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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5
    [동물보호 무크지 '숨' 창간] 생명사랑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따따탄 효진
  2. 2007/10/20
    인간중심주의에 갇힌 생명과 생태 개념
    따따탄 효진

[동물보호 무크지 '숨' 창간] 생명사랑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 민중언론 참세상[세상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숨을] 에 관련된 글.

 

 
(기사 제목을 클릭하세요~)

‘동물보호 잡지’ 첫 숨 토하다

한겨레 생활/문화 | 2007.12.20

세상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숨을
참세상 사회
| 2008.01.15

아우슈비츠나 소 축사나...고기 맛있습니까
오마이뉴스
책동네
| 2007.12.27

동물보호잡지 '숨' 첫선… 창간호서 실험실의 동물학대 고발
한국일보 생활/문화 | 2007.12.27

국내 최초 동물보호잡지 ‘숨’ 창간한 김효진 편집인
여성신문 963호 [사람들] | 2007.1.4 

공장형 축산은 문명사회의 야만
오마이뉴스 
책동네 | 2008.1.7

 




* 숨 카페 : http://cafe.naver.com/mzsoom

* 숨 구매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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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1) 1권
  예2) 나에게 2권 + 기증 4권 ('추가요청사항'에 기입)

 

** 입금계좌 
국민은행  867702-04-039164 (서소라/ 더불어숨)
86770204039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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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B5 크기에, 내지 172쪽입니다.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해 창간호는 칼라판으로 편집이 되었으며, 앞으로 점차 친환경적인 출판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많은 분들의 관심과 뜨거운 호응을 소망하는 바입니다..


사실 출판영업 전문가들로부터 10000원 짜리 이상의 품질로 평가받았습니다만, 처음 나오는 동물보호 전문지인만큼 문턱을 낮추려다보니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배송비 없이 5000원에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5000원이라 생각지마시고 후원금을 보태어 보내주시면, [숨]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고,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세상을 희구하는 나의 가슴에... 따뜻한 숨결의 소유자로 자라기 바라는 우리 아이들 마음에(어린이에게 '숨' 창간호를 직접 보여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이에 따라 어른의 지도 하에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후 어린이를 위한 '숨'의 제작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생명사랑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숨] 편집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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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서점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 홍보물을 여기저기 퍼날라주시면 큰 도움이 된답니다.
그리고 주변에도 많이 알리고 팔아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 동물에 대한 인식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모두 퍼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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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주의에 갇힌 생명과 생태 개념

 

인간중심주의에 갇힌 생명과 생태 개념

 

 

               

▲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 개. 예쁘다고 키웠다가 조금 불편하면 내쳐버리는 마음과, 1m 철장에 가둬키워 잡아먹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는 무엇이 다를까.
ⓒ 옐로우독

 

녹색대학의 장회익 교수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 어우러져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온생명체'라 하며, '나'는 그 온생명체의 일부이고 온생명체가 나와 한 몸이니 환경은 내 몸의 다른 일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몸의 일부가 내 몸의 다른 일부인 환경을 쥐어짜며, 이를 일러 성장, 발전이라 말한다면 결국 우매하여 자멸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환경보호는 곧 나를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뭐 그렇게 신경 쓰며 살아. 우리 식구나 대충 살다 가지.' 그렇습니다. 사실 나와 내 식구만을 위한다면 환경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식구’만 좀 공기 좋은데 가서 조심해 살다 죽으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 생각하면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고 내가 볼 수 없는 먼 후손까지를 생각하는 이타성이 강한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환경을 많이 파괴하며 사는 것은 남들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물론 내 이웃에게 죄를 짓는 것이 곧 나에게 죄를 짓는 것이기도 하고요.

 

당연히, 사람들,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 세상만물과 모든 공간이 다 환경입니다. 지금부터 그 중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고통을 주고 죄를 지으면서도 잘 인식하지 못하며 사는 대상인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온생명인 '나'의 몸의 일부가 아프고 썩어들어 가는데 그 부분에는 감각이 마비되어 나는 거의 아픔을 못 느끼고 산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픔을 못 느끼지만, 언젠가 나는 그로 인해 큰 고통이나 죽음에 직면하겠지요.

 

동물도 환경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외면당하고 있다

 

 

                                             
▲ 모피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고 있는 이 푸른여우는 이상행동으로 동료를 살해하였다. 오른쪽은 뇌에 실험장치가 박힌 실험실의 고양이.
ⓒ ? , PETA

 

지금 우리의 환경 개념 안에는 생명의 개념이 불완전하게 걸쳐 있고, 동물의 개념은 거의 쏙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물의 경우 야생동물 정도가 포함되기는 하지요. 물론 생태계와 야생동물 보호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이 동물들과 관계 맺는 방식들을 볼 때 동물문제는 야생동물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생활 깊숙이 함께 하고 있는 반려동물들, 끊임없이 번식을 강요받는 모견이나 종견들, 농장에서 가둬키워지는 동물들, 모피를 위해 사육되거나 포획되는 동물들, 보신문화로 고통 받는 동물들,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 공연에 이용되는 동물들, 싸움·경주 등 사행성 오락에 이용되는 동물들, 동물뽑기나 경품으로 이용되는 동물들, 홍보에 이용되거나 심한 노동을 해야 하는 동물들,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들...

