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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은 예의를 지켜라
한때의 최고 통치권자조차 자살로 이끄는 한국 정치권력을 문제 삼지 않고, 보수 언론 스스로 비극의 공모자임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후 전개될 정국에서 대다수 국민이 이들에게 바랄 기대치란 정말 없다.
[시사IN 90호] 2009년 06월 01일 (월) 10:54:33
이광석
보수 신문 조·중·동 은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기사 대신 북한 핵실험 기사를 머리기사로 다뤘다.
봉하마을과 덕수궁 대한문 앞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기 위한 추모 행렬이 끝이 없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시민에게 광장을 여는 데 불안해하며 경찰 병력과 버스로 틀어막는다.
마 음이 강건한 이는 오히려 불명예와 모욕을 견딜 수 없어서 쉽게 부러진다고 했던가. 비극적 길을 택한 우리의 전임 대통령이 그랬고, 그래서 검찰과 언론 듀오의 ‘모욕주기’의 죄질이 더욱 치졸하고 무겁다. 그런데 KBS는 그와 상관없다며 억울해한다. 조선·중앙·동아 보수 언론마냥 KBS도 봉하마을에서 쫓겨났고, 분향소 앞 시민에게 위협까지 당했다고 푸념이다. 군부독재 시절의 관제방송꼴로 떨어진 데 대해, 분통한 시민의 원성이 담겨 있음을 KBS는 몰라도 한참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과 관련한 KBS의 ‘하찮은’ 오보(노 전 대통령 실족사 오보와 국민장 대신 가족장 결정 오보)를 예서 조목조목 따지고 싶지는 않다. 이병순 사장 체제 이래로 관제화하고 연성화하는 KBS 시사 뉴스 보도의 권력 기생성에 국민이 진저리 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보수 언론의 사설과 칼럼은 여전히 ‘정치적 타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고사하고 ‘제2의 촛불’ 경계론을 펼치며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것을 걱정한다. 북한 핵실험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내환”이요 “갑작스러운 악재”란다. 조선일보식 화답이요, 조선답다.
권력과 보수 언론은 국민의 저항 두려워해 조 선일보의 ‘묻지 마’ 갈등 봉합론에 따르면, “사회·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면 우리 경제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이들의 사설은 시장과 경기 회복을 위해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덮고 가자 한다. 중앙일보는 “추모 열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을 경계한다. 슬픔에 빠져 있는 국민(중앙일보는 이에 앞서 “간혹 슬픔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라고 걱정한다)의 감정선을 앞서서 예단하는 꼴이다. 결국 권력과 보수 언론이 두려워하는 것은 국민의 분노와 저항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유발자’로, 분노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운 듯하다.
때마침 북한 핵실험과 이명박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라는 극한 한반도 정세가 보수와 관제 언론에게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관련 기사들을 대신할 메인 뉴스거리가 호사를 누린다.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비교하면, 보수 언론의 보도 태도는 이렇듯 심히 부끄럽고 후진적이다. 대한문 앞 분향소에 늘어나는 조문객을 위해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이 나서서 장시간 기다리는 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준다고 한다. 또한 누리꾼은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 빈소을 꾸미고 추모의 뜻을 전하며, 추모 노래와 동영상을 만들어 공유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슬픔과 상처를 장례를 통해 대강 봉합하려는 시도는 더 큰 사회 위기를 부른다. 한때의 최고 통치권자조차 자살로 이끄는 한국 정치권력을 문제 삼지 않고, 보수 언론 스스로 비극의 공모자임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영결식 이후 전개될 정국에서 이들에게 대다수 국민이 바랄 기대치란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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