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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0/14
    어떻게 살까?
    티코
  2. 2005/10/14
    당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
    티코
  3. 2005/10/14
    국가보안법과 강정구교수 필화사건 심포지엄
    티코

어떻게 살까?

갈취경제, 폭력적인 사회, 약육강식 적자생존 너 죽고 나 살자의 야만 사회에서 그나마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선 '이타적인 놈'이 되는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돕기 위해 산다>라는 말을.

 

 

?? = 밥그릇 사수자.
??? = 올곧은 이 땅의 시대정신 구현자. 혹은 그러려고 고민하는 사람.

밥그릇 사수자는 때론 입바른 소리가 거슬릴때도 있는법. 왜냐 그들은 타협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들이므로...

 

그럼 우리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

 

참 어려운 문제다 뜨거운 가슴으론 밥그릇 사수자 같은 천박한 사람이 되어선 곤란하다고 하지만 차가운 머리는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냐며 어차피 살자고 하는건데 경제인, 생활인으로서의 현실은 무시할 수 없는것이니 그래도 어쩔 수 없으며 그런 자신더러 뭐라 할 사람 없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그러는 사람이 문제이며 이기적이기 까지 하다고....???

 

 

 

이기적 인간 이긴 이타적 인간


△ 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1만2800원

기존가설 한계 뛰어넘어
진화적 게임이론 최전선에서
이타적 인간의 출현·승리 그려내
이타적 개체 많은 집단일수록
생존율·번식률 더 높아

근대 경제학은 매마름의 세계다. 경제학이 가정하는 인간은 ‘합리적 경제인’인데, 그 ‘합리’란 자신의 이익은 최대로 늘리고 손해는 최소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행위가 타인의 손해를 최대로 늘리고 이익은 최소로 줄이더라도 그 행위는 바람직하거나 최소한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 행위들이 모여 종국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조화를 통해 사회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것이다. 합리적 경제인은 말하자면, 이기적 인간이다. 그런데 그 이기적 행위는 자주 근시안적 행위로, 나아가 자기파괴적 행위로 귀결되기도 한다. 합리적 인간이 불합리한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경제학자 최정규씨가 쓴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경제학을 지배해온 ‘이기적인 합리적 개인’ 가설을 ‘게임 이론’의 분석을 통해 반박하고 ‘이타적 개인’의 이론을 구축해보려는 시도다. ‘게임 이론’으로 포괄되는 여러 이론들을 하나씩 검토한 뒤 ‘이타적 인간’이 왜 출현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현실에서 널리 존재하는 이타적 인간들의 이타적 행위를 경제행위의 불가결한 요소로 편입시키고자 한다.


지은이는 먼저 ‘이기적인 합리적 인간’을 전형적 모델로 삼고 있는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죄수의 딜레마’ 모형은 다음과 같다. 두 명의 죄수가 따로 신문을 받고 있는데, 둘 다 범죄를 끝까지 부인하면, (다른 사소한 범죄 대가로) 1년씩의 형을 받는다. 반면 한쪽이 자백을 하고 다른 한쪽이 부인하면, 자백한 쪽은 바로 석방되고, 다른 쪽은 7년형의 가중처벌을 받는다. 만약 둘 다 자백하면, 5년씩의 형을 받는다. 이 경우, 두 죄수가 합리적으로 행위하는 사람이라면, 둘 다 자백을 택하게 되고, 그 결과로 최악의 상황(두 사람의 형량을 합쳐 10년)에 처하게 된다. 자기 처지에서 합리적인 행위가 전체로 보면 가장 불합리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공유지의 비극’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공동 목축장에 저마다 무제한으로 소를 방목함으로써 불모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구라는 생태계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모든 나라들이 지구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절제를 약속하더라도 어느 한 나라가 그것을 파기해버린다면, 다른 나라들도 약속을 파기하고 생태계 파괴는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이론으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가설들을 동원해 이론적 공백을 메워보려 한다. 어떻게 인간은 ‘이타적 행위’를 하는가?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 차원에서 자기 자신과 동종의 유전자가 번식할 수 있도록 한 개체가 혈연관계에 있는 다른 개체를 돕는 ‘이타적 행위’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매트 리들리가 쓴 <이타적 유전자>는 ‘반복 호혜성’ 가설을 내놓는다. 친족관계가 아니더라도 반복해서 서로 혜택을 베풀면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인간이 이타적으로 행위하는 근거를 여러 다른 가설을 통해 설명해 들어간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집단선택’이다. 이타적 행동을 하는 개체가 많은 집단일수록 생존율과 번식률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이타적 행위자가 많은 집단이 살아남아 지배적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집단 차원에서 이타성이 강하다 해도 이기적 개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이기적 개체가 지배적 힘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제도’의 구실이다. 제도의 뒷받침을 받는 이타적 인간은 이기적 인간으로만 구성된 사회가 필연적으로 봉착하게 될 ‘시장의 실패’를 방지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경제학적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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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

