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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05
    정치화
    pug

정치화

"충남 예산의 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을 둘러싸고 전교조 교사들과 이 나라 교장 선생님들이 벌이고 있는 죽기 살기의 싸움은 저 아이들의 찬란한 생명력 앞에서 수치스럽다. 교장이 젊은 여교사들에게 차 시중을 시킨 일이 발단이라고 한다. 듣기에도 민망하고 꼴 같지도 않다."

 

김훈은 앞 문단들에서 '고3 선배님들'을 응원하러 수능시험 고사장 앞에 진을 치고 서서 '지옥의 문턱 앞에서의 축제'를 벌이는 아이들을 눈물겹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저 자살 사건으로 화제를 옮기는데, 꼴 같지도 않단다. 어떤 의미에서? 다음 문단을 계속 읽어본다.

 

1) "나는 젊은 여교사가 늙은 교장에게 차 한 잔을 가져다주는 선의와 애정은 예(禮)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저런! 이렇게 나이브하고 고루한 생각을 여과 없이 내뱉다니! 하는 생각이 대번에 든다. 편안하게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우파 김훈이 또 한 건 했나 싶다. 마음을 추스리고 계속 읽어본다.

 

2) "또한 교장이 젊은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시키는 일은 스스로 삼가는 것 또한 예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금 화들짝 놀란다. 무엇인가? 이 문장은 사실, 당연한 문장이고, 이런 말을 한다고 대단히 진보적인 것도 아닌, 뭐 그렇고 그런 문장이다. 그리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다시금 놀랐으며, 방금 전 내가 우파 김훈에게 겨누었던 탐탁지 않은 시선이 쥐꼬리 사라지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던 것일까?

 

1)을 말한 사람이 2)를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면 내 분류 체계에는 1)의 화자와 2)의 화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중간 어딘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은 위태롭게 경계선 위에 서 있을 뿐 자기만의 이름을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1) + 2)가 오히려 당연한 생각, 그러니까 더 '객관적인' 생각, 더 '보편적인' 생각이 아닐까? (객관성, 보편성에 대한 경계를 유지하면서)

 

다시 1)을 읽어본다. 아무렇지도 않다. 맞는 말이다.

 

이 사건의 문제는 1)과 2)의 생각 중 어떤 것도 적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차 한 잔을 가져다주는 '선의와 애정'도 없었고(그게 누구 탓이든), 차 시중을 스스로 삼가는 예도 없었다.

 

그 다음 절차가 사회적 분석, 혹은 권력 분석인데, 김훈은 이걸 전혀 못한다. (아래에 이어지는 바로 다음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데 여기부터는 오차 범위가 너무 크다. 이른바 인간적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고유한 문제다. 하지만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일단 두고 단락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본다.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양쪽이 인의예지의 문제를 스스로 성찰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양쪽이 이른바 '참교육'을 한다는 교사와 교장이 아닌가. 개인적 자율의 영역을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악물고 끝까지 싸우다가 한쪽이 자살을 하고 나니까 양쪽이 각자의 입장을 세력화, 집단화, 이념화, 정치화함으로써 권력투쟁의 전면전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싸움의 형국은 한마디로 개수작이다."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세력화, 이념화, 정치화...등이 '기존 사회'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보수적인' 단락의 마지막 부분의 명제는, 뒤집힌 형태로, 어떤 개혁의 요구가 된다. 개인의 개혁, 혹은 윤리적 개혁인 것인데, 그러므로 당연히 집단화, 사회화될 수 없고, 따라서 운동도 될 수 없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사회학이 아니라 심리학이 줄 수 있을 것이다.

 

- 김훈, "아이들은 청순하기만 한데"

 

제목은 거짓말이다. 김훈의 줄타기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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