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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1/10
    희망 고문
    더불어 함께
  2. 2005/11/09
    오월 광주를 생각한다.
    더불어 함께
  3. 2005/11/08
    마라톤 출전 후기!!
    더불어 함께
  4. 2005/10/29
    10월을 뒤돌아 본다.
    더불어 함께
  5. 2005/10/27
    정말 지금 내가 사랑에 빠진걸까?
    더불어 함께
  6. 2005/10/27
    며칠만에 흔적..
    더불어 함께
  7. 2005/10/16
    전국 비정규직 연대회의 출점!!
    더불어 함께
  8. 2005/10/16
    마르크스-레닌주의 민족이론
    더불어 함께
  9. 2005/10/16
    나도 결혼 할래~~~~~!!
    더불어 함께
  10. 2005/10/14
    [퍼온글] 장시기 동국대 영문과 교수
    더불어 함께

희망 고문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할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같이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 다음에 할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절망을 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둘 사이에 애인으로서는
전혀 희망이 없음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은 희망하나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계속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본능적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자신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길 바란다.
심지어 애인이 있을때도 말이다.

술이 취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했어'라고 전화를 한다든지
사귈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과 그냥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데이트를 한다든지, 싫어서 헤어지면서
이유는 집안이 어려워서, 옛애인을 못잊어서, 혹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라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행동들은 모두 상대에게 '희망'을 주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사람 가슴에 안타까움, 소강함,
집착등을 남겨 큰 상처를 둘 수도 있다.

이러한 행위를 나는 '희망고문'이라 부른다.

그리고 웬만하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고문'을 하지 말자.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 할수 없다면
그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희망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박진영의 수필집中 희망고문-
.......................................................................

예전 인기있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들"(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에서
나온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서 적어봤다.
물론 이말은 가수 박진영이 낸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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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를 생각한다.

1. 제가 태어나서 살아던 곳은 내장산과 동학혁명의 첫 시발점인 전북 정읍입니다.

   제가 어렸을적 그러니깐 7살정도 됐을무렵(80년 12월)

   아버지 후배라는 사람 두명이서 손에 총을 들고 우리집에 불쑥 나타났습니다.

   (물론 겨울철 사냥에 쓰이는 총입니다. 동물,조류살상용이지만 인명살상도 가능함.)

 

   그해 오월 광주에서 민중 항쟁이 일어 났었고 아버지 후배라는 사람들은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마지막 도청에서 살아남았다고 했습니다.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도청전투가 시작되기전 빠져나왔는지,  

   전투후에 군인들에의해 잡혔다고 했는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여하튼 어머니는 참 무섭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아버지 후배들이 잡아온 토끼를 어머니가 요리해 주셨는데

   참 맛있었단 기억이 ㅋㅋ

 

 

 

 

2. 대학에 들어와서는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지요^^

   지금이야 고등학교에서도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진실을 학교에서 배우지만

   저희때만 해도 그렇진 않았거든요(전 93학번입니다.)

 

   광주 시민들의 시체사진과 독일인 언론인이 찍었다는 흐릿한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울분을 삼키지 못했던 그때!!

   아마 오월은 80년대 선배들에겐 민주화투쟁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겠지만

   저 또한 오월은 운동의 첫걸음을 떼게했던 사건이었고 지금도 저에게 삶의 숙연함을

   돌이켜보게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심란할때면 가끔 망월동묘지를 참배하러 가서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매년 오월 광주에 가보지만 기억에 남는건 99년 여름 여자친구와 휴가를 전남대, 조선대,

    망월동 묘지 참배하러 갔었답니다.ㅋㅋ)

 

 

 

 

3. 지금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전 다시 오월 광주를 생각합니다.

    시민군이 점령한 광주에서는 군인들과 시민들의 팽팽한 접전이 벌어지고

    그안의 광주 시민들은 도둑과 살인 방화가 일삼는 곳이 아닌

     저항과 나눔과 자치의 공동체였다고 합니다.

