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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와 나 (386세대와 X-세대의 비교)

수다쟁이님과 나와의 정치적, 문화적, 세대적 지형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은 퍽 흥미로운 일입니다. 386 세대, 혹은 모래시계 세대라고 불리는 그의 세대와 X-세대라고 불리는 나의 세대간의 수식어의 어색함만으로도 세대간의 차이를 크게 느끼게 합니다.

사실 나는 그의 세대를 동경했습니다. 뭔가 투쟁할 것들이 산재해있었고 진지한 문제의식과, 이데올로기가 살아있었고 건강한 젊음의 피냄새를 맡는 듯 했습니다.
그의 캠퍼스엔 강제 입대, 강제연행, 의문사, 고문경찰, 수배자 ... 같은 단어들이 을씨년스럽게 등장하지만 나의 캠퍼스엔 최루탄 냄새가 없었습니다. 부조리는 여전하지만 저항의지 조차 없었습니다. - 이제 생각해보면 웃긴 기억인데 당시 이공대 학생이면서 동기들과 이념논쟁을 시도했던 나는 '미친 짓'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기득권을 갖고 있던 수구, 우익 세력의 전략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을 통제할 효과적인 방법, 그것은 강제입대도, 제적처리가 아니란걸 경험적으로 알게 됐으며 결과적으로 좁은 취업문을 선택함으로써 학생들을 통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좀 더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겁니다. 사견이지만 386세대와 X-세대간의 근본적인 시대적 격차의 키워드를 경제와 IMF로 찾고 싶습니다.

좀 더 상황설명이 필요한데 386세대는 그 이전 '해방둥이'세대와 그 전전 세대가 산업계획의 미명아래 착취당해온 경제적 성장의 수혜자였던 반면 (물론 대학생이었을 때를 기준해서) 나의 세대는 386세대가 목숨걸고 획득한 민주와 인권신장의 수혜자였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그의) 세대가 만들어논 개선된 정치적 상황에 있었던 것일 겁니다. - 그래서 나의 세대는 문화적인 다양성을 많이 갖습니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생존과 민주(or 양), 문화(or 질)의 관계는 이렇게 한박자를 주기로 전제하는 듯 합니다. ( 그래서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찬성함. )

여하튼 386세대에는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편입할 수 있을만큼 인력pool이 모자랐지만 (혹은 대학생으로서 희소가치를 가질 수 있었지만) 나의 경우는 IMF 한파와 맞물려 청년실업이 큰 위협이었을 겁니다. (난 이를 제2의 문화정책 혹은 3S라고 봅니다.)
때문에 386세대의 가방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상서의 부제 만큼 우리들은 TOEFL, TOEIC 책을 가지고 다녔나봅니다.
하지만 단지 취업문을 좁히므로서 애들을 말 잘 듣게 했다고 단언하기 힘듭니다. 전술했듯이 총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수다쟁이님 세대 못지 않게 나의 세대도 파란만장한 시대적 변화에 있었습니다. 수능 1세대였으며 교복부활 1세대였고 신군부 종식과 3김세대를 잇는 청문회 세대였습니다.
또한 내가 대학 들어갈 당시 95년에는 해외여행이 자유로왔으며 4달만 알바를 해도 배낭여행을 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대 즈음에 국제금융기구의 구제금융을 받게 됐지만...

이 세대가 갖는 또 하나의 키워드, '문화'의 다양성이라고 봅니다. 물론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이 시대의 문화운동은 허구가 많습니다.
이 시대 부터 본격적으로 연예인들이 양아치화 됐으며, 이 시대 무터 연예인들이 부층으로 편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홍대와 신촌 일대를 거점으로 여러 장르의 Rock씬이라던가 HipHop, 인디 문화가 들어왔습니다. 또한 다른 문화적 다양성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이것도 역시 기득권의 문화정책이라 보지만..)
반면에 수다쟁이님 시대의 문화는 내 기억으론 민중가요와 Folk 밖에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Rock이 제일 꽃폈던 시기일 수 있겠지만 물량으로 따지면 그렇습니다.

할 말이 많았는데.. 글빨 딸려 이쯤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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