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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0
    우유 맛을 보며
    따따탄 효진

우유 맛을 보며

우유 맛을 보며

싫어진 우유 냄새에 환희와 절망을 동시에 느끼다

.

.

아침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가고 싶다는 아들 아이에게

유전자 조작된 곡물로 만든 시리얼을 사주고 싶지는 않았다.

농산물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산업에 인류애는 없고,

이윤추구와 자본으로의 종속만이 있을 뿐이다.

더욱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의 가공식품들을

사먹는 것은 내겐 너무 억울한 일이다.


국내의 한 공동체에서 만든 유기농 시리얼을 구해 보았다.

내가 하듯 두유에 말아먹으라고 했더니, 아이는 말도 안 된단다.

그러더니 생협(두레생협) 심부름 갔을 때 우유를 한 통 사왔다.


그 시리얼이 (아이가) 먹을만한지 (내가) 조금 시식을 해보았다.

몇 년간 바깥 생활을 많이 하며,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아이의 입맛에 맞을 지, 그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발아통밀로 만든 시리얼은 내 입맛에는 고소했다.

우유를 말아보니, 아이는 맛이 심심하다 할 것 같았다.

정제하지 않은 마스코바도 설탕을 적당히 타 먹으라고 해야겠다.

약간의 소금을 넣으면 더 맛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다.


그런데 나는 다시는 우유에 말아먹지 않으련다.

송아지에게 먹여야 할 소젖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상식을 하려면

어미 소는, 그리고 송아지는 어떻게 살고 죽어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그 잔인한 현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우유를 점차 먹지 않게 되었다.

생협에서 거래하는 우유는 덜 잔인하게, 덜 유독하게 만들어지겠지.

하지만 나는 한살림 생협의 우유 취급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에 반대를 표명했다.


그렇지만 생협 우유도 못 먹겠다. 냄새가 싫어 못 먹겠다.

어느새 고기 냄새가 싫어지고, 고기 국물이 느끼해진 것처럼

우유 냄새가 이토록 싫어졌구나..

생협 우유는 다른 우유보다 덜 비린 편인데도 그 냄새가 싫다.


우유 맛을 보며 나는 환희를 느낀다.

나도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기가 없어서 못 먹고

우유의 고소함을 즐겼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우유를 먹으려 해도 맛이 없어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별히 도를 닦은 것도 아니고, 우유를 안 먹거나 싫어하기 위해

어떤 프로젝트를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점차 고기나 우유를 안 먹게 되면서, 채식 위주의 반찬,

다시마와 버섯, 또는 생협의 천연조미료로 맛을 낸 국물들을 먹고 살았다.


(울 동네 유기농반찬전문점인 동네부엌이 나의 채식생활의 일등공신이다.

내가 동네부엌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것도 육식을 줄이고

채식 위주의 전통음식들을 먹자는 뜻이었다.

동네부엌에는 고기 종류도 만들어 팔지만,

다양한 전통 채식 반찬들이 많기 때문에 육식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사이에 나의 입맛이 이토록 달라졌다.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환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유 맛을 보고 또한 나는 절망을 느꼈다.

남들은 그대로인데 나 혼자만 달라진 것이다.

같은 우유를 가지고 나 혼자만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우유 맛을 보고 나는 환희를 느꼈다.

똑같은 우유인데..

나의 입맛이 달라질 수 있다면 누구든 달라질 수 있다.

우유는 꼭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유 맛을 보고 나는 절망을 느꼈다.

똑같은 우유인데..

남들과 내가 너무 다르게 느끼고 있다.

그 간극을 좁히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과 노력과 공감이 필요할까.


다 같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육식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유 냄새가 싫어지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않다.

얼마나 평화로운 일인지 안다.

동물들은 물론, 인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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