 

    혼연일체로 공동체를 지켰던 그 마음,

    피와 땀과 따듯한 미소로 서로를 하나로 이어주었던 것,

    거기에는 주먹밥이 있었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과

    이웃의 뜨거운 열정과

    총을 들고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피가 끓던 곳에

    주먹 밥이 있었답니다.

 

    주먹밥은 오월 광주의 가슴이자

    우리 미래의 희망입니다.

   

  -5.18기념재단 소식지 2005년 10월호 일부 인용-

 

   우리 주먹밥 같은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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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출전 후기!!

지난 6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중앙일보 마라톤 대회가 있었습니다.

중앙일보라는 언론사가 맘에 들진 않았지만

한민동 발전 기금 조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고, 저 자신 또한

이번 출전으로  인하여 심기일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음으로

여러모로 의미있는 마라톤 출전 이었습니다. ^^

 

여기에 간단하게 나마 마라톤 출전 후기를 남겨봅니다.

 



11월 5일(토)

황석이를 평택에서 만나 진국형 처가집(현경이네집)으로 출발!!

 

저녁 10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하여 인사드리고

저희들은 찜질방에서 몸풀기!!를 진행했습니다.

물론 간단한 음주와 함께요^^

 

찜질방에서의 편안한 취침을 방해하는 옆자리 사람들땜에

새벽 3시30분이 넘어서 집으로 돌아와야 만 했다는..쩝!

 

여하튼 새벽에 비 엄청시리 많이 내렸습니다. 장마비 처럼!!

 

새벽 5시가 다되어서 눈을 감긴 했지만 6시에 기상하여

아침을 먹었답니다.(마라톤 3시간전 식사!!)

현경이 어머님의 음식솜씨 정말 일품이더군여^^

진국이 형은 좋겠어요!!

 

==== 약속 있어서 짐 나갑니다. 집에 가서 다시 쓰지요 ====

 

죄송합니다. 말아톤 후기를 쓰다가 갑작스런 약속이 있어서

다 마치지 못하고 이제서야 집에서 쓰고 있습니다. ^^

 

여하튼 진국형 장모님(현경이 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일품이었습니다.

 

진국형 장인어른(현경이 아버님)이 차로 저희를 잠실 주경기장까지 데려다 주었고..

저희는 2만 여명이 넘는 인파 속에서 안내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구 다리에 멘소래담을

발라(?) 대면서 물품보관소를 찾아 갔습니다.  

 

19,630 : 저희의 물품 보관 번호입니다. ^^

 

진국형과 황석이는 사전에 마라톤 출전 신청을 했으므로 칩을 받아서 운동화에 부착을 하고

전 신청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냥 맨 운동화를 바라보기만 했다는 ..쩝!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화장실에 갔더니 여기도 인파는 초 만원!!

 

화장실에 갔다가 볼일을 보고 출발선에 갔더니 저희는 어느새 후미에 서게 됐답니다.

막간을 이용하여 스트레칭을 하고서 비가 약간 내리는 잠실 경기장에서 초조하게 출발을 기다렸네요^^

 

드디어 출발!!

 

그 많은 사람들이 함성소리와 함께 출발하는데 그 장면 정말 장관 이었습니다.

기억 하시죠? 학교때 가투 나가서 거리를 점령하고 화염병을 내리꽂던 그 때!!

 

구호를 외치며 그 넓던 거리를 점령하고 활보하던 그때!!

왠지 그런 느낌을 받아서 인지 더 흥분되고 감격했답니다. ㅋㅋ

 

진국형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될려고 10km를 생각했었는데..

집단의 힘이란게 참 대단했습니다. 그많은 사람들과 함께 뛰다보니

힘든줄도 모르고 뛰었습니다.

(사실은 야한 옷차림의 여자 마라토너 뒤따라 가다가 20km까지 뛰었다는 후문이ㅋㅋ)

 

여하튼 반환점까지 가자는 생각으로(황석이와 저는 11km 지점에서 헤어졌지만) 달리고 달렸는데..