야옹이님의 [이것저것 테스트] 에 관련된 글.

당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의존성 : 56 점 자기애 : 56 점
당신의 연애 실패 이유: 이론적으로, 당신은 너무나 섹시하고 멋지고 사랑스러워서 어느 누구든 당신을 보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문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서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당신의 뛰어난 잠재력을 몰라봐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고, 어떤 사람은 당신의 매력에 기가 죽어 도망친다.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을 질투해서 당신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거기에 속은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오해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당신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인기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 가끔씩 당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는 행복하지만, 종종 그것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고는 절망과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당신의 장점은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자존심과 그 자존심에서 우러나오는 화사함이다. 누굴 좋아하면서 조바심을 치거나 거절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건 당신 체질에 맞지 않는다. 당신은 사랑 받기를 원할 때 당당하게 사랑을 요구한다. 문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단 한 명의 사랑이 아니라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점이다. 누구는 그걸 보고 뻔뻔스럽다거나 욕심이 지나치다 말을 할지 모르지만, 당신은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조차 감화될 때도 있다.

 

당신은 왕자나 공주처럼 대우 받기를 원한다. 왕자나 공주는 하인을 필요로 하는데, 그래서 당신은 종종 당신의 애인을 하인 부리듯 대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일부는 그 조차도 황송하게 감사하며 받아들이지만, 대부분의 정상인은 그런 식의 대우를 오래 참지 않는다. 문제는 여전히 당신은 외로움을 많이 타며, 그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당신을 왕처럼 떠받들며 돌봐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즉, 당신은 스스로 잘났지만 그 잘난 당신을 숭배하고 받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기에 사랑을 한다. 당신의 이런 태도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애정이나 관심이 아니라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당신 애인의 사랑을 지나치게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당신은 사랑스러운 사람이지만, 연인과의 순간 하나하나를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지 않으면 당신의 연애는 계속되기 어렵다. 당신의 기대를 조금 낮춰라. 어느 누구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단 한 사람의 사랑이라도 영원히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행운이다. 당신의 가치는 사람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해 주는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느냐에 달려있다. 그건 당신이 그들에게 주는 배려와 사랑의 문제이다.
 스칼렛 오하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Scarlett Ohara. 마가렛 미첼의 원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여 주인공. 미국의 남북전쟁 직전, 조지아 타라 농장주의 딸인 스칼렛에겐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하나는 골방샌님 스타일의 귀족청년 애슐리, 다른 하나는 거칠고 무례한 망동으로 집에서조차 쫓겨난 난봉꾼 레트. 욕심 많고 이기적이며 똑똑한 스칼렛은 레트와 같은 부류의 인간. 이 점을 미리 꿰뚫어본 레트는 스칼렛에게 구애하지만, 스칼렛은 지적이고 고상한, 자신과 완전히 반대의 인간형인 애슐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스칼렛은 사랑의 아이러니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신은 세상 모든 남자가 다 자길 좋아할 줄 알았는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애슐리만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남자인 레트와는 거의 원수처럼 지내며, 나중엔 사업적 목적으로 결혼한다. 끝까지 애슐리에 집착하는 스칼렛은 세상 마지막 남은 관심까지 독차지하려는 스칼렛의 허영과 집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결국 마지막 순간 스칼렛은 자신이 바보였단 것을 깨닫지만, 독자들은 이 여성의 어리석음과 교활함, 집착마저도 매력으로 느낀다.

