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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나 채식한다고 도축노동자를 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지음님의 [채식주의자와 축산노동자의 연대?!]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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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나 채식한다고

도축노동자를 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수정 : 2010.3.7

 

  

채식인의 적은 도축노동자가 아니며

축산자본가 또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 현대의 문화와 질서입니다.


모든 것이 자본의 질서 하에 생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품만을 혁명해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자본이 주인이 되는 사회.. 그 이름에만 충실해도, 노동자는 남아돌아서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마음대로 골라 쓰다 맘에 안들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해고해버릴 수 있는 사회가 자연스러운 거지요.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인데, 일부 노동자들이나 지식인들은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의 권리찾기 운동을 하고 있지요. 그런 노력이 있어서 그나마 이 세상이 덜 삭막하고 자본에 의해 덜 통제되고 압박받고 살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의해 많은 이민자, 흑인들의 삶도 규정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구든 사실이든, 민중의 영웅 임꺽정도 소백정이었습니다. 도축노동자는 채식인의 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가장 불쌍한 사람이 산채로 동물의 털가죽을 벗겨내는 노동자이리라 생각합니다. 밥 먹다 그 장면이 생각나는 것만으로 밥을 먹기 힘들어질 때 그 노동자가 떠오르며 ‘그는 밥을 먹을 때 털가죽 벗기는게 생각나지 않을까? 익숙해져서 괜챦을까?’ 익숙해졌다 해도 불쌍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산채로 모피 벗겨지는 동물이 더 불쌍합니다. 그 고통은 도저히 참을 수도, 익숙해질 수도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산채로 벗기는 자를 죽여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죽인 것은 그 노동자가 아니라 그 일을 하게 만든 모든 것, 그리고 모피산업의 자본가들입니다. 우리 언니도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들도 죽이고 싶습니다. 언니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센스’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다른 종의 고통, 남들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죽이고 싶은 것입니다.


실제 그 현장에 내가 있으면 더 많은 생명존중운동을 하기 위하여, 감정적으로 그 노동자를 죽이고 싶은 것을 참을 지도 모릅니다. 그냥 그를 죽여버려서 감옥 가고 형을 살거나 죽음으로 해서 세상에 충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과 그보다 ‘조용히’ 운동을 계속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사회에 보탬이 될까 저울질해봐야겠죠^^


그런데... 지금 산채로 모피 벗기는 노동자와 벗김을 당하는 동물 중 누가 더 불쌍한가, 또는 내가 그 노동자를 죽이는 것과 안죽이고 운동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나은지... 이런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아무튼 채식인의 적은 도축노동자도 모피농장 노동자도 아니고 축산자본가와 모피산업자본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의 고통은 고통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사람을 위해서는 동물은 어떻게 이용하든 상관없는 것이라는 세상의 인식, 그러한 인식을 강화시키고 은폐와 이중성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 축산업자들, 학문이라고 하면서 이윤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 어떻게 동물을 다루는지만 연구해 가르치는 학자들이 우리의 적이 되어야 합니다.



대량축산체제가 존재하는 한

상대적으로 ‘억압이 덜한 고기’도 먹지 않겠습니다.


식품산업과 식문화가 인간의 몸에 맞지 않게 엄청나게 왜곡된 현대에 채식을 하는 것은 ‘저항’이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신경을 좀 써야 채식도 하고 바르게 생산된 덜 해로운 식품을 사서 먹을 수 있으니까요. 당연히 저층 민중들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채식이 돈이 더 들어서보다는 채식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문제지요.


그렇다고 해서

‘채식주의자는 도축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와 ‘공정한 돼지고기, 자유로운 닭고기, 억압 없는 쇠고기 등등을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다가오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식물도 만만치않게 불쌍하다’라는 표현...


채식주의자가 도축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들의 직업유지를 위해 ‘억압 없는 고기’를 만들거나 먹어주는 것?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덜 억압받고 살다 도축된 고기들은 지금도 구할 수 있습니다. 생협에서 파는 친환경 축산물들입니다. 그것들은 항생제, 호르몬을 넣지 않아 몸에도 덜 해롭고 입에서도 살살 녹습니다.  물론 일반 시중에서 파는 고기보다는 좀 비싸지요. (다시 조사해봐야겠지만 과거 언젠가 비교에 본 바로는, 한우의 경우는 시중에서 더 비싼 것 같았는데) 