저희들이 목표한 반환점까지는 달렸네요^^

사실 반환점까지 가면서 순찰자가 시간 초과되었다고 이제 그만뒤고 인도로 올라가라는 방송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뛰었던 결과가 아니었난 생각됩니다. ^^

황석이도 그랬겠지만 완주는 못했지만 첫 도전에 선전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진국형은 그사이 힘든 과정(34km-35km)을 극복하고 4시간 28분만에 완주 했습니다.!! 짝짝짝.

완주 후 저는 전화기도 없고 연락할 길이 없어 한시간 넘게 생이별 했다가  만났답니다.ㅎㅎ

 

마라톤 출전후! 저또한 저 자신에 놀랐지만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한민동 발전 기금 조성을 위한 첫 시도 였지만 저의 생활에서도 많은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후원금 모금과 전화, 문자 메세지로 응원, 후원해주신 한민동 동문들께 머리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늦은 후기지만 널리 양해해주시고

앞으로도 한민동의 발전을 위한 동문들의 자그마한 관심!!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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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을 뒤돌아 본다.

바쁘게 사는 것만이 다 좋은건 아니다.

가끔은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 볼줄 알아야 한다.

 

10월 한달 난 뭐하며 살았나?

10월의 마지막 날 밤 난 곰곰히 나를 곱씹어 볼 생각이다.

(세세한 일정보다는 기억에 남는 일들로 정리할 생각이다.)



* 10월 1일(토)

한남대 민주동문회 밤줍기 행사가 청양에서 있었다.

늦은 시간 까지 뒤풀이

 

* 10월 2일(일)

대학때 사회과학 학회 땀사랑의 졸업생&재학생 체육대회

오랜만에 참 즐거웠네.^^

 

* 10월 3일(월)

이날은 후배 결혼식이 하나 있었고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이었네.^^

 

* 10월 4일(화)

황금 연휴뒤의 출근. 대전광역시당 운영위가 있었고..

상주에서는 가요콘서트 현장에서 대형사고가 있었다.

학교 선배 어머님이 이 사고로 돌아가셔서 상주 성모병원에 문상을 갔다왔다.

 

* 10월 5일(수)

문화, 산성동 분회모임이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당원이라는 소속감으로

금방 친해졌다. 술 마이 먹었다. ^^

 

* 10월 6일(목)

하루내내 사무실에서 자료 만들었던거 같다. 사업계획서.등등

 

* 10월 7일(금)

민주화 운동 계승 사업회 회의 갔다가 창당대의원대회 개최했다.

 

* 10월 8일(토)

전교조 대전지부에서 강연회가 있었고, 故 오원진, 윤재영 동지 추모제가 충대에서있었다.

아버지 뵈러 고향에 가다가 고속도로 상에서 차가 멈춰버려 곤욕을 치렀지. 아마ㅠ.ㅠ

견인비로 10만원 줬다. 속 무지 쓰렸음.

 

* 10월 9일(일)

청년회에서 사정공원으로 야유회를 갔다. 원래는 대청호 근처인 문의문화재 단지에 가기로 했었는데 그날이 대청호 마라톤 대회라 교통 통제관계로 우리는 사정공원에서 열나 잼나게 놀았다. 주변사람들이 부러운듯 쳐다보더라^^

참 이번 야유회는 가족들이 많이 왔는데 나도 가족과 함께 오고픈 충동을 느꼈음.

 

* 10월 10일(월)

창당 대의원대회를 마치고 본격적인 당원 만남 사업을 진행하였다.

하루에 5명의 당원만나기 사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하루에 5명 만나기가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다.

 

* 10월 11일(화)

오늘도 마찬가지로 당원 만남 사업 진행.

 

* 10월 12일(수)

당원 만남 사업 진행.

