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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9
    Brassed off
    지수
  2. 2008/08/09
    사랑의 아랑후에스
    지수
  3. 2008/08/09
    아랑후에스
    지수

Brassed off

브래스트 오프

 

    

Brassed off(1996)

 

Brassed off 는 우리말로 하면 열받는, 뚜껑 열린같은 속어이다.

무엇이 그들을 열받게 했을까?

 

1979년 보수당의 승리고 마거릿 대처수상이집권을 시작했다.

그녀는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요성에 입각해 경제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효율성이 나지 않는 탄광을 닫는 일.

 

작품의 가상의 탄광촌 주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힘든 일 속에서도 '그림리' 밴드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연주를 하던 탄광 주민들은

앞으로 닥칠 현실 때문에 자신들의 밴드에 열정을 잃게 된다.

 

하지만  남자들만 득실대던 밴드에 금발의 글로리아가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역전된다.

하지만 밴드의 리더 대니의 진폐증으로 다시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대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밴드의 멤버들을 감동시키게 되고

결국 런던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출처] http://blog.naver.com/lcsj104/1003164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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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크 허먼
출연 이완 맥그리거 (앤디 역) 타라 피츠제랄드 (글로리아 역)
음악 트레버 존스 (Trevor Jones)

줄거리 : 1992년 북부 요크셔의 작은 탄광촌, 보수당 정부가 전격적인 폐광 정책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 지방의 탄광 밴드는 다가오는 전국 대회를 위해 연습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밴드가 있고, 특히 밴드 리더인 대니(Danny: 피트 포슬쓰웨이트 분)의 밴드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대니에게 있어 음악이란 탄광이 정신을 구현해 주는 것이며 그 마을 사람들의 생명력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폐광으로 인해 실업이 널리 확산됨에 따라 그의 동료들은 밴드에 대한 열정을 잃게 된다.

 그러던 중 금발의 글로리아(Gloria: 타라 피츠 제랄드 분)가 탄광촌에 도착, 밴드에 가담하자 그들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된다. 사실 그녀는 그 밴드의 전설적인 지휘자였던 아더 멀린즈의 아름다운 손녀이자 밴드의 전설적인 지휘자였던 아더 멀린즈의 아름다운 손녀이자 밴드 멤버 앤디(Andy: 이완 맥그리거 분)의 어린 시절 연인으로, 밴드가 아니라 직업 때문에 10년 만에 고향을 찾은 것이다. 글로리아의 재능과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순회 경연대회가 시작될 무렵 밴드에는 새로운 열정이 물결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열기는 글로리아가 영국 광산 협회가 경제성 조사를 위해 파견한 감정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격히 식어버리고, 앤디와 글로리아의 관계 역시 위태로와 진다.

 이런 긴장 속에서도 그림리 브라스 밴드는 전국 준결승전에서 우승을 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폐광이 결정된 충격으로 열패감에 쌀에 움츠러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평생을 탄광에서 일한 대니는 진폐증으로 쓰러져 건강이 위대롭게 되고, 1984년 광부들의 파업으로 수감됐던 그의 아들 필(Phil: 스티븐 톰킨슨 분)은 가족, 가정, 일, 살아겠다는 의지 등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러나 진폐증으로 급격히 무너져 가는 대니를 바라보는 단원들은 그로인해 음악을 계속할 자극을 받게되고 반항정신을 회복한다. 게다가 뜻밖의 후원자의 도움을 얻게 된 광부들은 대니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런던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참가하가로 하고 다시 모인다. 마
침내 그들은 마을을 대표하는 대서로서 자신들의 사정을 대외에 알릴 승리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Brassed Off - Rodrigo's Concierto de Aranjuez

 

 

William Tell Overture from "Brassed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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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아랑후에스

Joaquin Rodrigo (1901-1999)

Aranjuez Con Tu Amor(사랑의 아랑후에스)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호아킨 로드리고의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작품 개요 & 배경

