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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에총/월간말] '김자지'씨의 수난과 희망

'김자지'씨의 수난과 희망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김자지(金自知)'란 실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한번은 그가 한 포탈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 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려다 번번이 실패했다. 원인은 그 사이트에 소위 유해 정보 차단을 목적으로 설치된 검열 프로그램이 남성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인 '자지'란 단어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몇 차례 업자에게 진정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던 그는 내친 김에 이 름을 아예 '남근'으로 바꿔 등록해버렸다. '자지(自知)'를 '남근(男根)'의 눈으로 단번에 재려는 족속들에 대한 그의 통렬한 냉소적 표현이었다. 실제 이 일화는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지만, 국내 여건도 이 에 못지 않다. 자퇴생 사이트 아이노스쿨 폐쇄, 누드사진을 올린 한 시골 교사의 홈페이지 폐쇄, 동성애자 카페들의 잇따른 폐쇄 등은 김자지씨의 어처구니없는 수난과 맥을 같이 한 다. 엄밀히 보면 이름값을 톡톡히 치른 김자지씨의 경우가 기술적 장치에 의한 사전검열의 피해자라면, 올들어 진행된 사이트들의 각종 폐쇄 조처들은 법적 근거를 내민 사후검열의 피해자들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검열의 주관적인 잣대를 예사로 들이대긴 다같이 동속이 다. 이처럼 내용에 등급을 매겨 차단하는 검열의 빗장은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장치 모두에 걸쳐 있다. 정보 선진국의 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정보통신윤리위원회란 준사법기구가 전면에 나서 고 일명 '통신질서확립법'이 발효됨으로써, 인터넷공간에는 '유해'한 디지털 정보를 사그리 불태우려는 분서갱유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인터넷 정보에 대한 강력한 규제 장치들이 사회 적 여과없이 '질서확립'의 끈을 두르고 수많은 선량한 '김자지'씨들을 남근의 몽둥이로 후려 치려 하고 있다. 악법은 대개 모호할수록 효력을 발한다. 모호함은 자의적이고 주관적 해석을 돕고, 적용 대상과 범위의 한계를 비웃는다. 이번 '통신질서확립법'도 '내 맘대로'와 '누구나'를 특기로 삼는다. '윤리위'에서 만든 내용등급의 '질서'를 '내 맘대로' 강제 '확립'하고, 이를 어기는 모든 정보제공자는 '누구나' 그 처벌의 굴레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내 맘대로'에 걸리면 정치적 표현물 등 청소년의 '유해'와 무관한 정보도 위협받기 쉽다. 또한 '누구나'란 대상에 끼지 않기 위해서 사업자건 개인이건 자나깨나 자기검열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어쨌거나 말많은 악법은 이미 발효되었다. 이제부터는 이 악법에 대한 지속적 감시가 필 요하다. 규제 범위를 넘어선 표현 자유의 심각한 침해건들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 련 정보운동단체들의 연대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법률자문을 받을 수 있는 상시적인 통로 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강제적인 법 집행이 자연스레 개별 정보들에 들러붙는 프로그램 '코드'의 검열로 옮겨가는데 대한 대비도 시급하다. 각종 정보차단 프로그램들의 효과 분석 과 문제점 진단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악법에 저항한 진보 넷 등 국내 정보운동단체들의 활동이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을 한층 밝게 했다. 해외 관련 시민단체들과 사안별로 공유할 수 있는 전술적 고려도 필요하다. 인터넷은 더 이상 완벽한 자유를 보장하는 디지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현실의 권력은 네트에 터를 잡고 각종 정보에 검열의 자의적 가위질을 시도하려 한다. 물론 그 방식은 폭력적이기보다는 점점 정교해지고 은밀해진다. 부지불식간에 인터넷의 자동 차 단된 검색 목록에 자신의 페이지가 올라올 수도 있다. '김자지'씨처럼 타고난 이름이 '외설' 로 취급되면 자동으로 정보 접근에 막히는 억울한 경우도 일어난다. 하지만, 인터넷은 완벽 히 통제가 가능한 공간도 아니다. '김자지'씨가 '남근'이란 가명으로 바꿔 천편일률적인 검열의 날을 피해 오히려 이를 조롱하듯, 인터넷에는 통제에 대비한 우회로가 항시 열려 있다. 이것이 수많은 건전 명랑한 '김자지'씨들에게 검열의 속박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근 거다. 민예총,『일일문화정책동향』. 2001. 7. [월간 말] 2001 년 9 월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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