 

* 10월 13일(목)

기독교 봉사회관에서 615공동위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고 19:00에 선화,은행동 분회모임에 참석했다. 즐거운 시간 2차로 간 천둥소리라는 주막에서는 오랜만에 우금치 선후배를 만났다.

 

* 10월 14일(금)

가극단 미래에서 기획실장을 하고 있는 혜진이에게 한달동안 세뇌를 당해온 가극단 미래의 공연이 충남대 정심화홀에서 있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곳저곳 뛰어 다닌 결과로 이 많은 사람들이 왔구나 싶었다.  모처럼 혜진이가 대견해 보였다.^^

 

공연 관람후 한남대 민주동문회 운영위가 기동형 식당에서 었었다.

재학생 후배들이 와서 이른 아침까지 술 마셨지 아마^^

 

* 10월 15일(토) 점심에 태평, 오류, 유천동 분회모임 있었다.

당원들이 많이 안나와서 기분이 쫌 그랬다. 분회모임 간단히 끝내고 실천연대에서 준비한

 청소년 통일 한마당에 참석했다. 중고등 학생들이 많이 참석해서 기분이 많이 풀렸다. ㅋㅋ

 

참, 4-5년전에 가르쳤던 학생들이 나를 알아보구 반가운 척을 하더라. 중학교 1,2학년이었던 아이들이 벌써 못알아볼 만큼 컸다. 고 2,3학년으로^^ 녀석들이 알아보고 친한척 하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나서 무척 곤욕스러웠다. 그래도 이해해주는 녀석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청소년 통일한마당에서 만난 5명의 제자들..지금도 가끔 문자온다. 감기조심하라구 왜 결혼 안했냐구^^ 귀여운 것들!!

 

* 10월 16일(일)

정범형 결혼식이 서울에서 있었다.

아침 일찍 기동형 차를 타고 병구형, 혜진이, 명기, 등등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다.

지루하게 들리던 주례사가 어찌나 머리에 쏙쏙 들어오던지.

정범형 결혼식에서 나도 결혼하고 싶단 생각 해봤다.^^

 

사람들 만나느라 대학로에서 있었던 비정규직 입법쟁취대회에는 못갔다.

 

* 10월 17일(월)

덤프연대 출정식에 참가하고 도시철도 시설공단 김충기 위원장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야 한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의 공세와

맞써싸워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측의 비상식적 행위, 탄압들.. 눈물이 나올려고 했다.

 

* 10월 18일(화)

민주화 운동 계승사업회 운영위회의에 참석하고 부사 석교 대사 대흥동 분회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날 갑자기 서울에 있는 친구녀석이 대전에 내려왔다는 연락을 받고  술집에서 만났다. 친구녀석이 나에게 여자 후배를 소개시켜줄려고 왔다고 했다.

엉겹결에 소개 받고 잼나게 술마시고 놀았다. 그때 에피소드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난 그날 오버 많이 했었다. ㅋㅋ

 

* 10월 19일(수)

대전광역시청에서 기후변화 협약 관련 토론회가 있었다. 시민단체와 공무원들이 많이 왔었고 보고픈 사람들도 인사나눠서 좋았다.  나를 끔찍히 아겨줬던 삼촌 같은 대전시청 환경정책과 김해명 주사가 술한잔 하자고 전화가 왔는데 선약이 있어 못했다. 어찌나 죄송하던지..

 

* 10월 20일(목)

중구위원회 4차 운영위원회가 있었고 운영위 만장일치로 사무국장으로 인준 받았다.^^

 

* 10월 21일(금)

문화 산성동 분회 2차 모임이 있었다. 저번보다 두사람이 덜왔다. 

3차모임에는 한명씩 더 데리고 오기로 했다.  

이날 시민아카데미 강연회는 또 못갔구나. 외원 형 미얀!!

 

* 10월 22일(토)

대전역에서 APEC관련 퍼포먼스가 있었고 늦게 갔다가 사무실 이전문제를 논의하고

순복이 생일 잔치에 참여 했다가 동학사 모꼬지에 참석했다.