1939년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썼다.
이 곡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 중 하나가 됐다.
로드리고가 기타협주곡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친구인 에스파냐의 거장급 기타리스트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1897-1982) 때문이다.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협주곡>은 사인스 데 라 마사의 기타 독주로 1940년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됐다. 오케스트라와 기타의 협연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처음에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청중과 비평가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 남방 72km 정도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이다.
그 궁전은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다.
'마하스(젊은 여인들)와 투우사, 그리고 중남미의 선율로 특징지을 수 있는', 나폴레옹 이전의 마지막 두 왕들이 살던 시대를 '아랑후에스'의 생명 속에 다시 불러들이고자 한 것이 이 곡의 의도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이 지닌 최대 강점은 에스파냐라는 나라와 에스파냐의 민족유산을 음악으로 멋지게 그려냈다는데 있다.
에스파니아 민속악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를 사용해 지중해 생활의 색깔, 분위기, 멜로디, 그리고 발랄함이 커다란 슬픔으로 돌변하는 역설을 용케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드리고의 기타 협주곡 "아랑훼즈"를 작곡자 자신이 하프 협주곡으로 편곡한 것입니다.
로드리고는 작곡을 하면서 꿈 속에서 하프를 날개로 달고 피아노를 꼬리로 하며 기타를 혼으로 간직한 환상적인 악기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친구인 명 하프 연주자인 자바레타를 위하여 편곡한 이 곡이 바로 이 환상적인 악기의 날개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작품해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트럼펫과 호른)를 위한 곡으로 음색이
다양하고 매우 아름답다.

제1악장 :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Allegro con spirito
소나타의 전통적인 형식을 갖춘 이 악장은 중부 에스파냐의 명랑한 구애의 민속춤 판당고를
연상시킨다. 제1악장은 기타가 잔잔한 저음을 배경으로 깔면서 시작된다.
첫 악절에서는 그 악장 전체를 흐르는 리듬을 제시한다.
6개의 8분음표가 3박 2개(이 악장의 기본 박자인 6/8박자)나 2박 3개(아래 두번째 마디에서 보이듯이 3/4박자)로 나뉜다
.

 

 



제2악장 : 아다지오Adagio
작곡가의 아내인 카르미는 이를 가리켜 ‘허니문의 행복을 담은 사랑의 노래’라고 했으며,
로드리고 자신은 ‘기타와 잉글리시 호른이 나누는 애수의 대화’라고 칭했다.
잉글리시 호른의 애잔한 선율이 그리움과 우수로 가득찬 향수를 자아낸다.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사랑의 아랑후에스 (Aranjuez Mon Amour)' 등이 유명하다.

제3악장 : 알레그로 젠틸레 Allegro gentile
마지막 이 악장에는 궁정의 우아한 분위기가 흐른다.
B장조로 시작되는 기타독주가 힘찬 2부 대위법으로 즉각 론도주제를 제시한다.
이어 2/4박자와 3/4박자의 마디들이 불규칙하게 번갈아 나오면서 세기와 박자를 변형시켜,
제1악장의 당김음 리듬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오케스트라가 이 주제를 신속히 재현하는데 이때는 D장조를 취한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의 남쪽 72km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인데,
고원의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스페인 굴지의 유명한 정원으로 알려진 곳으로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다.

1938년 로드리고가 아랑후에스의 별궁을 방문했을 때 부근에 거주하는 집시들의
생활 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현악기와 목관악기, 금관악기(트럼펫·호른)를 위해 만든 곡으로
음색이 다양하고 전체적으로 흐르는 선율이 무척 아름답다. 1940년 말에 완성되었고,
그 해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되었다.

오케스트라와 기타를 협연하는 데 문제가 따를 것으로 우려되어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크게 성공하여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이 되었다.
또한 음량이 작아 소품연주에만 쓰이던 기타의 영역을 넓혀 주요 협주악기의 하나로 자리잡게
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이 되었다.

전 3악장(1악장:알레그로 콘 스피리토,2악장:아다지오, 3악장:알레그로 젠틸레)으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민속악기인 기타를사용하여 지중해 생활의 색깔·분위기·멜로디를 멋들어지게
그려냈고, 4대의 기타를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 Concierto andaluz》과 함께 로드리고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전체적으로 기타라는 악기의 특성을 잘 살려 스페인 무곡적인 리듬의 기타독주가 오케스트라의
여린 지속음에 받쳐져, 유명한 아랑후에스 별궁의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특히 잉글리시호른의 애수 띤 향수에 젖은 테마가나타나는 제2악장은 유명하여
단독으로 자주 연주되며, 또《사랑의 아랑후에스》라는 제목의 팝 음악으로도 편곡되었다 .