사실 육식 자체가 비싸고 비경제적이며, 육식으로 1인분 생산할 자원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먹일 곡채식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아무튼 ‘억압이 덜한 고기’는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 더 나은 고기가 생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고기를 사먹지 않는 이유는 이제 채식에 익숙해져 고기가 느끼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기를 조금이라도 먹으면 건강에 해로울까봐도 아닙니다. 대량축산, 대량육류소비가 존재하는 한 나는 고기나 우유, 다단계닭장의 달걀로 만들어진 것을 먹을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채식하는 것 자체가 대량축산으로 동물들이 고통받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며, 그런 현실에 저항하는 일입니다. 또 채식만으로도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한 마리라도 덜 고통받게 되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장식 축산동물 한 마리가 평생 당하는 고통은 한 사람이 평생 지옥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과 다름없이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 마리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 하나를 고통에서 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현재 친환경적으로 키워지는 축산동물들도 똑같은 도축장에서 도축되고 있기 때문에 비인도적으로 도살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먹지 않아도 되는데 죽음의 고통을 주고 싶지 않고요.


또한 친환경적 축산 중 가장 조건이 나은 것이 방목일텐데, 방목을 하더라도 환경파괴는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육축들이 지나간 자리에 초지가 복원이 잘 되지 않고 자꾸 숲을 깎아내고 있습니다.


‘굿 뉴스’란 책에서는 미국 어딘가에서 닭에서 코요테까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공존하게 함으로써, 육축동물들이 사용하던 땅을 로테이션하면서 복원될 수 있게 목축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땅이 넓은 나라에서만 일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땅 넓이에 비해 생산되는 비율이 일반화된 축산에 비해 아주 적은 듯 하므로, 어느 곳에서나 가능한 방법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일단은 대량육류소비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단순한 방목만으로도 사람들의 수요를 충당할 수는 없습니다. 방목이 보편화되면 우리나라의 산야는 엄청나게 헐벗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강원도에 가면 벌겋게 산을 깎고 소나 염소를 풀어놓은 곳이 곳곳에 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원 3위가 돼지고기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자유롭고 억압 없는 고기’가 먹고 싶으면 생협 같은데서 사서 드십시오. 요즘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조금 적게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비용부담도 그다지 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초기에 막 동물문제나 축산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아직 채식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생협 고기를 좀 이용했으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드린 말씀들로 어느 정도는 이해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나는, 또는 우리는 채식을 하더라도, 당장 모두에게 모든 육식을 중단하고 모든 축산업을 폐지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으니, 육식을 줄여 축산동물의 수를 줄여나가고 그들의 복지를 개선해 나가며 그 종류도 늘리지 말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이 동물, 저 동물 다 먹겠다며 축산화를 허용하면, 규제하고 관리하기도 어렵습니다. 동물은 무엇이든 잡아먹거나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만 늘리며, 육류를 더 찾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정적으로 친환경축산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정말 식물도 불쌍하십니까?


식물도 불쌍하다...  아직까지 식물에게서 고통을 느끼는 신경체계는 발견되지 않았고, 식물은 잎을 뜯어주고 솎아주면 새잎이 돋고 열매를 따먹어 퍼뜨려주기를 바랍니다. 동물은 잡히고 싶어하지 않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식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식물도 사람의 기운을 느끼고 반응을 하며 스트레스 표현도 하고 그에 따라 생장상태도 달라진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들에게 식물을 느껴보고 대화도 나눠보도록 하는 영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물을 대상으로는 영성교육을 하면서 인간과 더 가까운 동물을 대상으로는 하지 않고, 오히려 동물을 이용하는 교육만 하면서 그걸 생태주의 교육이라고 하니 문제지요.

 

또한 축산동물을 키우려면 '그 불쌍하다는' 식물을 훨씬 더 많이 재배해 먹여야 합니다.  사료재배를 위해 제3세계 민중의 땅을 뺏고 그들의 기아에 큰 기여를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 가까운 고등한 포유동물일수록 고통과 스트레스의 표현이 인간을 닮았고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고통스러울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동물들부터 고통을 제거해주려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하등한 동물, 또는 식물의 고통 운운하는 것은 기득권을 버리고 싶지 않은 자의 변명이 아닐지요.


축산이 환경에 여러 측면으로 주는 엄청난 피해, 그로 인해 가난한 사람이 먼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현실만 생각해도 저는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낮은 계급 사람들이 심각하게 왜곡된 질 낮은 음식을 먹게 강요하고 점점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도 이윤만 생각하는 자본가들입니다.


