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무소불위의 할리우드

무소불위의 할리우드 [한겨레]2002-01-25 05판 07면 1246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한 러시아 청년이 지난해 여름 컴퓨터 보안관련 기술을 발표하기 위해 미국 땅을 밟자마자 구속된 일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노르웨이에서 한 청년이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멀리 떨어진 북유럽 나라 검찰의 기소와 미국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진상은 이렇다. 청년의 이름은 욘 요한센(18)이다. 노르웨이에선 '디브이디-욘'으로 통한다. 그는 3년 전 15살의 나이에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리눅스에서 작동할 수 있는 디브이디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초 국가에서 주는 사회공헌상까지 받을 정도로 자라나는 컴퓨터 세대의 우상이었다. 문제는 그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미국 할리우드에 커다란 위협 요인이 되면서 발생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그의 프로그램은 오픈소스 원칙에 따라 디브이디의 보안 장벽을 무력화해 어디서든 재생과 복제가 가능하게 설계됐다. 그의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전파됐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영화협회는 그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 연결시킨 본보기로 한 해커 잡지의 편집인을 기소해 지난해 두 차례 승소한 바 있다. 당시 재판에 피고쪽 진술자로 참가했던 요한센에 대해 할리우드는 극심한 반감을 품었을 것이다. 이후 그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이끌어내기 위해 할리우드는 여러 해에 걸쳐 로비 공세를 벌이고 국제적 압력을 가했다. 노르웨이 검찰의 기소는 할리우드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 '디브이디복제방지협회'(DVD-CCA)라는 단체와 '노르웨이영화협회'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다. 한 시민단체는 이에 대한 증거물로 두 단체가 노르웨이 검찰에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는 요한센은 물론이고 그의 아버지와 관련자 모두를 사유재산권과 저작권 침해 혐의로 옭아넣을 작정으로 위반 항목을 조목조목 따져 적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를 운영하는 그의 아버지는 홈페이지에 올린 아들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봉변을 당할 뻔하였지만 다행히 검찰의 기소를 피한 상태다. 지금까지 미국 저작권의 위세는 국제 저작권법이나 국제기구, 경제.외교 채널을 통한 국제협상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할리우드의 힘이 다른 나라의 사법권에 압력을 행사해 한 청년을 구속시킬 정도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할리우드에 거슬리면 한 나라의 주권마저도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의 정당한 이용을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한 순진한 북유럽 청년을 단숨에 법정에 세우는 할리우드 자본의 가공할 능력과 끝없는 욕망에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