      로드리고 - 사랑의 아랑후에스(En Aranjuez Con Tu Amor)
      Aranjuez, un lugar de ensueños y de amor Donde un rumor de fuentes de cristal En el jardin parece hablar En voz baja a las rosas Aranjuez, hoy las hojas secas sin color Que barre el viento Son recuerdos del romance que una vez Juntos empezamos tu y yo Y sin razón olvidamos Quizá ese amor escondido esté En un atardecer En la brisa o en la flor esperando tu regreso Aranjuez, hoy las hojas secas sin color Que barre el viento Son recuerdos del romance que una vez Juntos empezamos tu y yo Y sin razón olvidamos En Aranjuez, amor Tu y yo
    아랑후에즈, 사랑과 꿈의 장소 정원에서 놀고 있는 크리스털 분수가 장미에게 낮게 속삭이는 곳 아랑후에즈, 바싹 마르고 색 바랜 잎사귀들이 이제 바람에 휩쓸려 나간 그대와 내개 한때 시작한 후 아무 이유없이 잊혀진 로망스의 기억이다 아마도 그 사랑은 여명의 그늘에 산들 바람에 혹은 꽃 속에 그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숨어 있나보다 아랑후에즈, 바싹 마르고 색 바랜 잎사귀들이 아랑후에즈, 내사랑 그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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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후에스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아랑후에스
조락(凋落)의 정원
주말의 명화 시작을 알리던 그 선율 아랑후에스협주곡 庭園도시 휘감고…
마드리드 왕족의 휴식처였기에 아름답다기보다 예쁘게 꾸며진 정원
왕자의 정원 걷자니 꿈인지 생신지 협주곡서 풍경이 튀어나온 듯 황홀경

 

아기자기한 조각으로 장식된 아랑후에스의 한정워.

아랑후에스에는 왕궁을 중심으로 인공적인 정원이 이어져 있다.

 

내 눈에 비친 아랑후에스는 정원의 도시였다. 왕궁에서 나와 여왕의 거리(카예 델라 레이나)를 끼고 걷자니 왼편으로 하염없이 정원이 이어졌다. 그것은 아랑후에스가 대단히 인공적인 도시라는 뜻이었다.

모든 도시는 인공의 소산이지만, 아랑후에스는 사람의 손길로 자연마저 인공화한 도시였다. 그러니까 아랑후에스는 그저 아름다운 도시라기보다 예쁜 도시였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중세 이전부터 이 지역에 도시 비슷한 취락 형태가 존재하긴 했으나, 아랑후에스가 본때 있는 도시로 출발한 것은 16세기에 왕궁과 정원이 들어서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의 국왕과 왕족들이 쉬고 즐기러 오는 곳이었고, 그래서 이 도시의 자연은 인공적으로 아름다워야 했다. 다시 말해 그저 아름다운 것을 넘어 예뻐야 했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주에 속해 있다. 수도 마드리드를 스쳐 남으로 흐르는 하라마강이 아랑후에스에서 타호강에 합류한다.

 

정원이 끝날 기미가 안 보였으므로, 친구들과 나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 거기서 출발하는 치키트렌을 타기로 했다. 관광객 티를 내기로 한 것이다. ‘치코’(꼬마, 작은)와 ‘트렌’(기차)을 합쳐서 만든 말일 치키트렌은 아랑후에스의 정원 대부분과 주택가 일부를 도는 꼬마기차다. 생김새는 놀이공원의 기차를 닮았으나, 철로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놀이공원의 기차보다도 더 자유분방하다.

 

우리는 그 자유분방한 기차를 타고 정원의 도시를 주마간산 격으로 훑었다. 숲속에는 가을이 한결 깊어져 있었다. 치키트렌이 아폴로의 샘(푸엔테 데 아폴로)에 이르렀을 때, 소풍 나온 듯한 초등학생 한 무리가 보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을 떠올렸다. 다녀오고 나면 허전하기만 했던 그 소풍이 그 시절엔 왜 그리 기다려졌던지 모르겠다. 서울이나 그 둘레에도 이리 예쁜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동구릉이나 서오릉은 문득 아름답긴 했으나 예쁘진 않았다. 아니 넉넉히 아름답지도 않았다. 내 발길이 닿은 조국의 풍경은 충분히 자연적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충분히 인공적이지도 않았다.

 

“결혼식을 이 정원에서 올려야겠어.” 독신 친구 하나가 실없는 소리를 농했다. 그저, 이 정원의 예쁨에 대한 찬사였으리라. “언제 할 건데?” 늘 진지한 기혼 친구가 거기 대꾸해 주었다. “예순 살이 되면.” 그러고 나서 그 둘은 그 혼례에 초청할 하객의 이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결정되지 않은 것은 예비 배우자뿐이었다.

 

다른 독신 친구가 <아랑후에스협주곡>을 흥얼거렸다. 나도 따라 읊조렸다. 그라나다에서 아랑후에스로 차를 몰면서도 우리는 리플레이 상태로 이 곡을 계속 틀어놓았었다.

