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일은 없으나...

2007/01/10 03:20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적고 싶었다.

 

누구와도 '소통' 이라고 할만한 대화를 하지 않으며 살아가다보니, (물론 가족들과 일상적인 대화라는 걸 나누지만, 그건 소통이 아니다)이런 상태가 누적되다보면 한번씩 쏟아내고 싶을때가 생기는 법이다. 

 

 요즘 그냥 살고 있다. 극심한 슬픔이나 감정의 격동에 휘말리는 일은 없고, 강박증처럼 불안했던 심리상태도 그럭저럭 나아지고 있다. 나의 누적된 실력의 정도로 보아 이번 시험은 날아가 버린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마음정리가 어느정도 됬고, 내년 한해에 학교 수업과 병행해야만해서 공부할 양을 하루하루 얇게 spread 할 수 밖에없다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중이다. 

 

내가 봤을때 나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신에 대해서도, 사건에 대해서도.

그러나 그 장점을 잘 활용하질 못한다.  어차피 나라는 인간과 그 사람은 맞지 않는다고 마치 남의 연애사 상담하듯이 잘 분석해서 끝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운까지 없을정도로 쿨하고 강인한 인간이 못된다는 것이다.  무슨 선택을 할떄마다 신중하게 고려하고 선택을 해서 그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 오는것만을 막을 뿐.....

 

어제 우연히 잘 안쓰는 지갑을 열었는데, 그 친구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미끈하게 머리를 젤 발라서 넘

기고 양복입고 찍은 이력서용 증명사진이었다.  나는 굳이 사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거절했는데, 부득불 그가 나에게 주고 싶다면 준 사진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별로 닮지 않아 별로 친근감이 들 

지는 않지만 그 친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것을 버린상태에서 이것이라도 남겨두어야 겠다는 생각에 그냥 지갑에 쑤셔 넣었다.

 

 뼈아프게 사랑하지도 않았고 오랜기간 만난것도 아니지만, 역시 어려운 상황에 있을떄 만나고 헤어진 사람이라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상황에서 아직 벗어나질 못한 처지라서 종종 생각이 난다. 세상에 이별을 경험한 사람은 나뿐인양 청승떠는 건 타인에게 진부한 느낌을 줄 까봐 성격상 딱히 표현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을때 그가 이제 나에게서 완전히 맘돌린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미련담은 어리석은 문자를 살짝 보내보는 그런 행동을 하여 심적 황량함을 조금 해소해 보는 짓도 할 수 없다.  더 안좋은 꼴을 마주치느니, 한마디로 내가 버림받았음을 직시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느니 그냥 이상태로 잊었으면 한다.

 

 그래도 두번째로 잠시나마 그와 만났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따뜻하게 맞아준 그에게도 고맙게 생각한다. 좋은 인연만나고.... (그의 성격과 습벽으로 미루어보아 누구하고든지 오래 갈런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은데 취업해서 자기 자신과 가족들 잘 건사하는 사람 되기를 바란다.  이미 그의 행 불행은  나와 크게 관련이 없는 상태에서 불행까지 바랄정도로 그가 증오스럽지는 않다. 불행하면 나를 더욱 가

슴 아프게 하고 나의 머릿속에서 불필요하게 잔류하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허전한 것 같기도 하다.  며칠이나 됬다고 그와 있었던 괴로운 순간들은 잊혀지고 좋았던 순간들만 드라마 회상신처럼 뿌옇게 미화되어 생각난다.  아니, 생각 나는게 아니라 생각하고 픈 때가 많아서 하던 일을 멈추고 몇십분동안 생각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대단히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속에 꽉 채울만큼 나의 이성은 그와 나의 관계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진정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도 않은 흔한 남녀관계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당연히 좋은 사람 생기면 잊혀질 것이고 좋은 사람 안생겨도 내가 상황이 달라지면 희미해질것이다.  그래도 하찮게 여길 수 없는 것은 그 기억이 그나마

가끔 심장을 움직여 주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납덩이처럼 굳어있어서 가끔 압박이 느껴지는 심장을.

그래도 아름다웠던 것 같기도 하다.

 

 

 .............................

 

 

 최근에 읽은 책중에 '프라하의 소녀시대'  와 김산의 '아리랑' 이 좋았다. 우리집에는 불쌍할정도로

읽을 책이 없기 때문에 ( 책은 많은데, 머리도 식히면서 감동도 줄만한 그런 책들이 없다) 김산의 아리랑은 처음으로 좀 자세히 읽어봤는데 (그의 연애사 말고 혁명의 과정도 정독한것은 처음이었다)  깨달아

지는 바가 많았다. 좁은 세상에서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살면서 잦은 유혹과 어리석은 감정들에 휩싸여서 나약해지는 사람들이 읽으면 부끄러워지는 것이 있달까.  그리고 그 당시와 지금의 세상이 너무

달라서 혁명하는 방식,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 같은 것도 꽤나 다른 것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마음에

다가왔다.  (여기에 대해서는 길게 쓰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귀찮아서 다음에 써야겠다.)  어쨌든 김산이라

는 사람이 나보다 훨씬 훌륭하긴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여러가지 갈등의 감정과 고민에

휘말렸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위로가 되는 사실이었다.  어떤 결과물을 내는 것에

조급하기 보다는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과정을 거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좀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2006년에는  사는 요령도 조금 터득한 것 같고. (가늘고

길게 사는 요령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남는것에 중점을 둬야겠다. 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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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리우스 2007/01/10 03:28

    제가 감히 여쭤봐도 될까욤? 어떤 책들을 좋아하시는지...? 요새 어디서(문닫은 한노정연) 책들을 방출 중입니다... 게다가 제가 갖고 있는 책들도 쪼매 드리지요... (허! 참 책욕심 심한 내가 내책을...? 별일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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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징어땅콩 2007/01/10 14:26

    아! 문닫은 한노정연에서 나오는 책들이라면...저의 독서취향은 딱히 없지만...

    너무 포스트 모던(?)하기보다는 탄탄한 줄거리와 인물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소설이나 그런것들 좋습니다. 딱히 좋아하는 작가는 없지만 국내에서는 박완서나 조정래 이런사람들이 괜찮고 재기발랄한(?) 신예 작가들... 김영하같은 사람들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영혼을~ 닭고기수프~' 류 만 아니라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얘기들도 좋고요. ^^;; 진중권이나 박노자씨 등등의 읽을거리는 머리식히기에도 좋은 듯 합니다.그리고 논픽션류라도 관심가질 수 있는 주제라면- 정치경제학,철학, 역사서 등등(?)- 이라면 언젠가는 유용하게 읽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든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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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리우스 2007/01/24 12:15

    헉! 오늘사 답덧글 봤습니다...ㅠㅠ.. 인제는 짐을 풀었을 때 골라야겠군여... 3월쯤에 몇가지 챙겨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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