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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노트북 혹은 넷북의 불안한 미래

미니 노트북 혹은 넷북의 불안한 미래


2009년 2월호


이광석


한때 필자는, 애플 노트북 가운데서도 이제는 단종이 돼서 중고 시장에서나 구할 수 있는 12인치 애플 파워북을 꽤나 좋아했다. 한 십여 년이 지난 골동품 모델이다. 이 모델은 사실상 애플 역사 이래 최고로 작은 노트북이었고, 애플사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이처럼 작은 모델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래서인지 몰라도 이 12인치 모델은 희귀종으로 취급돼, 중고시장에선 지금도 이를 구하려면 어지간한 새 노트북 가격으로 흥정을 붙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애플은 더 이상 12인치 노트북을 만들지 않을까? 지금처럼 모두가 ‘경박단소’의 IT장비만을 선호하는데 말이다. 추측컨대, 당시 노트북 화면이 좌우로 넓어지는 와이드 쪽으로 흘러가면서, 13인치 이상이 최적으로 평가됐을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이를 제외하면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12인치의 종말은 문화격차다.

미국 대학에 가보면 우리처럼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노트북을 쓰는 학생들을 발견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요새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넷북이나 작은 사이즈의 노트북이 아니라, 보기에도 육중한 15인치 이상급 노트북을 끼고 작업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혹 예외적으로 세련되고 아주 작은 소니나 후지쯔 모델을 쓰는 경우는 있는데, 대체로 한국 유학생을 포함한 동양인들이다.
미국 학생들이 큰 모니터를 끼고 앉는 이유는 작은 노트북이 주는 자판의 불편함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있다. 그들의 긴 손가락으로 두드리기에, 충분한 자판 여백이 없는 작은 크기의 노트북은 실속없는 기기에 불과하다. 지금 필자가 작업하고 있는, 최근 애플 맥북프로 17인치 노트북 시리즈가 그토록 많이 팔리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모델을 처음 샀을 때만해도 그 크기가 너무 부담스러워 교환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도 한국인들처럼 12인치에 열광했었다. 이는 내 나름 IT소비 방식의 한국적 특성에 코드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작고 가볍고 가방에 쏙 집어넣을 수 있고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그런 IT장비로 12인치가 제격이라 본 것이다. 감각의 차이요, 문화의 차이다.  

지난해부터 국내에 미니 컴퓨터와 넷북의 열풍이 분다. 사실상 이 노트북 기술은 애초에 MIT대학의 미디어랩 교수였던 네그로폰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그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인터넷의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저가의 노트북 프로젝트를 고안해 대중화했다. 즉, 아이들의 컴퓨터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컴퓨터가, 대만 등 몇몇 기업가들에 의해 시장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보다 세련된 판매용 노트북으로 개발된 것이다.
아이들의 컴퓨터였다는 사실은, 다른 말로 그 크기에서 체형이 작은 동양인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서양인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아이폰, 구글폰과 같은 스마트폰의 전세계적인 인기를 볼 때, 미니 노트북들 스스로의 위상을 세우기도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가능하다. 결국 그것이 문화 코드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작고 효율적이고 가격면에서 저렴하다할 지라도 또 하나의 잉여기술로 쉽게 시장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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