 

그것은 어린애 같은 짓이었으나, 아랑후에스라는 도시로 들어가는 하나의 의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아랑후에스에 들르기로 결정한 것도, <알람브라궁전의 추억>과 한 시디에 실린 <아랑후에스협주곡>에 촉발돼서였다. 농부의 집(카사 델 라브라도르) 앞에서 치키트렌이 잠시 쉬었다.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산책을 권유했다.

 

농부의 집에서 여왕의 거리 쪽으로 펼쳐진 왕자의 정원(하르딘 델 프린시페)을 걷자니 눈앞 풍경의 현실성이 흐릿해졌다. “꿈결일까?” <아랑후에스협주곡>을 계속 흥얼거리는 친구에게 내가 장난스레 물었다.

“현실이야.” 그가 흥얼거림을 멈추고 단호하게 판결을 내렸다. 초목의 조락 속에서도 아랑후에스의 정원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이 이 풍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풍경이 그 음악 속에서 튀어나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피겨스케이터들이 배경음악으로 가장 선호하는 선율 가운데 하나다. 미국인 여성 피겨 스케이터 미셸 콴은 2003년 워싱턴 세계피겨스케이팅대회에서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川井郁子)의 연주에 맞춰 펼친 연기로 생애 다섯 번째 세계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마키무라 사토루라는 일본 작가가 그린 만화 <사랑의 아랑후에스>도 얼음판 위에서 이 협주곡을 몸으로 재현하는 것이 소원인 여성 피겨스케이터 얘기를 그리고 있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본디 클래식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다. 호아킨 로드리고가 1939년 파리에서 썼고, 이듬해 11월9일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음악궁에서 초연됐다. 이 곡은 세 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에서 시작해 아다지오를 거쳐 알레그로 젠틸레로 끝난다. 그 가운데 사람들 귀에 가장 익숙한 것은 기타가 잉글리시호른(이나 다른 솔로 악기)과 버무려지는 제2악장 아다지오다. 기 본템펠리가 거기 가사를 붙여 샹송으로 유명해진 <내 사랑 아랑후에스(아랑후에스, 모나무르)> 덕도 있을 게고, 영화나 광고에 흔히 삽입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제2악장인 덕도 있을 게다.

 

B-마이너를 주조로 삼은 이 악장은 친구들과 내가 아랑후에스에서 걷고 있는 이 조락의 정원과도 꼭 어울린다. 신록의 정원이나 무성(茂盛)의 정원도 그것대로 맛은 있겠으나, 그것들은 아다지오의 정원이 아니다.

재즈의 전설로 불리는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에서 시작해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 클라리네티스트 장-크리스티앙 미셸, 재즈 키보디스트 칙 코리어, 기타리스트 버킷헤드 등 다양한 지역적 배경의 특급 연주자들이 갖가지 악기와 분위기로 <아랑후에스협주곡>을 거듭 해석했다. 그 덕분에 <아랑후에스협주곡>은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선율 가운데 하나가 됐다.

 

파리에서 쓰긴 했지만, 작곡자가 <아랑훼스협주곡>에 불어넣은 분위기는 그 제목이 드러내듯 아랑후에스 왕궁과 그 둘레 정원의 것이다. 16세기 펠리페2세 시절에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와 후안 데 에레라의 설계로 세워진 이 왕궁은 그 뒤 몇 차례의 화재로 흉한 모습을 보였다가 페르난도6세 때인 1778년 오늘날 형태로 완공됐다.

 

아랑후에스 궁전은 전통적으로 스페인 국왕이 봄에 머무르는 별궁 노릇을 했다. 거기 딸린 널찍하고 미려한 정원들은 합스부르크왕조 시대 스페인 문화의 아치(雅致)를 한껏 뽐낸다.

 

한 때 아랑후에스는 국왕의 친척들이 주로 사는 왕족의 도시였다. 그 점에서 프랑스의 베르사유를 설핏 닮았는데, 아닌게아니라 왕자의 정원 끝머리에 들어선 또 다른 별궁 ‘농부의 집’은 전형적인 베르사유 풍이다. 이 궁전이 농부의 집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본디 이 터가 아랑후에스의 돈 많은 농부 소유였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파리에서 <아랑후에스협주곡>을 쓰기 한 해 전,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에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만든 선율은 그 짧은 체류에서 잉태됐다. 작곡자 자신이 이 협주곡의 제재로 아랑후에스궁 정원의 목련 향기와 새들의 지저귐, 분수 소리 따위를 거론한 바 있다.

