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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를 데리고 산보를 할 때, 나는 개 다리의 움직임에서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을 느낀다. 개 한 마리가 나에게 주는 행복만으로도 나는 오래오래 이 세상에서 살고 싶다. 개 다리가 땅 위에서 걸어갈 때, 개 다리는 땅과 완벽한 교감을 이룬다. 개의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다리가 땅을 밀어내는 저항이다. 개의 몸속에 닿는 이 저항이 개를 달리게 하는데, 이 저항이야말로 개의 살아 있음이다. 개 한 마리가 이 세상의 길 위를 달릴 때, 이 세상에는 놀라운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를 데리고 공원에서 달릴 때 나와 개가 똑같은 아날로그의 짐승임을 안다. 나는 개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아날로그 세상의 네발짐승인 것이다. 내 콧구멍에서 김이 날 때, 개 콧구멍에서도 김이 난다. 이 세상의 길바닥을 헤매고 다닌 개의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고 내 발바닥에도 굳은살이 박여 있다. 이 굳은살은 각질로 금이 가 있고, 거기에 때가 끼어 있기도 하지만, 나는 사람이나 개의 몸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은 발바닥의 굳은살이라고 생각한다. 그 굳은살은 말랑말랑하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다. 그 굳은살은 개나 사람이 이 세상을 딛고 다닌 만큼 단단하거나, 아직 덜 딛고 다닌 만큼 말랑말랑하다. 그래서 개 발바닥의 굳은살은 한 편의 역사를 이루는데, 이 역사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다. 그 역사는 해독하기 어려운 역사인데, 그것이 해독하기 어려운 까닭은 그 역사가 세상과 개 사이에만 이루어진 시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개의 발바닥이나, 두 갈래로 갈라진 돼지 발바닥, 소 발바닥을 들여다볼 때마다 그 존재들의 개별적 삶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목이 멘다. 그리고 못대가리가 휠 때마다 세상과의 교감에 이토록 서툰, 내 생명의 초라함에 문득 놀란다. 아날로그 세상의 슬픔과 기쁨은 등불처럼 환하다. …
- 김훈,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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