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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10/17

"농민들 '낫' 들고 일어설 때 무슨 변명 하려나"

작년 이맘 때 우리나라를 찾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를 인터뷰하려다 거부당한 사연을 '기자의 눈'으로 쓴 적이 있다. 조제 보베는 애초 밤 늦게 예정돼 있던 인터뷰를 거부하는 대신 우리나라 농민들과 '쌀시장 개방'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택해 기다리고 있던 기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당시 그가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국에 와서 농부들의 사정을 들어보니 내 얘기를 하는 것보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토론하는 게 훨씬 더 시급한 일로 여겨졌다. 기자를 만나는 것보다 농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과 만나는 게 나한테는 더 중요한 일이다." 사실 이 말을 듣고 부끄럽지 않을 '한국의 기자'들이 있을까? 기자 역시 부끄러웠다. '내가 언제 이 사람보다 우리 농업을 걱정한 적이 있던가.'
  
  언론에서 사라진 농업문제
  
  농업문제가 언론에서 사라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3년 추석연휴 기간에 농민운동가 이경해 씨가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화에 항거하며 목숨을 끊은 후 국내 언론이 보여준 태도는 이와 관련해 아주 시사적이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이를 사건기사로만 간단하게 취급했지 그의 자살이 갖는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것은 외국의 반응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고인의 고향을 찾아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한국 농촌의 '절망적인 현실'을 조명했고, 영국의 <가디언>은 '눈물의 들판'이라는 르포 기사를 통해 한국 농촌의 비참한 모습을 담아냈다. 개인적으로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얼마 후 번역ㆍ출간된 <굶주리는 세계>(허남혁 옮김, 창비, 2003)의 한국어판 서문이었다.
  
  'Food First'로 널리 알려진 미국 식량과발전정책연구소에서 펴낸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은 고인에 대한 추모사로 대체됐다. "오늘 이경해 씨는 영웅이며, 국제적으로 조직화된 농민운동의 순교자이다. 그의 정신은 굶주림을 종식시키려는 전 세계의 투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는 이 한국어판 서문을 이 투쟁에 삼가 바치고자 한다."
  
  정작 고국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고인이 밖에서는 '농민운동의 순교자'로 주목받은 현실, 바로 천덕꾸러기가 된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의 실상이었다.
  
  농업을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진 사회
  
  이경해 씨가 세상을 뜬 지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농업의 미래는 암울하다. 정확히 말하면 '땅의 힘'을 믿으며 살아 온 소농들(한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였던 이들)이 뿌리째 삶의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 '소농의 몰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속도와 사회적 무관심에서 우리와 비교할 대상이 없다.
  
  최근 '중국산 납 김치' 논란이 일면서 일부 언론에 등장한 '금치'라는 표현은 농업과 농민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어떤 상황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4인가족 기준으로 김치 10포기를 담그는 데 6만 여 원이 드는 걸 가지고 '금치'라고 할 때 농업과 농민에 대한 존중심은 손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여름 내내 땡볕 더위 아래서 고생해 많아야 몇 십만 원을 손에 쥐었을 농민들이 이런 표현을 보고 느꼈을 참담함은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식량 자급률이 고작 20% 대에 불과한 나라에서 또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나라에서 이토록 농업과 농민에 대한 관심이 없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새로운 길' 찾아 땅 일구는 '거대한 소수'
  
  스스로 모순과 차별을 느끼는 자가 먼저 행동한다고 했다. 대다수 지식인과 언론이 사실상 '농업'과 '농민'을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을 때 '새로운 길'을 찾는 움직임은 농업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
  
  그 중에는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기존의 관행 농업에 한계를 느끼며 유기농업에서 대안을 모색하려는 이들도 있고, 삶의 구석으로 쫓겨 다시 '어머니 땅의 힘'에 기대고자 귀농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농촌에서 찾은 이들도 있고, 농업에서 삶과 문명의 대안을 찾아보려는 이들도 있다. 아직 농촌에 삶의 터전을 두지는 못했으되 먼저 실천한 이들의 뒤를 좇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지금은 '소수'지만 우리나라를 또 세상을 바꿀 '꿈'을 갖고 있다. '산업화'라는 리바이어던이 곳곳에서 땅을 무참히 유린할 때 그들은 묵묵히 땅을 일군다. 그리고 하나둘 땀을 흘리면서 땅을 일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사연을 알고 싶다고? <프레시안>에서 5개월 동안 진행된 이야기는 바로 그들의 흔적을 기록한 것이다.
  
