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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디자인] 가상 현실의 진정한 꿈

가상 현실의 진정한 꿈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누구나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호기심을 갖고 대한 적이 있을 것이다. 80년대 중반 이후로 미래 SF영화들의 소재에는 끊임없이 가상현실의 현대적 기법들이 시도되었고, 그것 자체가 영화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다. 비록 현대의 첨단 기술 과 함께 본격화되었지만, 인간에게 가상현실에 대한 욕망은 이미 태고적부터 존재했다. 우리 는 로마의 자연주의자 플리니(Pliny)의 이야기 속에서 거의 2천여년전 사람들이 가진 가상 현실의 비전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로부터의 신화이지만, 현대 가상현실의 모 습에 가장 근접해 있다. 여기 고대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두 가상현실 프로그래머간의 일화 를 인용해 본다. "파르하시우스(Parrhassius)는 제우시스(Zeuxis)의 동년배이자 경쟁자였다. 기록에 따르면, 한번은 이들이 그림을 그려 경쟁하였다. 제우시스는 너무도 솜씨좋게 포도 그림을 그려서 새들이 날아올라 그 가상의 포도를 쪼기 시작했다. 곧이어 파르하시우스는 너무도 실물과 똑같은 커튼 그림을 그렸다. 새들의 행동에 의기양양한 제우시스는, 파르하시우스에게 당장 그 커튼을 걷고 그림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제우시스는 그 자신의 말이 실수였다는 것을 한참 후에서야 깨달았다. 제우시스는 포도 그림을 통해 단지 새를 속였다면, 예술가인 그 자신을 깜빡 속인 파르하시우스에게 겸손한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선 경쟁에 졌음을 시인했다." 이 인용문의 내면에는 인간이 바라는 근원적 소망이 깔려있다. 그것은 태고적 인간이 지진 사물의 완전복제(essential copy)의 소망이다. 완전복제의 추구는 현대 가상현실 기술의 바 탕이다. 인간의 지각을 속이는 수단을 개발하는 것이 가상현실의 목적이다. 인간의 감각을 철저히 착각하게 만들어 진짜인 것처럼 기만을 유도하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것이 인간 이 가진 또 하나의 욕망이자 꿈으로 자리잡았다. 가상현실의 꿈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 꿈은 어떻게 진화되었으며, 그것의 진정한 목표는 무얼까? 이제부터 그 꿈을 따라가 본다. 1. 가상현실의 흐릿한 꿈들 가상현실의 꿈은 최초 완전 복제에 대한 소망으로 표출된다. 화가의 경우, 자신의 캔버스 를 통해 가상세계로 가는 거울 혹은 마술창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치 세계를 창문 을 통해 보는 것처럼 리얼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생각은, 대표적으로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알베르티(Leone Battista Alberti)의 작품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알베르티는 투시도법 기 술을 통해 너무나도 완벽한 그림을 제작함으로써 마치 창을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주 었다. 사진 기술의 도래와 함께 완전복제의 꿈은 더 한층 강화되었다. 1857년 홈즈(Oliver Wendall Holmes)는 그 당시 최초로 입체경을 만들어 착용함으로써, 가상현실의 미래를 보 여주었다. 홈즈는 입체경을 통해 마치 3차원처럼 나타나는 사물을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매 체 혁명의 도래를 예견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완전복제의 꿈이 보다 선명해진 다. 특히 1930년대 초에 이탈리아의 미래파(Futurist)와 같은 예술가 그룹은 텔레비전과 라 디오의 기술력에 열광하면서, 가상현실의 도래를 광신적으로 선전했다. 미래파는 원격재현 (telepresence)의 비전에 덧붙여, 근육노동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정신을 무한히 자유 롭게 만드는 미래의 기계를 예감했다. 완전복제와 가상세계에 대한 소망은 컴퓨터혁명의 시작으로 보다 구체화된다. 2차 대전 이 거의 끝날 무렵 나온 배니버 부시(Vannevar Bush)가 내논 미멕스(Memex)의 청사진([ 웹디자인] 12월호 참고.)은, 이후 고등연구기획국(ARPA), 제록스 파크(XEROX Park)의 스 탠포드 리서치 연구소(SRI),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연구소의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심대한 영 향을 끼쳤다. 홈즈의 3차원 입체 사진에 매료된 것을 반영하듯, 부시는 입체기술의 향상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고 역설했다. 부시의 미멕스(Memex)와 더불어 완전복제의 개념에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진다. 그가 언급한 장치인 미멕스를 통해, 완전복제의 개념은 모든 정 보의 가상환경으로 발전한다. 그의 미멕스는 정신이 생동하며 활동하는 환경이다. 