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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자유주의 시민운동의 허약증후군

자유주의 시민운동의 허약증후군 //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광풍이 인다. 미국은 정체불명의 '선악' 편가르기 전쟁에 빠져, 그 누구의 제지없이, 그 누가 억울하게 당하는지도 모른 채 제멋대로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뉴욕의 동시다발 테러 이후 이름값하는 거대 언론사들의 보수적 논조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내용이 지면과 방송을 장식하는 동안, 눈먼 폭탄에 스러진 아프간 양민들의 떼죽음은 아랑곳없다. 이에 질세라 언론을 쥐락펴락하며 왜곡 정보를 키우려던 국방부의 '영향정보국'의 구상이 억세게 운이 나빴던지 전세계 여론에 밀려 어쩔수없이 문을 닫게 됐다. 각종 인권 침해 소지를 안은 소위 '애국법'과 각종 보안, 감시법안들이 칼춤의 미친 바람을 부채질한다. 엄청난 반동의 흐름에 딴지를 거는 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힘은 미약하지만 애국주의의 대중 최면을 막아보려는 자유주의 시민운동단체들과 비판적 지식인들이 존재한 다. 하지만, 이들에서도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일부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미친 칼춤의 동조자로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해말 <뉴욕타임스>에 꽤 유명한 한 시민운동가가 글을 기고해 논란이 일었다. 문제가 된 '전자 신원카드(national ID card)를 왜 두려워하나' 란 칼럼에서 그는 잠재적 테러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지문 판독용 칩을 내장한 전자 신원카 드의 도입을 뜬금없이 제안했다. 시민의 프라이버시 권리는 상황에 따라 그 기능이 달라져 야 하며, 국가 위기시에 그 권리를 돌볼 여유는 없다며 전자 신원카드 도입의 당위성을 강 변한다. 불과 두어 해 만에 급부상해 인터넷 시민운동단체로 자리잡은 '프라이버시재단'도 매한가 지다. 덴버 소재의 이 재단은 이제까지 디지털 녹화장치 '티보'에 의한 시청자 감청, 웹 페이지에 숨겨진 그림파일 '웹버그'와 전자우편을 통한 인터넷 이용자 감청, 각종 첨단장치에 의한 노동자 감시 등 기업들의 최첨단 정보 수집 능력을 폭로해 언론의 큰 관심을 끌어왔다. 그런데, 이 단체의 영향력을 좌우했던 한 활동가가 안면 판독과 전자 신원카드의 개발을 주 업종으로 삼는 보안업체를 차려 독립한 일이 생겼다. 어이없게도 정세 변화의 흐름을 탄 그 의 '기회주의적' 행보로 프라이버시재단의 장래가 아예 불투명하게 바뀌었다. 이미 애국전의 수행 이전에도 일부 시민운동진영, 특히 정보운동단체들에게서 그 보수적 징후들이 돌출하곤 했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폭넓은 인권 해석을 소비자 권리 로 한정해 인터넷에서 나치물품 경매를 옹호하거나 인터넷상의 인종차별이나 어린이 프라이 버시 보호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전자프런티어재단(EFF) 등의 여러 정보운동단 체들은 이미 자신들의 부실한 정치적 지향들을 하나둘 드러낸 경험이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서 특히 이들의 보수적 입지가 드러나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시장 자유주의'의 철학에서 비롯한다. 계급이나 시민 개념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 주체 인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그 권리 신장에만 주력해온 시장주의 원칙이 이들 입지의 보수성 을 키워왔다. 그래서, 안건이 사회·정치적 논의로 확대되면 속수무책이거나, 심지어는 보수 집단의 바람잡이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주의를 소비권 확대로만 재려다보니 보다 큰 시야를 잃고만다. 다시말해, 넘쳐나는 '시장'에 비해 이들의 자유주의에는 '사회'가 빈곤했다. 소비자 권리의 일반화에 급급하면, 자연 일국내 혹은 국가간의 역사적 특수성과 맥락이나 사회적 불균등에서 비롯된 인권 침해 요인들을 간과하는 오류가 생긴다. 나치 옹호론도 그 빗나간 경우다. 소비자 중심주의와 시장 자유주의에 정신이 혼미한데다, 대정부 로비 중심의 활동, 비대화된 조직 구조 등 미 시민운동계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안에서부터 좀먹는데야 어찌 파시즘의 칼춤 장단에 휘둘리지 않고 견디겠는가. (진보넷 원고 200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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