늦은 시간까지 열띤토론을 하다가 목, 어깨 근육이 경직되서 아파 죽는 줄 알았다.

 

* 10월 23일(일)

울산 선거 지원투쟁을 갈려 했는데 이른 아침까지 술마시고 토론하다가 늦어서 못가고

호텔리베라 정상화를 위한 걷기 대회에 갔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리베라 사람들은 안보이구 유성구청 행사였다. 유성구 웰빙 페스티발이라구.

그리곤 동학사에 가서 잠간 사색을 하고 산책을 했다. 사람들이 많은것 빼곤 정말 좋았다.

조용히 나를 돌아보기도 했고 여러 일들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사업구상도 했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2-3시간 한참을 그렇게 있고 싶었다.

 

* 10월 24일(월)

2년전에 안받았던 예비군 훈련 보충이 있었다. 2년전에 끝나어야 할 예비군 훈련을 이제 받았다. 이젠 민방위다.

 

* 10월 25일(화)

문화동 주민모임을 진행했다. 문화동 마을 잔치 준비모임이었는데 대문초등학교에 벽화그리기, 벼룩시장, 마을 잔치 사업계획을 논의하였다. 11월 12일 토요일에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했다.

 

* 10월 26일(수)

한남대 민주동문회 송년의 밤 준비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작년 송년의 밤을 평가하고 올해 송년의 밤 사업계획안을 논의했다. 회의 끝나고 맥주한잔씩 하는데 피곤해서 죽는 줄 알았다.  

 

* 10월 27일(목)

원자력 문제관련 토론회가 있었다. 당원들의 비공개 토론회 였지만 대전지역의 현안문제라 관심있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 했다.

토론회가 늦게 끝났고 여민회 후원의 밤에 참석했는데 행사는 끝나고 뒤풀이에 참석해서 인사 나눴다.

시민아카데미 학교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는 참석 못했다.

 

* 10월 28일(금)

대전광역시당 상집위 회의가 있었는데 저녁 7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나는 바람에 한남대 탈반 공연도 참석 못하고, 청년회 금요사랑방에도 참석못했고.. 결국 한남대 후배들과 12시 넘어 맥주한잔 하고 새벽 2시가 되어 집에 왔다.

 

* 10월 29일(토)

오늘은 형수님과 조카와 시청 근처에서 점심약속이 있다. 오후 2시엔 농산물 명예 감시원 활동을 한시간 해야 겠고, 민주화 운동 가족 한마당이 서천에서 있는데 거기는 참석할수 없을거 같다. 거기에 참석하면 오후 일정과 내일 일정 모두 접어야 하니깐. 저녁엔 정지희샘 아들 돐잔치가 아리제 뷔페에서 있다. 참 오늘부터 내일까지 무주에서 여성정치학교가 있다. 여기도 참석은 못한다. ㅠ.ㅠ

 

* 10월 30일(일)

전교조와 함께 떠나는 기행에 참석예정이다.

건설노조 체육대회가 있고, 양유경 간사 결혼식, 지회 동생 결혼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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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금 내가 사랑에 빠진걸까?

좋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먼저 좋다고 이야기 할까 서로 망설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변해갈까 두ㅡ렵습니다.

 

언젠가 후배가 말했던

사랑이란...

이게 사랑인가 생각이 들면 그게 사랑이라고 이야기했던 말.

 

정말 지금 내가 사랑에 빠진걸까? 




"어떤 커플이 이 세상에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만날 확률 안 만날 확률 반반이죠...
하지만 따져보면 내가 남자로 태어나고 그녀가 여자로 태어날 확률 1/2 ,
이 세상의 수많은 국가 약 200개국 중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날 확률 1/200 ,
대한민국에서도 같은 지역에서 태어날 확률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역을 약 1000개의 시도, 군, 읍, 면이라 해도 1/1000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있을 확률...
시간을 숫자로 환산하면 약1/1000000000000000000000000...................
즉 앞으로 아무리 좋은 성능의 컴퓨터가 나와도 이 확률을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즉 어떤 커플이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인연이 아닙니다....인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적입니다......"

