몸이 원하는대로 해 주어야 하는데 활동가의 생활에서 참 그게 또 쉽지가 않네요(변명?^^;) 암튼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시길 응원합니다. 근데, 하다가 포기하고 또 딴 거 해도 괜찮지 싶어요.흐흐
몽환 2010/02/03 18:50 URL EDIT REPLY
^^ '원시인처럼 소리지르고 미친듯이 날뛰는' 거 참 좋지요 ㅋㅋㅋㅋ 술먹고 종종 하는 짓 같기도 ㅡㅡ; ㅋㅋㅋㅋㅋㅋㅋㅋ 응원 감사합니다~ 제자신 스스로 큰기대 중 ㅋㅋ 반면, 하다가 포기하게 되도 자학은 적당히하고 또 시작할려구요; ㅠㅠ ^^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