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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디자인] 신체-기계간 잡종의 밑그림, 사이보골로지

신체-기계간 잡종의 밑그림, 사이보골로지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사이버공간, 사이보그, 사이버펑크 등의 용어는 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디지털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화두였다. 신문, 방송, 잡지 등에 등장했던 광고들은 곧잘 이 새로 운 '사이버'란 접사의 수식어를 애용하곤 한다. 사이버공간이 시/공간의 변화와, 사이버펑크 가 디지털문화와 인연이 있다면, 인간의 신체 변화를 염두에 둔 수사는 '사이보그'다. 사이버 네틱 유기체이자 자율적 인간-기계 잡종인 사이보그는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이 크게 달라졌 다. 한 시대의 사이보그는 그 시대가 지닌 사회적이고 기술적인 모습을 상당 부분 반영한다. 의족이나 의수, 보청기, 안경, 인공 심장 등에서 보다 많은 기계의 부품들을 가지고 인간 신 체의 일부를 보완, 확대하거나 대체하는 보철물에 이르기까지, 신체에 감기는 부속 기계에의 의존은 지극히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신체-기계의 관계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지금의 사이보그에 대한 시각에는 혹시 어떤 잘 못된 의도나 설계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는가? 이 글은 신체-기계의 잡종화(hybridization)에 대해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과 이를 통해 그 현재적인 함의를 찾아보려는데 있다. 신체-기계 사이보그란 용어는 1960년 맨프레드 클라인(Manfred E. Clynes)이 쓴 '사이보그와 공간' 이란 논문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사이보그라 얘기할 수 있는 최초의 존재는 이보다 더 거슬 러 올라가는데, 1950년대 뉴욕의 로크랜드(Rockland) 주립병원 실험실의 흰쥐 한 마리가 그 공식적 출발이었다. 쥐의 심리적 반응을 보기위해 몸에 부착된 작은 펌프를 통해 화학물질 을 주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장치가 최초의 신체-기계간의 결합이었다. 사이보그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어땠을까? 사이보그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복잡 한 기계장치를 지닌 '로봇'(robot)이다. 일반적으로 로봇은 인간보다 기계에 가깝다. 간단한 메모리 칩에서부터 다양한 프로그래밍을 입력하여 반응하는 로봇에까지 종류와 기술 수준이 다양하나, 로봇은 어디까지나 기계에 불과하다. 로봇의 좀 더 발전된 형태로 '안드로이 드'(android)를 꼽을 수 있다. 안드로이드는 기계공학의 정수다. 가장 인간에 가까운 로봇 인 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무실이나 전투용으로 개발되는 각종 인공지능 로봇 등이 이에 속한 다. 안드로이드를 로봇과 분리시키는 가장 큰 근거는 인간의 모습을 취한다는 점에 있다. 마 치 한 줌의 진흙으로 신이 인간을 빚어 생명력을 불어넣듯, 인간들은 자신의 외양을 흉내내 어 로봇 인간을 만들어냈다. 물론 안드로이드의 한계는 감정과 추억의 부재다. 감정이 없음 은 인간이 지닌 미묘한 오감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함을 나타내며, 추억이 없음은 인간이 지닌 노쇠와 생식의 불가능성을 상징한다. 예컨대,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안 드로이드의 대표적 유형으로 들 수 있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 만든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 등장하는 '레플리컨 트'(replicant)는 이런 점에서 한 단계 발전한 신체-기계의 유형이다. 레플리컨트에는 생명공 학의 기술적 결과물들이 함유되어 있다. 레플리컨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되묻 는다는 점에서 보다 인간에 근접해 있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도 인간과 구분하기 힘들지 만, 복제된 각각의 추억이 진실이 아님을 인지한 후에 떨리는 망막은 레플리컨트의 존재론 적인 실체를 인간과 분리하는 단서가 된다. 그래서 이들의 사냥꾼인 블레이드 러너가 묻는 질문은 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과거의 향수와 기억에 관련된 것들이다. 