 

로드리고는 자신이 아랑후에스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는 세 살 때 디프테리아를 앓고선 시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작품이 너무 유명해지면, 그 주제와 제재를 놓고 온갖 해석이 뒤따르는 법이다. <아랑후에스협주곡>도 그랬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제2악장 아다지오를 두고는, 이 선율이 만들어지기 두 해 전 독일 공군이 자행한 게르니카 폭격과의 연관을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로드리고는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디난도 카룰리와 더불어 클래식기타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의 기타 솜씨는 볼품없었다 한다. 그 대신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다룰 줄 알았고, 특히 피아니스트로서는 거장이라 이를 만했다. 터키 출신의 아내 빅토리아도 피아니스트였다.

 

1991년, 로드리고는 후안 카를로스 국왕으로부터 ‘아랑후에스 정원 후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말할 나위 없이, 그가 <아랑후에스협주곡>의 작곡자라는 사실과 관련 있는 작위다.

 

로드리고는 1999년 마드리드에서 작고했다. 1901년 생이니, 그의 삶은 20세기와 거의 고스란히 포개진 셈이다. 로드리고와 아내는 아랑후에스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아랑후에스는 로드리고가 태어난 곳도 죽은 곳도 아니고(그는 발렌시아주 사군토 출신이다), 오래 머문 곳도 아니었지만, 그가 이 도시에 묻히는 것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처럼, 아랑후에스에도 카페마다 (일종의) 슬롯머신이 있었다. 철학자는 도박에 다소의 취향과 재능이 있는 친구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저 유명한 도박 중독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취가 남아있는 바덴바덴에까지 진출해 제 운을 시험해 보았다 한다.

 

그의 꿈 하나는 바덴바덴에 다시 가서 돈 걱정 없이 질릴 때까지 도박을 해보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철학자는 우리가 카페에 들를 때마다 슬롯머신 앞에 앉아 제 재능과 운을 시험했다.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우리 찻값 정도는 버는 게 예사였다. 아랑후에스의 한 카페(아일랜드식 커피와 맥주를 파는 ‘더블리너’라는 곳이었다)에서도 그는 슬롯머신 앞에 앉았는데, 이번엔 딴 돈이 우리 주전부릿값을 사뭇 웃돌았다. 그 집을 나오면서, 마치 무전취식이라도 한 듯해 좀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라나 베르데’라는 식당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했다. 레스토랑 이름은 ‘녹색 개구리’라는 뜻이었지만, 우리가 거기서 개구리를 먹은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경멸의 뜻을 담아 프랑스인들을 ‘개구리 포식자(frogeater)’라 부른다고 하는데, 스페인 사람들도 개구리를 먹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녹색 개구리’에서 연어와 안심을 먹었다. ‘녹색 개구리’ 식당의 창 밖으로 타호강이 내려다보였다. 아랑후에스는 타호강의 발원지에서 멀지 않다. 이 강은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흘러 거기서 대서양과 만난다. 리스본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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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4만 5125명(2004)이다. 라만차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타호강() 좌안의 비옥한 평야지대에 있다. 아랑후에스 근처에서 타호강과 하라마강()이 합류한다. 로마시대에는 아라요비스라고 불렸으며,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 산티아고 기사단의 본거지였다. 16세기 펠리프 2세 시대부터 왕령지가 되었으며 그곳에 J.B.톨레도와 J.에레라가 별궁을 건축했으나 여러 번의 화재로 손실을 입은 뒤, 1778년 완공되었다. 왕궁에는 진귀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17세기 왕실의 사냥터 별장이 있으며, 왕족들의 여름철 거주지였는데, 현재는 마드리드 거주자들에게 인기있는 휴양지가 되었다. 1808년 카를로스 4세가 세운 라브라도르성()은 프랑스베르사유 궁전과 매우 비슷하다. 1808년 이곳에 연금되었던 페르난도 왕자(후에 페르난도 7세)가 아랑후에스 민중의 반()고도이 봉기에 의해 국왕에 옹립되었고, 그의 부친 카를로스 4세는 스스로 퇴위하였다.

마드리드-알리칸테 철도와 마드리드-안달루시아 철도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로 산업이 발전하여, 화학제품·금속제품·직물 등의 제조업과 과일 저장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작물로는 아스파라거스와 딸기가 주로 재배되고, 말이 사육된다. 도시는 격자형으로 곧고 넓은 도로가 시원하게 트여 있으며, 북쪽 45㎞ 지점에 있는 마드리드로의 통근도 가능하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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