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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

'희망의 원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지식인들의 구호는 "맑스가 아니라 진보"였다. 이 말은 말 그대로 '맑스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고, 그저 맑스냐 비-맑스냐 하는 틀을 상대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맑스가 아니면서도 맑스적인 다른 이론들로 맑스주의를 전개/확장하려는 것인데, 이런 노력은 사실 맑스주의 이론이 탄생한 순간부터 계속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알튀세르를 읽어도 푸코를 읽어도, 알튀세르 맑스주의 혹은 푸코 맑스주의라는 식. 기준은 진보다. 맑스가 아니라 진보.

 

그러나 내 생각엔, "진보가 아니라 윤리"가 되어야 한다. 물론 유비적으로, '진보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진보/보수의 틀을 상대화하려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삶과 세상의 극히 일부분, 즉 '정치적인'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 틀은 삶에 대한 여러 잣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잣대는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여기에서는 이 '일부분'이 전체를 포함하고 치환해 버린다.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진보'라는 말은 삶을 정치(학)화한다. 단순화한다는 말이다. 이론은 단순하면 경제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삶이 단순한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내 삶뿐만 아니라 남의 삶까지가 문제로 된다면 이는 극도로 세심/소심하게 다루어야만 한다.

 

첫 문단의 유비를 하나 더 끌어오자면, "진보가 아니라 윤리"라는 말은 '진보가 아니면서도 진보적인 다른 이론들로 진보 개념을 전개/확장하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전개보다는 확장에 방점이 찍힌다. 맑스와 진보의 불연속성보다는 진보와 윤리의 불연속성이 단연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격한 변환은 아니다. 묶였던 매듭이 '급격하게' 풀려 봤자, 뭐 대단히 격한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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