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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저작권, 오만과 미련

미 저작권, 오만과 미련 [한겨레]2001-08-04 05판 10면 130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온나라에 좀도둑이 득실거리니 신경제 시장질서가 엉망이라. 이를 근본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열쇠가게 주인들의 연장을 모조리 폐기하고 거역하는 자는 색출해 가차없이 응징하라!"미국에서 1998년 발효된 이른바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의 서슬이 시퍼런 내용이다. 정보를 '정당하게 이용'하는 이들을 좀도둑으로 몰고 닫혀진 시장 정보를 해독하는 열쇠가게 주인들을 잡아들이고 그 해독기인 열쇠공구(개발툴)까지도 없애려는 것이 이 악법의 음습한 목적이다. 옛 저작권법이 정보도둑을 색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면, 이 법은 복제기술을 개발하는 열쇠가게 주인을 잡기 위해 고안됐다. 책의 복제를 막으려고 모든 복사기를 부수려는 짓과 다를 바 없는 미련함이 배어 나온다. 그런데 지난달 이 악법으로 열쇠가게의 대표도 아닌 한 점원이 구속됐다. 러시아 청년이 이역만리 미국에서 한순간에 디지털 악법의 봉변을 당했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직원이자 대학원생인 드미트리 스킬야노프는 컴퓨터 해킹과 암호기술을 다루는 회의에서 주제발표를 마치고 짐을 싸던 중 들이닥친 연방정보국 직원에 의해 체포됐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어도비의 전자책 리더프로그램의 보안상 허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개발한 암호해독 프로그램을 소개한 혐의였다. 그의 죄라고는 전자책 리더에서만 볼 수 있는 파일을 다른 이름으로 컴퓨터에 저장하거나 복사할 수 있도록 제약을 푼 만능키를 만들었을 뿐이다. 사건은 커졌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내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드미트리를 석방하라'는 시민단체들의 시위와 네티즌들의 구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내 악법을 적용하여 외국인인 러시아 청년을 쉽게 구속한 점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어도비와 정부의 공조에 의한 계획된 탄압이란 점 #대내외적으로 소프트웨어의 보안상 결함을 지적하는 학술적 논의를 침묵시키려 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어도비는 아이피업체에 압력을 행사해 드미트리가 일하는 벤처사의 홈페이지를 수차례 폐쇄시켰고, 정보국 직원과 어도비의 기술진들이 만나 사전에 대책을 모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만들어진 각본에 따라 그는 구속됐다. 이제 어도비는 태도를 바꿔 드미트리의 구속을 반대한다고 나섰다. 부정적 여론으로 시장 지분을 잃을 수 있다는 약삭빠른 행동이다. 이번 사건의 맥락은 저작권자에게 거의 모든 통제권을 부여하는 악법에 휘청거리는 최근 영화와 음반계 열쇠가게 주인들의 수난사와 맞닿아 있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전자출판 시장에도 저작권의 확실한 쐐기를 박겠다는 업계의 무리수에 애꿎은 한 러시아 청년이 희생양이 된 셈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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