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8월 9일

또 다시 포항.
태양의 빛깔이 조금은 기울었다. 정신이 또렷하다.
이미 부검결과가 나왔는데도 어떤 발표도, 어떤 언론보도도 하지 않고 있다.


저들에게 치명적이어서이다. 그런것이다.
8시간을 노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흙먼지가 안날리는 곳에서 점심을 먹게해달라는 것.
포스코가 설마 그 푼돈을 아끼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06년 건설 노동자가 요구하는 상식은 그토록 치명적인 요구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제대로 인간처럼 살겠다는 주장이 이 나라 정권에게 그리도 위험스러운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방패에 맞아 죽어야 했던. 꼭 그렇게 정해진 순서처럼 개죽음을 당할 수 밖에없는 이유는 정말 무엇일까.

대체인력 투입을 막기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우연한 점거가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하늘같이 높은 기업주에게 밑바닥 건설노동자가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이 행동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연간 5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이 나라 철강산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포스코에게 애초부터 건설노동자의 파업쯤은 별 대수롭지도 않은 거추장스러움이었을 뿐이었으리라.
점거와 파업을 압장서서 불법으로 매도하고 지역관공서들의  허접한 사명감을 조작하여 건설 노동자들을 '미친이익집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정권이다.  그래서 밥과 의약품을 끊어버리고 그 어이없음을 항의하는 노동자의 가족들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깨놓고 임신한 여성을 발로 짓밟은 광기가 전혀 '비정상적'이지 않았던 현실이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천금같은 아기가 유산되고 성실하게 지켜져왔던 46년의 생명이 한순간에 끝이났다.

그러나 이는 대추초등학교를 단 한시간만에 부수어내고 군대막사를 들판 한가운데 세워내어 할머니를 울분에 기절시키는 저 광기어린 어떤 '통념'의 시각에서 본다면, 지극히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뿐.

이 두가지의 상이한 '자연스러운 상식'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때, 한사람이 죽음을 항의하다가 또다시 100여명이 한꺼번에 머리가 깨져 실려가고 있어도, "하나의 우발적이고 안타까운 사고가 매우 부자연스럽게 발생했을 뿐!"이라는 새로운 통념은 또 저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영정의 검은 띠가 끔찍하도록 어색한 하중근을 추모한다는 것,
여기서 '추모'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대체 무엇을 안타까워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반드시 해야만 했던 행동과 그 자연스러운 일상속에서 유독 그 만이 '나쁜 주술에라도  걸려서', 운명적인의 저주와 재앙의 제물이 되어 슬프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저 폭악스러운 살인정권에게 있어서는 일상적인 '상식'이었을 뿐이다. 
하중근 열사의 울분이 그 스스로에게 꼭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밑바닥 노동자들 그 국민의 대다수가 생의 무거운 짐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할때 그것은 '사회통합적인 노사관계'라는 환상에다 대고 요청하라는 노무현 정권은, 포스코가 200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액 청구서를 밑바닥 노동자의 어께위에 자연스럽게도 얹어놓는 것을 가볍게 묵인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미친듯이 그 항의하는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매일매일 내 머리통이 깨져나갈 것을 각오하며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집회에 나가야 한다.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상식'으로 통용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국민을 상대로 살인을 자행하는 정권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이제는 정말 끔직하지 않은가.

밤 9시가 되어 깜깜해졌다.
오늘 하루 말복 삼계탕 장사에 손해를 본 식당주인들이거나, 길 가다가 어이없이 방패와 곤봉 얻어맞은 민주노총 조끼를 입지 않은 포항시민들이 경찰앞에 몰려가 항의하고 있다.
무엇이 시민들을 저리도 분노케했는지 그 진상은 잘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포항 시민들'이라니 어쩌지도 못하고 허공에 소화기만 뿌려대며 고심하고 있는 전경의 들썩거림에 나는 조금 움츠려들었지만.  런닝셔츠바람의 한 아저씨는 맨 앞줄 젼경의 방패 아랫부분의 고무바킹이 없이 날카롭게 갈린 것을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호통을 치고 있다.
"이걸로 니네가 사람죽인 거 내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또 죽일려고 고무 빼고 나왔노! 엉?"
아이를 데리고 맨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아줌마의 몸짓도 무척 매섭다.

누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모르게 갑자기 대오가 일어서 전경앞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물대포와 함께 정말 어이없게도 젓가락과 숟가락이 날아왔다. 포항경찰이 빠지고 서울에서 온 부대가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자 나와 우리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시작했다. 상당한 거리를 정말로 빠른 속도로 밀려왔다. 그동안 방송차는 빼앗겼고 지도부도 연행되었다.

서울이 아닌 지역의 집회는 확실히 그 지역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가 충만해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야 늘 선동하는 사람들의 발언방식과 의례적인 수순이 정해져 있는...소위 '관료적'이라 표현해야 할까?...방식의 선동이 아니었다. 뭐랄까...좀더 '지역시민'이라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진심이 담긴 호소같은 것?..방송차의 선동은 줄곧 귀기울여 듣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상투적이지 않은 결연한 투쟁의지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답게 살겠다는 요구가 방패로 맞아죽어야 할만큼 잘못된 것입니까?"
"포항시민여러분이 두눈을 뜨고 똑바로 보아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맞아죽는지 말입니다."
"누가 포항시민입니까? 바로 여기 있는 포스코 건설 노동자들이 포항시민아닙니까"

두 번의 무지막지한 침탈은 그 자리에서의 다소 거친 토론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분노와 두려움에 상기된 아저씨들이 서로에게 거친 욕을 내뱉으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마치 우리의 후퇴가 옆에있는 동료의 탓이라는 듯. 진심은 그런게 아니겠지만 옆에서 보면 곧 멱살잡이 싸움이 날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지난번 4일 집회에서도 그랬다. 자신의 분노섞인 두려움은 곧 함께 맨 앞줄에 나서지 않는 동료들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자신의 주저하는 발걸음을 다시 쟁겨보기도 하고...그런 용도로 사용되는 거친 욕설같았다.

100여명이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그 중 두명이 중태라는 소식, 열 여섯명이 연행되어 이들이 석방될 때까지 형산 로타리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연좌를 하겠다는  또 다른 방송차위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