부시는 현 대적인 형태의 가상현실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부시의 현대적 비전은 모튼 헤이리그 (Morton Heilig)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감각 경험과 일치한다. 헤이리그는 1950년대초 입체영 화인 시네라마(Cinerama) 등에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느낀 시네라 마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 중대한 충격을 주었고, 가상현실을 향한 태고적 비전을 이어받게 만들었다. 1955년에 출간된 그의 책 {에스파시오스(Espacios)}에서, 우리는 감각적 현실의 완전복제 기술에 대한 태고적 소망이 현대에 이르러 다시 되풀이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 다. 후에 가상현실 엔지니어들은 1962년 특허권을 획득한 헤이리그의 다중감각 시뮬레이터, 센소라마(Sensorama)의 '체험극장'(experience theater)에 대한 비전을 구체화한다. 헤이리그의 이 탑승 여행기계는, 결국에 다중감각의 체험 매체를 만들기 위한 가상현실 계획의 일부가 된다. 2. 가상현실의 보다 선명한 꿈들 가상현실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궁극의 매체'(ultimate media)로 바라보는 현실적 시각 은, 컴퓨터 그래픽과 가상현실 분야에서 선구자였던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의 작업 을 통해 나왔다. 1960년대 서덜랜드는 가상현실 기술의 기초를 세운다. 그는 디지털 컴퓨터 에 연결된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물질세계의 현실화할 수 없는 개념들에 대한 친근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고 보았다. 이 매체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안경이자 컴퓨터에 의 해 존재하는 물질을 통제하는 방과 같다고 보았다. 현대의 가상현실 체험의 비전과 유사한 서덜랜드의 생각은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설득력을 얻었다. 서덜랜드의 꿈은 가상현실의 실현을 이끄는 논의들 중 하나였다. 가상현실이란 용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쟈론 래니어(Jaron Lanier)의 덕 이다. 음악가이기도 한 그는, 가상악기인 '에어기타'(Air Guitar)를 선보일 정도로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1989년에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시뮬레이션에 몰입할 수 있는 머리에 쓰는 디 스플레이(HMD)와 데이터 장갑(data-glove)을 고안해낸다. 그는 92년 VPL이라는 자신의 회 사를 통해 이 새로운 가상현실 장비들을 소개했다. 래니어는 가상환경, 가상세계, 가상공간, 인공현실 등의 단어들을 지금의 '가상현실'이란 용어로 통합하였다. 그는 가상현실이 인간과 기계간 상호작용의 궁극적 형식이자, 인간의 정신을 확장하는 최초의 매체로 보았다. 래니어 의 이러한 가상현실 개념과 실험은 언론에 의해 빠르게 전파되었고, 대중에게 그 상호작용 기술에 대한 유혹을 불러일으켰다. 가상 기술의 군사적 응용이 지배적이었던 상황에서, 래니 어의 가상현실은 대중화로 이끄는 첫걸음이었다. 한편 가상현실 체험을 문화적 극단에서 표현한 대표적 인물은, 히피들의 우상이었던 티 모시 리어리(Timothy Leary)다. 리어리는 체험을 조절하는 마약, 특히 환각제의 일종인 LSD와 가상현실 기술간의 관련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졌다. 그에게 마약은 지각을 변 화시키는 전통적이고 저기술(low-tech)의 통제하기 어려운 수단이라면, 가상현실은 실리콘 의 정교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정신 몰입의 장치였다. 일부 과학자들이 가상현실 체험의 일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마약에 대한 은유를 이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리어리의 생각과 괘를 같이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과학자들은 래니어나 리어리와 같이 대중적 센세이션을 추구하는 이들을 기피했고, 특히 마약과 가상현실간의 관련성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꺼려했 다. 3. 가상 현실의 진짜배기 꿈 이제까지 가상현실의 계보를 통해서 두 가지 공통점을 끌어낸다면, 하나는 가성성 혹은 의식 확장의 욕망, 다른 하나는 이로부터 생기는 인간 오감의 경이감 혹은 몽환 (hallucination)의 느낌이다. 전자가 목적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그 부산물이다. 전자가 기술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문화의 영역이다. 인류가 꿈꿔왔던 가상현실은 이 두 가지의 상호 과정이었다. 후자가 없었다면 전자의 과정은 지루했을 것이다. 반면 전자가 없으면 후자는 한낱 꿈으로 끝났을 것이다. 가상성과 의식 확장의 욕망은 새로운 정보 현실을 만들었다. 이제는 3차원 공간, 음향, 촉 감, 냄새, 그리고 움직임의 물질 세계를 거닐 수 있도록 기술이 진전되었다. 정보를 가상 현 실화하는 것은 정보에 보다 감각적인 특성을 부여하며, 궁극적으로 사이버공간의 거대한 바 다를 보다 수월하게 항해하게 만들 것이다. 