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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겨울, 위아토닉

 

 어지럽다. 소화도 잘 안된다. 감기에 걸린 것도 같고, 위아토닉(위무력증)이 재발한 것 같기도 하다. 좀 건강해야 할텐데... 아무래도 이번 겨울 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난 겨울, 난 똥골이라는 철거촌에서 살았다. 추위에 얼어 터진 기름보일러를 고치지 못하고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한 체로 겨울을 지냈었다. 결국 더 버틸 수 없어 이사를 가야 했는데 그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강제철거의 위협 때문이었다. 그 위협은 밤마다 하루 걸러 한번씩 빈집들에서 불이 나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공포로 밀려왔다. 싸이렌소리에 밖에 나가보면... 마을 사람들은 질식할 것 같은 연기에 마을을 모조리 삼킬 것 같은 불을 보며 아이들은 울어댔고, 아저씨들은 "시행사 개XX들 짓"이라며 분노했다. 

 

  나도 무섭고 또 화가 났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참 서러웠다. 가난이라는 거... 쫒겨난다는 거...

 

  그런 일을 몇번 겪은 뒤, 한집 두집 마을 사람들이 떠나갔고 주변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떤 집은 국민임대주택을 얻어가기도 했고, 어떤 집은 고만 고만한 이주비를 받아 가기도 했다. 또 어떤 집은 실제 집주인이면서 집 팔아 돈을 챙기고, 다시 그 집에 위장전입하여 임대주택을 얻어가고 이주비도 챙겨갔다. 그 집이 바로 내가 살던 집이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얻어갈 게 없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10만원씩 내고 살았는데, 집주인이 보증금도 돌려줄 것 같지 않아 나도 월세를 내지 않으며 살았다. 전기세도 내지 않으며 살았으니 대강 똔똔이 되었을 것이다. 월세를 내지않고 살아도 되니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려고 그 추위에 보일러도 안돌아가는 집에서 견뎌냈는데... 조금만 있으면 봄이 올 터인데...

 

  이미 내 머리위에 포크레인의 큰 쇠꼭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어찌해 난 홍제동으로 이사했고, 지금은 다행이도 녹번동에서 어머니와 따뜻하게 잘 살고 있다.

  * 똥골은 독립문 "서대문형무소"옆 뒷산에 있는 달동네인데, 박완서 작가의 어린시절이 그려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무대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일제시대때 서울구치소(지금의 서대문형무소)가 생기고 옥바라지를 하기위해 가족들이 집을 짓고 살면서 생긴 동네라고도 한다.

 

 

  이번 겨울 난 또 이사 준비를 한다. 사는 집은 아니지만...

 

  이번엔 일하고 있는 책방이 있는 지역 전체가 재개발이 되어서 이사를 해야한다. 재개발, 재개발... 정말 지긋지긋한 낱말이다. 2년반이나 일했던 곳인데, 내 손으로 하나하나 가꾸고 일구었던 책방을 내 손으로 없애야 한다니 정말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명도에 관한 화해조서(곧,합의)를 쓴 뒤, 정이 많이 떨어졌고 의욕도 없어져서 꽤 한참을 무기력하게 책방에 있었던 것도 같아 이제와서 손님들에게 미안하고 책방식구들에게도 미안하다.

 

 이 금싸래기 땅에... 얼마나 엄청난 빌딩이 들어설까.

 

 생선굽던 골목, 대포집들이 그리울 것 같다. 그 골목들을 비집고 다니던 야채장수 아저씨, 리어카 하나 끌고선 옛날식 그대로 칼을 갈던 할아버지, 한평도 안되는 공간에 정말 없는 게 없었던 구멍가게,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눈탱이치던 철물점 아저씨, 골목끝에서 30년이나 넘게 문구류 좌판을 열었다던 할머니, 늘 '아름다운총각' 왔다면서 좋아하던 떡볶이 아줌마, 그리고 아침마다 천원대의 아메리카노와 함께 연애상담을 해주던 복권집 아가씨...  생각해보니 참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이곳에 다시오게 되면 흔적조차 이젠 남아있지 않을터... 길지않았던 시간, 누군가의 기억에나 남아 있게 될까.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으로 문여는 날이구나~ 책방도 이제 안녕이다. 

 

 어쨋거나 몸이 아픈 건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 

 

 헌책들 싫고 이사 갈 땐 부디 내 스트레스는 날려버리고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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