....................<김제동 어록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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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에 흔적..

참 오랜만에 흔적을 남긴다.

그냥 바빴다. 여러 일들이 있었고..

흔적 남길려고 하였으나 글을쓰면서도 지우기 일쑤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보단

때론 아무일 없듯이 술잔을 기울일수 있는 사람이 있었음 좋겠다.

 

가끔 아주 가끔은

그런 사람이 그립다.

 

내가 생각하는 편안한 인생의 반려자의 모습!!

웹서핑하다가 원글에다가 각색해서 몇자 첨부해본다.

 




내 아내가 될 사람은..

 
퇴근길에 동네 슈퍼 야채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핫~' 하고 웃으며
저녁거리와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집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갈 수 있었음 좋겠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 날 있었던
열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들부터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 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들어와서 같이 후다닥 옷 갈아입고 손만 씻고,
한 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겆이를 덜그럭덜그럭 하고
또 한 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배고파~" 해가며 찌게 간도 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 먹고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겆이를 미루며
왜 니가 오늘은 설겆이를 해야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바위보로
가끔은 일부러, 그러나 내가 모르게 져주는... 
이해심 많은 여자였으면 좋겠다.

주말 저녁이면 늦게까지 TV 채널 싸움을 하다가
오 밤중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같이 비디오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
떡볶이에 오뎅국물을 후룩후룩~
"너 더 먹어~" "나 배불러~" 해가며 게걸스레 먹고나서는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 채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가끔은 나처럼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아내와 둘이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따라놓고 앉아
아직껏 품고있는 자기의 꿈 얘기라든지
그리움 담김 어릴적 이야기라든지
십 몇년을 같이 살면서도 몰랐던
저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젠 눈가에 주름잡힌 남편과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신념있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사람.
술 자리가 이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줄 아는 사람.

내가 그의 남편임을 의식하며 살 듯,
그녀도 나의 아내임을 항상 마음에 세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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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비정규직 연대회의 출점!!

전국 비정규직 연대회의 출범!!

오늘 결혼식에서 늦장부리다가 참석 못했다.

 



10월 16일 오후 1시부터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출범선언식이 있었다.

 

연단 모습


>> 계속 보기...


 대오 모습

 

민중의례

 

 

 

문화예술노조 세종문화회관 조합원들의 공연 

 


 

전비연의 5개 부문(공공, 사내하청, 이주, 일반노조, 특수고용)의 결의 발언

 

선언문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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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레닌주의 민족이론

 요즘 머리속을 맴돌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려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예전 글을 쓸려던 주제는  운동세력내에선 뜨거운 감자에 해당하기에 아직은 

시기상조인거 같아서.. 그전에 이해를 돕기위해 논쟁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위해

논란이 될수 있는 여러 개념들에 대해 나의 입장을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 시간관계상 전체적인 완성된 글보다는 틈틈이 써서 올리는 형식으로 해야 할거 같다.

 

이번엔 서론에 해당하는 "들어가며" 부분만 적기로 한다.  



들어가며

 

민족문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체계속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역사발전의 동력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서 찾고, 그것의 외화된 형태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계급투쟁이라고 파악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체계 속에서 민족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인것 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민족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계급투쟁전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원전을 학습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노력인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기울인다면, 그러한 사실은 금방 알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처음부터 완성된 체계로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며 형성된 것입니다. 즉 새로운 현상과 맞서 그것을 과학적으로 해석해 냄으로써 그 이론체계를 더욱 더 엄밀화 시켜 왔으며, 더욱더 구체적인 실천의 지침을 제공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밝히고 있는 민족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혁명과 건설이 민족을 그 단위로 하여 이뤄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즉, 계급투쟁의 성패여부가 민족내의 다른 계급과 계층을 우군으로 끌어 들이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으로, 계급의식의 고양과 함께 해당 민족의 민족문제에 관한 올바른 관점 수립이 필수적인 과제로 됩니다.