  절망을 싣고 서울로 오는 소달구지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오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에 참석해 "농촌이 살고 농민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아나가겠다"면서 "개방은 피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개방의 파고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지원은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입 발린 약속에 농민들은 '감동' 대신 '절망의 소달구지'를 안겼다. 13일 해남 땅끝 마을을 출발한 '농민의 절망'을 실은 소달구지는 순천, 진주, 대구, 대전, 홍성, 과천을 지나 오는 3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집회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날 오전 경실련, 전교조, 환경정의 등 7개 시민ㆍ사회단체로 구성된 '우리 쌀 본부'는 "우리 쌀과 우리 밀을 지키는 일은 곧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며 "쌀 개방을 국가적 위기"로 간주했다. 이정주 본부장의 절규가 귀에 생생하다. "추수를 준비해야 할 황금빛 10월에 논으로 가야 할 농민들이 소달구지에 절망을 싣고 국토를 걷고 있다. 농업에 희망이 없으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또 우리나라의 미래도 확신할 수 없다."
  
  농민들 낫 들고 일어설 때 지식인-언론은 뭐라 변명할 것인가?
  
  꾹 참고 있던 농민들이 낫을 들고 일어설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농업을 살리자'는 목소리를 외면한 지식인, 언론들은 김남주의 시 '낫'을 기억해야 한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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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미 제국주의 꼭두각시 노릇 그만 두어라&quot;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노릇을 그만두어라                    장신기

1944년 한반도의 친일파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무너질 줄 모르고 조금이라도 더 친일을 하려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따라서 반미구호를 외치느라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무너졌다. 1988년 동구 유럽의 구소련 지지 권력자들은 구소련 제국주의가 무너질 줄 모르고 구소련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려고 변화하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1989년 구소련은 하루아침에 스스로 무너졌다. 1944년의 일본과 1988년의 구소련처럼 2005년의 미국 제국주의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한 예로, 남아프리카 흑백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다는 이유로 넬슨 만델라와 함께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클러크(FW de Klerk) 전 남아공 대통령은 미국 미주리 주립 대학교의 강연에서 “미국 주도의 지구화는 이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계속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적 지구화를 강행한다면, 미국의 주도권은 상실될 것이지만 선진국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배제된 저개발 국가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토대로 한 (탈근대적) 지구화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러크는 국가보안법과 동일한 아파르트헤이트를 토대로 흑인과 흑인을 지지하는 백인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인 남아프리카 백인 독재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1948년 영국과 미국의 절대적인 지원 하에서 만들어진 남아프리카 백인 독재정권은 1950년 미국의 맹방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남아프리카를 지원하였고,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남아프리카 백인 독재정권은 미국을 대신하여 남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나미비아,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등의 아프리카 주변 국가들의 흑인해방 세력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선봉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등등의 언론과 미국내 NGO 단체들, 그리고 UN의 반대에 부닥쳐 남아프리카 백인 독재정권을 지원하지 못했다. 미국의 지지를 잃은 남아프리카 백인정권은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 백인 보수주의 정치가들과 아파르트헤이트의 권력과 폭력을 휘둘렀던 경찰과 군대는 흑인들과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백인 독재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클러크는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하고 공산당과 아프리카 민족회의를 합법화시켰다.