 

 

 닉 마샬 (What Women Want)
영화 "여자가 원하는 것(What Women Want)"의 남자 주인공. 대형 광고 회사의 중역인 닉은 수완 좋은 바람둥이 이혼남. 경이적인 연애 성공률을 자랑하지만, 주변으로부터는 "속물"로 찍혔다. 그는 여성에 대한 이해나 배려 없이 성적인 목적으로만 연애를 하는 마초형 인간이었던 것. 마침 회사엔 자신의 상사로 다아시 맥과이어라는 여자가 들어오고, 닉은 자신의 자리를 그녀가 (남자도 아닌 여자가) 차고 들어왔다는 생각에 심한 열등감을 느끼는데...

이는 우연히 여성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게 된 남성에 관한 우화이다. 오만 방자한데다 남성 우월적 편견에 여성 의존적 성향까지 갖춘, 겉보기만 매력 만점인 주인공. 삶의 거의 대부분을 여성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여성에게 눈곱만큼도 베풀 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이상한 능력을 가진 뒤에 깨닫는다.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의 주인공. 윌 헌팅은 빈민촌에서 사는 결손 가정 청년. 그는 일정한 직업 없이 막노동으로 먹고 살지만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수학 천재다. 역사에 남을 정도의 우수한 두뇌를 가졌지만 그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끔찍한 학대에 반항적이고 비뚤어진 성격까지 겹쳐 다른 사람과 충돌만 날 뿐, 삶의 목표가 없는 이 천재는 언제나 밑바닥 인생이다.

윌의 인생은 맥과이어 교수(로빈 윌리엄스 역)의 "순화교육"에 의해 달라진다. 그는 겉으론 강하고 똑똑하고 완벽해 보이려는 인간이지만, 맥과이어 교수에 의해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의존적인 인간인지 처절히 깨닫는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가장 결핍된 부분인 "인간적 유대"를 얻기 위해 세속적 부와 명성을 포기한다.

 

 

 엘 우즈 (금발이 너무해)
영화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의 주인공. 엘은 돈도 많고 말도 많고 허영심 가득한 전형적인 "골 빈 여자" 유형. 어느날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심한 열등감에 떨고 난 끝에 "내가 골이 비어 보여 차였다"는 결론을 내린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엘은 하바드 법대 입학을 목표로 맹렬히 공부하는데…

기본적으로 엘은 머리가 나쁘다기보다 지극히 순수하고 착한 성격의 여성. (나중에 밝혀지지만 머리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본래 타인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한 엘은 법리 관계를 비즈니스가 아닌 "이해와 사랑"으로 풀어가고 이는 결국 그녀에게 굉장한 영광을 안겨 준다. 미장원에서 손톱 다듬으며 연예인 얘기로 수다나 떨던 여성이 하바드 법대생에, 그리고 유능한 변호사가 되는 과정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애정이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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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강정구교수 필화사건 심포지엄

해방전쟁. 통일전쟁 그리고 미국은 그 해방전쟁에 있어  방해 세력

그저 지극히 상식적이고 누구나 한번쯤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를 마치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국가정통성을 부인하는걸로 몰아가는게 어째 좀 불편합니다. 언제까지 이런거 가지고 이 난리를 피워야 하는지요? 오늘자 김종우 논설위원의 칼럼 말마따나 열린당이 다수당 시절 국가보안법을 폐지했더라면 이런 문제 가지고 왈가왈부하는일도 없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 하루 입니다. 혹자는 국민 여론 들어 폐지를 주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인권은 국민이 원해서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설령 국민이 반대 하더라도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거라면 당연히 그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나 법을 바꿀 의무가 있는거죠. 국민. 이기적이죠 자기 혹은 '우리'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아니 자신들과 상관 없는거라면.....쩝 하긴 적자생존의 약육강식 같은 정글사회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보고 뭐라 한다는 자체가 우습죠. 그렇게 살도록 한건 따로 있는데... 또 그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냐고 왜 틀린걸 틀리다고 말하지 않느냐고 따진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럴땐 그저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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