가상현실 기술의 3차원 인터페이스는 사이버공 간의 광대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정보를 조직하고, 여행하고, 찾아내는데 손쉬운 도구 역할을 한다. 맥루한(Marshal McLuhan)은 이미 신체가 근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이고 물 질 세계가 그 신체의 내용임을 분명히 했다. 맥루한이 지적한 것처럼, 모든 미디어는 '감각 의 확장' 혹은 감각을 전하는 통로이다. 가상현실은 인터페이스 설계에 있어서 신체 감각의 확장에 초점이 맞춰진다. 가상현실 인터페이스의 목표는 인간의 감각을 전하는 통로들의 완 전 몰입을 통해 컴퓨터로부터 생생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가상현실 시스템에서 신체는 커뮤니케이션으로 감싸지고 정보로 맥박친다. 이제까지 미디어는 항상 외부 환경이 었다. 다시 말해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란 매체는 그것이 이용되는 방과 이를 보고 듣는 사 람들을 지배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의 환경은 인간의 감각들을 철저히 에워싼다. 물리적 현실 로부터 생기는 감각의 투입을 막아야만 가상현실 체험은 완벽해진다. 감각은 가상세계에 몰 입되어야 한다. 신체는 가상현실의 리얼리티 엔진에 맡겨진다. 두 눈은 머리에 쓰는 HMD로 덮인다. 실제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두 귀는 헤드폰으로 감춰진다. 현실을 둘러싼 음 향은 사라진다. 양손은 데이터 장갑을 낀다. 이로써 가상현실에 들어갈 수 있다. 이처럼 가 상현실 인터페이스의 논의는 항상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인 신체와 그 신체의 감각을 전하는 통로가 확장되는 방식에 대한 문제로 돌아간다. 가상적인 감각 확장으로부터 체험자는 몽환과 경이감을 겪는다. 실제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와 포용 능력을 넘어서면, 신비스런 감각 체험을 불러온다. 몽환은 가상 현 실 기술을 이끄는 힘이었다. 마치 리어리의 LSD에 의한 몽환 실험처럼, 가상현실이 인간을 끊임없이 사로잡은 매력은 이를 통해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꿈꾸는' 것이 가능했기 때 문이다. 그래서, 래니어는 가상현실을 '전자 LSD'로 표현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우 리는 가상현실을 통해 추상화된 코드와 상징을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주택' 이란 단어와 같이 어떤 빈약한 상징을 주고받는 대신에 우리는 3차원 환경의 주택을 거닐며 '주택'을 음미할 수 있다. 이를 래니어는 '탈상징적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진입했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사물 그 자체 안에서 거주하는 시대이다. 그에 따르면, 상징은 인간이 교환하는 단어보다는 상징화된 사물에 가까운 어떤 것, 사물 그 자체(thing-in-itself)로 대체된다. 언어적 상징에 의해 감지할 수 없었던 내용이 가상 현실이 주는 체험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감각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의 3차원 모델이 "주택"이란 단어보다 더욱 많은 정보가 전달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택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리란 보장은 없다. 가상현실은 진짜 사물 혹은 진짜 경험을 전달하기 보다, 어느 누군가의 생각에서 만들어진 관념으로부터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가상현실 안에서 3차원 주택은 단지 프로그래머가 느끼는 주택의 경험에 대한 정신 모델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이것은 정보를 훨씬 나은 방식으로 코딩하는 것이다. 가상(virtual)이란 말이 너무나 진짜같은 가짜의 현실을 지칭한다는 점은 이와 관계한다. 가상현실의 위험성은 인간의 의식을 확장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프로그래머들이 만든 가상현실의 세계에 감각을 몰입하여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 세계는 진짜의 세계가 아니라 허구의 세계다. 이 진짜같은 가짜 세계는 인간의 감각을 현실로부터 낚아챌 수도 있다. 세계 의 디지털 라이브러리에 보다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상현실 인터페이스의 역할이 인간의 오감을 영원히 현실로부터 닫게 만들고 인간을 현실과 대치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신체를 버리고 가상현실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하는 SF영화속의 캐릭터들은 존재하는 현실보다 경이감과 몽환을 불러오는 가상의 세계를 진짜로 여긴다. 결국 가상현실의 인터페 이스는 존재하는 현실의 거부가 아니라 확장으로만 기능해야 한다. 물론 가상현실 기술의 전제는 인간 의식의 그 모든 역동성과 뉘앙스를 담아낼 수 있는 인터페이스여야 함은 물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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