남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우리 한반도도 50년 동안 지속된 남북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ㆍ15 남북공동선언>이 만들어졌다. 남아프리카 흑백갈등을 해결했다는 이유로 클러크와 만델라는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가 되었다. 한반도의 두 지도자도 당연히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가 되었어야 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여 김대중 대통령만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6년 새롭게 만들어진 남아프리카 헌법의 골조는 “인종, 사상, 종교, 성을 매개로 차별을 하거나 억압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시키”는 소수자를 위한 공공의 역할이다. 만약에 인종이나 사상, 혹은 종교나 성을 매개로 그 누구를 차별하거나 비난을 하면 그 누구라도 법의 근엄한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 이와 더불어 남아프리카는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가장 늦게 해방된 나라이면서도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과 더불어 유럽이나 미국의 식민지 문화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자발적인 평등의 문화를 창조하는 선봉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흑백갈등은 남아프리카의 근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350년 동안 고착된 것이다. 그것이 해결되었다. 그 힘은 한 때 미국의 지원으로 권력을 유지하였던 클러크로 하여금 미국 제국주의를 비난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지구상의 내부적인 지역갈등은 한반도밖에 남지 않았다. 한반도의 남북갈등은 단지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350년의 흑백갈등이 해결되었는데 소위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형제자매이며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는 우리 한반도의 남북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 이유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도 세계적인 탈근대의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마치 일제 말기의 친일주의자들처럼 미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조선일보의 몇몇 언론 권력자들, 아직도 남아있는 검찰과 경찰의 독재세력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몇몇 수구세력들이다. 그들은 한반도를 둘러 싼 6자회담의 평화적 해결을 불안해한다. 그들은 남아프리카처럼 미국이 자신들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불안해한다. 그렇다. 미국은 아무리 현재의 초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미국 내부의 민주화 운동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적인 탈근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남한의 수구세력들과 마찬가지로 흑인들과 목숨을 건 마지막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백인 권력의 수구세력들이 있었고 지금도 몇몇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몇몇은 스스로 남아프리카를 떠나 아직도 백인 중심주의가 남아있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방황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고, 다른 몇몇은 자신들의 권력을 마구 휘둘렀던 근대적 과거에 몰입하여 폭력을 조직하고 있다. 그 예로, 2003년 남아프리카의 사법 수도인 블로엠포테인 고등법정에서 “테러의 밤(Night of Terror)”이라고 불리는 “바알 담(Vaal Dam)”을 계획한 허큘레스 빌존(Hercules Viljoen)과 레온 피콕크(Leon Peacock)에 백인 극우집단에 대한 재판이 있었고, 같은 해에 “보어에마그(Boeremag)”라고 불리는 일단의 군대 백인 근본주의자들이 행정 수도인 프레토리아 고등법정에서 쿠데타와 전국적인 테러를 계획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그들은 지금도 비밀리에 http://www.siener.co.za와 같은 우익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근대의 폭력과 증오에 너무 물들어 이제 평화를 증오하는 근대의 망령이 들은 것이다.

근대의 망령은 마치 1950년대의 메카시 선풍처럼 항상 마녀사냥을 필요로 한다. 남한의 수구세력들이 지금도 그 짓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근대와 탈근대의 과정에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몸담았다가 37년 만에 고국을 찾은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를 빨갱이로 몰아 다시 국외로 내쫓더니 이번에는 올곧게 한반도 근대사 연구에 몰두하는 강정구 교수를 빨갱이로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고여 있는 물은 썩듯이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자들 중에서 과거 독재정권의 썩은 냄새가 나는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수구세력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클러크 전대통령이나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에 지대한 공헌을 한 기자 막스 두 프레즈와 같은 건강한 보수주의자들이 한국사회에도 등장하여 근대적인 진보와 보수의 대립적 틀을 깰 수도 있을 것이다. 클러크는 강연의 마지막에서 미국 제국주의자들에게 “세계 각 지역의 국가가 나라들이 대립과 갈등 없이 스스로 자신들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하루라도 빨리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만델라는 호사인이고 남아프리카인이며 아프리카인”인 것과 같이 “나는 아프리카너(네덜란드계 백인)이고 남아프리카인이며 아프리카인”이라고 강조했다.

클러크의 말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한반도인(코리안)이며 아시아인이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민이고 한반도인이며 아시아인이다. 나는 클러크와 만델라가 흑백갈등으로 지난 과거에 죽은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보다 더많은 희생자들이 생길 수도 있는 근대의 막바지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것처럼 노무현과 김정일 두 지도자가 평화적으로 한반도의 남북갈등을 해결하는 근대의 막바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에게 탈근대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라기 이전에 우리들 스스로가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깨트리고 서로가 서로의 다른 종교와 사상, 그리고 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화합하는 탈근대인이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탈근대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최대의 걸림돌은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오직 글과 말로만 행동할 수 있는 지식인 마녀사냥을 일삼는 수구세력들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남아프리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그들의 미래는 너무나도 암담하다. 하루라도 빨리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노릇을 그만두고 한반도인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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