 

다음에 제국주의의 기생성과 부후화를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는 오늘 날에 있어 식민지 민족해방운동과 그것이 추구하는 '자결과 자주가 보장되는 새로운 국제질서"는

계급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한 전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레닌이 말했던 것처럼 민족문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혁명적인가' 혹은 '기회주의적인가'(말이 아닌 실제에 있어서)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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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결혼 할래~~~~~!!

오늘 비정규직 입법 쟁취 결의대회에 참석하기로 하고선

서울에서 있는 정범형 결혼식엘 갔다.

 

오랜만에 참 많은 선후배 동기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조금더 조금더 늑장을 부리다가 결의대회는 참석치 못하고 대전에 내려왔다.

 

이번 결혼식은 다른 결혼식과는 다르게 유독 분위기가 엄숙했고..

결혼 행사 진행이 머리속에 쏙쏙 들어왔다.

 

그렇게 지루하게 들리던 주례사도 어찌나 머리에 꽉차게 들어오던지.^^

 

정범형 결혼식을 지켜 보면서 나도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해봤다.*^^* 

 

나도 결혼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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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장시기 동국대 영문과 교수

장시기 동국대 영문과 교수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홈페이지에 ‘김일성은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장 시기 동국대 영문과 교수의 글 전문.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한반도의 김일성을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인도의 간디, 쿠바의 카스트로, 이집트의 낫세르, 그리고 중국의 모택동처럼 김일성은 제 3세계 국가들의 국민들이 우러러보는 세계적인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의 반열에 아주 우뚝 서 있다. 그래서 이곳 아프리카인들은 한반도의 싸우스 코리아보다는 노쓰 코리아를 더 친근하게 생각한다. 카페에서 만난 미술가라고 자기소개를 한 어떤 아프리카인은 왜 코리안은 싸우스에서만 오느냐고 나에게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혼자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어쩐 도리가 있겠는가?

근대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던 시대이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곳 아프리카는 거대한 대륙 전체가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이다. 그들의 근대적 경험은 오직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백인과 흑인의 이분법 속에서 백인 편에 있는 사람들은 나쁜 놈들이었고, 흑인 편에 있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1960년대부터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해방되기 시작했고, 이들의 해방전쟁에 도움을 준 나라들이 쿠바, 노쓰 코리아, 중국, 스칸디나비아 NGO 단체들, 그리고 구소련이었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 나라들의 독립에 가장 걸림돌의 역할을 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마치 베트남 전쟁처럼 이전의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이나 프랑스를 대신해서 아프리카를 지배하려고 했다. 그들의 지배전략은 이전의 영국이나 프랑스 식민지하에서 성장한 아프리카인 독재 권력집단의 배후를 조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프리카 내부에서 성장한 독재 권력집단과의 싸움은 미국과의 싸움이었고, 그들보다 먼저 미국과의 싸움에서 아주 당당했던 김일성은 자신들의 지도자들만큼이나 존경스러운 먼 동양의 지도자였다. 나는 김일성과 같은 코리안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곳 아프리카인들에게 흡족한 대접을 받을 때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근대는 민족주의의 시대이다. 그것이 제국주의든지 실리적 자국주의든지 간에 민족주의는 근대를 지배한 고유한 사상이다. 영국인은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일본인은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를 본다. 중국인은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아프리카인들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세계를 본다. 물론 이러한 근대성은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세계 여러 나라들로 확산된 것이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서구, 백인, 남성 중심주의로 세계를 보니까 그것에 피해를 받는 민족이나 나라들이 자신들도 자신들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근대의 틀 안에서 아주 공정한 입장에서 타 민족이나 국가와 비교하여 자기 민족의 역량과 한계를 파악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근대의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민족주의 때문에 근대의 풍경은 외부에서 더 잘 관찰된다고 한다. 강정구 교수의 한국전쟁에 관한 글은 학문이 지녀야 할 객관성, 즉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근대적 풍경을 아주 잘 전달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식민지에서 해방하여 서구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주체적인 민족국가를 달성하는 것은 모든 한반도인들의 꿈이었다. 그러한 당연한 민족주의의 꿈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아주 적나라한 친일행위 때문에, 혹은 친일 행위를 통한 부와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이웃에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일본은 미국-일본 제국주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자기네들의 섬나라로 밀려갔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대신해서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에 들어왔다. 근대 민족주의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친일 대신에 친미를 할 수밖에...

