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미당

"[…] 가장 뛰어난 시인들의 경우에도 첫 시집이 대표 시집이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적 재능의 성격과 관련되는 것 같다. 수학적 재능이 그렇듯, 시적 재능도 매우 일찍 피어나는 일이 흔하다. 그리고 그런 재능의 극히 일부만이 나이 듦과 더불어 마모하는 일 없이 유지되거나 진화하는 것 같다. 미당은 만년의 다소 흐트러진 듯한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생애 전체를 통해 자신의 시 언어를 한국어의 최정상에 두었던 매우 예외적인 시인이다. 이젠 너무 남용돼 아무런 울림도 주지 못하는 상투적 표현을 다시 끄집어내자면, 미당의 시 언어들은 지난 세기 한국어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미당의 죽음 앞뒤로 문단 안팎을 소란스럽게 한 그의 정치적 몸가짐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미당의 경우를 두고 시와 정치의 관계를 따져보려는 논자들이 쉽게 치이는 덫은 문학과 삶, 또는 문학과 정치를 모순 없이 일관되게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의 유혹이다. 그래서 그의 행적에 비판적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시적 성취의 허약함을 찾아내려 하고, 그의 문학적 성취에 매혹된 사람은 되도록 그의 행적을 호의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상황논리를 구성하려 애쓴다. 이렇게 문학과 삶을 내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오캄의 면도날처럼 매력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명의 깔끔함이 아니라 사실 앞에서의 겸손함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어떤가? 미당의 삶은, 적어도 그의 공적 자아의 행적은, 시시한 것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젊은 시절 태평양전쟁 시기에 쓴 전쟁선동시든 갑년이 넘어 군사깡패에게 바친 생일 축시든, 그런 문자 행위가 그에게 절박한 신체적 위협과 함께 강요되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당은 천연덕스럽게 그런 역겨운 언어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활자화했다. 그리고 아무런 뉘우침 없이 '종천순일從天順日'이라는 궤변으로 그 행적들을 얼버무렸다.

 

그가 비슷한 세대의 몇몇 반동적 문인들에 견주어 실제로 누린 것 없이 이름만 더럽혔다는 점을 들어 도리어 그의 순박함을, 그 '시인됨'을 높이 사주자는 견해도 있다. 그가 실제로 누린 것이 대단찮았느냐는 판단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 사실이 그 행위들의 역겨움을 눅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의 공적 자아는 시시한 것이었다. <<화사집>>의 서시序詩 격인 <자화상>의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같은 대목은 그의 생애 전체를 미리 요약하는 예언의 울림으로 파닥거리지만, 이 구절들의 빛나는 진솔함이 그의 휘어진 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

 

─ 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강조는 인용자)

 

 

==========

 

요새 저녁만 먹으면 들어와서 몇 시간씩 자고 일어나니, 밤에 잠이 안 와서 큰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