도축노동자나 삼겹살집 노동자들이 그 비인간적인 노동에서 벗어나 보다 행복한 노동을 할 수 있게 사회가 바뀌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채식하는 것은 브루조아의 전유물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버리고 당당해져야 합니다.


지금은 외식하려면 고기집 아니고는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허브전문점, 한식집, 채식전문점, 버섯요리 전문점, 천연조미료로 만드는 집, 유기농 음식점, 꽃밥집, 채식안주를 파는 술집, 우리밀 분식집, 기름 가열해서 쓰지 않는 집, 절밥집, 약초음식점, 산채요리집, 두부요리, 우리콩요리, 죽전문점, 해초전문점, 아토피환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점, 텃밭가든... 저라면 더 무궁하게 개발할게 많습니다... 


이런 음식점들로 점점 바뀌어가고 사람들 입맛이 변한다면, 보다 행복한 노동을 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작년 가을 오랜만에 선배 내외를 만났습니다. 그 선배가 축산농장을 운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돼지들에게 사흘에 한 번씩 항생제 주사를 놓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고기 집을 했는데, 그 부인의 말이 고기 기름을 너무 많이 버려야 하고 불판을 닦기 위해 세제를 너무 많이 써야하는 것이 괴로웠답니다.

 

그러다 부인의 무릎에 종양이 생겨 다리를 당장 잘라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콩과 채소만 먹고 치료했다더군요. 나름대로 온갖 연구를 해보고는, 돈 안들이고 해 볼 것이 그 방법이라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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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채식식당의 주인이 백인이고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가 흑인과 이민자라 해서 채식을 계급적 식단으로 볼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대개의 식당의 고용주와 고용인이 그런 형태입니다. 현재로서는 흑인과 이민자들이 고용주가 될 비율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고차원의 의식을 가진 채식식당의 주인이라면 직원을 많이 배려하고 그들의 성장을 돕겠지요. 채식식당 주인이라고 모두 그래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채식인들의 의식이 점차 높아진다면 좋은 주인도 늘겠지요.

  

 

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공정생산 및 무역 제품을 선택하는 것보다 우위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육식을 생산하는 자본의 문제와 똑같은 정도로, 채식을 생산하는 자본의 문제를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 의의를 잃어버린다고 봅니다."라고 하신 분, 좋은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세계자본의 질서에 포함되어 가는데 채식을 생산하는 자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겠지요.

 

채식의 철학은 개인 건강만이 아닌, 윤리,생태,환경,사랑,영성의 철학으로 완성되어져 가야하고 그에 따라 일부 채식인이나 채식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철학을 구현하는 사업이 될수 있도록 해나갈 때, 다른 분야보다는 '물'이 좀 나아질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기대를 하기 이전에....  초콜릿을 예로 들어보지요. 나는 동물을 착취한 우유, 건강에 나쁜 정제설탕, 각종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으면서 코코아 함량이 높고, 공정무역으로 생산,거래된 초콜릿을 찾을 것입니다.  물론 값이 비싸서 가끔 조금만 사겠지요.  싸도 나쁘면 차라리 안사고 안먹으면 되니까요.

 

수입까지 해서 먹고 싶은 생각 별로 없지만 초콜릿 좋아하는 아들에게 선물할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초콜릿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정제설탕과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초콜릿을 살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많이 살 생각은 없지만, 어짜피 여러가지로 나쁜 초콜릿을 사먹을 아들을 생각하면 그거라도 사주는게 낫겠지요.

 

채식을 생산하는 자본의 문제도 물론 사고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윤리적인 기업에서 생산되거나 공정무역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상품을 구매해야 겠지요. 하지만 육식자본이나 채식자본이나 똑같이 생산농민 등에 공정하지 않다고 할 때, 적어도 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공정생산 및 무역 제품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우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축산을 점차 줄이며 축산동물의 복지수준을 높여가고,

유기농식물농사를 확대해야 합니다.


당연히 식품관련산업만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식품산업 중 축산업만 변화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각 영역에서 운동을 하고 있듯이 우리도 해야 합니다. 

 

또한 동물학대방지와 건강, 환경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미미하지만, 꾸준히 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축산 문제는 또 다른 차원에서 개혁해야 할 당위성이 존재합니다.