싸우스 코리아이든 노쓰 코리아이든 모두 코리아라는 이곳 아프리카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와는 달리 한반도의 내부에서는 결코 한반도 전체를 볼 수가 없다. 이번 강정구 교수 필화사건을 빨갱이로 매도하거나 김일성 대학으로 가라고 협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민족주의자라고 한다.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는가? 만일 한반도에서 만델라나 움베키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하고 영국 식민지나 네덜란드계 백인의 독재를 그리워하는 아프리카인을 민족주의자라고 하겠는가? 미쳐도 한참 미친 아프리카인이라고 욕할 것이다. 더군다나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국가보안법을 토대로 구속 수사를 하겠다는 경찰이나 불구속 수사를 하라고 하는 천정배 국방장관은 미쳐도 한참 미친 한반도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한반도인이 아니라 일본인이거나 미국인, 혹은 일본이나 미국의 꼭두각시일 따름이다.

그러나 만델라의 등장 이후로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는 아프리카주의로 바뀌었다. 만델라와 만델라의 뒤를 이어 남아프리카 대통령으로 일하고 있는 움베키는 결코 민족이나 국가주의자가 아니라 아프리카주의, 혹은 세계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우리 아시아인으로 치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불상 유적처럼 먼 사하라 사막에 있는 팀박투 유적을 보존하기 위하여 “팀박투 보존 사업”을 남아프리카 국가사업으로 지정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남아프리카를 방문한다는 것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들은 또한 수단의 아랍계와 흑인계 내전에서 수단의 문화가 전통적으로 이슬람 문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흑인계의 반란을 영국 식민주으자의 책동으로 보고 아랍계를 은밀히 지원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비로소 만델라와 움베키를 통하여 근대적 지도자의 우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한반도는 하나이다. 하나의 한반도 속에서 김일성은 가장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피의 동일성을 근거로 만들어진 민족주의의 근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곳 아프리카인들은 아프리카에 사는 모든 사람들, 더 나아가 인류의 모태인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모든 유럽인, 아시아인, 그리고 아메리카인들을 모두 아프리카인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종족주의라고 욕하지 말라. 아프리카주의의 아프리카인들은 인종이나 성, 혹은 사상으로 차별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이 인류의 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유럽이나 아시아의 세계주의는 우리가 모르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근대화의 과정에서 노예와 식민지만을 겪은 아프리카인들의 아프리카주의는 전혀 음모가 없다.

이곳 아프리카인들은 만델라와 움베키를 통하여 비로소 근대의 민족주의를 극복했다. 한반도의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 김일성은 이미 죽었다. 죽은 사람의 시대는 과거로 돌려야만 한다. 이제 한반도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간디나 낫세르와 같은 근대의 민족주의 지도자가 아니라 살아서 인류의 미래를 만들고 있는 만델라나 움베키처럼 남과 북을 모두 포용하는 한반도주의와 아시아주의를 만드는 세계주의의 지도자이다. 이러한 지도자는 아주 당당하게 미국주의만을 고수하는 미국에 반기를 들 것이고,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의 화려한 고대문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문화사절단을 보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 유적 훼손을 욕할 것이 아니라 고구려 유적을 보존하기 위하여 중국과 손을 맞잡고 고구려 유적탐사단을 국가적으로 조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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