사이보그의 궁극적 원형은 인간의 기억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로보캅'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70년대 텔레 비전 시리즈물 [6백만불의 사나이The Six-Million-Dollar Man] 또한 로보캅과 비슷한 사 이보그의 유형으로 들 수 있다. 어쨌든 로보캅은 불의의 사고로 사이보그로 새롭게 태어났 지만, 한 가장으로서의 인간, 사적이고 감정적인 기억들을 지닌 인간으로 되돌아가려는 로보 캅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이보그의 전형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과 기계가 합치되었어도 로보캅은 인간이 지닌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신야 추카모토(Shinya Tsukamoto)의 [테추오2: 신체병기Tetsuo II: The Body Hammer]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 습은 로보캅의 탄생과 비슷한 스토리를 지닌다. 가족의 사고와 분노, 뒤이은 주인공의 사이 보그화, 그리고 존재론적 방황 등등. 어쨌거나 로보캅과 테추오에 등장하는 현실은 참혹하 다. 기억의 성소는 가족에만 한정된다. 그 성소를 짓밟는 현실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기계의 몸이 필요하고, 신체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데 이용된다. 현실의 적에 대한 분노와 제거까 지를 합리화하는데 사이보그의 신체 기억을 전제한다는 점은 결국 이 영화들을 뻔한 권선징 악의 논리를 따르게 하지만, 사이보그를 보다 인간에 가깝게 다가서게 만들었다. 신체-기계-네트 이제까지의 사이보그들이 주로 객관화된 실체로서의 신체-기계의 발전이었다면, 새로운 사이보그의 현실은 네트에 의해 마련된다. 이제 사이보그는 네트에 접속된다. 사이보그 자체 가 네트라는 정보의 바다에 데이터 혹은 콘솔처럼 기능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컴퓨터 역 사를 보면 개인 피시 시대에서 이들을 연결한 인터넷 시대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제까지 인간과 기계와의 잡종이 독립된 신체-기계만을 염두에 두었다면, 네트로 인해 사이보그는 서로 접속 가능한 신체-기계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마모루 오시이(Mamoru Oshii)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chell]에서는 사이보그가 네트 에 접속하기 위해 목 뒤 포트 깊숙히 연결 단자를 삽입한다. 일반적으로 신체-기계가 네트 에 접속되는데는 신체 신경이 흐르는 맥(脈)을 포트로 활용했다. 워쇼스키(Wachowski) 형 제의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에서도 해커 혁명가들이 매트릭스에 들어가기 위해 목 뒤 의 포트를 이용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nenberg) 감독의 [엑시스텐츠 eXistenZ]에서는 가상의 세계에 접속하기 위해 인간의 등 한가운데 뚫어놓은 바이오포트 (bioport)에 마치 유기체같은 포드(pod)란 콘솔을 연결시킨 인간을 지켜볼 수 있다. 목 뒤나 귀밑, 척수, 머리 정수 등은 특히 SF 픽션의 세계에서 주체의 '중력이탈'(escape velocity)로 이끄는 중요한 모뎀 포트로 활용된다. 픽션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이버네틱스 연 구자인 케빈 워익(Kevin Warwick)은 신체 반응의 신호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칩을 자신의 팔의 신경망 안으로 이식함으로써, 사이보그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위예술가인 스텔 락(Stelarc) 또한 신체 확장 실험의 일환으로 로봇을 이용하거나, 더 나아가 자신의 팔 안에 이식된 칩을 이용하여 무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팔을 원격으로 조정하는 실험을 장기적으 로 벌이고 있다. 특히 공각기동대의 가장 진일보한 측면은 네트를 통해 사이보그의 재생산과 생식의 가능 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여전사는 끊임없이 자신의 근원이 어딘지에 대한 존 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이 점에서 사이보그는 매우 인간적으로 비춰진다. 또한 그녀는 몸체 없이 네트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디지털 덩어리와 합쳐지면서 새로운 사이보그로 다시 태 어난다. 이는 인간 자궁에 의한 생명의 탄생만큼이나 혁명적 인간-기계관이다. 비록 인간과 똑같은 기억과 추억을 지니고 있진 않았지만, 공각기동대의 여전사는 네트를 통해 다른 기 계와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자아를 가진 사이보그로 거듭난다. 