‘굿뉴스’란 책에 나오지요. 요약하면,

“쿠바는 소련으로의 설탕수출과 비료농약 원조가 끊기자, 89년부터 농업혁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수백만 톤의 비료·농약·살충제·제초제·유전자 조작된 씨앗이 사라지고, 대신 식량 자급률이 98%에 달하고 있으며 거의가 무농약으로 생산된다.


기본적인 식량은 배급되고 있으며 유기농을 누구나 싸게 사 먹을 수 있는데, 이런 쿠바의 경험은 갑작스런 정책 전환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점진적인 전환도 할 수 있다.”


축산을 점차 줄이며 축산동물의 복지수준을 높여가고, 유기농식물농사를 확대해야 합니다. 이는 ‘다국적 밥상’에서 벗어나는 일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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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도 살리고 유전자조작식품도 막기 위하여 우리 종자 텃밭 만들기 운동을 시작하여 종자기금 마련을 위해 모금을 시작하신 분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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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직접 상품이 되어 물건취급 당하는 것의 의미


그리고 열심히 동물보호운동을 하고 채식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種)에 대한 것이니 사람들의 인식이 가장 뒤떨어진다는 것, 그래서 사회진보의 가장 뒷줄에 있다는 것, 그만큼 운동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 말고도 이유가 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본주의 질서에 속박되어 있지만, 모든 분야의 상품이 문제가 크지만, 이것만은 생명이 직접 상품이 되어 물건취급 당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동자도 자신을 비싼 값에 팔리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공장노동자는 컨베이어벨트의 흐름에 구속되어 기계취급 당합니다. 그렇다해도 노동자는 긴 노동을 끝내고 누추하지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있습니다. 축산동물들은 단 한 시간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컨베이어 벨트에 (많은 경우 산채로) 직접 걸리는 물건이 됩니다.(컨베이어벨트의 기계가 되는 노동자가 그래도 낫겠지요^^)


그래서 저는 동물을, 생명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예민해질 수밖에 없으며, 끝까지 단호하게 반대하고 개선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힘을 쓰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남의 살을 먹어야 힘을 내는 사람들'이란 표현을 쓰셨는데, 진짜 그렇게 믿고 계신건지 잘 모르겠지만,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채식모임(www.veg.or.kr)>의 공동대표 정인봉님의 "채식 위주의 식사에 대한 오해, 오해들"이란 기고글 중에서 발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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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에 있는 사람과 달리 고된 일을 해야하는 노동자들이나 운동선수는 육류를 반드시 먹어주어야 힘을 쓸 수 있다'라고들 하는데,

 

옛날 머슴 밥그릇을 아는가? 그들은 지금의 국그릇보다 더 크고 높은 밥그릇에 밥을 수북하게 쌓아서 김치나 간장 하나에 밥을 먹었다. 오늘날에도 자이나교도나 수많은 저개발국가 사람들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없는 극도의 가난한 생활이 아닌 한 통밀빵 . 현미와 같은 통곡식을 80% 이상 먹고 그것도 소식하면서도 하루에 마라톤 거리만큼을 걷고, 인력거를 끌며 왕성한 체력을 자랑한다. 이들에게 오히려 육류를 공급하면 힘을 못 쓴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수많은 객관적인 실험과 통계는 채식가들이 일반인들보다 지구력이 더 좋고, 피로 회복도가 더 빠르다고 발표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들 중에 채식가들이 많다는 것은 이를 잘 입증한다.

 

채식인 운동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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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브라 틸로바(윔블던 9회 우승)
머레이 로즈(수영 올림픽 3관왕)
데이빗 스콧(철인경기 6관왕)
에드윈 모제스(허들 올림픽 2관왕)
빌 월튼(유명한 농구 스타)
권영철(현재 51세, 격투기 세계챔피언) "   

그외 무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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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초순의 어느 새벽에 http://cafe.daum.net/vegetarian 에 복사된 [삼겹살 집 딸 중에 채식하시는 분?]과 [채식주의자와 축산노동자의 연대?!]를 대충 읽고 글을 써올렸던 것인데...  두 분이 하고자하는 말씀을 잘 이해하고 대거리 한건지 모르겠네요. 혹 초점이 맞지 않더라도 그냥 제 뜻이 이렇다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회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은 보다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모두 건승하시고 과정에서 따뜻한 정을 많이 나누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참고 :  인간에게 털옷을 빼앗기는 동물들의 절규 

다음카페 :  우리종자를 생각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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