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인터넷 

통신

 

중학교 때 난 천리안 유저였다. 친구는 하이텔.

파란 화면의 모뎀접속 pc통신.

schin이라는 소모임에서 밤이면 밤마다 친구들과 채팅을 하고

게시판마다 돌아다니며 도배를 했고

자료실마다 뒤져가며 mp3하나에 30여분, 뮤직비디오 하나에 두세시간을 소요해가며 다운을 받았었다. 물론 다운받는 동안 늘 채팅을 했었고...

언제부턴가 친구들은 천리안에 접속만 한 채 천리안에서 놀지 않고 천리안을 통해 다른 곳에 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때 쓰던 말이 있었는데, 뭐였는지 지금은 생각 안 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화면의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의 pc통신들은 사멸해갔고

지금의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두둥

 

파란화면의 pc통신

go schin

go rock

go white

go 015b

go 하나면 어디로든 슝슝 날라갔었는데.

화면은 순식간에 바뀌고 0.1초 전에 이 모임에 있다가 누군가한테 눈에 띌 것 같으면 곧바로 go 어딘가를 눌렀다. / / 를 이용한 각종 채팅변수들. 일대일 몰래대화. 지금까지  나눈 대화 스캔해서 보기. 쪽지. 퇴장. 

뭐 물론 지금도 그런 기능들은 늘 있겠지? 하지만 사용해본 적 없다.

난 pc통신이 사멸해가는 것과 함께 정보의 바다를 등졌다.

 

하얀 화면의 느리기만 한 인터넷은 내겐 너무 광범위하고 압도적이었다.

몇년간 매일밤마다 전국 각지에서 파란화면을 앞에 두고 자료를 찾아 심심풀이를 찾아 싸울거리를 찾아 놀던 친구들은 사방팔방 흩어졌고 대부분의 그들은 더 풍부한 자료 광대한 자료와 놀 공간에 감탄해하며 떠나갔지만 난 적응하지 못했다. 낯설기만 했고 적응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적응하는 건 늘 어려운 거니까. 

 

처음 천리안을 시작했을 때도 그냥 주변을 서성이던 단계가 있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눈뜨면 컴퓨터와 오디오를 켜고 눈감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게 된 계기는 당시 천리안의 공일오비 팬클럽 회장과의 채팅이었다. 

"활동 많이 해 주세요"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매일매일 들러서 글도 읽고 글도 쓰고 정팅(아 이 단어 생각해내는 데 10초쯤 걸렸다 ㅠㅠ)도 나오고 하면 되요"

"그런데 제가 무슨 글을 쓰나요? 아는 것도 없는데.."

"그냥 오늘은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 졸립다 배고프다 그런 거 쓰면 되요"

"아하 그렇군요"

 

그로부터 나는 각 모임들의 게시판에서 상당한 도배꾼이 되었다. 

대부분은 잡글을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도배질을 하기도 한다. 정말 심심해서. 

컴퓨터 켜놓고 놀 친구는 없고 글도 쓸만큼 썼고

그럴 땐 제목을 내용처럼. 내용도 사실 내용이라 할 게 없는 것들을

몇장이고 써내려간다.

그러다가 소모임장한테 엄청 욕도 많이 먹었지.

또 심심할 때는 괜히 시비 걸러 이 게시판 저 게시판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대체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과 싸움놀이를  했었다.

"도청장치님의 입은 사포로 밀어버려야겠군요"

내가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내가 들은 욕 시리즈 1위일 것이다.

 

락동호회에 혼자 글을 쓰다가 어느날 쪽지가 왔다.

너도 14살이냐 나도 14살인데 너도 락 좋아하냐 나도 락 좋아하는데 같이 놀자

이런 식의.

그리고 걔가 소개해준 소모임이 '락을 사랑하는 10대들의 모임'이란 곳이었는데

그 소모임은 원래 역사소모임이었던 것을

다소 또라이같은 14살짜리 아이들이 점령해서 본래 의장을 쫓아내고 자기네들이

10대락소모임으로 변경해서 놀았던 곳이었다.

 

여하간 좋은음악들도 많이 알 수 있었다. 좋은 자료들을 덕분에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꿈을 꿨지만 노력도 하기 전에 겁만 많았던 나로선,

온라인에서는 사정없이 솔직하고 공격적인 반면, 오프라인에서는 타인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네 아니오 대답도 하기 힘들어하는 빙시였던 나로선,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늘 충격이었고 자극이었고 극한의 열등감제공자들이었고 그랬다.