 

그래서 아직은 환경운동가나 생태주의자 중에서도 동물보호를 생태계 유지 차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공존이 아니며, 동물보호도 인간을 위한 이기적인 차원에 가두는 것입니다.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인류적인 well-being'과 혼돈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세상을 머리로만 사랑하는 것이지 가슴으로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동물들에게 가하는 '심대하지만 피할 수 있는' 가학의 현실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물착취는 심각한 환경파괴와 맞물려 있기에, 인류의 well-being이란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지요.

 

아직은 동물의 문제가 환경론자나 생태주의자들에게도 외면을 당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동물에 대한 인식수준은 낮습니다. 어느 나라나 인간의 사회복지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야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일반화, 보편화되고 그 보호가 정책화, 제도화됩니다. 이는 일단은 사회의 주된 구성원인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복지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다음에야 우리의 주위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물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면,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배부른 소리를 하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던 시절에, 백인들에게 흑인들의 고통이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오히려 멸시를 당했습니다. 지구상에서 동물들도 생명체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종(種)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권'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겨울 내내 밀폐된 실내에 갇혀 우울함에 빠진 고릴라, 갇힌 스트레스로 자기 가슴털을 다 뽑은 앵무새, 회전목마에 매달린 조랑말 등 오락을 위해 이용되는 동물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 옐로우독, 환경운동연합 마용운, 전경옥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점차 진보해가는 시대에 '인권'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인권' 개념은 '생명권', 나아가 '자연권'으로 확장될 수 있을 터인데, 요즘은 인권과 자연권에 대해서는 인식이 많이 되어가고 있지만, 인권에서 자연권으로 의식이 옮아가기 전에 거쳐야 할 생명권에 대한 관심은 쏙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을 사람의 이용대상으로만 여기고 그리 이용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크 롤랜즈는 《동물의 역습》에서 "전세계를 뒤흔든 구제역, 광우병, 조류독감 파동은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한 결과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이윤만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동물을 강압적으로 취급한다"며 학대받는 동물에게도 도덕적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가르쳐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동물사회에도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폭력이론을 뒤집는 이타적 성공전략'을 사용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비투스 드뢰셔, 《휴머니즘의 동물학》, 이마고, 2003)

 

이제는 학교에서도 인권 교육과 생명권 교육이 '따로 또 같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생명권은 인권의 확장된 개념이자 온전한 개념이므로, 생명권 교육과 인권 교육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킬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생태주의 운동은 보완되어야 한다

 

 


▲ 육식동물이라도 다른 동물을 좁은 공간에 평생 가둬키우다 잡아먹지는 않는다. 고기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해, 사람들은 동물들을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 PETA


생태철학의 대두로 근대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개발을 향하여 무작정 내달리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완화시키고 자연의 훼손이 가져올 더 큰 피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논리가 생겼습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자연을 배우며 좀더 여유롭고 따뜻한 정서와 꿈을 가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생태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지닌 인간형'을 새로운 인간상으로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생태철학과 생태교육은 저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아이들에게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라고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풀을 쓰다듬어보고 풀은 쓰러지면서 무슨 소리를 내는지, 나무를 두 팔로 안아보고 뺨에 닿는 감촉을 느껴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들어보고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감수성을 섬세하게 발달시킬 뿐 아니라, 다른 존재를 귀하게 여겨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면 '신령한 기품'인 '영성'을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신령한 기품은 다른 존재를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존귀하게 여기고 그 존재를 지키려는 행동을 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통상 식물보다 사람과 훨씬 가까운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습니다. 사람과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공통점도 많고 교감도 더 많이, 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과 공통점이 많은 만큼,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불안, 고통과 스트레스의 표현이 인간을 닮았고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고통스러울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동물들부터 고통을 제거해주려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하등한 동물, 또는 식물의 고통 운운하는 것은 동물 이용에 대한 기득권을 버리고 싶지 않은 자의 변명이 아닌지요.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해서 동물에 대해 배려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여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올바른 관점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정신문화의 건강성, 서로를 배려하고 사람들 간에, 또 생명체 사이에 어떻게 관계 맺는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한 우리의 환경입니다.

 

끝으로, 함께 새겨보고 싶은 말씀들을 옮깁니다.

 

“피조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서 항상 볼 수 있듯이 모든 인간은 나치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 인간 종이 아닌 다른 종들을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만함이, '인종주의'와 '힘'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원칙들을 대변한다.” - 헤르만(H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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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에 국한시킨 인권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극복할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생명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대가로 성취된 인권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권이 아니다. 누릴 수 없는 공허한 논리일 뿐이다. 결국, 인권의 범주는 생명이라는 범주와 환경이라는 범주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 경기민주언론연합 사무처장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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