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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오대산 산행,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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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1
    20100314 -- 오대산 산행
    땅의 사람

20100314 -- 오대산 산행


민중가요 중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햇빛을 가려버린 높은 빌딩들 / 그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 /
흙조차 밟기 힘든 세상 / 마음엔 무얼 담을까?”
환경이 파괴된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일상을 그린 노래이다.

이 노래를 알고 나서 늘 흙을 밟을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도시의 삶은 흙보다
보도블럭이나 콘크리트를 더 많이 밟는다. 아니 거의 산에 갈 때 빼고는 흙을 밟지 못하고 산다.
이번 오대산 산행에서 설마 산에 가서 눈만 밟고 산에 올라 내려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늦은 밤에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강원도로 향했다. 서울에선 볼 수
없었던 눈이 강원도를 들어서자 제법 남아있다. 용평에 이르자 도로가로 밀쳐둔 눈이 사람 키를 넘는다.

새벽어둠 속에 달려온 버스는 대관령에서 일행을 내려놓는다. 버스를 내려서는데 칼바람이 분다.
서울의 훈풍에 젖었던 몸이 일순간 움츠려 든다. 다리 아래에서 한기가 올라온다.
등산채비를 하고 후렛쉬를 들고 산을 오른다. 아직 새까만 밤이라 시커먼 나무숲을 헤치며
산을 오른다. 오직 앞 사람 뒷모습과 후렛쉬 불빛에 의지해 앞으로 간다.

얼마나 갔을까? 하늘 한쪽이 밝아온다.
‘저쪽이 동해인가 보다.’
눈높이 정도에서 낮게 깔려있는 솜이불 솜 같은 구름이 수평으로 펴있다. 채 떠오르지 못한
태양의 빛깔이 구름아래를 비춘다.
긴 사다리가 있으면 수평으로 늘려 구름 위를 걷고  싶다.
구름에 해가 걸린 듯 싶더니 이내 구름 위로 올라선다. 구름 아래는 강릉인 듯  싶은데 아직
어두운 새벽이리라. 비행기 조종사들이 구름 위를 날며 해를 본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이던 해가 비로소 아침을 만든다. 온전히 구름 위로 햇살을 비추고
온전한 그림자를 만든다.

일행은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길을 재촉한다.
선자령에 못가서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네덜란드의 풍차는 날개가 커서 바람을
잘 받겠다 싶은데 여기 풍력발전기는 풍차와 비슷한데 날개는 폭이 좁고 얄따랗다.
어릴 적 바람개비 날개도 넓은데 저런 풍력발전기 날개가 어찌 돌까 신기하기만 하다.

산등성이를 따라 풍력발전기가 쭉 늘어서 있다. 누가 세어보니 40기가 넘는단다. 여기저기
흩뿌리듯 널린 발전기가 흉물스럽게 산위에 군림하고 있다.
누군가 그런다.
“저렇게 많은 발전기를 땅속으로 전기선을 깔아 서로 묶여있을 거다.”
맞는 말이겠다. 전기를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는 없으니 저 발전기를 세우려고 땅속을 파헤쳐
전기선을 심었겠구나 싶다. 자세히 보니 근처엔 나무도 없다. 저런 물건이 대안이라고 하니 못내 씁쓸하다.

선자령에 도착했다가 하산 길로 접어든다. 보드득 소리가 심드렁해질 즈음부터 눈 비탈길이

이어진다. 등산로를 벗어나 경사진 계곡 길로 접어들어 눈 미끄럼틀을 탄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미끄럼을 타면 옷 속으로, 바지 속으로 눈뭉치가 들어와도 신경 안 쓴다. 요행

중심을 잘 잡고 미끄러지면 경사 아래 쌓인 눈에 처박힌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뒤따라

내려가 처박힌 사람을 한 번 더 처박는다. 지천명을 넘은 사람들도 어린아이처럼 낄낄거린다.

자연에 드니 모두 아이가 되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1



#2



#3



#4 구름 아래 강릉의 마을이 보입니다.



#5



#6



#7



#8



#9 대관령 옛길



#10



#11 허리보다 높이 쌓일만큼 눈이 많이 왔는데
도로가의 표지판도 목만 내놓고 서 있습니다.



#12 산길 옆은 무릎까지 빠지는 눈 밭입니다.



#13 정동진의 파도



#1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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