 

파란화면이 죽은 이후에 아예 인터넷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나마 꾸준히 가입되어 있는 카페에는 거의 주기적으로 한번씩, 

어딘가에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 는 글을 올렸었고

칼럼을 쓰는 코너에 가서 1년 정도? 잡글을 꾸준히 올리며 독자들과 약간의 친분을 맺은 적도 있다.

어떤 사람과는 그런 걸 계기로 둘만의 게시판을 만들어서 놀았던 적도 있었다.

싸이 미니홈피가 생기면서 셀카 찍기 다이어리쓰기에 맛을 들였었고

-어떻게 생각하면 싸이의 다이어리 기능이 나의 인터넷 이용능력을 거의 초토화시켰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전에는 그래도 불특정 다수 중 누군가가 봐줄 수도 있는 가능성 속에 글을 올렸지만

싸이 이후로는 오직 몇 안되는 일촌들만 볼 수 있는 (전체공개라고 해도 누가 오나 ㅡㅡ) 가능성 속에 글을 올리게 되었으며 이전처럼 무방비 광장에 글을 올리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다-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할 때마다 한번씩 인터넷을 애용해주었다.

일을 하기가 너무 싫었기 때문에 그 땐 인터넷을 사랑하게 될수밖에 없다. 무언가에라도 정신을 팔기 위해, 그 때만큼은 열심히 카페에 출석하고 글을 읽고, 유머글을 찾아다니고 만화를 보고 정보를 쫓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 이외에 

여전히 인터넷은 내게 불모지이다.

 

나도 인터넷을 좀 여러모로 활용하려고 마음의 애는 쓴다.

정보를 찾아, 공부를 하려고, 참 없는 친구 만들어보려고.

그런데 참 안된다.

여전히 낯설고

힘든 곳이다.

 

천리안 시절 글쓰는 습관이 베어 있던 동안

하얀 화면의 게시판에 글을 쓰다

여러번 욕을 먹은 경험이 있다.

넌 왜 그런 걸 여기에다 쓰냐

무슨 잘난척을 하고 싶은 거냐

그런 건 방구석에서 혼자 읊어라-

그래서 난 더욱 그곳이 싫다.

예전에는 학교갔다 와서 졸립고 배고프단 글 좀 써달라고 했었는데.

어쩌면, 그 땐 어쨌거나 그 때의 지기에게 조언을 받아 통신생활을 시작했었고

지금의 정보바다에서는 어떤 지시나 경고도 재수없어 보여서 받아들이지 않느라

여직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싫은 장면 투성이다.

복잡하고

하얗고

느리고

빈 허공에 소리쳐대는 것 같고

어딜 가야 될지 모르겠고

글은 너무 많고

사람도 너무 많고

 

ㅡㅡ

 

며칠 전 오랜만에 다음카페에 첫 글을 올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전히 인터넷은 제게 압도적이고 방황감만 주는 것 같네요-라고.

그러고보니 그런가 싶더라.

내가 자주 가던 곳들을 잃고 친구들을 잃고 익숙해있던 것들을 잃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적응하지 못하는 동안 공격도 받았고

친했던 것들이 사라져간다는 배신감에 적대감이 생겼고.

 

14살이라면 무려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이렇게 찌질할 수가!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던 것이다.

난 왜 이토록 인터넷 문화를 싫어할까

 

별로.

지금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냥, 그 시절의 추억들과 욕먹었던 일만 생각나는구나.

 

무엇보다 내가 싫어하는 것 의 정의가 너무나 불분명하구나.

그들의 어리석어보임. 바보같음. 한심해보임 을 먼저 명확히 해야 할 듯.

 

어떤 무엇보다

오프라인상에서도 늘 온라인에 머리가 묶여있는 사람들을

가장 혐오하는 것일 게다.

 

내게 천리안은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그 당시 난 소위 오프라인;내가 현실이라 부르는 - 공간에서 단 한마디도 없었고 단 한가지 표정도 없었다. 난 늘 잠만 잤고 친구도 없었고 문화가 없었고 놀이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늘 스스로를 빙시라고 했다. 온라인으로 사귄 친구들과 전화를 트는 데도 한참 걸렸다. 이윽고 그들과 대면하게 됐을 때 난 실제로 말 한마디 못했고 눈한번 마주치지 못했고 직접 병신같은 년이라 욕을 들었다. 그러고도 한동안을 천리안을 떠나지 못했다. 실제로 사람을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다시는 온라인에서 입을 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그로부터 조금 지난 후였다.