이는 정보와 정보가 합쳐져 새로운 정보로 태어나는 네트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이보그 또한 정보의 원리 에 따라 새로운 주체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진일보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국 신체-기계의 독립된 사이보그 모형이 현실을 적으로 보고 이를 부정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하기 위해 만들 어졌다면, 새로운 사이보그 주체는 힘의 근원을 신체적 연장에서 찾기보다 네트에 접속함으 로써 여기에서 흘러드는 무한한 능력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마치 어머니의 품안에 서처럼 네트를 통해 사이보그는 배양되고, 기계 확장을 통한 독립된 힘의 극대화보다는 네 트에 연결되어 성장하는 신체-기계로 초점이 옮겨간다. 사이보기즘에서 사이보골로지로 현실적으로 사이보그 이미지는 힘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현실이 제시하는 압도적인 힘 의 우위에 대해 가녀린 인간이 이를 벗어나려하는 상대적 힘에 대한 열망과도 같았다. 도구 를 사용하는 인간으로서의 호모 파베르라는 인간의 위상은 수천 수만년을 거쳐 진화하면서 신체내에 기계를 두고자하는 바람으로 발전했다. 신체 연장인 기계력에 의해 현실을 제압하 고자 하는 인간 욕망은 필연적이었다. 문제는 이같은 욕망의 언저리에 항상 '사이보기 즘'(cyborgism)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욕망과 물신(fetishism)이 배다른 한 쌍으로 기 능하는 것처럼, 사이보그가 되고자하는 욕망에는 물신의 논리가 교묘히 기어든다. 힘에 대한 동경은 인간 신체에 대한 상대적 결핍을 미워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사이보그가 되기위한 상품 소비의 길로 내어몬다. 오감을 확장하기 위한 각종 가전제품의 소비는 사이보그 인간 의 필수품이다. 시각을 확장하기 위한 디지털 캠코더, 청각을 위한 디지털 오디오, 네트에 접속될 수 있는 최상급 버전의 노트북이나 몸에 차는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휴대 폰 등등 어디에서든 사이보기즘의 욕망을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이제는 신체-기계가 아닌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몸 곳곳은 이미 신체-기계 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네트는 그 과정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24시간 내내 인간은 네트에 접속하여 살고 싶어한다. 신체-기계-네트의 새로운 사이보그 인간형이 도처에서 등장한다. 새로운 인간형이 지닌 긍정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이보기즘의 유혹이 도사린다. 사이보 그가 되는데 경제적 능력이 요구되거나, 좀 더 나은 브랜드 네임을 가진 부품을 구입해야 한다면 미래는 암울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사이보그가 되라고 광고 등을 통해 누군가가 억 지로 강요한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항상 최상의 모델을 위해 끊임없이 소비하는 사이보그 주체,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된다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사이보골로지'(cyborgology)는 사이보기즘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대안이다. 애초 이 용 어는 사이보그를 연구하는 크리스 헤이블스 그레이(Chris Hables Gray)란 교수가 사용했다. 그는 이 용어를 사이보그를 다루는 모든 학문간의 경계를 넘자는 취지에서 제기했다. 그것 이 사이보골로지이던 사이보그학이던 용어의 태생적 의미에 개의치 않는다면, 인간이 도구 를 통해 진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네트의 결합을 통해 또 다른 신체의 진화를 도모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의의를 지닌다. 단 인간의 사이보그 욕망과 상업적 논리가 교묘히 결합된 사이보기즘의 물신론을 넘어서서 인 간-기계-네트의 존재인 인간에 대한 현실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사이보그의 논의는 추상적이었고, 그나마 현실적 논의는 상업적 물신론이 개입된 사이보기즘이 지배적 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자가 보는 사이보골로지의 궁극적 비전이다. (웹디자인 20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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