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기형적 역사, 기형적 국가, 기형적 통치자 - 박정희에 대한 소고

제가 생각하는 박정희의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기형적인 국가를 만든 원흉이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저에게 있어 박정희는 그의 공에 대한 메리트는 전혀 느낄 수 없음에 반해 그의 과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하는데 있습니다.


박정희를 논함에 있어 그의 옹호자들은 그 시기에 이뤄졌던 압축적 산업화를 이야기 합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띈 민족이 새마을 정신으로 뭉쳐, 보릿고개를 넘어 GNP 1500달러의 신화를 이뤘다는 거죠.. 게다가 개도국으로서 당당하게 중화학 공업의 육성/성공 체계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경쟁국인 북한을 압도하는 성장이 이 시기에 이뤄졌습니다. 이 양적 성장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있어 박정희는 일종의 메시야로 보여졌을 겁니다.


근대화가 국제적, 시대적 필연인건 확실하지만 '근대화 = 산업화'는 될 수 없윱求? 즉, (서구 모델이었던 ) 근대화는 민주, 인권, 자유, 합리, 혁명.. 등의 질적인 부분을 전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근대화 전략은 초살적인 노동환경과 초살적인 노동시간, 그리고 초살적인 최소 급여가 있었으며 재야인사를 비롯한 국민에 대한 테러적 독재행위, 집시법, 국보법 강화, 안기부 출현과 같은 근대화에 역행하는 전 근대적 통치 방식들이 탄생한 시기도 이 18년 동안입니다. 현재 근대화의 정신은 부재한 채 근대화의 형태만 갖고 있는 우리나라 모습의 원흉이 이미 그때 전제되었던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질을 희생해서 양을 획득한 시기가 이 시기이며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기형적' 현상, 원칙들이 이 시기에 다져졌으며 이런 부작용에 대한 상징적 사건이 IMF였죠..

산업화에 따른 경제 정책들은 선성장, 후분배론을 따랐고 노동자를 비롯한 중소 기업들이 대기업의 성장에 뿌리가 되어줬습니다. 하지만 성장만 있었지 분배는 미미한(즉 잉여자본의 집중 분배화한) 그때의 논리는 현재 사회 양극화 현상의 원인으로 분석하는 것은 지나친 분석일까요?


결국 박정희의 신화 이면에는 조삼모사적인 미래의 대가를 전제한 것이며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측면에서 보이는 진통의 원인은 이때 뿌려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혐오하는 박정희의 논리가 성장 우선주의, 경제제일주의인데요.. 이 주의들이 우리나라에 뿌리박힌 하나의 가치관인 경제 지상주의, 천민 자본주의로 업그레이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맞물려 이런 비인간적이고 비양심적인 논리가 아주 당연스럽게 작용하고 있는 현상을 매일 목도할 때 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으러 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박정희의 경제발전 주역론적 서술을 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진중권사마의 책을 보고 그것도 아니다라는 의혹을 심하게 갖고 있구요.. 그래서 '그 시기에 이뤄졌던.. '으로 표현했습니다. 제가 경제쪽엔 문외한이라 비평하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끝으로, 박정희가 제일 성공한 치적?은 세뇌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아직도 그가 일부에게 "영웅적인 통치력으로써 근대화의 한을 푼"(조갑제) 인물로 칭송받고 있고, 국가주의, 가족주의, 유사가족주의 등등의 국가를 위한 희생은 영광스런 행위임을 무의식적으로 고백할 때, 과거 성장의 정당성이 자꾸 들릴 때.. 무엇보다 그가 죽은 25년 후인 지금도 그가 이렇게 언급될 때...  그의 그늘이 깊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 대북관계와 한미관계, 지역갈등,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하려고 했는데 깜빡 했는데요.. 적어도 대북관계에 대해선 김일성이나 박정희나 자신의 통치기반을 정당화 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했다고 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