 

통신은 나에게 유일한 통로였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음악, 그것들의 정보를 얻는 수단은 통신밖에 없었다. 그것도 협소한 편이었지만 사실 내게는 그것도 큰 행운 같았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나라에도 언더그라운드밴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기도 했지만 그 후로 그것에 대해 알 수 있는 통로는 통신밖에 없었다. 라디오도 TV도 왠만한 건 나오지도 않는 한국, 그 중에서도 전주에서 해외뮤지션들의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경로가 뭐가 있었겠는가? 심지어 mp3도 그렇게 많지 않았었기에 그냥 밴드이름을 보고 CD를 무작정 사는 일도 허다했다. 당시 메탈리카, 콘, 오아시스, 스웨이드, 스매싱 펌킨스 에 대해 수다 떨 친구는 통신 속에서만 있었다. 물론 실제의 내가 아예 입을 열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리 된 이유도 있지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좀 절박했었다 는 것이다.

 

주변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놓아두고 인터넷의 세계에서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시간을 보내고 여가를 즐기는 주변사람들을 보면 

첫번째, 뭔가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존경스럽다. 난 늘 어떤 분야에서든 열심히 하는 사람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난 잠자는 것 말고는 열심히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둘째, 그들은 외로운 건가?

셋째, 실제 그들 주변에 있는 것은 그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것인가?

 

글을 쓸수록 아무것도 정리가 안된다.

천리안 시절의 추억담과 갑자기 인터넷이 싫다 어쩐다 하는 난데없는 소리;

사실 맨 처음에는 "나는 왜 인터넷문화를 싫어할까"로 시작된 것이었는데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통신과 인터넷 얘기를 시작해버리니

아무것도 정리되지 못하고 횡설수설만 되었다.

애초에 첫머리에 "나는 왜 인터넷문화를 싫어할까"를 써 놓고

그럼 내가 사용하는 "인터넷문화"라는 것의 정의를 내리고

왜 싫은지를 얘기하며

천리안의 추억담을 얘기했어야 되는 건데....

 

첫 시도이니만큼...

그냥 오늘은 이걸로 끝내기로 한다... 끝!

 

 

 

 

 

 

생각을 정리하는 일

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정리해서 글로 옮겨내는 일을

다시 연습해가고 싶다.

그래서 첫 시도가 오늘이 되었다.

 

위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열아홉살 때 난 잠깐 daum의 칼럼란에 잡문을 연재했다.

(아무나 신청하면 아무나 어떤 글이든 올릴 수 있는 코너임)

나름 규칙을 만들어 세심하게 성의를 들였던 일이었다.

매일 한 가지 화두를 놓고 이야기를 했으며,

논리적으로 문단을 잘 나누어 전개시킬 것,

문장은 간결하고 군더더기(쓸데없는 수식, 쓸데없는 부가설명)가 없어야 하며

한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해야 하고

단어 하나하나의 정의를 꼼꼼히 살핀 후에 사용할 것,

독자게시판을 열어두되 나는 게시판에 관여하지 않을 것.

 

그런데 실수로...

실수로 그 코너를 삭제해버렸다..

삭제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던 중이긴 했지만

한번만에 진짜로 다 삭제가 될지는 몰랐다.

확인절차 없이 그냥 몇달간 애지중지했던 글들이 모두 날라가버렸다.

타격이 컸으며 그 후로 한동안은 꾸준히 글쓰는 연습을 아예 접어버렸다.

다시 글을 쓰자고 생각한 건 아마 스무살이나 스물한살 때였을 것이다.

그 때 아마 다시 같은 코너에 칼럼을 열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 역시나 몇번 연재하지도 못한 채 문을 닫았고

그 후로는 아직 시도해본 적 없다. 

생각은 종종 했다.

 

뭐든,

연습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마음을 쏟지 않으면

믿을 수 없을만큼 무뎌진다.

난 믿을 수 없을만큼 

글을 못 쓰고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마음을 이것이다 저것이다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

 

다시한번 도전해본다.

글쓰는 연습하기.

오늘부터 시작이다.

 

오늘부터 시작이네, 언제까지는 꼭 하겠네 하는 것들은 징그럽게도 많다.

또 한가지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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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9 23:04 2010/01/19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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