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일부 언론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가 2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위한 총파업을 벌였다. 노동부 추산으로는 전체 조합원 14만3000여 명의 27.1%98개 노조 3만9000여 명, 금속노조의 집계로는 157개 사업장 11만여 명이 파업을 벌였다.
  
  금속노조가 이날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벌인 파업에 앞서 오전부터 경찰이 금속노조 지도부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금속노조가 권역별 순환파업을 시작하기도 전인 25일 오전 경찰에 금속노조 지도부를 고발했었다.
  
  현행법상 임금 및 근로조건과 관련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불법이라는 것이 이같은 대대적인 탄압의 근거다. 김기덕 금속노조 법률원장이 정부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김기덕 원장은 이 글에서 "설사 불법파업이라도 지도부에 대해 사법처리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냐"며 "단순한 평화적 노무제공 거부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노예제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편집자>
  
  영등포경찰서는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 등 지도부 10명, 각 관할지역경찰서별로 지역지부장 13명 등 23명의 금속노조 지도부에 대한 출석요구서를 발송한 후 27일 오후 15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28일부터 검거에 나섰다.
  
  울산경찰청도 28~29일 예정된 파업을 강행하면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 등 핵심간부들에 대한 출석요구서를 발송하고 불응하면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한다. 이미 법무부장관, 노동부장관, 산자부장관도 담화문을 통해 불법파업이기 때문에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정대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불법파업이라고 사법처리되는 것이 당연한가?
  
  정부는 이번 파업이 그 목적, 절차에서 문제가 있는 불법파업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산업적 정치파업의 허용여부, 쟁의행위찬반투표의 시기 등 이번 파업의 쟁점에 대해 법원이 명확하게 판단한 바 없다. 그럼에도 불법파업이기 때문에 이를 주도하는 금속노조 지도부 등에 대해 사법처리하겠다고 한다.
  
  이번 파업이 불법파업인지 아닌지는 추후 법원에서 판단될 문제이고 여기서 이것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불법파업을 하면 사법처리되는 것이 당연한가. 이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사용자나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노동자, 노동조합, 심지어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간부들까지도 이러한 인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나라에선 불법파업이냐 아니냐만이 논쟁이 된다. 불법파업이라고 보이면 검찰, 경찰, 법원 등 국가권력은 파업을 주도한 노조간부, 조합원을 형사 처벌하고, 노조간부, 조합원은 처벌을 각오하면서 불법파업을 한다.
  
  금속노조의 파업은 '평화적 노무제공 거부'일 뿐이다
  
▲ 금속노조의 총파업에 대한 정부의 탄압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경찰은 집행부 검거에 나섰다. ⓒ연합뉴스

  그러나 불법파업과 형사처벌은 당연한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불법파업에 대해 형사 처벌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이번 금속노조 파업은 평화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그야말로 '파업'일 뿐이다. 사용자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공장시설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사용자를 내쫓고 직접 생산시설을 점거하거나 접수하여 '자주관리'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행위인 파업을 처벌하는 것은 자본주의 초기 단결금지법체제에서 있었다. 노동운동에 의해 단결금지법리가 극복되면서 이러한 형사처벌은 사라졌고 이것이 노동법의 출발이다. 물론 그 뒤에도 노동운동은 사용자로부터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을 법적으로 면책받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여 왔고, 오늘날 불법파업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은 바로 이 민사책임과 관련해서 논의된다.
  
  평화적 파업을 처벌하는 나라에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헌법이 강제노역을 금지하고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명백히 보장하고 있음에도 평화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당연한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아직 단결금지법리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헌법은 장식에 불과하고 법률은 헌법상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규제,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폭력, 파괴행위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파업을 처벌하는 나라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들은 아직 노동기본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고 노동운동은 국가로부터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여 국가로부터의 방임은 고사하고 국가의 규제 및 금지 대상인 억압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헌법상 근로자의 단체행동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다. 쟁의행위의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규제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로 강제하고 있다. 단순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파업조차도 주체, 목적, 절차 등을 이유로 처벌하고 있고 심지어 법원은 파업 그 자체가 당연히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고 하고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이 죄로 처벌해 왔다.
  
  우리의 노사관계 법·제도가 선진국과 견줘 손색이 없다고요?
  
  이러한 법현실을 두고 "우리의 노사관계 법·제도가 다른 선진국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이상수 노동부장관, 김성호 법무부장관, 김영주 산자부장관이 지난 21일 담화문을 통해 한 말이다.
  
  도대체 어느 선진국에서 단순히 평화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파업 '그 자체'에 대해 '바로' 처벌하고 있다는 것인가. 오직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사회권위원회가 한국정부에 파업에 대한 처벌을 시정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 눈감고 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혹시 지난해 말 통과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관련법을 두고 한 말일까? 그러나 노사관계 로드맵은 헌법상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보장하고자 한 입법논의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전면적인 개폐가 논의돼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노사정대표자회의 등 노사관계 로드맵 논의에서는 이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없었다.
  
  민주노총이라도 당시 노동기본권의 행사 보장을 전면적으로 내걸고 논의를 진행하여야 했다.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은 민주노총조차도 노동기본권에 관한 법률에 대한 인식이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당시 4대방향 8대핵심요구를 내건 민주노총의 민주적 노사관계방안에서도 그 인식의 결여가 드러나 있다.
  
  노무제공 거부를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노예제 뿐이다
  
▲ 김기덕 금속노조 법률원장.ⓒ프레시안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법률은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원칙적으로 보장하고 있되 예외적으로만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제한, 금지하고 있고 예외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법률일 뿐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만이 오늘 금속노조 파업에 대한 국가권력의 대응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고 장차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쟁취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노동법학자 등 전문가라 할지라도 이러한 인식이 없는 자는 한국 노동법의 실체를 모르는 바보이거나 알면서 외면하고 있는 사기꾼일 뿐이다. 이들 바보나 사기꾼에 속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은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노무제공의 거부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린다는 것은 국가가 관리하는 노예제에 다름 아니다.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남을 것인가. 오직 노동기본권 쟁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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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쓰기 시간걸려서 김기덕씨의 글을 대신퍼옴....

 

우연히 밥먹다가 백분토론보니 '행복한 울산 시민연대' 인가 하는 이상한 단체도 만들어져서

 

참 노동자 탄압하는 공권력과 우익들이 활개치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싶었다.

 

법은 사람이 만든것이고 그 만든 지배계급의 이익을 가장 잘 옹호하게 만든 장치인것을

 

다만 어떠한 면에 있어서 혁명이나 전복을 막기 위하여 어느정도 피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장치가 있는 것이고, 그 장치를 통하여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만.

 

법치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맹신과 대단한 정당성 부여는 무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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