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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한 심정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루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곡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음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3.12일 어제는 정신적 패닉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갑자기 김지하의 이 시가 생각나는건 왜 일까
비열하게 웃으며 탄핵 가결을 발표에 박수치는 의원들의 모습에서 민주주의의 죽음을 봤다.
눈물 흘리며 애국가를 부르던 열우당 의원의 오열하는 모습에서 민주주의의 죽음을 봤다.

2004년 3월 12일 어제는 5.16, 12.12를 걸친 우리나라의 치욕적인 하루며 잊지 말아야할 하루다..
민주주의...
아니다.. 이건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 관련하겠지만 그 본질은 다른데 있다.
정치인들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정치는 대립관계에서 생존감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반목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친일-항일의 대립관계였으며, 해방 시대에는 이데올
로기를 기반한 남-북의 대립관계를 갖았다.
박정희 시대로 접어들면서 처음엔 남-북의 구도를 계승하더니 김대중(선생)의 지지율이 높아지므로 정치적 위협을 느
끼자 동-서의 대립관계로 판을 바꿨다.
이를 그대로 계승한 삼김과 삼김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노무현 정부의 출범으로 새로운 대립구도를 갖게 됐다.
우익과 좌익, 보수와 진보...
일단 의미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정치적 토양이 척박한 우리나라에선 이런 분류법이 무색할 뿐더러 정체 자체
의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극우, 보수, 수구, 우익들을 싸잡아 보수라 하겠다.

갑자기 정치적 지형이 바꼈다.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그들의 '게임의 법칙'이 붕괴되고 보수와 진보의 대치관계가
되다보니 한나라, 민주, 자민련의 정치색이 같아졌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가 스스로 해제한 3권 분립, 탈권위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듯한 시국으로 치닫게 됐
다. 그리고 검찰의 정치자금 조사와 더불어 떨어지는 정당 지지도... 이런 여러가지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변수들이
이 사태의 배경에 있다.
그러므로 작금의 이 싸움 혹은 이 쿠데타의 배경은 다시 보수와 진보의 관계에서 헤게모니를 가진 -헤게모니를 곧 빼
앗길- 집단과 헤게모니를 해체하려는 시대적 요구와의 갈등관계로 봐야할 것이다.

내가 어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살의를 느끼기까지 했던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된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의 정의가 난도질 당한 것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분노 때문이다. - 그리고 왜 우리의 인생의 선배들이 자기 인
생 망쳐가면서 까지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을 했었는지 공감이 갔다.
그들의 논리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나 그들은 민의를 표방하지만 그들의 민의는 국민 30%의 민의였고 그들은
민주주의 수호를 주장하지만 그들이 한 행위는 민주주의 말살이었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우당과 대치된 그들이 아닌 정의와 민주와 원칙, 형평성을 무시한 그들, 모순과 부조
리와 집단이기적 그들에 분노한다.
여기서 한가지 명백해야할 것이 있다. 우리가 이 사태에 대한 '관전 포인트'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것은 부패와 부조리에 대한 '그들'의 식별이지 노무현 대통령과 열우당과 대치된 '그들'로 봐선 안될 일이다.
이것은 냉전 시대의 단순한 이분법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어제 내가 여의도에 갔던 이유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말도 안되는 탄핵을 가결한 국회를 규탄하기 위해서지 노사모
집회에 참석하러 간게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분위기가 정치색을 강하게 띄면서 부터 있을 이유를 찾지 못 했다.

국회의원이란 이상한 존재다. 또한 그들을 착하게 믿고 있는 '우리들'도 이상하다.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의 정치를 선택한거고 그 '선택'된 자들이 국회의원이다.
그들이 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저들의 당리, 당략이라는건 어린 아이도 아는 사실이거니와 그들은 확실히 '대의'정
치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직무유기로) 처벌받아 마땅하다.
다시 또 후회할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16대 국회 같은걸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총선은 어느
때 보다 신중해야한다.
여하튼 민의가 정치적 대리인에 의해 무시당한 이 상황에서 시민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집회에 참가해서든 게
시판을 통해서든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어필이 필요할 때이다.
'한 줌도 안되는' 국회의원 193명에 의해 유린당한 우리의 권리를 탈환해야한다.

또 하나의 비참한 생각........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한나라당 당사에 경제를 살리겠다는 플랜카드가 붙여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폭락한 주가 하락과 외자자들에 대한 눈치를 보고 있다. 그래.. 경제 살려야한다.
하나만 짚고 넘어가고 싶다. 정의가 중요한가 경제가 중요한가
또... 그들이 말하는 경제가 실업자와 신용불량자, 극빈빈농층, 노숙자들을 위한 경제인가 있는 자들이 배부르기
위한 경제인가


끝으로 진심으로 부르짖고 싶다. 민주주의여 만세.


2004 3 13 탄핵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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